61화. 여우 요괴 삼안(三眼)
하얀 요괴는 심협의 대응에 흥미가 생긴 듯 껄껄 웃더니 허공에서 손을 틀었다. 그러자 머리카락들이 곧장 수축하며 뭉치더니, 공중에서 거대한 담황색 칼날 두 개가 되었다. 이어 칼날은 각각 심협과 검은 얼굴의 청년을 향해 쏘아져 갔다.
“헛!”
심협은 병기가 없었기에 다급히 두 손을 몸 앞에 모아 흩어졌던 물방울을 모으는 데 전력을 다했다. 순식간에 둘레가 2척 정도 되는 물의 방패가 생겨났다.
펑!
칼날과 충돌한 물의 방패는 굉음과 함께 그대로 폭발하여 흩어졌다. 그러고도 여전히 날아드는 칼날을 보며 심협은 재빨리 몸을 굴려 피했다. 그러나 좌절감이 몰려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전의 꿈처럼 진짜로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난다 해도 이 요괴를 당해낼 방법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검은 얼굴은 청년은 장검을 들고 있었지만, 거대한 칼날을 막아낼 생각도 하지 못하고 급히 피해 다니기만 했다. 그러다가 돌연 큰소리로 외쳤다.
“통령(統領)님, 살려주십시오!”
그러자 어디선가 탄식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못난 놈.”
동시에 불빛이 번득였다. 그리고 돌연 3척 길이의 불타는 단창(短槍) 두 자루가 날아들었다.
까깡!
금속성과 함께 단창이 요괴의 거대한 칼날과 부딪치더니, 공중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검은 얼굴의 청년 옆에 떨어졌다. 그러자 청년 옆의 허공에서는 물결이 치는 듯한 파동이 생겨났고, 그 안에서 갑옷으로 무장한 건장한 병사가 나타났다. 단창 두 자루는 병사의 등 뒤에 있던 창 주머니로 들어갔다. 그러자 기존에 있던 다섯 자루의 단창과 함께 마치 공작이 깃털을 펼친 듯한 모양이 되었다.
심협은 한구석으로 물러나 그 병사를 살폈다. 검은 갑옷과 투구, 등 뒤의 새하얀 단창들, 네모 각진 얼굴에 끝이 쳐진 짙은 눈썹, 뺨까지 이어진 짧은 수염 그리고 하나같이 큰 귀와 입을 보아하니 근심 걱정이 많은 상이었다.
“또 네놈이었구나! 여기까지 쫓아오다니, 저놈들 모두 날 끌어내려고 미끼로 쓴 것이렷다!”
하얀 요괴가 통령이라는 자를 보더니 급히 칼날 두 자루를 거두며 격분한 듯 외쳤다.
“삼안(三眼), 이놈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더라면 내 조금 더 관찰해 네놈을 멸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그럴 수 있을 듯하구나. 환술(幻術)도 많이 약해졌던데, 지난번의 부상이 아직 다 낫지 않은 모양이지?”
통령이라는 자는 검은 얼굴의 청년을 한번 흘겨보더니 말했다. 이어서 말을 마치자마자 손목을 슬쩍 비틀었는데, 그러자 소매 안에서 바람 소리가 울리며 붉은 부적 한 장이 쏜살처럼 튀어나왔다. 부적은 동굴 지붕에 붙더니 순식간에 불빛이 번득였고, 곧장 붉은 불 그물이 되어 아래로 내려왔다.
그 부적은 활활 타고 있어 심협은 문양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다만 부적에 담긴 양기가 태양처럼 강했기에 거의 경악하고야 말았다.
불 그물이 펼쳐지기 시작하자 음산한 동굴 사방의 검은 벽은 점점 사라졌고, 바닥에 가득했던 백골들이 햇살에 눈 녹듯 사라져 주위는 다시 대전이 되었다.
삼안이라 불린 요괴는 크게 노하여 사람 머리를 하나 집어 들더내 냅다 던졌다. 머리는 벽에 부딪혀 터지고 말았다.
“오파갑(吳破甲)! 내 근처 고을에서 우둔한 범인(凡人) 몇 명 먹었을 뿐인데 이리도 끈질기게 나를 쫓다니! 이제 날 죽이겠다고 내 구역까지 들어와? 내가 봐준 줄도 모르고 이리 날뛰다니, 이제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마라!”
삼안은 머리카락을 모두 세우며 호통쳤으나 오파갑은 싸늘하게 웃었다.
“범인 몇 명? 수백 명을 몇 명이라 부르던가?”
오파갑은 짧게 냉소하며 불쑥 손을 뻗더니 아무런 방비도 못 하고 있던 검은 얼굴의 청년을 잡아 앞으로 끌고 왔다. 이어서 그는 청년의 등에 황색 빛을 발하는 부적을 붙였다.
“오 통령……”
검은 얼굴의 청년은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돌연 온몸이 굳더니 몸을 쭉 폈다. 공포로 가득 찬 눈동자만 좌우로 계속 굴릴 뿐, 손발은 움직이지 못하는 듯했다.
오파갑이 다시 청년의 턱을 잡아 옥수수 알갱이만 한 검은 단약을 입안으로 튕겨 넣었다. 그리고 품에서 부적이 붙어 있는 검붉은 단도 몇 자루를 꺼내 단숨에 청년의 요혈 몇 곳을 찔렀다.
그 단도가 부기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청년의 갑옷을 뚫을 때에 마치 두부를 베는 것처럼 쉽게 꽂혔다. 더욱 신기한 것은 칼이 찔러 들어간 곳에서 피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아…….”
검은 얼굴의 청년은 길게 탄식했다. 새카만 두 눈은 붉은색으로 변해갔고, 표정 역시 두려움에서 분노로 바뀌어갔다.
단도에 붙은 부적에 붉은 빛이 번득이자 청년의 요혈에 큰 혹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빠드득 하는 소리가 수차례 울렸다. 청년의 몸은 점점 커지더니 키가 1장에 이르는 거인이 되었다. 이 거인은 포효하며 삼안을 덮쳐갔다.
“캬오오오!”
삼안이 길게 포효했다. 그러자 머리카락이 순식간에 한 올 한 올 곤두서더니 이마에서는 피처럼 붉은 빛이 일기 시작했다. 삼안의 이마 한가운데 피부가 좌우로 열리더니, 그 안에서 용안(龍眼)만 한 호박색 눈동자가 나타났다.
호박색의 세로로 긴 눈이 빛으로 번득이더니 굉음과 함께 황색 빛을 발사해 검은 얼굴의 청년이었던 거인을 공격해갔다.
거인은 몸이 뻣뻣하게 굳은 상태라 그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몸으로 받아내며 달려들었다.
쾅!
삼안의 황색 빛은 거인의 가슴을 보호하던 쇄자갑을 순식간에 부식시켜 버렸다. 쇄자갑은 안에 받쳐 입은 옷과 함께 비린내 나는 짙은 황색 연기가 되어 녹아내렸다.
햇살 아래 드러난 거인의 피부는 기이한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삼안이 쏘아내는 황색 빛에 닿은 피부에는 시커먼 화상 흉터가 생겨났으나, 체내까지 뚫고 들어가지는 못했다. 거인은 별다른 타격도 입지 않은 듯했다.
거인이 솥뚜껑만 한 주먹을 휘두르자 삼안은 급히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 두 손을 결인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삼안의 털이 쭉쭉 길어지더니, 거대한 노란 칼을 만들어내 방패처럼 몸을 막았다.
펑!
충돌음과 함께 삼안은 튕겨져 나가 땅바닥을 뒹굴었다. 그러나 곧장 다시 일어나더니 이마에 생겨난 눈에서 황색 빛을 수차례 발사해 거인의 눈을 공격하려 들었다.
거인은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른 손으로는 주먹을 휘둘러댔다.
한쪽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오파갑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그가 손을 결인하고 몸을 굽히자 등 뒤에서 붉은 빛이 번득였다. 빛에 휩싸인 7개의 단창은 이글이글 타오르며 곧장 발사되었다.
단창들이 7줄기의 붉은 무지개가 되어 삼안의 주위를 돌다가 각기 다른 방향에서 요혈을 노리고 찔러 들었다.
“크아아!”
그 순간, 삼안이 울부짖듯 비명을 내질렀고, 대전 안은 순식간에 피비린내로 가득 차버렸다. 삼안의 옷도 터져나갔는데, 온몸은 노란 털로 뒤덮여 있었다. 그 털들이 돌연 길어지더니 그대로 십여 개의 황색 칼을 만들어내 몸을 에워싸 거인의 주먹과 7개의 단창을 모두 막아냈다.
삼안은 남은 힘으로 이마의 눈을 조종하여 황색 빛을 계속 뿜어냈다. 하지만 머리카락이 변한 칼까지 조종하느라 조준이 어려워진 탓에 황색 빛은 계속 빗나갔고, 그중 몇 번은 심협이 맞을 뻔했다.
심협은 물론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가 재빨리 피해냈다. 그는 삼안의 가슴에 언제부턴가 눈과 비슷한 붉은 문양이 생겨난 것을 보고는 유심히 살피는 중이었다. 사실 그 문양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뒤통수라도 맞은 것처럼 눈앞이 어지러웠다. 문양의 가운데 눈동자와 같은 위치에 나선형 무늬가 생겨나 빙빙 돌면서 영원히 그를 놓아주지 않을 것만 같았다.
나선형 무늬는 점점 빠르게 돌기 시작했고, 심협의 눈앞도 점점 흐릿해졌으며, 속이 뒤집어질 듯 가슴까지 구역질이 올라왔다. 거의 토하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심협은 점점 정신을 회복하고는 가까스로 그 무늬에서 눈을 뗐고, 그러자 어지럼증과 울렁거림도 사라졌다.
힘겹게 요사스러운 무늬에서 벗어난 심협은 몸에 힘이 풀려 그대로 쓰러질 뻔하다가 가까스로 땅을 짚고 심호흡을 하면서도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저 삼안은 분명 수행 정도가 벽곡기 이상에 이른 막강한 요괴일 것이다. 그런데 오파갑이라는 자는 전혀 밀리지 않으니, 그 또한 같은 급의 수사일 터!’
하지만 수많은 사람을 미끼로 이용하고 검은 얼굴의 청년에게도 악랄하게 손을 쓰는 것으로 미루어 오파갑은 결코 선량한 사람은 아닌 듯했다.
심협은 그렇게 생각하며 조용히 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가 막 대전 입구까지 다가갔을 때였다.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던 대전이 돌연 어두워지더니 다시 음산한 동굴로 바뀌었다. 바닥에는 허연 뼈가 잔뜩 깔려 있었고, 두껍고도 무거운 철문은 스르르 닫혀버렸다.
좌절한 심협은 온 힘을 다해 검은 철문에 부딪쳐 보았다.
쿵! 쿵!
철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심협이 소뢰부를 사용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오파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젊은이, 공연히 힘 빼지 말게나. 소용없는 짓이야. 여기 이 삼안이라는 여우 요괴는 환술(幻術) 재능을 타고났지. 하물며 여기는 저놈의 소굴이니 진즉 손을 써놓았을 것이네. 저놈이 근래 사람을 많이 잡아먹어 수련이 크게 진보하였으니 환술도 이미 가짜를 실제로 화하게 할 정도에 이르렀겠지. 저 요괴를 죽여야만 이 환술을 깰 수가 있다네. 그러니 나를 돕게나.”
“선배님, 그럼 제가 무얼 해야 합니까?”
심협은 오파갑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고는 어쩔 수 없이 그를 돕기로 했다.
“법술로 물을 모아뒀다가 때가 되면 내 분부대로 움직여주게.”
오파갑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충분히 자신이 있는 모양이었다.
말을 마친 오파갑은 손의 결인을 바꿨다. 그러자 7개의 단창 화염이 순식간에 타오르더니 나선형으로 회전하면서 송곳 같은 모양이 되어 삼안을 향해 공격해갔다.
그 무렵, 거인은 지령이라도 받은 것처럼 얼굴을 방어하던 것도 멈추고 두 주먹을 함께 휘둘러 삼안의 머리카락이 변한 칼들을 쳐내더니 삼안 바로 앞까지 짓쳐 들어갔다.
삼안 역시 거인을 막기 위해 9개의 칼을 더욱 미친 듯이 휘둘렀다. 이마의 눈에서는 황색 빛이 계속 발사되고 있었다. 동시에 삼안의 몸에서는 가느다란 털이 발사되어 심협과 오파갑, 거인의 급소를 노렸다.
심협은 조심스럽게 피하는 한편 대전 안에 고인 물을 끌어모았다. 그러면서도 주위를 살피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만일 기회만 있다면 도망쳐서 살고 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고여 있는 물이 의외로 많았는지 점점 많은 물이 모였다. 나중에는 물 때문에 움직임이 둔해져 삼안의 공격을 피하는 것도 어려워질 정도였다.
그런데 그때, 돌연 처참한 비명이 울렸다.
화들짝 놀란 심협이 고개를 돌려보니 삼안의 칼 두 자루가 거인의 가슴을 관통해 있었다. 칼은 거인의 양쪽 견갑골 아래로 튀어나와 있었는데, 피가 흥건히 떨어지는 그 모습은 처참하여 똑바로 보기도 힘들었다.
“크아아아!”
거인은 비명을 지르면서도 물러서기는커녕 오히려 칼이 완전히 몸을 꿰뚫고 지나가게 하려는 듯 큰 걸음으로 삼안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더니 양팔로 삼안을 꼼짝 못 하도록 꼭 끌어안았다.
“지금이다! 물을 이용해 저들을 묶어라!”
오파갑의 외침에 심협은 머뭇거리지 않고 양 소매를 떨쳤다. 그러자 큰 물방울 두 개가 날아가 물 병풍이 되어 삼안과 거인을 감쌌다. 그 안에서 끊임없이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그때 오파갑이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하얀 빛이 쏜살처럼 날아들었는데, 그 안에는 1척 정도 되는 투명하게 빛나는 소창(小槍)이 담겨 있었다. 창은 강렬한 한기를 뿜어내며 그대로 물 병풍에 꽂혔다. 그러자 순식간에 하얀 한기가 뻗어 나갔고, 물 병풍이 빙산처럼 변해 요괴와 거인을 가두었다.
오파갑은 삼안의 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 양손을 결인하더니 아래로 뻗었다.
콰드드!
7개의 화염 단창에서 불빛이 번득이더니 돌연 두 배에 정도로 커졌다. 그러더니 마치 투창처럼 사방에서 교차하며 내리꽂혀 삼안과 거인의 몸을 관통했다.
쾅!
삼안과 거인은 그대로 땅에 박혀버렸다.
심협은 이 광경에 섬뜩함을 느꼈고, 긴장감과 경계심이 치솟았다. 검은 얼굴의 청년이 오파갑에게 이용당한 후 처참한 죽음을 맞는 것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심협은 이 환술이 사라지면 곧바로 멀리 도망치리라 결심했다. 절대 오파갑과 더 엮이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