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59화 (59/1,214)
  • 59화. 사원에서의 이변

    나씨 도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운두를 조종해 길을 재촉했다. 심협 또한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공손하게 옆에 서 있었다.

    이들은 오후에 춘추관에 도착했다.

    나씨 도인은 장문인에게 보고하러 갔고, 심협은 자신의 거처로 돌아왔다.

    심협은 하루 하고도 반나절에 이르는 일정에 정신이 피로했기에, 거처로 돌아오자마자 잠을 청했다. 그리고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밖이 칠흑처럼 어두웠다. 밝은 달이 하늘에 떠 있는 것이 한밤중인 듯했다.

    잠을 잘 잔 듯 정신은 매우 맑은 상태였다.

    “아, 옥침에는 무슨 변화가 있으려나?”

    심협은 불현 듯 떠오른 생각에 침상 아래에서 옥침을 꺼냈다. 그리고 구귀부를 몸에 붙이고 법력을 주입했다. 그러자 시야가 바로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심협은 옥침을 보다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옥침 위에 그 투명한 빛줄기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어째서지? 설마……?”

    심협은 무언가를 떠올리며 옥침에 무슨 변화가 있는지 살피려 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잠시 후 눈이 감겨오며 잠이 쏟아졌다.

    “방금 잘 자고 일어났는데 어찌 또 잠이 온단 말인가?”

    심협은 급히 얼굴을 때리고 고개를 흔들며 잠을 쫓아보려 했다. 하지만 잠이 깨기는커녕 더욱 졸리기 시작했다.

    심협은 애써 버텨봤지만, 결국은 잠을 이기지 못하고 침상에 누웠다. 그는 옥침을 몸 밑에 놓은 채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심협은 몽롱한 상태로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다가 돌연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자신도 모르고 몸을 떨었다. 그리고 퍼뜩 잠이 깨 일어나 앉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주변이 어두컴컴해 새벽인지 밤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멀지 않은 곳에 허물어지고 황량한 오래된 건물이 보였다.

    심협은 긴장하며 급히 고개를 숙여 자신의 몸을 살폈다. 피가 잔뜩 말라붙은 얇은 내의만 입고 있는 상태였다.

    “이 옷은…… 분명 지난번 꿈을 꿨을 때 봉지성에서 입고 있던 것인데…….”

    심협은 자신이 또다시 기이한 꿈속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급히 의복을 헤치고 몸 곳곳을 살폈다. 지난번 꿈에서 늑대에게 공격당해 생긴 부상은 모두 사라져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런데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그는 의아한 얼굴로 급히 오른쪽 어깨를 다시 살폈다.

    “어찌 없어진 게지?”

    어깨의 해골 무늬가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그리 크지도 않았던 그 목소리에 놀란 것인지, 바로 옆 고목에서 쉬던 까마귀들이 날아갔다.

    “작살 부기도 사라졌어. 항상 몸에 지니고 있었는데…….”

    작살이 사라진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해골 문신은 왜 사라졌단 말인가?

    “그렇다면 법력도……?”

    심협은 당황하며 급히 손을 결인하고 무명공법을 운공했다. 다행히도 단전 안에서 법력이 움직였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심협은 다시 옷을 입고 정신을 가다듬은 후 일어나서 주위를 살폈다.

    사방에는 잡초가 무성했고, 습한 대기에는 짙은 안개가 껴 있어서 서너 장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가 서 있는 곳은 오래된 푸른 벽돌 길이었다. 곳곳이 파손되어 있었고, 그곳들마다 잡초가 자라 있었다. 잡초는 저 앞의 오래된 건물을 향해 뻗어 있었다.

    심협은 그 건물을 향해 몇 걸음 다가갔다. 그곳은 한 사원의 산문이었다. 산문 윗부분의 기와에는 잡초가 자라 있고, 담장의 붉은 칠은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담벼락에는 보상장엄(寶相莊嚴)이라는 네 글자가 언뜻 보였다.

    반쯤 닫혀 있는 산문은 거의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문머리에는 비스듬히 편액이 걸려 있었는데, 편액에는 가람사(珈藍寺)라는 세 글자가 크게 새겨져 있었다.

    “이리 훼손된 것을 보니 폐허가 된 지 백 년은 넘었겠구나!”

    심협이 중얼거렸다.

    그가 봤던 수많은 소설에서 황량한 산속의 옛 사원이 등장했다. 그 사원에는 항상 과거를 보러 가던 서생을 아름다운 귀신이 환술(幻術)을 이용해 유혹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종종 아름다운 이야기로 묘사되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얘기들은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장천사항요기사>에서 언급하기를, 사원과 도관, 서낭과 같은 곳은 향불이 가득할 때는 신령의 보호를 받지만, 향불이 모두 사라지고 폐허로 전락하면 다른 곳보다 음기와 귀신 따위가 더 잘 모여든다. 게다가 심협은 이전 두 차례의 기이한 꿈에서 모두 귀신과 요괴를 만나지 않았던가. 그러니 자연히 사원에 들어갈지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꽝!

    심협이 사원 앞에서 망설이고 있으려니 공중에서 돌연 굉음이 울렸다. 이어서 어디선가 누런 기운이 어린 바람이 불어와 순식간에 하늘을 완전히 뒤덮었다. 가뜩이나 어둑했던 하늘은 깊은 밤처럼 시커멓게 변해버렸다.

    주위에 퍼져 있던 안개는 이 기이한 바람에 밀려 마치 벽처럼 변해 요동쳤다. 그 힘이 어찌나 강한지 심협을 한 걸음씩 사원으로 밀어내고야 말았다.

    바람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사원 안으로 막 들어섰을 때, 심협은 가부좌를 틀고 있는, 머리가 없는 뚱뚱한 시신을 보게 됐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양기를 운공해 몸을 보호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시신이 아니라 흙으로 빚은 미륵불상이었다.

    심협은 미륵불상을 돌아서 들어갔다. 그러자 전신이 칠흑처럼 검고 손에는 항마저(降魔杵)를 든 채 갑옷을 걸친 신상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호법신 위타보살(韋陀菩薩)일 터였으나 두 눈이 비어 구멍만 남은 것이, 볼수록 흉측했다.

    “실례합니다.”

    심협은 한 손을 몸 앞에 세우고 허리를 숙이며 낮은 소리로 방문을 알렸다. 자신은 도가에 몸담고 있지만, 수행이라는 같은 길은 걷는 자로서 불가에 예의를 갖추고자 함이었다.

    낙엽이 가득하고 경당(經幢)이 쓰러져 있는 정원을 지나자 안으로 웅장한 대전이 눈에 들어왔다. 외관은 나름 잘 보존되어 있었으나 문과 창문이 부서진 채였고, 그 안에서는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누군가 있나?”

    심협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조심스레 다가갔다. 바로 들어가지는 않고 대전 앞에 선 채 문과 창문의 부서진 틈으로 안을 살폈다.

    바닥에는 마른 풀이 가득했고, 중앙에는 신상이 놓여 있었다. 그런데 부처나 보살의 신상이 아니라 특이한 모양의 머리가 셋 달린 신상이었다. 손에는 삽 같은 물건을 들고 있는 모습이 퍽 익살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이러한 신상이 이상할 것까지는 없었다. 민간에서는 본래 지역의 신을 모시는 관습이 있으니 말이다. 생전에 백성들을 구해 덕을 쌓은 사람도 사후에 신상으로 조각되어 부처처럼 모시는 경우도 있으니, 이 신상도 그런 경우일지도 모른다.

    신상의 발밑에 깔린 마른 풀 위에서는 누군가 안쪽을 향해 옆으로 누워 자고 있었다. 봉두난발에 누추한 거지였다.

    거지 옆에는 짧은 베옷을 입은 자가 앉아 있었다. 머리에 버짐이 잔뜩 핀, 작고 다부진 체격의 못생긴 사내였다. 허리에는 짧은 검정색 도끼를 차고 있었는데, 옆에 땔나무 두 묶음이 있는 것으로 보아 나무꾼인 듯했다.

    대전 안쪽 모서리에는 바닥이 많이 깨져 큰 구덩이가 생겨 있었는데, 그 안에는 푸르게 변한 빗물이 고여 있었다.

    심협은 밖에서 한참을 지켜보다가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갔다.

    끼이익!

    부서진 오래된 문이 요란스레 열리자, 누런 바람도 바로 대전 안으로 불어닥쳤다. 바닥의 장작불도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나무꾼은 그제야 고개를 돌렸는데, 심협의 몸에 덕지덕지 묻어난 핏자국을 보고는 두려움에 질린 얼굴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형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밖에 바람이 강해 잠시 바람을 피해 들어왔습니다. 바람이 그치면 바로 갈 것입니다.”

    심협은 웃으며 몸을 돌려 대전 문을 닫았다. 그러나 그 습하고 뭔가가 썩어가는 듯한 역겨운 냄새에 자신도 모르게 코를 찡그렸다.

    나무꾼은 심협이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는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었다. 여전히 심협을 두려워하는 기색으로, 심경을 거스르지 않고자 짓는 미소 같았다. 그가 앉으라고 손짓하자 심협은 양손을 소매 안에 모아 넣고는 조용히 불 옆으로 가 앉으며 곁눈으로 거지를 살펴봤다. 거지는 제법 소란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나무꾼은 심협을 힐끔거리다가 눈이 마주치자 급히 시선을 돌렸다.

    심협도 딱히 할 이야기가 없었기에 주변을 슥 훑어보고는 멍하니 불을 바라보았다.

    그러던 중 그가 퍼뜩 고개를 들더니 대전의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곧바로 인기척이 느껴지더니 누군가가 힘차게 대전의 문을 열었다. 이어서 허리에 도검을 찬 청년 호위병 일고여덟 명이 한꺼번에 몰려 들어왔다.

    청년들의 호위를 받으며 들어선 자는 쇄자갑(鎖子甲)을 입은 검은 얼굴의 청년과 갈색 비단옷을 입은 노인이었다. 두 사람 뒤로는 십여 명의 남자 시종이 따르고 있었다.

    호위병들은 대전에 들어서다가 안에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는 다짜고짜 도검을 꺼내 들었다. 마치 대적(大敵)을 만난 것처럼 긴장된 표정이었다.

    반백의 노인은 급히 검은 얼굴의 청년 뒤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는 반만 내민 얼굴 너머 불안에 떨리는 눈으로 심협과 나무꾼, 거지를 살폈다.

    심협은 그 호위병들을 힐끗 살핀 후 밖을 내다봤는데, 앞뜰에 말과 마차가 어렴풋이 보였다. 길을 지나던 상인 무리인 듯했다.

    “너희는 누구냐?”

    검은 얼굴의 청년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칼끝을 심협에게 겨누며 외쳤다. 피로 물든 옷을 입고 있으니 단연 눈길을 끈 모양이다.

    심협은 내심 긴장하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생각했다. 나무꾼은 이미 무릎 꿇고 창백한 얼굴로 벌벌 떨고 있었다.

    “나…… 나리. 저는 그저 인근 고을에서 나무하는 사람일 뿐, 가진 재물이 없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나무꾼은 애원하면서 연신 절을 했다. 그는 지금 나타난 이들을 강도라 여긴 것이다.

    그 와중에도 거지는 죽은 듯 잠들어 있었다.

    검은 얼굴의 청년은 나무꾼의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먼저 대전에 와 있던 세 사람을 진지한 표정으로 살폈다. 특히 심협을 유심히 살피는 중이었다.

    “길에서 강도를 만나 겨우 목숨만 건져 이곳으로 도망쳐왔소.”

    심협이 짧게 해명했다.

    “실례하겠소.”

    검은 얼굴의 청년은 여전히 경계심을 숨기지 않은 채 손짓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호위병이 손바닥만 한 원형 나침반을 건넸다.

    심협은 나침반을 힐끗 살펴봤다. 예스러운 것이, 황동으로 주조한 듯했다. 바늘 위에는 엄지손가락만 한 회백색 옥돌이 상감되어 있었는데, 그 안에 백색 기체가 어렴풋이 보였다.

    ‘원석!’

    심협은 속으로 외쳤다.

    검은 얼굴의 청년은 한 손으로 칼자루를 꼭 쥔 채, 다른 손으로는 나침반을 들어 우선 심협을 향해 흔들었다. 다른 이들의 시선도 모두 심협을 향했다. 그러나 나침반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검은 얼굴의 청년은 내심 안도한 듯한 얼굴로 이번에는 신상 앞에서 자고 있는 거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거지에게서도 나침반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청년은 물론이고 그 무리는 다소 긴장을 푸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나침반이 무릎을 꿇고 있던 나무꾼을 향하는 순간, 바늘이 미친 듯이 돌기 시작하더니 상감되어 있던 원석이 폭발하고 말았다.

    펑!

    나침반에서 백색광 한 줄기가 나무꾼을 향해 쏜살처럼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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