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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58화 (58/1,214)

58화. 경위가 밝혀지다

뿔뿔이 도망쳤던 마부(馬府) 사람들도 귀신을 물리친 것을 알아챘는지 나씨 도인과 심협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나씨 도인의 손에 돌던 붉은 빛은 사라져 있었다. 그는 낯빛이 조금 창백했지만, 표정은 흥분에 가득 차 있었다. 그가 손을 들어 올리자 벽 너무 정원에서 붉은 빛이 날아왔다. 사라졌던 도목검이었다.

도목검 위의 붉은 부적이 내뿜던 빛은 크게 줄어 있었다. 위력이 많이 소모된 것이다. 도목검에서 나왔던 기검은 이미 사라졌고, 검 끝에는 3척 정도 되는 붉은 귀신이 꽂혀 있었다. 붉은 치마를 입은 여자 귀신이었다.

귀신의 손발은 부패하여 곳곳에 허연 뼈가 끔찍하게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얼굴은 잘 보존되어 있었다. 용모가 빼어난 것이, 미간에는 붉은 미인점도 있었다. 하지만 눈빛은 잔혹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나씨 도인을 향해 분노의 고함을 내지르고 있었다. 도목검의 속박을 벗어나려는 몸부림도 퍽 격렬했다.

하지만 귀신은 힘이 모두 빠진 것인지 몸은 거의 투명한 상태라 마치 언제라도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고, 도목검에서 조금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심협은 그 귀신과 기이한 꿈에서 본 장발 귀신과 비교해보았다. 생김새는 꿈속에서 본 장발 귀신이 더욱 흉악했으나, 위력을 따지자면 저 여자 귀신이 더욱 놀라웠다.

“미천한 귀신아, 아직도 승복하지 못하겠느냐? 승복해라!”

나씨 도인은 힘주어 외치며 품에서 검은색 작은 포대를 꺼내고 한 손을 결인했다.

작은 포대는 입구에서 검은 빛을 내뿜으며 그대로 날아가더니 귀신을 빨아들였다. 귀신이 포대 안으로 빨려 들어가자 대청에 있던 귀기도 말끔히 사라졌다.

“그…… 귀신은 사라진 겁니까?”

마사묵이 전전긍긍하며 다가와 물었다. 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설마 하니 지금껏 자신의 집안에 저런 끔찍한 귀신이 있었을 줄이야.

“마 거사, 안심하시오. 귀신은 이미 물리쳤소. 이제 다시는 마부(馬府)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오.”

나씨 도인은 검은 포대와 도목검, 심협이 들고 있던 칠성번을 챙기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두 분은 살아 있는 신선이십니다. 그런데 그 귀신이 어찌하여 저희 집에 온 걸까요?”

마사묵은 나씨 도인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가 문득 궁금한 듯 물었다.

심협도 그제야 그 문제를 떠올리고는 나씨 도인을 바라봤다.

나씨 도인의 표정도 다소 멍한 것이 그 문제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 듯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벽 너머 정원으로 향했다. 심협이 바로 뒤따랐다.

마사묵은 귀신을 물리쳤다는 소식을 마부(馬府) 사람들에게 알리고는 각자 거처로 돌아가도록 했다. 그러고 나서 자신도 나씨 도인을 따라갔다.

나씨 도인은 정원의 옛 우물가로 가서 부근을 살폈다. 하지만 여전히 미간이 찌푸려져 있는 것이 단서를 찾지 못한 듯했다.

잠시 후, 그는 나지막이 한숨을 쉬더니 근처에 있던 높은 건물 지붕으로 올라가 사방을 살폈다. 그러더니 곧 알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휙 하고 내려왔다.

“백하진이 위치한 곳은 비록 토지가 비옥하고 교통이 편리하나 풍수지리가 좋지 못하오. 고을 밖에 흐르는 하류는 활 모양새를 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작은 계곡이 백하진으로 흘러들어오고 있소. 이러한 지형을 궁표지(弓殍地)라 하지. 음기가 모이기 쉬운 곳이오. 다행히 백하진의 궁표지는 그리 뚜렷한 편은 아니라 모인 음기가 많지는 않소. 게다가 고을에 사람이 많고 생기가 왕성하여 충분히 음기를 흩트릴 수 있었던 게지.”

이어서 나씨 도인은 시선을 우물 쪽으로 돌리며 말을 이었다.

“그러나 마부(馬府)의 이 우물은 땅속 수맥이 통하는 곳에 있는 데다가 오래된 홰나무가 옆에 있었소. 홰나무는 음기를 모으고 귀신을 부르는 작용을 하니, 흩어졌던 음기가 모두 이곳에 모여 이 우물이 음혈(陰穴)이 되었소. 그래서 그 귀신이 이곳에 깃든 것이지. 다행히 그 귀신의 수련 정도가 중요한 관문을 넘지 못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큰 해를 입었을 것이오.”

나씨 도인의 차분한 설명은 그렇게 일단락이 됐다.

‘풍수지리적으로 음기가 모이는 곳이다? 그런 것이었군.’

심협은 흥미롭게 들으며 새로운 지식을 익혀갔다.

“그렇다면 또다시 귀신이 오지는 않겠습니까? 이사를 가야 할까요?”

마사묵은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물었다.

“그럴 필요는 없소. 귀신은 이미 물리쳤고 홰나무도 파괴했으니 모여 있던 음기도 서서히 사라질 것이오. 그리고 그 우물에 흙을 채워 막아버리면 되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면, 고을 사람들과 의논하여 백하진으로 들어오는 작은 계곡을 메워 평지로 만드시오. 그럼 더 이상 음기가 모이지 않을 테니까.”

나씨 도인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네, 네. 제가 백하진 백성들을 대신하여 선장(仙長)님께 감사를 올립니다.”

마사묵은 거듭 감사를 표하며 속으로는 어떻게 그 계곡을 막아버릴지 궁리했다.

“그럼 이만 가보겠소.”

나씨 도인이 작별을 고하였다.

“두 분 선장(仙長)께서는 어찌 이리 급히 가십니까? 제가 이미 연회를 마련하도록 분부해두었으니 두 분을 모실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마사묵이 다급히 말했다.

“우리는 춘추관으로 돌아가 수행해야 하니 거사께서는 수고하실 필요 없소.”

나씨 도인은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급히 가야 하는 모양이었다.

마사묵은 더 만류할 수 없음을 알고는 직접 두 사람을 배웅했다. 그가 약속했던 재물도 잊지 않았는데, 원래 이야기한 금액보다 훨씬 더 많은 듯했다.

나씨 도인과 심협은 백하진에 더 머물지 않고 바로 출발했다.

고을 밖, 사람이 없는 곳에 이르자 나씨 도인은 수운두를 다시 나타나게 했다. 두 사람은 수운두를 타고 춘추관으로 향했다.

심협은 춘화현성이 있는 곳을 보게 되자 집에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얼마 전 집에 다녀온다는 이유로 하산한 적이 있으니 또 그럴 수는 없었다.

심협은 속으로 탄식하며 춘화현성에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리고 옆에 있던 사부를 살폈다.

나씨 도인은 가부좌를 튼 채 검고 작은 포대를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손끝의 빛이 포대를 에워싸고 있었다. 마치 어떤 법술을 시전하고 있는 듯했다.

작은 포대에서는 검고 그윽한 빛이 나타나 수시로 심하게 요동쳤다. 마치 안에서 무언가 소란을 피우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씨 도인의 손끝에서 빛이 천천히 흘러 들어가자 검고 그윽한 빛은 점점 안정되어갔다.

심협은 묵묵히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포대에 빨려 들어간 여자 귀신이 떠올랐다. 분명 그 귀신이 몸부림치는 것이리라. 그런데 나씨 도인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설마…… 귀신을 길들이는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자, 조금 전 나씨 도인이 시전한 놀라운 기세의 기검이 떠올라 다시 한번 탄복하게 되었다. 그러니 감히 스승을 방해할 수가 없었다.

한참 후, 작은 포대의 그윽한 빛이 완전히 안정되었다. 나씨 도인은 그제야 시전하던 법술을 멈추고 부적 한 장을 꺼내 포대에 붙이고는 표정을 풀었다.

“춘추관에 돌아가거든 오늘 있었던 일을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말거라.”

나씨 도인은 포대를 조심스럽게 챙겨 넣으며 심협에게 분부했다.

“네, 사부님.”

심협이 이유를 묻지 않고 바로 공손하게 답하자 나씨 도인은 흡족해했다.

“오늘 사부님의 신통한 법술에 매우 탄복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마지막에 펼치신 놀라운 위력의 검법이 어떤 것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심협은 사부의 기분이 좋은 듯하자 비위 맞추는 말로 묻고 싶었던 것을 여쭈었다.

“아, 그것은 춘추관의 비술 음양법검(陰陽法劍)이다. 귀신에 대한 살상력이 매우 강한 것이지.”

나씨 도인은 득의양양한 말투로 대답했다.

“음양법검…….”

심협은 조용히 읊조렸다. 나씨 도인이 음양법검을 시전하던 모습이 떠오르자 부러워지기도 했다.

“제자 백 사형과 전 사형에게 일부 사형들이 하산하여 귀신을 물리치거나 잡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혹시 춘추관이 귀신을 물리치는 데에 뛰어난 것인지요?”

심협이 바로 다시 물었다.

“그렇다. 우리 춘추관 도법은 소모산(小茅山)의 한 계파를 전승한 곳으로, 본디 귀신과 요괴를 상대하는 법술에 능하지.”

나씨 도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소모산?’

심협은 머릿속에 무언가 퍼뜩 스쳤다. 어느 책에서인가 그 이름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선가(仙家)의 길한 곳으로 전해오는 산이었던 듯했다.

“음양법검이 대단하기는 하나 우리 춘추관에서 가장 신통한 법술은 아니다. 춘추관에는 진관신통(鎭觀神通)이 있는데, 대개박술(大開剝術)이라 불리지. 음양법검은 기껏해야 귀신과 요괴를 멸할 뿐이지만, 대개박술은 생사를 역전시킬 수도 있다. 만약 이 법술을 완성한다면 배가 갈리거나 머리가 잘려도 생명을 잃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시 자라날 수도 있지.”

나씨 도인은 흥이 올라 자부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에 그리 신기한 신통술이 있단 말입니까?”

나씨 도인의 말에 심협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놀란 것이다. 머리가 잘리고도 살아날 수 있다니, 야사나 잡서에서도 본 적이 없는 이야기 아닌가!

“그야 물론이지. 선가의 도법은 오묘하기가 그지없다. 보통 사람이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지.”

나씨 도인은 심협을 곁눈질로 보며 말했다.

“그럼 사부님께서도 그 법술을 완성하셨는지요?”

심협은 동경의 눈빛을 보내며 물었다.

“이 사부는 아직 수행이 부족하여 대개박술을 수련할 도리가 없구나. 춘추관에서 네 사숙조만이 이 법술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개박술을 완성했는지는 알 수가 없지.”

나씨 도인은 고개를 내저으며 조금 풀이 죽은 듯 말했다.

심협은 안목이 열린 듯한 느낌이 들었고, 더 많은 것을 묻고 싶었다. 하지만 나씨 도인의 풀 죽은 모습에 더 이상은 묻지 않았다.

“그런데 아까 마부(馬府)에서 운공하여 귀기의 침입을 막아내던데, 체내의 양기가 이상하리만치 강하더구나. 어찌 된 것이냐?”

나씨 도인이 갑자기 물었다.

“제자 마침 그 일을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이번에 집에 돌아갔을 때 아버지께서 거금을 지불하여 외지 상인에게서 기이한 붉은 과실을 사들였습니다. 크게 몸을 보하는 것이라 하던데, 그것을 복용하고 나니 체내의 양기가 크게 증가하였습니다. 소화양공도 곧 완성될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심협은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긴장했지만, 미리 생각해둔 대로 흥이 오른 듯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러는 동안 몸에 짙고도 붉은 빛이 일었다.

나씨 도인은 심협의 어깨에 손을 얹어 체내 상황을 살펴보려 했으나, 제자의 몸에서 붉은 빛이 일자 손을 내렸다. 그러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붉은 빛을 살폈다.

“사부님, 제자가 소화양공을 완성하게 되면 순양검결의 전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나씨 도인의 반응에 심협은 속으로 안도하며, 겉으로는 공손하게 말했다.

“약속이니 물론 지키마. 그런데 네가 복용했다는 붉은 과실은 어떻게 생겼더냐?”

나씨 도인이 두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타원형에, 전체가 불처럼 붉었으며, 표면에는 불꽃 무늬가 있는 신비한 과실이었습니다.”

심협은 이미 전부터 생각해둔 대로 답했다. 그러나 대충 지어낸 답은 아니었다. 그는 어떤 책에서 화원과(火元果)라는, 몸의 근본을 튼튼히 하고 원기를 키우는 영험한 과실에 대해 본 적이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묘사하되 3할 정도는 꾸며내서 덧붙였다. 그리 하면 나씨 도인이 화원과를 알고 있다 해도 심협이 복용한 과실이 화원과인지 확신할 수 없을 테니 거짓말도 탄로 나지 않을 터였다.

“네 얘기를 들어보니 그 붉은 과실은 아마 화원과이거나 그 변종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확신은 어렵구나. 어쨌든 운이 좋았구나. 이 또한 너의 복이니라.”

나씨 도인은 웃으며 말했다.

“모두 사부님 덕을 입은 것입니다.”

심협도 웃으며 말했다.

“네가 이러한 운을 만났으니 앞으로 소화양공을 빨리 완성하도록 더욱 힘쓰거라. 이후 통법성 관문을 지난다면 연기기에 진입하게 되니, 네 수명의 문제는 해결될 것이니라.”

다행히 나씨 도인은 화원과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네, 사부님. 반드시 노력하여 사부님께서 실망하시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심협은 바로 정중하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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