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57화 (57/1,214)
  • 57화. 칠성진(七星陣)

    마사묵은 가슴이 벅차왔고, 나씨 도인을 보는 눈빛도 많이 달라졌다.

    “후…… 칠성법진(七星法陣)을 사용하느라 막대한 정혈(精血)을 소모하게 되었소. 이 일을 끝내고 나면, 빈도는 삼 년은 수련해야 회복할 수 있을 것이오.”

    나씨 도인은 한차례 비틀거리더니,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선장(仙長)님께서 저희 집안을 위해 이리 많은 정혈을 소모하셨으니, 이백 냥의 황금을 더 바쳐 보답하겠습니다. 대신 그 귀신은 꼭 물리쳐 주십시오.”

    “마 거사, 안심하시오. 이미 칠성진을 쳤으니 제아무리 날고 기는 귀신이라 해도 빈도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소이다!”

    나씨 도인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의 새하얀 치아가 타오르는 촛불에 비쳐 찬란하게 빛났다.

    심협은 급히 고개를 숙이고 정색하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나씨 도인의 기운은 전혀 떨어지지 않았는데 무슨 정혈이 소모되었단 말인가. 촛불이 돌연 커진 것은 나씨 도인이 핏방울과 함께 법력도 날렸기 때문일 뿐이다.

    심협은 지금 연기기 수사가 되었기에 이러한 속임수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마사묵처럼 그 역시 신통하다며 감탄했을 것이다. 나씨 도인은 평소 냉정한 것처럼 보였는데, 돈을 더 받아내는 데에 이리도 능숙하다니.

    나씨 도인은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부적을 쓰기 시작했다.

    나씨 도인이 쓰는 부적은 구귀부와 꽤 비슷했다. 심협은 급히 정신을 집중하고 관찰했지만, 쓰는 속도가 너무도 빠르고 필법도 현란해 알아보기 힘들었다.

    나씨 도인은 거의 멈추지도 않고 손을 움직여 순식간에 20여 장의 부적을 써냈다.

    “이 부적을 마부(馬府)의 모든 방과 담 안에도 붙이시오. 절대 빠진 곳이 있어서는 아니 되오. 그리고 마부(馬府)의 사람들을 모두 이곳으로 부르시오!”

    나씨 도인은 부적 한 장만 제사상에 남겨두고 나머지는 모두 마사묵에게 건네며 분부했다.

    마사묵은 분부대로 하인 몇을 불러 각자 부적을 붙이게 했다. 그리고는 가족과 하인들을 모두 불러들였는데, 그 수가 가마에 실려온 마사묵의 노모를 포함해 서른에 이르렀다.

    나씨 도인은 사람들이 다 모이기를 기다렸다가 등 뒤에 메고 있던 보검을 뽑았다. 도목검(桃木劍)이었다. 검신은 짙은 붉은색에 무늬가 뚜렷해, 멀리서 보아도 사악한 기운과 귀신을 물리칠 만한 기운이 느껴졌다.

    ‘정말 좋은 도목검이구나!’

    심협의 눈이 빛났다. 그는 잡서를 두루 본 덕에 도가에서 귀신을 물리칠 때 자주 사용하는 도목검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도목은 강룡목(降龍木)이라고도 불리는데, 사악한 기운과 귀신을 물리치는 효과가 있다. 또한 수령(樹齡)이 오래될수록 색이 짙어지고 귀신을 물리치는 위력도 강해진다.

    보통의 도목은 옅은 황색을 띤다. 하지만 수령이 30년을 넘기면 분홍색으로 변한다. 짙은 붉은색 도목이라면 백 년은 된 오래된 나무일 터였다.

    더욱 신기한 것은 나씨 도인의 도목검에는 옹이가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백 년 된 도목의 기를 그대로 담아 전혀 손상시키지 않은 것이니 그야말로 귀신 베는 보물이라 할만 했다.

    나씨 도인은 품을 뒤져 붉은 부적을 꺼내더니 칼자루에 붙였다. 그러자 도목검에는 붉은 빛이 일더니, 도목검의 위력에 부적의 위력이 더해져 순식간에 위력이 몇 배로 증가했다.

    콰드득!

    강력한 법력의 파동이 검신에서 요동치면서 바람 가르는 소리가 퍼졌다.

    마부(馬府) 사람들은 매우 놀라고 감탄해 누구도 눈을 떼지 못했다.

    심협 또한 속으로 탄복하고 말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도목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놀라운 기운을 더욱 분명히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작살 부기를 다룰 때보다 몇 배는 더 대단한 위력이었다. 물론 지금 심협의 법력은 너무도 미약해 작살 부기의 위력을 제대로 발휘시키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씨 도인은 도목검의 위력을 발휘하고는 심협에게 손짓했다.

    “예, 사부님.”

    심협은 조금 놀라며 바로 다가갔다.

    “이것을 들고 옆에 서 있거라.”

    나씨 도인은 품에서 무언가 꺼내 건넸다. 그것은 3척 정도 길이의 누런 번(*幡, 도가와 불가 등에서 종교 의식에 쓰는 깃발)이었다.

    번의 위아래에는 각각 태극도가, 중간에는 일곱 개의 오각별이 북두칠성 형태로 그려져 있었다. 이는 도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칠성번(七星幡)이었다. 가장 윗부분에 붙은 노란 부적에서 법력 파동이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번 또한 부기인 듯했다.

    심협은 나씨 도인이 이리 많은 법술에 능한 것에 놀라며 공손하게 칠성번을 받아 들고 곁에 섰다.

    그 무렵, 부적을 붙이러 갔던 하인들이 돌아와 모두 붙였다고 보고했다.

    “모두 옆으로 물러서시오. 조용히 지켜보시면 되오.”

    나씨 도인은 손을 휘둘러 마부(馬府) 사람들이 물러서도록 한 후 보강답두(*步罡踏斗, 도사가 의식을 치르며 북두칠성을 밟고 움직이는 동작)를 시작하였다.

    그는 그렇게 몇 바퀴를 움직이다가 돌연 크게 외마디 기합을 외치더니, 수중의 도목검을 휘둘러 찔러갔다. 검 끝은 제사상의 부적에 닿았다.

    그러자 부적이 빛나기 시작하더니 밝고 붉은 빛이 터져 나왔다. 이어서 보이지 않는 파동이 부적에서 폭발해 주변을 향해 빠르게 요동쳐 나가기 시작했다. 이때 제사상 주위의 촛불들도 더 활활 타올랐다.

    이와 동시에 마부(馬府) 곳곳에서 눈부신 붉은 빛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곳곳에 붙여둔 부적에서 나오는 빛이었다.

    순식간에 마부(馬府) 전체가 붉은 빛에 에워싸였고, 모여 있던 사람들은 숨 쉬는 것조차 잊은 듯이 긴장한 채 기다렸다.

    그때, 왼편 정원 중앙에 붙어 있던 부적이 빠르게 날아가더니 정원 구석에 떨어졌다. 그곳에는 대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그 대나무 숲 깊은 곳에는 커다란 홰나무가 있었는데, 가지와 잎이 무성한 것이 적어도 수령 40, 50년은 되어 보였다.

    부적은 홰나무 아래로 날아가더니 갑자기 타오르기 시작해 붉은 불덩이가 되었다. 그러더니 지면을 향해 번개 치듯 내리 꽂히기 시작했다.

    펑!

    짧고 먹먹한 굉음과 함께 불덩이가 돌연 폭발하면서 허공에 불똥이 흩날렸다. 그러자 지면의 대나무 잎과 마른 가지들이 전부 휘날리더니 버려진 우물이 나타났다. 우물은 칠흑처럼 검은색이었다.

    우물 안에서는 물 흐르는 소리가 울렸는데, 그 안에서 서서히 악귀의 기운을 뿜어내는 검은 기운이 솟아났다.

    대청에 있던 나씨 도인의 눈빛이 빛나더니 입을 벌렸다. 입에서는 백색 기체가 뿜어져 나와 칠성번에 흡수됐다. 그러자 칠성번에 있던 노란 빛이 바로 강해지면서 북두칠성 도안이 더욱 밝게 빛났고, 북두칠성에서 나오는 노란 빛이 땅을 덮어가고 있었다.

    심협은 들고 있던 칠성번이 순식간에 무거워진 것을 느꼈다. 마치 한순간에 고철 덩어리로 변한 것만 같았다. 제대로 들고 있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소화양공을 운공하여 양팔에 힘을 더하고서야 겨우 똑바로 들고 있을 수 있었다.

    “합!”

    그 순간, 나씨 도인이 낮은 소리로 일갈하더니 도목검을 던졌다. 도목검은 마치 유성 같은 붉은 빛이 되어 순식간에 십여 장을 지나 도목검은 칠성번을 찔렀다. 상상도 하기 어려울 정도의 빠르기였다.

    칠성번 위에 노란 빛의 파동이 생기더니 도목검이 그 안에 빠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도목검이 찌른 자리에는 돌연 한 줄기 틈이 생겨났다. 그 틈 너머는 칠흑처럼 어두운 것이 마치 암흑의 세계로 통하는 문 같았다.

    그때였다.

    “끼야앗!”

    이와 거의 동시에 왼편 정원에서 여인의 처참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크게 다치거나 놀란 듯한 비명소리에 마부(馬府) 사람들은 덜덜 떨었다. 심지어 서로 부둥켜안고 숨도 크게 쉬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꿈속에서 기이한 경험을 많이 한 덕에 담력이 보통이 아닌 심협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다만 미간이 조금 찌푸려졌다.

    그 비명소리는 처참하기는 하나 전혀 약해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귀신은 다쳤을지는 몰라도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상하구나! 내 검에 맞았는데 죽지 않다니!”

    나씨 도인은 놀란 표정이었다.

    바로 그때, 처참한 비명소리는 돌연 날카로운 포효로 변했다.

    “캬아아!”

    나씨 도인의 안색이 굳어지더니 두 손의 결인을 풀지 않고 연신 휘둘렀다. 마치 멀리서 그 도목검을 조종하는 것 같았다.

    대나무 숲의 옛 우물 안에서는 이리저리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누군가가 안에서 싸우는 것 같았다. 또한 우물 안에서는 더러운 검은 기운이 솟아나고 있었다. 그러자 왼편 정원은 삼엄한 한기에 휩싸였다.

    대청도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더니 냉기가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다.

    대청에 모여 있던 마부(馬府) 사람들은 모두 크게 놀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려움에 떨며 오른편 정원으로 도망쳤다. 몇몇은 너무도 당황한 나머지 넘어져 뒹굴기도 했다. 참으로 혼란스러운 장면이었다.

    심협은 마부(馬府) 사람들을 안심시키려 했다. 그런데 그때, 그가 들고 있던 칠성번의 갈라진 틈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이 기운은 순식간에 심협에게 엉겨 붙었다.

    “헛!”

    심협의 경맥에 차가우면서도 찌르는 듯한 통증이 전해왔고, 순식간에 몸의 반쪽에 감각이 사라졌다.

    심협은 크게 놀랐지만, 그가 대응하기도 전에 체내의 양기가 귀기의 침입을 인식하고는 스스로 운공되어 몸을 보호했다. 밝은 붉은 빛이 몸에서 뿜어져 나오며 전신에 퍼졌다. 붉은 빛은 순식간에 검은 기운을 떼어냈고, 마비됐던 몸도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안 돼!’

    심협은 순간 나씨 도인이 옆에 있다는 것이 떠올라 속으로 외쳤다. 지금 내보인 소화양공은 그가 막 입문했을 때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정진된 것이었다.

    하지만 심협은 마음을 고쳐먹고 양기를 거두지 않은 채 몸 주위에 붉은 빛이 돌게 하여 귀기를 막았다. 그러면서도 곁눈질로는 나씨 도인을 살폈다.

    나씨 도인은 두 손을 수레바퀴 모양으로 결인한 채 한창 귀신과 싸우느라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망할 귀신 놈아, 내가 널 못 없앨 줄 아느냐?”

    나씨 도인은 돌연 힘주어 소리치고는 양손의 손가락을 모아 각각 반대편 손바닥을 그었다. 두 손바닥은 순식간에 피로 붉게 물들었다. 동시에 두 손에서 붉은 빛이 터져 나왔다. 왼손의 빛은 밝고 눈부신 것이 양기가 가득했다. 반면 오른손의 빛은 순수하고 수렴하는 기운이 있으니 부드러운 음기가 느껴졌다.

    파팍!

    짧은 소리가 울리자 나씨 도인이 두 손을 맞잡고 결인하며 낮게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그러자 붉은 빛이 그의 손을 에워싸며 두 손이 융화되었고, 좌측 정원에서 검 소리가 울렸다. 이어서 우물 속에서 붉은 빛이 발산되었다. 도목검의 빛이었다. 하지만 촉수 같은 검은 기운들이 도목검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쉭!

    우물 안에서 더 많은 검은 기운이 몰려나와 도목검을 붙잡았다. 이에 도목검은 빙글빙글 돌더니 검신에 돌연 붉은 빛 두 줄기가 나타나 서로 뒤엉켰다.

    깡!

    금속과 돌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리더니, 1장 정도의 거대한 붉은 기검(氣劍)이 형성되었다. 기검에서는 밝고도 따뜻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파팍!

    빛이 뿜어져 나오자 도목검을 잡고 있던 검은 기운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도목검을 향해 다가오던 검은 기운들도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나씨 도인은 돌연 눈을 부릅뜨며 두 손을 높이 치켜들더니, 전력을 다해 허공을 베기 시작했다. 그러자 벽 너머 정원의 붉은 기검에 빛이 가득 차올랐다. 정원의 대부분을 밝게 비출 정도였다.

    “음양법결로 귀신을 없애겠다!”

    나씨 도인이 두 손을 힘껏 내리치자 기검 또한 아래로 휘둘러졌다. 그러자 정원에 요동치던 검은 기운은 두부처럼 잘려나가더니 증발하여 사라져 버렸다.

    동시에 붉은 기검도 사라졌으나,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우물 앞에 나타났다. 그러더니 놀랄 만한 기세로 우물 안을 공격해갔다.

    콰르릉!

    우렁찬 굉음이 울렸다. 우물 입구는 무너졌고, 돌 파편과 연기가 휘날렸다. 그리고 지면에는 1장가량의 깊은 구덩이가 생겨났다.

    그리고 우물 옆에 있던 홰나무도 터져나가며 쓰려졌다.

    “꺄아악!”

    고막을 찢을 듯한 처참한 비명소리가 울렸으나, 이내 약해지기 시작했다.

    마부(馬府) 전체를 감싸고 있던 음기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하면서 햇빛이 비추기 시작했다. 마부(馬府) 곳곳에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밝고 따뜻한 기운이 돌아, 마치 운무가 걷히고 날씨가 맑아진 듯한 느낌이었다.

    칠성번의 검은 기운도 더는 솟아나지 않았다. 심협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급히 소화양공을 운공해 체내의 검은 기운을 전부 몰아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