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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56화 (56/1,214)
  • 56화. 귀신 출몰

    심협은 대저택 앞에 서자 두근거렸다.

    아침 해가 만물을 비추어 깨웠으나, 이 저택은 여전히 음침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치 보이지 않은 안개가 저택 전체를 감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곳에만 햇빛이 들지 않는 것처럼…….

    ‘역시 귀기(鬼氣)가 느껴지는군.’

    심협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왠지 모를 자신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저택을 잠깐 보다가 바로 고개를 돌렸다. 혹시라도 나씨 도인에게 이상한 낌새를 보여서는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씨 도인은 건물을 살펴보고 있었다. 분명 뭔가 이상한 낌새를 발견한 듯했으나, 그리 놀라지 않는 듯했다. 많이 봐와서 아무 감흥이 없는 무언가를 바라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가서 문을 두드리거라.”

    한참 후에야 나씨 도인은 한 마디 던지고는 돌아서서 뒷짐을 지고 먼 곳을 바라봤다.

    심협은 얼른 대문 앞으로 가 금속 문고리를 세게 쳤다.

    쾅! 쾅! 쾅!

    한참을 두드리고서야 대문이 열리더니, 파란 옷에 파란 모자를 쓴 중년 남자가 잠이 덜 깬 부스스한 모습으로 나왔다.

    “아침 댓바람부터 무슨 시주를 받겠다고 돌아다니는 건가! 마부(馬府)에는 요즘 일이 좀 있으니 다른 곳에 가서 알아보시오. 얼른 가시오! 얼른 가!”

    중년 남자는 곁눈으로 두 사람을 흘겨보더니 짜증을 냈다.

    심협은 중년 남자가 심히 무례하게 자신과 사부까지 무시하니 화가 치밀었다.

    “미천한 놈이 감히 뉘 안전이라고 함부로 주둥이를 놀리는 것이냐? 이분은 춘추관의 나 진인이시다! 너희 주인이 요청하여 방문하였거늘, 냉큼 달려가 통보하지 않고 무엇 하느냐! 꾸물거리다가는 네놈 다리를 분질러놓을 줄 알거라!”

    심협의 외침에 중년 남자는 퍼뜩 잠이 달아났고, 창백한 얼굴로 덜덜 떨었다. 그는 연신 고개 숙여 사과하더니 문을 살짝 닫고 곧장 뛰어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부(馬府)의 대문이 다시 열리더니 배가 잔뜩 나온, 부티 나는 중년 남자가 집사로 보이는 노인을 대동하고 빠르게 걸어 나왔다.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정도로 보였는데, 둥근 얼굴에 박힌 작은 눈에서는 총기가 엿보였다. 갈색 모자를 쓰고 비단으로 된 품이 넉넉한 옷을 입은 사내였다.

    “두 분은 춘추관에서 나오셨습니까? 하인이 무례하여 멀리 마중 나가지 못하였습니다. 두 분께서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중년 남자는 나씨 도인이 여전히 뒷짐을 진 채 등을 돌리고 서 있는 것을 보고는 급히 심협을 향해 공수하여 예를 갖추었다. 그의 태도는 이상하리만치 공손했다.

    “이분은 저의 사부 나 도인으로, 춘추관의 장로이십니다. 저는 심협이라고 합니다.”

    심협도 이번에는 한결 공손한 목소리로 자신과 사부를 소개했다.

    “나 선장(仙長), 심 선장(仙長)이셨군요.”

    중년 남자는 다시 예를 갖추었다.

    “당신이 춘추관에 편지를 보낸 마사묵(馬思墨)이오? 마흥명(馬興明)과는 무슨 관계요?”

    나씨 도인은 그제야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마흥명은 저의 증조부 되십니다.”

    마사묵은 나씨 도인과 눈을 마주치자 흠칫 놀라 온몸을 떨더니 순순히 대답했다.

    “족보가 있소?”

    나씨 도인은 다시 물었다.

    “물론입니다. 도장께서 한번 봐주십시오.”

    마사묵은 미리 준비한 듯 품에서 검은 비단으로 표지를 감싼 책을 꺼내 건넸다.

    심협은 급히 책을 받아들고 나씨 도인에게 두 손으로 책을 올렸다.

    나씨 도인은 한 손으로 책을 잡고 대충 펼쳐보더니 다시 심협에게 던지듯 돌려줬다.

    “마흥명은 일찍이 춘추관에서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소. 비록 별다른 성과를 내지는 못했으나 우리 춘추관에 공로를 세웠기에 본관에서 그에게 증표를 내렸었소. 당신이 마흥명의 후손임을 확인했으니 춘추관의 문규에 따르면 당신은 우리 춘추관에 도움을 한 번 청할 수 있소.”

    나씨 도인은 몸을 돌려 정색하며 말했다.

    “도장님, 감사합니다.”

    마사묵은 크게 기뻐하며 연신 허리를 숙여 예를 갖추더니, 공손하게 두 사람을 안으로 안내했다.

    대문을 들어서자 눈앞이 탁 트였다. 1묘(*畝, 논밭 넓이의 단위. 1묘는 약 30평, 즉 99.174㎡) 정도의 방형(方形) 정원에, 중간에는 너비가 2장가량 되는 청석(靑石) 길이 화려한 대청을 향해 뻗어 있었다.

    청석 길의 왼편에는 각종 화훼와 수목으로 가득한 화단이 있었고, 오른편에는 수상(水上) 누각 몇 채가 지어져 있는 연못이 있었다. 수상 누각들은 다리로 이어져 있었고, 연못에는 푸른 잎 위로 분홍빛 연꽃이 피어 장관을 이루었다.

    정원 좌우에는 각각 편원(偏院)이 있었고, 그곳에도 가옥과 누각, 정자가 있었다. 하지만 담에 가려져 잘 보이지는 않았다.

    몇 개의 정원을 지나 대청에 이르자, 젊고 아리따운 시녀 두 명이 차를 내왔다.

    “마 거사(居士), 춘추관에 보낸 서신을 보아하니 마부(馬府)에 귀신이 출몰한다는 모호한 설명뿐인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긴 귀신이오? 직접 본 자가 있소?”

    나씨 도인은 차를 한 모금 들이켜고는 쓸데없는 말은 생략하고 바로 본론을 꺼냈다.

    “밤에 마부(馬府)를 지키던 노왕(老王)이 보았습니다. 듣기로는 붉은 옷을 입은 여자 귀신이라 합니다. 하지만 제대로 보지 못하고 놀라서 혼절하였습죠. 다음 날에는 몸져눕더니 여태 일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후로 집에서 기르던 검은 개들이 연이어 칠공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나갔습니다.”

    마사묵은 창백하다 못해 핼쑥한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리고 매일 아침 집안에 까닭을 알 수 없이 비린내 나는 물 자국이 나타났습니다. 어떤 때에는 대청에 나타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뒤뜰에 나타나기도 하고……. 한번은 제 침실에도 나타난 적이 있습니다.”

    심협은 마사묵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방을 살폈다. 이 호화스러운 대저택에 깃든 어딘가 음산한 기운이 점점 더 강하게 느껴졌다.

    “아직 죽은 사람은 없습니다만, 누가 언제 죽게 될지 몰라 잠도 제대로 못 이룰 지경입니다. 선장(仙長)님, 황금 백 냥을 바치겠사오니 부디 귀신을 물리치시어 저희 집안을 구해주십시오.”

    마사묵은 점차 두려움에 질려 나중에는 목소리까지 떨려왔다.

    “마 거사, 그리 예의 차리실 것 없소. 만일 정말 귀신이 해를 끼치고 있다면 빈도가 어찌 수수방관하겠소?”

    나씨 도인은 담담한 말투로 가볍게 이야기했지만, 만족한 표정이었다.

    마사묵은 연신 감사의 예를 갖추고 나서야 평온을 되찾았다.

    “마 거사의 말만으로는 어떤 귀신인지 판단하기가 어렵소. 그 몸져누웠다는 자가 마부(馬府)에 있소? 빈도가 직접 그에게 물을 것이 있소.”

    나씨 도인이 불쑥 물었다.

    “그게…… 어제까지는 여기 머물렀으나, 공교롭게도 어제 그의 가족들이 고향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마사묵은 얼굴의 땀을 닦으며 머뭇머뭇 답했다.

    “괜찮소. 그렇다면 마 거사가 이야기한, 매일 밤 나타난다는 물 자국에서 단서를 찾아봐야겠군. 어젯밤에도 그 물 자국이 나타났소?”

    나씨 도인이 다시 물었다.

    “뒤뜰에 나타나기는 했습니다만, 비린내가 너무 심하여 이미 닦아버렸습니다.”

    마사묵은 난감한 듯 고개를 숙였다.

    “그럼 죽었다는 검은 개들은 어디에 있소? 벌써 묻어버리지는 않았겠지?”

    나씨 도인은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물었다.

    “검은 개는 있습니다!”

    마사묵은 바로 고개를 들고 기뻐하며 말했다.

    나씨 도인은 안도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안내하라는 뜻으로 손을 휘둘렀다.

    잠시 후, 나씨 도인은 온갖 잡동사니를 모아둔 뒤뜰 방에 쭈그려 앉아 검은 개 세 마리의 시체를 살피고 있었다. 심협은 공손하게 그 뒤에 서 있었다.

    마사묵은 두려워서인지 감히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개는 이미 죽은 지 오래되어 시체가 바짝 말라 있었다. 일곱 구멍에서 흐른 피도 이미 말라 있었다. 죽기 전에 두려운 것을 봤는지 얼굴은 공포로 일그러진 상태였다.

    심협은 개 시체들을 보고 있자니 눈꺼풀이 떨려왔다. 머릿속에는 기이한 꿈속 산촌에서 만났단 장발(長髮) 귀신이 떠올랐다.

    나씨 도인은 손으로 개 시체를 만져보고, 손가락을 굽혀 개의 미간을 찍어보았다가 잠시 후 손을 거두었다.

    “사부님, 이 개 시체들은 죽은 모양이 기괴한데, 도대체 어찌 죽은 것입니까?”

    심협은 나씨 도인이 손을 거두는 것을 보고는 얼른 다가가 조용히 물었다.

    “일곱 구멍에서 피가 흘렀다는 것은 정기가 다 빨려 죽었다는 뜻이다. 보통의 귀신들은 다 할 수 있는 것이니 그리 놀랄 것 없느니라.”

    나씨 도인은 별로 개의치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심협은 안도가 되었다. 나씨 도인이 잘 파악할 수 있다면 된 것이다.

    나씨 도인은 알아야 할 것은 이미 다 알아낸 것인지 개 시체를 더 살피지 않고 뒤뜰을 나섰다. 심협이 급히 뒤를 따랐다.

    “나 도장님, 무얼 좀 알아내셨습니까?”

    뒤뜰 밖에 있던 마사묵이 나씨 도인을 보자 조마조마한 목소리로 물었다.

    “다 파악했소. 그러나 아직 확인해야 할 것이 있소. 마 거사께서 우리를 마부(馬府) 곳곳으로 안내하여 주시오.”

    나씨 도인의 말에 마사묵은 직접 두 도인을 안내하여 마부(馬府)를 한 차례 돌았다.

    심협은 나씨 도인이 귀신이 숨어 있는 곳을 찾고 있음을 알고는 그 뒤를 따르며 주의를 기울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마부(馬府) 전체를 샅샅이 뒤지고도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이럴 리가 없는데…….”

    나씨 도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사부님, 혹시 그 귀신이 밖에서 온 것 아닐까요? 지금은 낮이니, 어쩌면 도망친 것인지도 모릅니다.”

    심협이 조심히 추측했다.

    “아니다. 마부(馬府) 전체에 음기가 감돌고 있으니 그 귀신은 이 안에 숨어 있는 것이다. 보아하니 매우 은밀한 곳에 숨어 있어 찾기가 쉽지 않을 듯하구나.”

    나씨 도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선장(仙長)님, 혹시 귀신을 찾지 못하셨습니까? 전에도 법사들을 불렀던 적이 있는데 모두 그랬지요. 이를 어찌하면 좋습니까?”

    마사묵은 낙담하고 있었다.

    “마 거사, 걱정하실 것 없소. 이건 얕은 수작에 불과하니 말이오. 내 귀신을 나타나게 할 방법이 있소이다.”

    나씨 도인은 마사묵의 말에 자존심이 상한 듯 차게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곧 마사묵에게 향과 초, 제사상, 부적용 황지와 주사를 준비하도록 분부했다.

    전에 법사를 부른 적이 있다더니, 그래서인지 마사묵은 나씨 도인의 분부를 듣자마자 사람을 시켜 그 물건들을 모두 가지고 왔다. 그리고 나씨 도인이 시키는 대로 제사상을 대청 중앙에 두고, 그 위에 향과 초, 과일 등을 놓아 법단을 꾸몄다.

    나씨 도인은 마사묵에게 일곱 개의 촛대를 가지고 오게 하더니 제사상 주위에 북두칠성 모양으로 배치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대청에는 연기가 흩날렸고, 모든 사람의 이목이 집중하게 됐다.

    마사묵은 나씨 도인이 일사불란하게 무언가 준비하는 것을 보자 침착해졌다.

    나씨 도인은 일곱 개의 촛대 중간에 엄숙히 서서는 묵묵히 법력을 운공했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깨물어 일곱 방울의 피를 날렸다. 각 핏방울은 일곱 개의 촛불에 명중했고, 그러자 촛불들이 맹렬히 타오르며 몇 배는 커져 활활 타올랐다.

    이를 지켜보던 마사묵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요 며칠간 불러왔던 법사들은 하나같이 사기꾼이 꾸며대는 것처럼 보였다. 이처럼 신통한 능력은 처음 보는 것이었으니 나씨 도인이 정말 귀신을 물리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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