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55화 (55/1,214)
  • 55화. 사부와의 하산

    심협은 몇 번이고 무명공법 제2층 구결을 되 뇌인 후 자신의 수련을 몇 번이나 돌이켜봤다. 하지만 잘못된 점은 찾을 수 없었다.

    “이리 어려울 리가 없지 않은가!”

    심협은 의구심을 품은 채 가부좌를 틀고 다시 수련에 몰두했다.

    잠시 후, 다시 눈을 떴을 때 그 눈빛은 의구심이 아닌 근심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번에도 자궁혈을 넘지 못한 것이다.

    체내의 법력이 위로 관통할 수가 없으니 몸을 한 바퀴 도는 것은 고사하고 반 바퀴도 운공시킬 수가 없었다.

    “저번에 통령역요의 술법도 성공하지 못했는데…… 내 자질이 너무도 부족한 것인가? 아니야, 다시 해보자.”

    심협은 다시 이를 악물고 수련을 시작했다.

    그러나 몇 차례 반복한 후, 그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제2층 공법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순풍에 돛 단 듯 순조롭게 완성하기는커녕 견고한 성을 공격하듯 관문 하나하나를 뚫어야 가능성이 보일 듯했다. 이 몇 차례의 시도로 미루어 4, 5년은 들여야 제2층 공법을 완성할까 말까였다. 이는 <무명천서>에 기록된 평범한 사람보다도 2년은 더 걸린다는 뜻이다.

    제1층 공법이나 답수결의 수련이 마치 하늘이 도운 것처럼 순조로웠으니 심협은 내심 자신의 자질이 썩 뛰어난 편이 아닐까 생각했다. 조금 우쭐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실망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사부님이나 춘추관 사람들의 말이 맞는 거였군. 나는 정말로 수련자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거야.”

    이 사실에 무척 실망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자신감을 잃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면 <무명천서>를 얻기 전에는 살날조차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 아니었던가. 이제 단명할 걱정은 없으니 4년이든 5년이든 포기하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이후 며칠 동안 심협은 낮이면 얕은 못에 가서 수련하고 밤이면 구귀부를 붙인 채 옥침이 흡입하는 빛줄기의 변화를 관찰했다. 다행히 연기기에 진입한 덕에 며칠 밤을 새워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심협은 평소처럼 침상에서 가부좌를 튼 채 눈도 깜빡하지 않고 옥침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심협은 오싹함을 느꼈다. 아무리 옥침에 집중하고 있었다고 한들 그토록 향상된 오감으로도 누군가 문 앞까지 오는 것을 느끼지 못했으니 말이다.

    ‘이 야심한 밤에 누구란 말인가?’

    심협은 급히 구귀부를 떼어내고 옥침을 침상 아래로 숨긴 후에야 손님을 맞으러 갔다. 문밖에는 뜻밖에도 청포를 입은 나씨 도인이 서 있었다.

    “사부님, 어쩐 일이십니까? 어서 들어오시지요.”

    심협은 급히 사부를 방안으로 모셨다.

    “괜찮다. 지나는 길에 들러본 것뿐이다. 안색이 많이 좋아진 것이, 집에 다녀와서 회복이 많이 된 모양이로구나.”

    나씨 도인은 문 앞에 서서 심협을 위아래로 살피며 말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승님 덕에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심협은 공손하게 눈을 내리뜨며 답했다.

    “몸이 많이 좋아졌다니, 잘됐구나. 짐을 챙기거라. 나와 함께 하산하자꾸나.”

    나씨 도인의 갑작스런 말에 심협은 의아해졌다.

    “하산……입니까?”

    “귀신 하나 잡으러 가는 것뿐이다. 소천이는 하산하여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철생은 어제 장문 사형의 심부름을 갔으니, 너밖에 데려갈 놈이 없구나.”

    나씨 도인의 말에 심협은 머릿속으로 재빨리 이해득실을 따져보았다. 그러느라 대답이 늦어지자 나씨 도인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왜? 가기 싫은 것이냐?”

    심협은 사부의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을 보며 재빨리 입을 열었다.

    “사부님을 보필하는 것은 이 제자의 큰 영광입니다. 다만 제자의 소화양공이 부족하여 혹여 사부님께 짐이 되지 않을까 우려되옵니다.”

    예전 같았으면 흔쾌히 따라나섰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감춰야 할 비밀이 많다 보니 나씨 도인처럼 법력이 강한 사람 곁에 있기가 꺼려졌다.

    “위험할까봐 그러는 게냐? 걱정 말거라. 고작 귀신 하나 잡는 것뿐이니 네가 힘을 보탤 것도 없다. 그저 옆에 서 있기만 하면 된다.”

    나씨 도인은 가볍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사부님께서 이해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럼 얼른 준비하겠습니다.”

    사부가 이렇게까지 이야기하자 더 이상 거절할 수 없다 여긴 심협은 재빨리 허리를 숙였다.

    “곧 출발해야 하니 얼른 준비하고 나오너라.”

    나씨 도인은 말을 마치자마자 발길을 돌렸다.

    심협은 공손히 몇 걸음 나가 그를 배웅했다. 비록 마음은 무거웠으나 애써 다잡고는 방으로 돌아가 짐을 챙겼다. 갈아입을 옷 두 벌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예전에 써뒀던 소뢰부와 구귀부도 챙겼다. 어차피 부적을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부가 알고 있으니 발각될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심협은 잠시 석합을 내려다보며 망설이다 같이 챙겨 넣었다. 들키는 것도 위험하겠지만, 춘추관에 남겨두는 것은 더욱 불안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석합 안에는 원기의 파동이 전혀 없으니 직접 보여주지 않는 이상 나씨 도인도 알아채기는 힘들 것이다.

    ‘혹여 운이 없어 발각되더라도 둘러대면 되지. 집에 들렀을 때 아버지께서 아들을 위해 길한 물건을 주셨는데, 함부로 열어서는 안 된다고 하면 될 게야. 사부님의 평소 행실로 미루어 절대 강제로 열어보려 하시지는 않을 테니까.’

    짐을 다 챙긴 심협은 급히 나씨 도인의 거처로 향했다.

    “어찌 이리 꾸물거린 것이냐? 빨리 가자.”

    나씨 도인은 이미 거처 앞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심협을 보자 미간을 찌푸리며 꾸짖었다.

    “죄송합니다. 어서 가시지요.”

    심협은 거의 걸었다.

    “내 옆에 서라.”

    나씨 도인은 손으로 옆을 가리켰다.

    심협은 약간 당황했지만,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러자 나씨 도인은 품에서 하얀 손수건을 꺼냈다. 손수건에는 부적 문양 같은 무늬가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하얀 빛을 발하고 있어 밤중에도 눈의 띄었다.

    심협은 딱 보자마자 그 하얀 손수건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나씨 도인은 다른 손으로 파란 부적을 꺼내 손수건에 붙이고는 무어라 중얼거렸다. 그러자 부적에서 파란 빛들이 일어 손수건으로 주입되기 시작했다.

    하얀 손수건에 있던 부적 문양들이 빛나며 부드러운 하얀 빛을 뿜어냈다. 그러더니 나씨 도인의 손에서 떠나 허공에 둥둥 떴는데, 마치 하얀 등불 같았다.

    갑자기 차가운 기운이 모여들어 하얀 손수건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자 손수건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빛이 점점 더 밝아졌다.

    이 차가운 기운은 심협에게도 익숙한 수령(水靈)의 기였다.

    손수건의 빛이 어느 정도에 이르자 팍 소리가 울리면서 하얀 운무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운무는 퍼져 나가지는 않고 손수건을 에워싼 채로 있었다.

    몇 차례 호흡할 시간이 지나자, 집채만 한 하얀 구름이 생성되었다. 허공에서 위아래로 넘실거리는 것이 마치 물에 뜬 나무 같았다.

    이를 지켜보던 심협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씨 도인이 무심한 듯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하얀 구름이 곧장 두 사람 앞으로 날아왔다.

    “가자.”

    나씨 도인은 구름에 올라탔는데, 땅 위에 선 것처럼 안정적이었다.

    심협은 넘실대는 구름을 보고는 불안해졌지만, 이를 악물고 뛰어올랐다. 그러나 막상 올라가 보니 구름에는 몸을 받쳐주는 힘이 있는 듯해 땅을 밟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하얀 구름은 두 사람이 탔는데도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심협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구름을 만져보았다. 마치 차가운 면화 같았고, 손에 잡히지 않았다.

    “사부님, 이건 무슨 보물입니까?”

    심협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

    “내가 멀리 나설 때 타는 부기(符器) 수운두(水雲兜)다. 똑바로 서거라.”

    나씨 도인은 담담히 말하더니 손을 가볍게 움직였다. 그러자 수운두는 가볍게 떨리더니 점차 높은 곳으로 떠올라 날아가기 시작했다. 처음에 굉장히 느린 듯하더니 점점 빨라져 나중에는 말보다도 몇 배는 빨라졌다.

    하늘에는 밝은 달이 걸려 있어 주변이 무척 밝았다. 발아래로 춘추관이 빠르게 줄어들더니 곧 주먹만 해 보이게 됐다. 심지어 청화산도 자그마한 흙무더기처럼 보였다.

    심협은 이토록 높은 곳에 올라본 적이 없으니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다. 게다가 거센 바람이 얼굴을 덮쳐오니 눈을 뜨는 것도, 숨을 쉬는 것도 힘들었다. 그는 더 이상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고 급히 가부좌를 틀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심협도 점차 평온을 되찾고, 비행에도 익숙해져 갔다. 그러자 다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는데, 이제 오히려 흥분이 차올랐다.

    머리 위로는 별이 가득한 하늘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발아래로는 광활한 대지가 펼쳐져 있다. 천지 사이를 누비며 나는 것은 줄곧 바라오던 것 아닌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수선(修仙)의 길이구나! 언젠가는 나도 내 힘으로 천지간을 누비고야 말겠노라!’

    심협은 주먹을 꼭 쥐며 속으로 다짐했다.

    나씨 도인은 심협의 표정을 보고는 제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굳이 격려하지는 않고 바로 시선을 돌렸다. 심협은 자질도 부족하고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무언가 이룰 수는 없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이번에 그를 데리고 나온 것은 그저 견문을 넓혀주려는 것뿐이다. 제자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나씨 도인은 이런 생각을 하며 법력으로 수운두의 속력을 높였다.

    두 시진 후, 날이 밝아오면서 저 앞으로 어떤 성의 윤곽이 점점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심협의 눈빛이 번득였다. 눈앞에 보이는 성이 바로 자신의 고향인 춘화현성임을 알아본 것이다.

    오는 길에 나씨 도인에게 듣기로는 이번에 가는 곳이 춘화현성 부근의 백하진(白河鎭)이라고 했다.

    춘화현성이 점점 가까워오니 심협은 말문이 막혔다. 춘추관에서 춘화현까지는 말을 달려도 꼬박 하루는 걸려야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그런데 벌써 도착하다니! 게다가 나씨 도인이 조종하는 모습으로 봐서는 그리 힘을 쓴 것 같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내게도 수운두와 같은 부기가 있다면……!’

    나씨 도인은 수운두를 조종해 춘화현성 동북쪽 강 인근의 한 고을로 향했다.

    그곳이 바로 백하진이었다. 고을 밖에 백련하(白練河)라는 강이 있어 붙은 이름이다. 방직과 염색으로 부근에서 유명한 고을로, 심협도 들어본 적은 있지만 직접 와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모습에 사람들이 놀랄지도 모르기에 나씨 도인과 심협은 백하진 밖, 사람이 없는 곳에 내려서 걸었다.

    백하진은 심협이 머물렀던 송번현 밖의 고을보다 몇 배는 더 크고 번화한 곳이었다. 각종 상점이 줄지어 있었는데, 특히 포목점이 가장 많았다.

    강가에는 직물을 염색하는 작업장만 해도 수십 곳은 되는 것 같았다.

    아직 새벽이었음에도 길거리 상점들은 하나둘 문을 열기 시작했고, 작업장에도 일하는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널어둔 견직물들이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은 마치 깃발이 나부끼는 듯한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지나는 사람에게 길을 물어 고을의 대저택에 이르렀다. 담벼락 너머로 잘 지어진 큰 건물과 누각이 보였고, 주홍색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입구의 편액에는 금칠을 한 ‘마부(馬府)’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이곳이 바로 이번 하산의 목적지, 백하진의 마씨 상인의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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