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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54화 (54/1,214)
  • 54화. 식해통령(識海通靈)

    심협은 망연한 표정으로 사방을 살폈지만, 문과 창문은 모두 굳게 닫혀 있었다. 방의 물건들도 그대로였다. 머리 아래에 있는 것도 옥침이 아닌 등나무 베개였다. 옥침은 얌전히 한쪽에 놓여 있었다.

    심협은 손을 들어 이마의 땀을 닦았다. 잠이 완전히 달아난 그는 일어나 등불을 켜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탁자 앞에 돌아와 앉았다.

    창 너머로 몽롱한 달빛이 비쳤다. 이미 깊은 밤중인 듯했다.

    심협은 좀 전의 악몽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는 귀신에 홀린 듯 구귀부 한 장을 몸에 붙인 후에 법력을 주입시켰다.

    부적에 빛이 비쳐 나오자 시야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이에 심협은 방안의 구석구석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돌연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게 대체……?”

    지붕에서부터 침상 사이의 허공에 가느다란 그림자가 내려오고 있었다. 보일 듯 말 듯한 움직임이었다. 최대한 정신을 집중하였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절대 발견할 수 없을 터였다.

    심협은 급히 등불을 가져와 자세히 살펴보려 했다. 하지만 등불을 들이대자 조금 전까지 희미하게나마 보이던 그것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심협은 곧장 등불을 꺼버렸다. 그러나 그것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머리카락처럼 가늘고 거의 투명한 빛줄기 같았는데, 마치 비가 내리듯 지붕 위에서 투사되어 내려왔다.

    심협의 시선은 빛줄기를 따라 내려왔다. 그러자 반투명한 빛 한 겹이 옥침을 감싸고 있는 것이 보였다. 위에서 내려온 빛줄기가 모두 옥침에 흡수되고 있었다.

    “이게 뭐지?”

    심협은 더욱 의아해져 침상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바로 앞까지 다가가도 구귀부는 타지 않았고, 그 기이한 빛줄기의 움직임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보아하니 음살의 기운 따위는 아닌가 보군.”

    조금 마음이 놓인 심협은 한 손을 뻗어 손으로 빗물을 받듯이 그 투명한 빛줄기에 갖다 댔다. 그러자 몽롱한 하얀 빛이 그의 손을 에워쌌다.

    그런데 그 빛줄기들은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심협의 손을 통과해 옥침으로 내렸다. 심협 또한 그 빛줄기가 허상인 것처럼 손바닥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심협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지붕을 바라봤다. 그 빛줄기들은 마치 지붕 내부에서 생겨난 것처럼 보였다.

    심협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옥침을 안고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물처럼 맑은 달빛이 비치고 사방이 고요한 가운데 벌레 우는 소리만 간혹 들려왔다.

    심협은 조심스럽게 사방을 둘러봤다. 하지만 다른 방에서 자는 제자들의 코 고는 소리만 들릴 뿐, 인기척은 없었다.

    심협은 까치발을 세우고 발소리를 죽인 채 이층 지붕 위로 올라가 용마루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 투명한 빛줄기들은 옥침을 따라왔다. 마치 폭포가 하늘에 걸린 것처럼, 끊이지 않고 내려왔다.

    심협은 한참이나 밤하늘을 살핀 끝에 이 투명한 빛줄기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알게 됐다. 바로 하늘 가득 떠 있는 별에서 투사되어 내린 것이었다.

    “이 옥침은 대체 뭐지?”

    의혹이 풀리기는커녕 오히려 더 커지기만 했다.

    빛줄기는 끊임없이 떨어졌고, 심협은 밤새 이를 지켜보았다.

    다음 날 아침, 태양이 떠오르며 여명이 밝아왔다. 이에 따라 별에서 내려오던 빛줄기는 점점 적어졌고, 태양이 밝게 떠오르자 완전히 사라졌다.

    하지만 옥침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이에 심협은 약간의 실망을 안고 의혹을 품은 채 방으로 돌아왔다.

    낮이 되자 심협은 재당에서 식사를 한 후 뒷산에서 산책을 했다. 그러다가 사방에 아무도 없는 곳에 이르자 곧장 걸음을 재촉해 은밀한 못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는 물가에 이르자마자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얕은 못에는 순식간에 한바탕 물보라가 일었다. 차디찬 기운이 사방에서 몸을 감싸자 더욱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어젯밤 잠을 잘 이루지 못해 남았던 피로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물론 피로나 풀자고 이곳에 온 것은 아니었다. <무명천서>에 기재되어 있는 술법 중 하나인 통령역요를 익히는 것이 목적이었다.

    책에 기재된 내용에 따르면,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난 사람은 통령역요의 술법을 무명법결 제1층만 수련해도 성공적으로 연마해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자질이 부족하면 무명법결을 제 5, 6층까지 연마해도 통령역요의 술법 연마에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무명법결 제1층 공법을 순식간에 완성해냈으니, 어쩌면 타고난 자질이 괜찮은 건지도 몰라. 내 자질이 물과 잘 맞는 것인지도 모르지.”

    심협은 못의 중앙으로 걸어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물은 깊지도 얕지도 않아 가슴팍까지만 잠겼다.

    심협은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해 결인을 하고 호흡을 고르며 묵묵히 무명공법을 운공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단전에서 청량한 기운이 꿈틀거리더니 체내 경맥을 따라 운공되기 시작했다. 못 곳곳에서는 차가운 물의 영기가 헤엄치더니 심협 주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심협은 점점 머릿속을 비우고 마음속으로 묵묵히 통령역요의 구결을 외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변의 모든 상황이 미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이어서 바람이 수풀을 지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음으로는 땅속에 숨어 있는 개미 소리, 못 속의 물고기가 물살을 가르며 헤엄치는 소리……. 마지막은 계곡물이 천천히 흐르는 소리였다.

    심협의 머릿속은 끝내 완전히 비워졌다. 살짝 감은 눈앞은 칠흑 같은 어둠만 가득했다. 마치 공간을 넘어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 것 같았다.

    “설마 이런 것을 식해(識海)라고 하는 건가?”

    옛 서적에 따르면, 사람의 신식(*神識 : 의식과 마음 등이 포함된 불교 개념) 관념이 모이는 곳, 온갖 의식들이 투영되는 곳을 식해라고 한다.

    심협은 어떤 생각이 떠오르려 했지만, 급히 이를 억누르고 전력을 다해 통령역요의 술법을 운공했다.

    물방울 소리가 들려오자 텅 비어 있는 칠흑 같은 공간에 돌연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이에 심협의 심장도 격하게 뛰었다.

    심협은 급히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멀지 않은 허공에서 쌀알만 한 파란 빛들이 그윽한 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려 하자 연신 물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수많은 파란 빛이 그의 몸을 에워싸고 있었다. 가깝게는 수 장(丈)에서 멀게는 수십 장 밖에 있었다. 어떤 것은 쌀알처럼 작았지만, 어떤 것은 콩만큼 컸다.

    빛들은 하나하나 파란 빛을 번득이며 반딧불 무리처럼 춤을 췄다. 그 모습이 더없이 아름다웠다.

    심협은 속으로 감탄하면서도 지금은 감상이나 할 때가 아님을 깨달았다.

    저 파란 불빛들은 분명 통령역요 술법을 연마하는 단서일 것이다.

    그의 눈은 가장 처음 생겨난 불빛이자 거리가 가장 가까운 불빛으로 향했다. 이어서 의식적으로 신식을 이끌어 그 불빛을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하지만 그의 신식이 막 가까워졌을 때, 돌연 온몸의 법력 흐름이 흐트러지면서 몸의 경맥에 마치 침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전해져왔다.

    심협은 급히 두 눈을 감았다.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진 채였다. 그는 두 손으로 머리를 잡고 그대로 뒤로 넘어가 물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잠시 후, 물을 몇 모금이나 마시고 나서야 다시 일어나 앉을 수 있었다. 두 손으로 이마를 짚었는데, 여전히 극심한 두통이 느껴졌다.

    “<무명천서>의 내용대로 연마했는데 어째서 이런 현상이 일어났단 말인가?”

    정좌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나니 법력의 흐트러짐은 점점 사라졌고, 두통도 많이 해소되었다.

    심협은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눈을 감고 다시 한번 시도해봤다.

    의식이 다시 텅 비자 칠흑 같은 공간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쌀알만 한 파란 불빛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심협은 조심스레 신식을 통제하여 이끌어갔다. 하지만 파란 불빛을 본 그 순간, 또다시 온몸의 경맥에 극심한 통증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이번에도 심협은 맹렬히 눈을 떴고, 심한 현기증에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손을 뻗어 완전히 넘어지는 것은 면했다. 극심한 두통에 신음을 참을 수 없었다. 피비린내가 느껴진다 했더니 코피가 흘렀다.

    심협은 크게 놀라 더는 수련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는 비틀거리며 물 밖으로 나와 평평한 바닥에 누웠다. 빙빙 도는 하늘을 보고 있노라니 머릿속이 혼돈으로 가득 찼다.

    한참이 지나 조금 나아진 심협은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그리고 거처에 들어가자마자 그대로 침상에 누워 밤이 깊을 때까지 잠들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악몽을 꾸지 않아 정신이 많이 회복된 후에야 깨어났다.

    그는 등불을 켜서 <무명천서>를 꺼내 통령역요의 술법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읽어봤다. 그러나 여전히 무엇이 문제였는지는 찾을 수 없었다.

    ‘내 자질이 부족하고 법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란 말인가?’

    심협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무명법결의 제2층 공법까지 완성한 이후에야 다시 통령역요의 술법을 익힐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제1층 공법은 이미 완성했으니 이제 제2층 공법을 수련해야겠군.”

    마음을 정한 심협은 <무명천서>의 제2층 공법 부분을 펼쳤다. 그런데 손가락을 전서체 문자에 대려던 그는 돌연 멈추더니 구귀부 한 장을 몸에 붙였다. 그리고 침상의 옥침으로 시선을 돌렸다.

    역시나 빛줄기가 지붕에서부터 비처럼 내려와 옥침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심협은 그 광경을 한참이나 보고 있다가 마음을 다잡고 <무명천서>의 제2층 공법 구결을 읽기 시작했다.

    * * *

    다음 날 정오 무렵, 심협은 또다시 뒷산에 올라 얕은 못에 들어가 가부좌를 틀었다. 그가 결인을 하자 법력이 단전에서 나와 우선 발바닥의 용천혈(湧泉穴)까지 통달했다가 단전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손바닥까지 흘러갔다가 단전으로 되돌아왔다.

    심협은 그렇게 체내에서 제1층 공법을 완전히 운공하고 난 후에야 제2층 공법으로 넘어갔다.

    <무명천서> 수련은 물속의 영기를 몸에 끌어들이고 법력이 온몸의 경맥을 도는 단계에 이를 때까지 양기를 운화(運化)해야 한다. 제1층 공법이 완성되면 사지(四肢)를 통달할 수 있고, 제2층 공법이 완성되면 기가 임독양맥(任督兩脈)을 통하게 된다.

    임독양맥은 인체의 음양중추(陰陽中樞) 대맥(大脈)으로, 위로는 정수리의 백회혈(百會穴)에서부터 아래로는 서혜부의 회음혈(會陰穴)까지 이르는 것이다. 이곳을 관통하게 되면 물의 영기가 체내에서 운공되는 효율이 한참 오르게 되고, 이를 통해 단전에 쌓인 법력도 몇 배로 증가하게 된다.

    심협은 양손의 결인에 약간의 변화를 주면서 속으로 제2층 공법 구결을 외기 시작했다.

    주위의 계곡물이 요동치며 고리 형태의 파문(波文)이 일기 시작하더니 물속의 영기들이 물고기처럼 헤엄쳐 심협에게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물밑에서 옅은 파란 빛이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심협의 체내에 쌓여 있던 법력이 단전에서 일더니 임맥(任脈)을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법력은 관문들을 모조리 뚫을 기세로 연달아 세 요혈(要穴)인 신궐혈(神闕穴), 중완혈(中脘穴), 단중혈(膻中穴)을 지나쳐 옥당혈(玉堂穴)에 이르렀다.

    이미 제1층 공법을 수련할 때 심협은 이곳에서부터 양기를 이끌어 수삼음경(手三陰經)까지 이르게 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단숨에 자궁혈(紫宮穴)을 지나 천돌혈(天突穴)을 뚫고 백회혈까지 이르게 해야 했다.

    하지만 옥당혈까지 이른 그의 법력은 다음 관문을 지나지 못했다. 자궁혈은 험한 요새 같아서, 뚫기가 어려운 곳이었다. 심협의 법력이 제아무리 들이닥쳐도 미동조차 없었다.

    심협은 단전에 있던 법력을 총동원해 자궁혈로 이끌었다. 그러자 법력이 몰고 온 격동의 기운에 그의 체내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자연히 심협의 몸도 떨렸고, 그가 몸을 담근 물에도 요동치는 물결이 생겨났다.

    심협은 맹렬히 눈을 떴다.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제1층 공법은 약간의 노력만으로도 바로 완성했는데 제2층 공법은 시작부터 큰 장애물을 만난 것만 같았다. 제1층 공법과 제2층 공법의 차이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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