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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53화 (53/1,214)
  • 53화. 혼비백산

    심협은 작살을 거두고 반 시진 가까이 휴식을 취했다. 단전에 법력이 조금 회복된 것이 느껴졌다.

    이어서 그는 소매에서 부적을 하나하나 꺼냈다. 모두 어제 써낸 부적들이었다. 통법성에 이르기 전에는 부적을 사용하는 데 원석이 필요했으니 함부로 시험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체내의 법력을 사용하면 그만이기에 하나씩 시험해보기로 했다.

    심협이 소뢰부와 구귀부를 얻기 전에 가장 많이 연습했던 부적은 화살부(化煞符)였다. 이름 그대로 음살(陰煞)의 기운을 없애는 부적이었다. 예전에 나씨 도인이 심협의 몸에 들었던 음기를 몰아낼 때 사용한 부적이기도 했다.

    이후 심협은 수차례 나씨 도인에게 이 부적을 가르쳐달라 부탁했지만, 끝내 직접 가르쳐 주지는 않았다. 대신 혼자 연습해보라며 부적 도안 하나를 내준 것이 전부였다.

    심협이 화살부를 손에 쥐고 단전에서 법력을 일으키니 팔의 경맥을 따라 부적으로 주입되었다. 이어서 부적 위로 파란 빛이 나타나더니, 문양에서 작은 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부적 문양 부분이 순식간에 검게 변하더니, 옅은 파란 빛이 연기처럼 비쳐 나오다가 바로 사라져 버렸다.

    이 광경에 심협은 부적을 몇 번 흔들어보다가 이내 바닥에 버렸다. 그러고는 진댁부 한 장을 손에 쥐고 법력을 주입했다.

    고서의 기록에 따르면, 진댁부를 집에 붙일 경우 낮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하지만 밤이면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모호한 보광(寶光)에 감싸여 음살의 기운이나 귀신 등의 침입을 막는다고 했다.

    법력을 지닌 심협의 시력은 보통 사람과는 다르기에 그는 분명 어떤 변화든 감지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진댁부 역시 화살부처럼 실패하고 말았다. 파란 빛이 한 번 번득이더니 부적이 찢어져 버린 것이다.

    실패할 수도 있음은 예상했지만, 실망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심협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고, 이번에는 구귀부를 집어 들었다.

    그는 첫 번째 기이한 꿈을 꾸면서 구귀부를 사용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온 이후로는 사용하기는커녕 시험해본 적도 없었다.

    심협이 법력을 운공하자 단전에서 법력이 다시 일더니 부적으로 주입되었다.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부적 위에 파란 빛이 번득인 후에도 부적은 찢어지지 않았고, 문양에서도 빛이 났다. 그리고 부드러운 백색광이 떠올랐다.

    심협은 돌연 시야에 어두운 그늘이 드리운 듯한 느낌을 받았다. 돌이든 못이든 나무든, 주변의 모든 것이 한층 옅게 보였다.

    그는 재빨리 더 먼 곳을 내다봤다. 하지만 더 먼 곳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의 시선이 계곡 맞은편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산벽 구석을 지나칠 때, 그는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심협의 눈이 번득였다.

    그곳은 항상 햇볕이 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물과 가까이 있어 습한 곳이었다. 위로는 검푸른 이끼가 거의 1척이나 자라 있었는데, 그 위의 지면에는 보일 듯 말 듯한 검은 안개가 떠 있었다.

    심협은 급히 부적들을 챙겨 그쪽으로 가보았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 검은 안개에서는 음한(陰寒)한 더러운 숨결이 느껴졌고, 심지어 구귀부의 위력을 느낀 것처럼 미친 듯이 팽창하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역시 음살의 기운이었구나! 구귀부에는 음살 기운이나 귀신을 볼 수 있게 하는 기능이 있는 거야!”

    심협은 두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빛나는 구귀부를 검은 안개에 가져다 댔다.

    검은 안개는 구귀부를 두려워하는 듯 연신 뒤로 물러났다. 그러다가 벽에 가로막혀 물러날 곳이 없어지자 곧장 벽에 붙어 위로 솟구쳤다.

    하지만 그 검은 안개는 아주 약한 것 같았다. 1척 정도 위로 오르더니 더는 올라가지 못했다. 이끼가 자라 있는 곳을 벗어나면 바로 햇볕이 드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구귀부를 반경 3척 안으로 가져다 대자 돌연 펑 소리와 함께 하얀 화염이 일어 그 음살의 기운을 덮쳐갔다.

    심협은 급히 팔을 휘둘러 구귀부를 치워버렸다. 그 음살의 기운을 바로 없애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귀부는 이내 마지막 불씨만을 번득이다가 사라져 버렸다. 그와 거의 동시에 시야에 드리워졌던 그늘도 사라졌다.

    심협은 눈을 크게 뜨고 다시 산벽 구석을 살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심협은 품에서 다시 두 장의 부적을 꺼냈다. 모두 칙령(勅令)으로 시작하는 구귀부였다.

    그중 한 장에 법력을 주입하자 백색광이 번득였고, 방금처럼 시야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하지만 아까보다 시야가 또렷하지 못했다.

    심협은 급히 산벽 구석을 바라봤지만, 몽롱한 검은 그림자만 보일 뿐 검은 안개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어찌 된 일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부적의 백색광이 사라지며 시야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는 분명 부적의 질이 떨어져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거야. 연습하다 보면 익숙해지겠지. 하루아침에 이뤄낼 수 있는 것은 아닐 테니까.”

    심협은 탄식하며 마지막 남은 구귀부를 집어 들어 법력을 주입했다. 그러자 부적에 빛이 일더니 백색광이 나타났고, 시야에는 어두운 그늘이 드리웠다.

    검은 안개도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심협은 이번에는 구귀부를 가져다 대지 않고 품속에서 화살부 한 장을 꺼냈다. 화살부로 음살의 기운을 제거할 수 있는지 시험해볼 참이었다.

    하지만 연달아 세 장을 시험해봤음에도 화살부는 한 장도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세 장 모두 제대로 써내지 못했다는 증거였다.

    심협은 기분이 언짢아져 곧장 여의부와 진댁부, 백해소재부 등 부적을 닥치는 대로 꺼내 음살의 기운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시험해보려 했다. 하지만 단 한 장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소뢰부가 음살의 기운을 제거했다.

    “결국 소뢰부와 구귀부만이 쓸모가 있구나.”

    심협은 물가로 돌아가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어째서 부적의 성공률이 이렇게 떨어지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이미 연기기 초기 수사가 되었으니 부적을 쓸 때 정, 기, 신 통제 능력도 예전과는 천양지차일 것이다. 게다가 소뢰부를 성공적으로 써낸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주의를 기울여 작성한 부적들이었다. 게다가 연습한 횟수로 따져도 여의부와 화살부가 가장 많았는데, 오히려 덜 익숙한 구귀부만 성공한 것이다.

    “다른 부적은 몰라도 화살부의 도안에는 문제가 없다는 게로군.”

    소뢰부나 구귀부는 모두 기이한 꿈속에서 성공적으로 써낸 적이 있다. 특히 소뢰부는 우혁의 지도를 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기이한 꿈속에서 제대로 써낸 부적만이 현실에서도 제대로 쓸 수 있다는 건가?”

    심협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정오가 지나 있었기에 그는 곧바로 춘추관으로 돌아갔다. 재당에서 점심 식사를 마치고, 바로 청석평의 거처로 돌아왔다.

    방으로 돌아온 그는 방문을 잠그고 잠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러고는 오른쪽 어깨를 문지르다가 옷을 내려 검은 해골 문신을 바라보았다. 문신은 생겨난 지 며칠이 지났지만, 보아하니 쉽게 없어질 것 같지는 않았다.

    심협은 방을 훑어보다가 쌓아둔 고서들 옆에서 어제 쓰고 남은 부적용 황지에 시선을 멈추었다. 돌연 무언가를 시도해볼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곧장 붓을 들어 주사를 묻힌 후 황지에 부적을 쓰기 시작했다.

    반 시진 후, 남아 있던 황지를 모두 사용하고서야 두 장의 구귀부를 얻었다.

    심협은 잠시 쉬다가 주사가 완전히 마른 부적 중 하나를 집어 들어 어깨의 해골 문신에 붙이고는 법력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부적에 빛이 일더니 백색광이 비쳐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야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심협은 시선을 오른쪽 어깨의 문신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해골 문신을 한참 주시했다. 그러나 해골 문신에는 아무런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다.

    심협은 미간을 찌푸리며 침상에 놓인 옥침으로 시선을 옮겼다. 하지만 옥침에서도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심협은 한숨을 내쉬고는 탁자 앞으로 돌아가 석합에서 <무명천서>를 꺼내 들고 자리에 앉았다.

    부적과 부기를 시험하느라 법력을 너무 많이 소모한 탓인지 고작 한 글자만 읽었을 뿐인데도 현기증이 났다. 이에 어쩔 수 없이 <무명천서>를 덮고 석합에 다시 넣었다.

    심협은 피로한 얼굴로 미간을 문지르며 침상에 누웠고, 깊이 잠이 들었다.

    * * *

    적막한 달빛이 비치는 깊은 밤.

    청석평 벼랑가 너머에서 산바람이 산곡 사이를 비집고 지나갔다. 마치 여인이 소리 죽여 우는 듯한 소리가 벼랑가 정실 전체에 울려 퍼졌다.

    벼랑가에 가장 가까운 정실 창문에는 소나무 가지가 칠흑 같은 어두운 그림자를 만들어내 요동치고 있었는데, 마치 사람의 목숨을 노리는 악귀의 손처럼 보여 섬뜩했다.

    방 창가의 침상에는 심협이 옷도 벗지 않고 잠들어 있었다. 그는 깊이 잠이 들어, 자신이 베고 있던 등나무 베개가 언제부턴가 한쪽으로 치워져 있고 대신 옥침을 베고 있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그때, 심협이 잠꼬대를 하며 몸을 돌려 누웠다. 그러는 중에 오른손으로는 머리 아래 있는 옥침을 쥐었다.

    그 순간, 돌연 음한한 바람이 불더니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창문이 열렸다. 그러더니 검은 안개가 울렁거리며 들어와 그대로 침상을 덮쳐갔다.

    심협은 퍼뜩 잠에서 깨 두 눈을 떴다. 그러고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그때, 몸 아래에서 거대한 힘이 잡아끄는 것이 느껴졌다.

    급히 아래를 돌아본 심협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아이의 것 같은 작은 손들이 침상 안에서 나오더니 그의 몸 여기저기를 잡은 채 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심협은 화들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치 차가운 뱀이 척추를 기어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작은 손들은 창백한 데다가 퉁퉁 불고 부패되어 있었는데, 마치 물 안에 오래 잠겨 있던 익사체 같았다. 그 손에는 가늘고 긴 검은 손톱이 자라 있었는데, 일부 손톱은 옷을 뚫고 심협의 피부를 파고들었다.

    심협은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입을 벌려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의 두려움은 극에 달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손톱이 등을 파고들었는데도 아무런 통증도 느끼지 못한 것이다!

    “당황하지 말자. 침착해야 해.”

    심협은 억지로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는 무명공법을 운공하며, 체내의 법력을 이끌어 이 창백한 손들을 쫓아보려 했다.

    그런데 단전에서 막 법력이 일어나려 할 때, 심협의 목덜미 위로 얼음장처럼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그러더니 강력한 음한기가 솟아 나와 온몸의 털이 다 곤두서게 만들었다.

    “옥침이다!”

    심협은 바로 목 뒤에서 나타난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그가 다시 움직이기도 전에, 옥침에서 돌연 강한 흡입력이 생겨났다. 그러자 심협 체내의 혈액과 정기들이 순식간에 끓듯이 뜨거워지더니, 점점 하얀 증기가 되어 옥침에 흡수되어 갔다.

    심협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자신의 가슴이 점점 함몰되어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의 손도 빠르게 말라버려 귀신의 손처럼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게 변하였다.

    심협의 머릿속은 온통 혼란, 공포, 의문, 여한…… 온갖 심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는 마지막 남은 일말의 힘을 다해 미친 듯이 외쳤다.

    “안 돼…….”

    바로 다음 순간, 그는 침상에서 맹렬히 일어나 앉았다. 심장은 미친 듯이 요동쳤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그는 허겁지겁 몸 아래 깔려 있던 요를 살폈지만, 땀이 배어 축축함만 느껴졌을 뿐, 작은 손 따위는 없었다. 심지어 바싹 말라버렸던 손바닥도 온전했다.

    “그저 악몽이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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