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52화 (52/1,214)

52화. 물 다루는 법을 통달하다

두 사람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심협은 표정을 풀었으나, 여전히 등골이 오싹했다.

“그저 길을 찾으러 왔을 뿐인데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구나.”

법성에 통해 오감의 기능이 향상되지 않았더라면 고화령의 인자한 웃음에 속아 그의 시커먼 속도 몰랐을 것이다.

“역시 세상은 역시 험한 곳이군. 항상 경계심을 늦춰서는 안 되겠어.”

저 두 사람은 분명 무슨 비밀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사람을 죽이고 묻겠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겠는가?

“기회를 봐서 사부님께 이야기해야 할까? 어쨌든 앞으로는 저 두 사람을 멀리해야겠군.”

심협은 한참 후에야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주변을 살피며 수행할 장소를 찾았다.

다행히 머지않아 무척 외진 계곡을 찾을 수 있었다. 비록 그리 크지는 않지만, 퍽 은밀한 곳이었다. 우뚝 솟은 산등성이 두 곳 사이의 구불구불한 작은 계곡이었다. 어찌나 은밀하게 숨겨져 있었는지, 이렇게 높은 곳에서도 상류만 겨우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중류나 하류라면 다른 사람이 발견할 수 없을 듯했다.

심협은 곧장 그 계곡으로 향했다. 하류에서부터 상류를 향해 3, 4리 정도를 걷다 보니 계곡이 흘러 얕은 못을 이룬 곳이 나타났다. 못 양쪽으로는 높이가 1장 정도 되는 바위가 마치 자연이 만든 병풍처럼 못을 완전히 가려주었다. 위에서 내려다보지 않는 이상 이 못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도 볼 수 없을 것이다.

“정말 절묘한 장소로군!”

심협은 감탄성을 내뱉었다.

심협은 물가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았다. 두 손을 결인하자 단전에서 청량한 기운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더니 온몸의 경맥을 타고 운기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심협은 눈을 뜨더니 한 손의 검지와 계지(季指, 새끼손가락)를 펴고 나머지는 접은 채, 물속에 분산되어 있는 영기(靈氣)를 조종하기 시작했다.

심협의 결인한 손이 얕은 못을 가리키자, 평온했던 수면에 갑자기 작은 물결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이 물결은 바람이 불 때 생기는 잔잔한 물결과는 전혀 달랐다. 그보다는 물에 돌을 던졌을 때 일어나는 고리 형태 물결과 유사했다.

이 고리 형태의 물결은 규칙적으로 퍼져 나가다가 중심에서부터 사방으로 4척 정도 퍼진 후 모습을 감추었다.

심협은 돌연 손목을 뒤집어 결인한 손을 위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물결의 중심에서 갑자기 물보라가 넘실거리더니, 사람 머리만 한 물방울이 팍 소리와 함께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 물방울은 1척 정도 떠올랐다가 떨어졌다.

쿵!

물방울이 수면에 부딪치자 가벼운 굉음과 함께 어지러운 물결이 일면서 원래 있던 물결을 완전히 휘저었다.

심협은 벌떡 일어서더니 환하게 웃었다. 이전에도 그는 물을 제어해본 적이 있다. 지난번에 우 사형을 혼내준 것도 이런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물을 조종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심협은 휴식도 취하지 않고 곧장 다시 한 손으로 결인하여 방금 전과 같은 모양을 만들더니 체내에 법력을 운공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법력이 배로 늘어났다.

“일어나!”

그는 작게 외치며 결인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평온했던 수면에 돌연 물보라가 일었는데, 마치 솥에서 끓는 물 같았다.

이어서 수레바퀴 하나 정도의 물이 물보라 중앙에서 튀어나오더니, 공중에서 거대한 물방울로 변했다. 이 물방울은 한참을 떨어지지 않고 떠 있었다.

심협은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 이번에는 손바닥을 살짝 돌렸다. 그러자 공중에 떠 있던 그 물방울이 팍 소리와 함께 깨지면서 7, 8개의 긴 머리가 물보라 안에서 생겨나왔다. 물보라는 좌우로 갈라지더니, 머리 뒤로 몸 형태가 생겨났다. 이어서 8마리의 투명한 준마(駿馬)가 되었다. 사냥개 정도 크기의 준마들은 말발굽으로 허공을 밟고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달렸다.

투명한 준마들은 심협의 몸 주위를 몇 바퀴 돌고 난 후, 서로 부딪쳐 물보라를 일으켰다. 그러나 다시 물로 돌아가지 않고 서로 합쳐지며 점점 커지더니, 결국 한 마리 커다란 준마가 되었다.

준마는 체격이 튼실했고, 목에는 갈기 같은 무늬까지 있었다. 몸은 투명하여 물이 흐르는 흔적도 어렴풋이 보였다. 마치 수정으로 조각한 것처럼 정교하고 아름답기 이를 데 없었다.

심협이 다시 마음속으로 무언가를 조종하자, 내달리던 준마의 발아래 물보라가 일더니 말은 마치 물에 빠지듯 점점 가라앉았다.

말의 머리는 점점 자라나더니, 갈기와 귀가 사라져 점점 투명한 물뱀처럼 변해갔다. 그 머리가 아래를 향했고, 수면 위에서 좌우로 움직이며 미끄러져 갔다. 그러다가 심협이 한 손을 들자 머리를 꿈틀거리며 들어 올렸고, 등허리에 돌연 두 줄기 물보라가 일었다. 물보라는 점점 넓게 퍼져 나가 두 개의 투명한 수막(水膜)을 만들어냈는데, 마치 날개 두 개가 자라난 것처럼 보였다.

뱀의 몸은 점점 짧아지고, 머리는 점점 뾰족해져 갔다. 그러더니 결국 날개를 펼친 커다란 붕새(鵬새, 하루에 구만 리를 날아간다는 상상의 새)로 화하여 공중에서 날갯짓을 했다.

붕새의 두 발톱은 휘어진 것이 마치 은색 갈고리처럼 보였고, 몸의 깃털 하나하나의 무늬는 세세한 부분까지 표현되어 있었다. 투명하긴 했지만, 마치 실제처럼 생동감이 넘쳤다.

하지만 붕새는 십여 장 정도 높이까지 올라가더니, 힘이 다한 것처럼 그대로 떨어졌다. 물보라가 몰아치더니, 이내 잔잔해졌다.

“이상하네. 어찌 이리 쉽단 말인가?”

심협은 법력의 소모가 크자 법결을 거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명공법을 연마한 후 물을 다룬 것은 처음이건만, 어찌 이리 순조롭단 말인가?

물은 항상성이 없다. 또한 변화에 가장 능하지만, 한편으로는 물을 변화시켜 형태를 만들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물을 이끌어 마음대로 움직이게 하는 것보다 형태를 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오랜 기간 수련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심협은 일전에 한번에 마음대로 물의 흐름을 변화시켰고, 이번에는 복잡한 형태 변화까지 완성했다. 게다가 생김새가 매우 현실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 동물들의 특징까지도 구현해내지 않았던가? 보통은 이런 경지에 이르려면 오랜 기간, 수많은 훈련이 필요할 터였다.

“내게 물 속성 공법에 타고난 재능이 있단 말인가? 아니면 내 체질에 특별한 점이 있어 물의 영기와 잘 통하는 것일까?”

하지만 이런 생각은 별로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정말로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면 진작 드러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항상 남들에게 뒤처졌고, 기초적인 소화양공의 입문까지도 2년이나 걸렸다.

“이 또한 그 해골이 내게 주입한 한기와 관련이 있는 모양이군.”

심협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는 천천히 물가로 돌아와 평평하고 매끄러운 큰 바위에 앉아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잠시 후, 심협은 품에서 작살 부기를 꺼냈다. 처음 얻었을 때 몇 번 시도해 봤지만 결국 사용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으니 오늘 다시 시도해보려는 것이다.

그는 평평하게 펼친 손바닥 위에 작살을 놓고, 한 손을 결인해 체내의 법력을 운공하여 작살에 주입했다. 그러자 작살 손잡이의 부적이 미미하게 빛나더니 회백색 빛이 순식간에 뻗어 나가 작살 전체를 감싸기 시작했다.

심협은 저번처럼 급하게 굴지 않았다. 이번에는 법력이 안정적으로 작살에 주입될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제어했다.

법력이 조금씩 주입되면서 작살 위의 백색광도 점점 왕성해졌다. 작살은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손바닥에서 3촌 정도 떠올랐을 때, 작살은 유유히 떠다니기 시작했다. 동시에 작살 위의 빛이 다시 한번 번득였고, 작살은 돌연 3배 정도로 길어졌다. 그날 육화명이 시범을 보일 때와 같았다.

“일어나라!”

심협은 기쁜 목소리로 당시 육화명처럼 외쳤다.

작살 위의 빛이 번득이더니 돌진하다가 미끄러지듯 하늘로 솟아올랐다.

심협은 고개를 들어 올려보다가 집중력이 약간 흐트러졌다. 그러자 작살은 곧장 요동치더니 그대로 떨어져내렸다.

“안 돼!”

심협은 다급히 정신을 집중해 조심스레 법력으로 작살을 이끌었다.

이 작살은 허공으로 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 이후가 어려웠다. 심협은 정신을 집중해 작살이 앞으로 돌진하도록 하려 했지만, 작살은 전혀 말을 듣지 않고 그대로 하늘로 솟아올랐다.

작살이 2장 정도까지 솟구쳤을 때, 심협과의 연결이 점점 약해졌다. 그러더니 작살 위의 백색광도 점점 불안정해져 빛났다가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이어서 1장 정도 더 솟구치자 빛은 더욱 불안정해졌고, 돌연 통제력이 사라진 듯 근처 계곡으로 추락했다.

심협은 결인을 풀지 않은 채 재빨리 쫓아가며 온 정신을 작살에 집중했다.

“일어나라!”

작살은 물에 빠지기 직전에 백색광을 회복하더니 수면 위에 우뚝 멈추었다.

심협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결인한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러자 작살이 서서히 올라와 물가 쪽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그런데 작살이 수면을 막 벗어나자마자 표면의 빛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빛이 사라지며 원래 상태로 돌아간 작살은 땅에 떨어졌다.

심협은 단전이 텅 빈 듯한 느낌이 들었다. 법력이 절반 이상 소모된 후였다.

그는 작살을 줍고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등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부기 사용하는 것이 이토록 법력 소모가 클 줄이야. 백 사형이 정화와 겨룰 때는 간단해 보였는데……. 내문제자는 역시 다르구나.”

심협은 약간 숨을 헐떡이며 중얼거렸다. 이어서 육화명이 검을 타고 날던 모습이 떠오르자 또다시 감탄하게 됐다.

잠시 휴식을 취한 심협은 다시 작살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약 반 시진 후…….

쨍!

날카로운 파열음이 계곡에 울렸다. 작살이 3장 높이의 허공에서 쏜살같이 내려와 불꽃을 일으키며 바위에 비스듬히 꽂혔다.

심협의 창백한 얼굴에 안도의 웃음이 피어났다. 반 시진 넘는 연습 끝에 결국 작살을 제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아직 육화명이 시범을 보일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작살의 공격 위력도 육화명의 시범과는 천지 차이였다. 이는 법력의 강약 차이 때문이었다.

지금 그의 무명공법 제1층 법력으로는 기껏해야 반경 3장 정도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 게다가 부기를 사용하는 데는 법력의 소모가 너무 커서 차 한 잔 마실 시간 정도만 사용할 수 있었다. 더욱이 실제 전투에서라면 법력의 소모는 더 크고 빠를 것이다.

심협은 작살을 뽑아내고 바위에 기대앉아 날카로운 눈으로 작살 손잡이의 부적을 살폈다. 하지만 이내 미간을 찌푸려야 했다. 바로 문제를 발견한 것이다. 부적의 문양은 색이 바래서 문양 획도 모호해져 있었다.

오늘 작살을 처음 꺼냈을 때에도 갓 써낸 부적처럼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짙은 붉은색을 띠었고 획도 뚜렷했다.

보통의 부적들은 부담을 태워 사용하고 나면 바로 재가 되는데, 부기에 붙어 있는 부적은 그러지 않는 것으로 보아 분명 큰 차이가 있을 터였다.

“이 부적도 부담을 태워 사용하는 것은 같지만, 그 과정이 보통의 부적처럼 빠르지는 않아. 그렇다면 부기의 부적을 여러 차례 사용하고 난 이후에는 결국 소모될지도 몰라. 이대로라면 기껏해야 서너 번 더 사용하면 이 부적의 효력이 사라질 거야.”

이 추측이 옳다면 작살의 부적은 아껴 써야만 했다. 나중에 백소천이 돌아오면 부기에 대해 물어보고 보완할 방법을 찾기로 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