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46화 (46/1,214)

46화. 통법(通法)

얼마나 지났을까. 의식이 점점 돌아오기 시작했다.

눈을 떴을 때, 심협은 목 아래가 여전히 계곡에 잠겨 있음을 알게 됐다.

여름이라고는 해도 새벽의 계곡물은 뼈에 사무치도록 차가웠다. 만일 밤새 이대로 있으면 제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문제가 생길 터. 하물며 심협처럼 허약한 체질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심협은 왠지 모르게 계곡물이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이 편안하기까지 했다.

심협은 의아해하며 천천히 일어났다.

날은 이미 밝아 있었다. 금빛 햇살이 온 천지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그러나 심협의 눈에 비친 세상은 예전과 전혀 달랐다. 전에 없이 밝고, 전에 없이 뚜렷했다.

심협은 무언가 떠오른 듯 사방을 둘러봤다. 놀랍게도 시력이 한참 좋아진 상태였다. 십여 장 밖의 나뭇잎 하나하나에 새겨진 무늬까지 뚜렷이 보일 정도였다. 심지어 나무를 오르는 개미와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기어 다니는 애벌레까지도 모두 눈에 들어왔다.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먼 곳을 바라봤다. 그러자 몇 리(里) 밖의 고을이 눈에 들어왔다. 청석판(靑石板)이 깔린 길이 굽이굽이 돌고, 길 양측의 가옥들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부지런한 상인들이 물건을 진열하기 시작했고, 몇몇 아이들이 집 앞 터에서 뛰놀았다.

청력도 비할 데 없이 향상되어 있었다. 새소리나 벌레 소리는 말할 것도 없고, 생소한 소리들도 들려왔다. 근처 밭에서는 쥐 한 마리가 조르륵 도망쳤고, 계곡가의 꽃들 사이로 두 마리 나비가 날개를 펄럭였다. 계곡 안에서는 게가 구멍을 파고 있었다. 게거품이 폭폭 소리를 내며 터졌다.

심지어 후각도 크게 향상되었다. 진흙의 비린내, 화초 향기, 낙엽 썩는 냄새, 그리고 수십 가지의 익숙하거나 낯선 냄새가 한꺼번에 느껴졌다.

“이 역한 냄새는 뭐지?”

심협은 코를 막으며 중얼거렸다. 돌연 악취가 코를 찔렀는데, 마치 바로 앞에 있는 것만 같았다. 조금 전까지 전혀 느끼지 못한 냄새였다.

그런데 손이 코에 닿자 뭔가 미끈거리는 것이 만져졌다. 손을 펼쳐보니 마치 진흙 같은 시커먼 것이 묻어 있었다. 악취의 원흉이었다.

심협이 급히 양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그러자 얼굴은 물론 목까지 그 진흙 같은 것으로 덮여 있었다. 그는 계곡물로 빡빡 씻어냈다.

그렇게 다 씻어내고 나니 심협은 상쾌함을 느끼며 못내 기분이 좋아졌다. 오감이 환골탈태하듯 변하였으니 이는 소화양공이 능숙한 경지에 이르는 것보다도 훨씬 의미가 있었다. 이는 분명한 질적 향상 이었다!

심협은 어제의 일들을 떠올렸다. <무명천서>에 기재된 공법을 수련하던 중, 부지불식간에 의식을 잃었던 것 같다.

“책에 나온 순서대로 몸 안을 36바퀴 운공했을 뿐인데, 이 공법은 참으로 신기하구나! 처음 수련해본 것인데도 오감의 기능이 이리 향상되다니! 어쨌건 잘된 일이다. 너무 깊게 따지고 들지는 말자.”

심협은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계곡물에서 나가려 했다. 그런데 그는 도중 걸음을 멈췄다. 오른발을 반쯤 든 상태로, 미동도 하지 않고 그대로 우뚝 섰다. 방금 오감 외의 어떤 현묘한 감각이 느껴진 것이다. 예전이라면 전혀 알아차릴 수 없었던 어렴풋한 무언가를 감지한 듯한 느낌이었다.

이 어렴풋한 감각은 주변의 공기와 대지, 흐르는 물, 초목 등 천지간의 모든 것에 존재하는 듯했다. 이것은 많기도 하고, 적기도 했으며, 형태도 모두 달랐다. 심지어 자신의 몸속, 바로 단전에도 있는 것 같았다.

심협은 감히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 현묘한 감각이 망가질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는 천천히 두 눈을 감고, 차분한 마음으로 단전에 있는 이 어렴풋한 것을 느껴보기 시작했다.

마치 미약한 한줄기 기류 같았다. 매우 차가웠고, 단전에서 순환하며 움직였다. 잔잔한 파동을 발산하고 있었는데, 충만하던 양기도 이 기류와 접촉하면 바로 피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건…… 이것은 법력이구나! 내가 이미 법성을 통하였구나!”

심협은 두 눈을 뜨며 오른발을 내려놓았다. 그의 발이 땅을 딛자 거센 물보라가 일었다.

이 차가운 기류가 발산하는 파동은 원석 안의 백색 기체나 우혁 등의 선사들이 발산하는 기운의 파동과 흡사했다. 그렇기에 법력이라고 확신한 것이다.

심협은 수련에 대해 접하게 되면서 법력이라는 신통한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이후 그는 한시도 이 법력을 얻게 되기를 갈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절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법력이란 너무도 요원한 것이었고, 자질이 부족한 데다 몸이 약한 심협에게는 더더욱 꿈도 꿀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심협은 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왔던가?

수명을 늘리기 위해서건 막연한 욕망 때문이건, 그는 누구보다도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런데 이리도 빨리 그 노력의 대가를 얻게 될 줄이야! 그야말로 얼결에 법성을 통하고 법력을 얻어 진정한 수련의 세계에 들어선 것이다!

심협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살을 깊이 파고들었지만, 그조차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심협이 가까스로 흥분을 가라앉히고 가만 생각해보니 뭔가 이상했다. 백소천의 말대로라면 통법성은 수선(修仙)의 길에 들어서는 중요 관문이라, 이 관문을 깨기는 심히 어려운 것이다. 제아무리 자질이 뛰어난 자들도 공법에 능숙해지기까지 수련으로 기초를 다지고, 영단묘약(靈丹妙藥)의 도움을 받아도 통과하기 어려운 관문이다. 춘추관에만 해도 그런 자가 적지 않았다.

심협은 자질이 현저히 부족한 편이었다. 그런데 어제 딱 한 번, <무명천서>의 공법을 시도하자마자 바로 법성을 통하였다. 무명법결이 춘추관의 순양검결보다 훨씬 심오하여 법성에 통하기 더욱 수월하다 해도 이리 쉽게 통법성 관문을 넘겼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었다.

“정말 하늘이 도운 것인가? 하늘의 도움이라…….”

돌연 어젯밤 갑자기 솟구쳤던 한기가 떠올랐다.

당시 계곡물에서 주입되던 수령의 기는 이미 흩어지고 있었는데, 이 한기가 갑자기 나타나 심협의 체내에서 양기와 만나 음양의 조화를 이루는 경지에 이르게 했다.

“그 한기는 내 오른쪽 어깨에서 전해졌지. 혹시 이것과 관련이 있는 건가?”

심협은 무의식적으로 오른쪽 어깨의 해골 문신을 바라봤다.

문신은 여전히 생동감 넘치는 모습 그대로 조금도 변화가 없었다.

심협은 두렵게만 느껴지던 이 해골 문신에 정이 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게 바로 기연(奇緣)인지도 모르겠군!”

심협은 머리를 긁적이며 그렇게 생각했다.

* * *

심협은 주위를 살피더니 수초가 무성한 곳으로 들어가 몸을 숨기고 가부좌를 틀었다. 이제 막 수선(修仙)의 길에 접어들어 법성에 통하였으니 수련을 계속하여 무명법결의 제1층을 빨리 완성하고 싶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궁금했다.

아직 낮이고 송번현성 인근 고을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지만, 심협은 누가 올까 걱정하지 않았다. 지금 그의 오감이라면 반경 3리 이내의 기척은 바로 알아챌 수 있을 테니까.

심협은 두 눈을 감고 무명법결 제1층 구결을 다시 한번 되뇌었다.

수선(修仙)법결은 소화양공 같은 기초 법결과는 확연히 달랐다. 기초 법결은 온전히 내적 수련이었다. 남자라면 체내의 양기를, 여자라면 음기를 키우는 것이다.

<무명천서>와 같은 수선공법은 체외에서 천지의 영기(靈氣)를 몸에 끌어들여 체내의 양기와 음기를 돕는 효과가 더 컸다. 이렇게 천지의 영기를 받아들여 자신의 법력을 연마한 다음 다시 단전으로 돌아가 저장되는 것이다.

그런데 수련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심협은 조금 놀란 듯 눈을 떴다. 운공을 한 번 마치자 양기가 아래로 내려가 회음까지 이르렀다가, 다시 발바닥의 용천혈(湧泉穴)로 직행하더니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단전에 있던 미약한 법력이 자신을 따르는 양기와 함께 음교맥(陰蹻脈)을 따라 두 발에 이르더니, 발에서는 찌릿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이 모든 과정은 단숨에 일어났다.

“이상하다. 무슨 일이지?”

심협은 당혹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법력을 두 발에서 다시 단전으로 돌아오게 했다. 그러자 발을 자극하던 찌릿한 느낌도 함께 사라졌다.

심협은 운공을 계속했는데, 양기가 흉부의 옥당혈(玉堂穴)에 이르자 법력도 따라서 올라오기 시작했다. 수삼음경(手三陰經)에서부터 두 팔을 따라 양쪽 손바닥으로 향하더니 다시 단전으로 돌아갔다.

“기관사지반단전(氣貫四肢返丹田, 기가 사지를 관통하고 단전으로 돌아옴)……. 이것이 바로 기관사지반단전이구나! 세정벌수오감통, 기관사지반단전(洗精伐髓五感通, 氣貫四肢返丹田). 그렇다면…… 내가 무명법결 제1층 수련을 마쳤다는 것인가?”

심협은 돌연 무언가를 알아차린 듯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명천서>에 따르면, 제1층의 공법은 공법 전체의 기초이자 관건이다. 그래서 법성에 통한 후로도 오랜 시간 꾸준히 수행해야만 법력이 기경팔맥(奇經八脈)을 통해 사지로 통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기관사지(氣貫四肢)인데, 이 단계에 이르면 제1층 공법의 수련을 마친 것이다.

이 단계에 이르면 자신의 법력으로 부적의 효과를 발휘시킬 수도 있고, 이를 통해 법기를 사용할 수도 있다. 더 이상 원석 같은 외물의 힘을 빌릴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물론 이 단계에 이르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자신이 이리 쉽게 해내다니!

심협은 어쩐지 마음이 놓이지 않아 다시 한번 시도해봤다. 그의 법력은 분명 공법의 운공에 따라 사지와 단전을 자유롭게 오가고 있었다.

심협은 심호흡으로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의 얼굴에 근심하는 기색이 스쳤다.

“기관사지반단전이 확실하구나. 오감의 기능이 환골탈태하듯 향상된 것도 확실하고. 그렇다면…… 세정벌수(洗精伐髓)는…… ?”

심협은 자신이 막 깨어났을 때 얼굴과 목에 잔뜩 묻어 있던 지저분한 것을 떠올렸다. 그것이 책에서 언급된 세정벌수로 체내에서 빠져나온 불순물이란 말인가? 자신이 물에 잠겨 있었으니 아마도 그 불순물의 대부분은 물에 씻겨 내려간 것 같았다.

“내가 정말 무명법결의 제1층을 다 수련해냈다니, 상상도 못한 일이다!”

심협은 여러 단서를 다 되짚어보더니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참았다.

“그렇다면 그걸 한번 시도해볼까?”

심협은 중얼거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몸 앞에 교차시키고는 각 손으로 결인을 하며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단전에 있던 법력이 다시 두 다리를 따라 발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발바닥에 옅푸른 빛이 일더니 근처의 계곡물들이 스스로 움직였다. 그러나 크게 출렁거리지는 않았다. 이어서 심협의 발을 중심으로 손바닥만 한 소용돌이 두 개가 생겨났다. 실로 불가사의한 광경이었다.

이 소용돌이가 천천히 회전하는 가운데, 소용돌이에서 생겨난 부력으로 심협의 몸이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심협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순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하마터면 나자빠질 뻔했다. 양손을 한참 허우적거리고 나서야 겨우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지만, 표정만은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

심협은 천천히 오른 다리를 들어 올렸고, 발바닥이 수면에서 떨어지는 순간 소용돌이가 사라졌다. 하지만 발바닥의 옅푸른 빛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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