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45화 (45/1,214)
  • 45화. 음양의 조화

    심협은 다시 침상에 돌아와 가부좌를 틀고는 <무명천서>를 계속 더듬어 읽기 시작했다.

    이후로 며칠 동안 심협은 온종일 틀어박혀 <무명천서>만을 읽었다. 피로해지면 바로 소화양공을 운공하고, 회복되면 다시 책을 봤다. 식사는 소삼자에게 부탁해 방에서 먹었다.

    이렇게 잠도 아껴가며 노력한 덕에, 닷새째 되는 날 정오 즈음에 반 권짜리 <무명천서>를 한차례 완독할 수 있었다. 그 무렵, 수염은 너저분하게 자라 있었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두 눈은 흥분으로 가득했다.

    심협이 예상했던 대로 <무명천서>에 기재된 것은 수련 법결이었다. 소화양공에 비해 몇 배는 더 심오하고 오묘한, 진정한 선가(仙家)의 공법(功法).

    이 법결에는 명칭이 없었다. 가장 앞에 기재된 대강의 요약된 내용에 따르면 법결은 모두 18층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연기기(煉氣期)부터 도겁성선(渡劫成仙)의 경지까지였다. 도겁성선에 이르기 전까지의 수련 단계는 연기기, 벽곡기(辟穀期), 응혼기(凝魂期), 출규기(出竅期), 대승기(大乘期)와 진선기(眞仙期)로 이루어져 있었다.

    <무명천서>에서는 이 여섯 가지 경지에 대해 자세히 다루지 않고 간단히 언급만 할 뿐이었다. 수련이 심오한 경지에 이르면 수명이 길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막강한 신통력을 지니게 돼 비바람을 부르고 산을 옮기거나 바다를 메우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한다. 진선기는 정말로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되는 것인데, 해와 달과 함께 빛나고 천지와 수명을 함께한다고 되어 있다.

    책에는 이렇게 간단히 써있을 뿐인데도 심협은 피가 끓어오를 듯 열정이 솟구쳤다.

    그는 각종 서적에서 선인(仙人)의 이야기를 자주 봤다. 특히 선인들이 요괴와 마물을 물리쳐 정의를 구현하는 이야기들을 동경해왔다. 그러나 자신의 병약한 몸으로는 선인이 되기는커녕 보통 사람만큼 살아가는 것조차 사치였기에 꿈도 꾸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소화양공이 능숙한 경지에 이르러 체질이 크게 달라진 것이다. 예전에 음기가 들어 손상되었던 원기는 완전히 회복될 수 없지만, 적어도 선가의 공법을 수련할 자격 정도는 생긴 것이다.

    안타까운 것이라면 <무명천서>의 뒤 절반 정도는 찢겨 나가 남은 것은 앞의 9층의 공법 구결뿐이라는 점이었다. 이를 완벽히 수련한다 해도 응혼기 너머에는 이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심협은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책의 내용과 일전에 백소천의 말을 종합해보면, 선가 공법 수련은 하늘의 순리를 거스르는 일이라 각 단계의 수련이 매우 어렵다. 자질이나 깨달음이 부족하면 가장 낮은 단계인 연기기에도 이를 수 없다. 춘추관에 백 명이 넘는 제자가 있지만, 내문제자 셋만이 그 경지에 이르러 법력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심협은 <무명천서>에 기재된 심오한 경지를 무척 동경하기는 하나, 자신이 쉽게 이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만일 연기기에 이르러 60년 정도만 수명을 연장하게 된다 해도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 물론 운이 좋아 더 높은 경지에 이른다면 더 좋겠지만 말이다.

    <무명천서>를 찾게 되자, 심협은 기이한 꿈에서 겪은 일들이 사실은 실제였음을 더욱 믿게 됐다.

    “더욱이 천년 뒤의 미래였지! 그렇다면……?”

    수백 년 뒤에 마겁일이 다가올 것이라는 뜻이다.

    심협은 생각을 접어두고,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 일들은 한참 뒤에나 일어날 것이니 지금 생각해봐야 소용이 없었다. 지금은 우선 <무명천서>를 잘 수련하고, 그다음 일들은 그다음에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심협은 <무명천서>를 석합에 넣고 다시 석합을 베개 밑에 감췄다. 그러고는 베개에 머리를 묻고 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얼마나 지났을까.

    심협은 천천히 잠에서 깨어났다. 며칠간 쌓였던 피로가 모두 풀리고 온몸에 힘이 넘치는 것 같았다.

    심협은 침상에서 내려와 손발을 풀며 창문을 열었다.

    밖에는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무성한 용나무 잎 사이로 초승달이 서편으로 기울어 있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창밖에는 간혹 벌레 우는 소리만 들려올 뿐, 매우 고요한 것이 이미 밤이 깊은 듯했다.

    ‘내가 하루 하고도 반나절을 잤다는 말인가?’

    심협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침상으로 향했다.

    지금은 밤이 깊어 고요하니 수련하기 딱 좋은 때였다.

    심협은 베개 밑으로 손을 넣어 석합을 꺼내더니, 품에 집어넣고 가벼운 걸음으로 문을 나섰다.

    <무명천서>에 나온 수련 방식은 참으로 독특했다. 연못이나 계곡 안에서 수련해야 한다고 나와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이 마을로 오는 길에 멀지 않은 곳에서 계곡을 본 기억이 있었다.

    심협은 복도를 따라 돌아가 담벼락 근처에 도착했다. 거기에서 몸을 훌쩍 날리더니 그대로 1장을 솟아올랐다. 이어서 그대로 소리 없이 담벼락 밖에 내려섰다. 며칠 전, 밤중에 부적을 시험하기도 했던 곳이다.

    심협은 담벼락을 슥 살펴보더니,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만약 경공까지 배웠더라면 더욱 높이 뛸 수 있었을 텐데, 아직 배운 적이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심협은 방향을 가늠하더니 빠르게 내달렸다. 그리고 곧 고을 밖 3, 4리 거리에 있는 계곡에 이르렀다. 이 마을을 에워싸고 흐르는 계곡이었다. 너비는 3, 4장에 불과하나 물이 매우 맑고 안에는 수초가 무성히 자라 있었다.

    심협은 계곡에서 외진 곳을 찾아 바지만 남기고 옷을 모두 벗어버렸다.

    그런데 막 뛰어들려던 그는 눈길이 어깨에 닿은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검붉은 이빨 자국이 나 있던 자리에, 그 이빨 자국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대신 그 자리에 밥그릇 크기의 검은 해골 그림이 나타나 있는 것이 아닌가!

    심협은 어깨의 해골 문신을 보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 해골은 실제처럼 너무도 생생해 얼핏 보면 진짜 해골이 심협의 어깨를 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전의 이빨 자국은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심협은 꿈속에서 온갖 기이한 일들을 겪어 이제 웬만한 일에는 그리 놀라지 않았는데, 지금 깊은 밤중에 겪은 이 일에는 절로 두려움이 생겼다.

    심협은 깊이 숨을 들이쉬며 마음을 가라앉힌 뒤, 해골 문신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이 문신을 구성하고 있는 검은 선들은 마치 부적의 문양과 흡사했는데, 어딘가 신비한 색이었다.

    그런데 문신 모양이 무섭게 생긴 것 외에는, 그 부위에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만일 옷을 벗지 않았더라면 아마 문신의 존재조차 몰랐을 것이다.

    ‘전에 나를 물었던 해골과 관련된 걸까? 혹시…… 이 문신이 그 해골인가!’

    심협은 턱을 매만지며 이런저런 추측을 해보았다.

    그는 문신을 만져봤지만,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다. 정말 문신을 한 것처럼, 그저 자신의 어깨가 만져질 뿐이었다. 손톱으로도 긁어봤지만 그저 피부가 벗겨져 따가울 뿐이었다. 문신은 마치 원래 피부에 새겨져 있었던 것만 같았다.

    심협은 잠시 망설이다가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소화양공을 운공해 단전에서 일어난 양기를 어깨로 이끌었다.

    잠시 후, 심협의 어깨 전체가 옅은 붉은 빛에 한 겹 휩싸였고, 피부는 미미하게 붉은 빛을 띠었다. 하지만 어깨의 해골 문신은 눈과 콧구멍 부분만 붉게 변했을 뿐, 나머지는 여전히 모두 까만색이었다.

    “이제 소화양공이 능숙해졌으니 양기는 전보다 훨씬 강해졌을 거야. 해골 문신에 귀신이나 음기 같은 것이 있다면 이렇게 아무런 변화도 없을 리가 없어.”

    심협은 여러 방법으로 문신을 제거하려 해봤으나 결국 포기해야 했다.

    “됐다. 악영향을 주는 것 같지는 않으니 우선은 이대로 두자. 게다가 그 귀신에게 물리지 않았다면 소화양공이 대성에 이르는 것도 불가능했을지 몰라. 어쨌든 이제 <무명천서>나 공부하자. 법결이 너무 어렵지만 않으면 좋겠는데…….”

    심협은 해골 문신 일은 잠시 제쳐두고 다시 무명법결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풍양진인과 사부의 말대로라면, 소화양공이 능숙한 경지에 이르는 것만으로도 수명은 2, 3년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심협은 일어나 팔을 내저으며 계곡으로 들어가 물이 얕은 곳에 가부좌를 틀었다. 수심은 가슴에도 오지 않아, 앉아도 목 아래에서 찰랑거렸다.

    그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며 무명법결의 제1층 수련 구결을 되뇌었다. 잘못된 부분이 없음을 확인하고는 법결에 따라 호흡하기 시작했다.

    무명법결은 소화양공과 달리, 천지와의 소통을 더욱 중시했다. 호흡을 들이쉬고 내쉬는 동시에, 정신을 집중해 외부로는 천지에 감응해야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 호흡이 계속 어긋났지만, 점점 익숙해져 갔다.

    단전의 양기는 공법의 법결이 이끄는 대로 몸 안에서 서서히 운공되더니, 경맥을 따라 체내를 한 바퀴 운공하고 다시 단전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미미한 온기가 느껴졌다.

    이와 동시에 차가운 기운이 계곡물에서 스멀스멀 스며들어와 심협의 사지에 모여들었다. <무명천서>에 따르면 이 차가운 기운은 수령(水靈)의 기(氣)로 가슴과 배에서 더는 퍼지지 않았다.

    심협이 계속 무명법결을 운공해 몸 안에서 36바퀴를 운공하게 되자, 한 번 운공할 때마다 단전의 양기에 더해진 열기는 마치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반면 사지는 수령의 기가 계속 스며든 탓에 더없이 차가운 상태였다. 마치 얼음 속에 있는 것처럼, 곧 지각(知覺)조차 잃을 것만 같았다.

    이처럼 차가운 기운과 뜨거운 기운이 몸에 동시에 있으니 심협은 마치 얼음과 불 사이에 있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인내심을 발휘해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연기기에 들어서는 것은 보통 사람에서 진정한 수사(修士)로 거듭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통법성(通法性)이다. 바꿔 말하면, 법성(法性 : 우주 만물의 본체)에 통해야만 진정한 수선의 길에 들어설 수 있는 것이다.

    백소천이 알려준 바에 따르면, 모든 수련 법결에는 각자 법성에 통하는 방법이 있다.

    <무명천서>에 담긴 방법은 기초가 다져진 양기를 이끌어냄과 동시에 수령의 기를 몸 안에 들여 36회 운공하는 것이다. 이로써 몸 안에서 물과 불이 만나는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

    이 상태에서 끊임없는 시도와 감오(感悟 : 느끼어 깨달음)를 통해 물과 불의 기운이 합일되어 음양의 조화를 이루는 경지에 이르면 육체가 천지간에 융합될 수 있다. 이때 정신은 고도의 집중 상태에 접어드는데, 이를 계기로 삼아 법성에 통할 수 있는 것이다.

    감오(感悟)란, 본래 실체가 없고 허무한 것, 마치 거울에 비친 꽃이나 물에 비친 달과 같아서 볼 수는 있지만 만질 수 없는 것이다.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끊임없이 시도하면 성공할 가능성은 늘어날지 몰라도 자질이나 오성(悟性)이 부족하면 평생 수련해도 그 본질을 파악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심협은 속으로 무명법결에 기재된 법을 다시 한번 되뇌는 동시에 단전의 양기와 사지의 수령의 기를 함께 끌어냈다.

    차가운 기운과 뜨거운 기운이 체내에서 교차하며 충돌하니 심협의 낯빛도 푸른색과 붉은색을 반복해 오갔다. 그리고 점차 뜨거운 기운이 압도하기 시작하면서 차가운 기운은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심협은 실패했음을 깨닫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보아하니 무명법결도 소화양공처럼 수련이 쉽지는 않은 듯했다. 혹은 자신의 자질이 부족한 탓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래봐야 첫 시도였다. 아직 실망하기에는 이르지.’

    그런데 그때, 이변이 발생했다.

    심협은 오른쪽 어깨에서 약간의 한기를 느꼈는데, 이 한기는 점차 방대해지며 솟구치더니 그의 체내로 주입되기 시작했다.

    “엇!”

    심협은 순간 몸이 굳었고, 피부에는 하얀 성에가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온몸을 뒤덮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이 한기는 주위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계곡물도 원래대로 흘렀고, 수온도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이 한기는 심협의 체내에 들어오자마자 단전으로 이동하더니 양기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두 기운이 거세게 부딪쳤다.

    펑!

    심협의 체내에서 굉음이 울렸다. 오장육부가 진동하는 느낌이었다.

    심협은 온몸의 경맥에 찌를 듯한 통증을 느꼈고,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두 기운이 충돌한 힘을 제어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했기에 그저 기다리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두 기운의 충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곧 두 기운이 서로 교차하면서 더 이상 충돌하기는커녕 오히려 서로 돕는 형상이 된 것이다.

    그 순간, 심협은 마치 신비의 문을 연 것만 같았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쾌감에 정신마저 아득해질 지경이었다.

    심협은 주위에서 수령의 기가 계속 사지를 통해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단전의 양기는 이렇게 주입된 수령의 기와 서로 융화했다. 이 과정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고, 이 모든 것이 마치 원래 이리 되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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