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41화 (41/1,214)
  • 41화. 이빨 자국

    심협은 다시 석합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석합의 모든 면을 자세히 살펴봤다. 그는 손가락으로 석합의 모든 모서리를 따라 문질러보며, 혹시 숨겨진 장치 같은 것이 있는지 살폈다. 하지만, 아무리 뒤지고 찾아봐도, 아무런 장치 같은 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러면 곤란해지는데…….”

    심협은 속수무책으로 석합을 주시하고 있었다.

    심협은 잠시 망설이다가 무언가 결심한 듯 눈빛을 빛내더니, 배 안을 뒤져 그물 옆에서 1척 정도 길이의 손도끼를 찾아냈다.

    손도끼는 우대담이 평소 장작을 팰 때 쓰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룻배가 습한 탓에 도끼날에 녹슨 자국이 옅게 나 있었다.

    다행히도 심협이 헝겊으로 닦아내자, 녹슨 자국은 전부 닦여 나갔다.

    심협은 도낏자루를 잡고, 도끼날을 석합에 나있는 금에 가까이 대고는 가볍게 쪼아봤지만, 석합은 열릴 줄을 몰랐다. 그렇다고 파손될 것 같지도 않았다. 하여 심협은 점점 도끼에 힘을 가하기 시작했다.

    심협이 힘차게 도끼로 내려치니, 금속과 돌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울려왔다. 배 안에 있던 앉은뱅이책상도 맹렬히 떨렸다.

    그 반동에 석합이 튀어 올라 하마터면 날아가 버릴 뻔하자, 심협은 급히 손도끼를 버리고 석합을 잡아 조심스럽게 살펴봤다.

    하지만, 석합에는 그 어떤 자국도 남지 않았고, 오히려 앉은뱅이책상 중간에 오목하게 팬 자국이 남게 되었다.

    “역시 보물이구나. 그 옥침과 견줄만하겠어.”

    심협은 석합을 쪼갤 수 없는 것을 보고 의아해하지 않고, 오히려 당연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까지 하였다.

    심협은 손바닥으로 석합의 표면을 더듬어 보다가, 돌연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이 석합이 보물이라 일반적인 방법으로 열 수 없다면, 부적으로 시도해 볼만하지 않을까? 어쩌면 소뢰부로 열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심협은 이 생각을 떠올리고서도 한편으론 망설였다.

    소뢰부의 위력이 만만치 않은데, 혹시라도 석합 안에 들어있는 물건까지 훼손될까 걱정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시도하지 않느니만 못한 것 아닌가?

    하지만 딱히 다른 방법은 없는 것 같았다. 게다가 이 석합이 신기하리만치 견고하니, 아마 안에 있는 물건도 별일 없을 것 같았다.

    이리 생각한 심협은 품속에서 소뢰부를 꺼내어 석합 위에 두고, 다시 원석을 소뢰부 위에 두었다. 그러고는 소뢰부에서 약간의 위력만 발휘해 볼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시도하려 했다.

    그런데 심협이 소화양공을 운공하기도 전에, 원석 안의 백색 기체가 스스로 강렬하게 요동치더니 밝은 하얀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심협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란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하얀 빛이 비치는 가운데, 원래 매끄럽고 아무 자국이 없던 석합 표면에 갑자기 가느다란 빛줄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빛줄기들은 서로 종횡으로 교차하며, 등나무 편직물을 짜는 것처럼 짜여갔다.

    그 등나무 편직물처럼 보이는 것 정중앙에는 오목하게 팬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생겼는데, 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 크기였다. 그 안쪽의 빛이 어두운 것이 주변에 밝게 비치는 것과 확연히 달랐다.

    심협은 석합에 나타난 그 오목한 부분을 보고 있자니 호기심이 발동해 시험 삼아 손가락 하나를 뻗어 하얀 빛이 비치는 범위 안에 넣었다. 그러자 차가운 기운이 손가락을 감도는 것이, 마치 물속에 손가락을 넣은 것 같았다. 그 외에는 별다른 불편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에 심협은 손가락을 더 아래로 뻗어 석합에 더 가까이 가져갔다. 그 차가운 기운이 더 뚜렷이 느껴지는 것이, 석합에서 뿜어 나오는 것 같았다.

    음기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심협은 또다시 망설이게 되었다.

    하지만, 원석에서 나오는 기운이 곧 소진될 참이었다. 원석에서 뿜어져 나오던 하얀 빛도 점점 줄어들며 어두워지고 있었다.

    심협은 이를 악물고, 빛이 소멸되기 직전에 식지를 아래로 뻗어, 그 정중앙에 나타난 오목한 부분을 눌렀다.

    그러자 사라져가던 하얀 빛은 오목한 부분이 심협의 손가락에 눌리던 순간, 마치 응고된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때, 심협도 그 자리에서 굳어버린 듯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마치 호흡과 심장 박동마저 멎은 것만 같았다.

    시끄러운 폭우 빗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무언가 열리는 작은 소리가 심협의 귓가에 들려왔다. 마치 화살 발사 장치가 튕기는 소리와 비슷한 것이었다.

    심협의 손가락 아래에 있던 석합의 뚜껑이 돌연 위를 향해 튕기더니, 가벼운 마찰음과 함께 앞을 향해 열렸다.

    “열렸다!”

    심협은 크게 기뻐하며, 얼른 석합 안을 들여다봤다.

    그런데 그 순간 이변이 발생했다!

    석합 안에서 돌연 검은 연기가 심협의 얼굴을 향해 뿜어져 나왔던 것이다. 심협은 순간 크게 놀라, 석합이 놓여있던 앉은뱅이책상을 맹렬히 밀어내고, 바로 뒤로 넘어져 배의 지붕에 부딪히게 되었다.

    검은 연기는 심협을 맞추지 못하자,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자욱해지더니 수레바퀴 크기의 귀신 형상으로 화하였다. 귀신의 머리는 배 지붕에 닿고, 발은 선실 바닥까지 닿았다.

    귀신은 전체적으로 검푸른 색을 띠고 있었으며, 머리는 봉두난발을 한 것 같았고, 왕방울처럼 큰 눈 깊은 곳에선 차가운 빛이 번쩍이고 있었다. 피가 가득 묻은 입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나 있는 것이 사람을 물려는 것 같았다.

    심협은 어떻게 된 일인지 생각하기에도 이미 늦어버려, 억지로 침착해지려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재빨리 몸을 날려 앉은뱅이책상에 놓여있던 소뢰부와 원석을 두 손에 각각 잡았다.

    하지만, 심협의 행동이 귀신을 자극한 것인지, 귀신은 기이한 웃음소리를 내며 심협을 향해 다가왔다.

    나룻배는 비좁아, 심협은 피할 곳이 없었다. 그저 원석을 쥐고 양기를 주입시키며 다른 손에 들고 있던 소뢰부로 가져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귀신의 모습이 스치는가 싶더니, 순간 이동하듯 심협의 눈앞에 나타났다. 귀신은 피 묻은 입으로 검푸른 숨을 내쉬고 있었다.

    심협은 짙은 피비린내가 얼굴에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눈앞에 헛것이 연신 나타나더니, 순간 그는 머리에 마치 무언가에 얻어맞은 듯 몸에 힘이 풀려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귀신의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는 계속 배 안에서 메아리치고 있었다.

    심협은 시야가 점점 흐려지던 중, 그 귀신이 돌연 조금씩 작아지더니, 결국 주먹 크기의 해골 머리로 화하는 것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해골 머리는 신기하리만치 새하얀 빛이었고, 표면에는 광택까지 돌고 있었다. 해골 머리는 그대로 심협의 어깨 부위를 덮쳐 물기 시작했다.

    “아……….”

    심협은 고통의 신음을 내뱉었다. 몸은 돌연 꼿꼿하게 굳더니, 매우 강한 한기가 물린 부위에서부터 몸 안에 퍼져가는 것이 느껴졌다. 한기는 순식간에 온몸의 구석구석에 퍼져갔다.

    얇고도 하얀 얼음이 성에를 이루어 심협의 어깨에서부터 빠르게 퍼져갔다. 그러고는 아주 잠시 만에 심협의 전신을 뒤덮어버렸다.

    심협은 눈앞이 캄캄해지며 그대로 혼절해버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분명 한기가 왕성함에도, 하얀 성에는 심협의 몸만 얼렸을 뿐 다른 물건들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심협이 누워있는 배의 바닥 부분도 아무 변화가 없었다.

    * * *

    얼마나 지났을까. 날씨가 이미 개어,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한 줄기 햇빛이 나룻배를 비추고 있었고, 심협의 얼굴에도 빛이 비쳤다. 심협의 몸을 얼렸던 성에는 언제 사라진 것인지 이미 다 녹아 없어져 있었다.

    이때, 심협의 속눈썹이 미미하게 떨리더니, 그가 천천히 눈을 떴다.

    밝은 햇빛에 눈이 부셔 눈을 한참 비빈 심협은 한 손으로 눈앞을 가리고 한 손으로 몸을 일으켜 천천히 앉았다.

    심협은 온몸이 뻐근하고 힘이 없었다. 옷도 끈적하게 몸에 붙어있었다. 강물이 마르지 않은 것 같지는 않고, 방금 흠뻑 젖도록 땀을 흘린 것 같았다.

    “콜록…….”

    심협은 마른 기침을 했다가, 목구멍이 불로 지지듯 뜨거운 것을 느꼈다. 몸에도 작열감에 휩싸인 것 같았다. 그는 가슴을 풀어헤치고, 열을 발산시키고자 했다.

    또 건조한 입술을 핥아가며 옆을 살폈는데, 원래 배에 있던 물이 담긴 항아리가 넘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언제 넘어진 것인지, 안에 있던 물은 이미 다 쏟아져 있었다.

    심협은 마른침을 삼키며 선미 방향으로 기어갔다. 하지만, 머리가 여전히 이상하리만치 어지러워, 배의 측면을 짚고 비틀거리며 겨우 선미까지 나올 수 있었다.

    순간 그는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경악했다.

    자신이 봉두난발을 하고 얼굴은 벌겋게 상기된 채, 관자놀이에는 퍼런 힘줄이 가득 서 있어, 흉악해 보이는 몰골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놀라 순간 뒤로 자빠졌던 심협은 벌겋게 달아올라있는 두 손을 만수하의 물속으로 뻗어, 손으로 물을 떠서 자신의 얼굴을 향해 쳤다.

    두 손과 얼굴에 차가운 물이 닿자, 심협은 바로 개운함을 느끼며 어지러움도 조금 해소되는 것 같았다.

    심협은 몸을 더 앞으로 내밀어, 양손으로 배 가장자리를 잡고 아예 머리 전체를 물속에 집어넣었다. 그 물이 깨끗한지 따질 겨를도 없이 연신 강물을 마시자, 목구멍과 몸의 작열감 겨우 해소되는 것 같았다.

    심협은 길게 숨을 내쉬고 나니, 옷이 온몸에 붙은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하여 그는 아예 강으로 뛰어들어 온몸을 강 속에 담가버렸다.

    차가운 강물에 몸을 담그자, 심협은 그제야 몸의 작열감으로 느꼈던 고통이 거의 해소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순간 온몸의 경맥 곳곳에 찌르는 듯한 통증이 전해져 왔다.

    하지만, 그 통증은 지속되지는 않았다. 수시로 침을 놓는 것처럼 통증이 느껴지는 위치가 계속 달라졌고, 통증이 그리 심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심협은 이 정도면 견딜만하다고 느꼈다.

    어지러움이 사라진 것을 느끼던 심협은 돌연 석합을 열었을 때 보았던 귀신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다.

    심협은 급히 옷의 오른 편을 끌어내려, 자신의 오른편 어깨를 살폈다. 그런데 어깨에 이빨 자국이 나있는 게 아닌가!

    심협은 급히 물속에서 몸을 일으켜 사방을 둘러보고, 또 배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한참 살펴보고서야 다시 서서히 물속에 몸을 담갔다.

    그의 안색은 어두워져 있었다.

    심협은 자신이 화를 자초하여, 꺼내서는 안 될 것을 꺼낸 것 같았다.

    심협은 미간을 찌푸리며 손으로 어깨의 이빨 자국을 살살 만져봤다. 하지만, 전혀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이빨 자국이 난 곳에 피가 흐른 흔적도 없었다. 마치 이빨 자국을 그려 넣은 것만 같았다.

    심협은 자신이 기절하기 전, 귀신이 화한 해골 머리에게 오른쪽 어깨를 물렸던 것을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이빨이 자신의 피부에 닿았을 때의 차가운 느낌도 뚜렷이 기억났다.

    잠시 생각해 보던 심협은 이빨 자국이 난 곳에 물을 끼얹고 문질러 봤다. 하지만 그 주변의 피부만 벌겋게 변했을 뿐, 이빨 자국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이빨 자국이 검붉은 색을 띠는 걸 보니, 어혈이 맺혀 생긴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없어질지는 알 수가 없었다.

    심협은 한참을 생각해 봐도 갈피를 잡을 수 없으니, 우선 이빨 자국에 대한 생각은 접어두기로 했다.

    그는 몸에 남아있는 작열감이 반 이상 사라지자, 양손으로 선미 가장자리를 잡고, 팔에 힘을 주어 다시 배에 오르려고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심협이 팔에 힘을 주자, 선미가 큰 바위라도 올려진 것처럼 돌연 아래로 기울어 물속으로 잠겨버렸다. 뱃머리와 배의 한쪽 측면은 높이 들어 올려져 하늘을 가리키고 있었다.

    배 안에서는 한바탕 물건 부딪치는 소리가 울리더니, 배 안에 있던 물건들이 연이어 선미 쪽을 향해 미끄러져 내려왔다.

    다행히 심협의 민첩하게 움직여 자신이 누르고 있던 선미를 위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들어올려졌던 뱃머리가 다시 물 위로 돌아가면서 수면에 한바탕 물보라가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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