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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40화 (40/1,214)
  • 40화. 진 속의 물건

    비록 지금 하늘이 암흑처럼 어둡고, 물속도 칠흑처럼 어두웠지만, 심협은 뛰어난 기억력으로 금방 검은 돌무더기가 있는 대략이 위치를 찾아냈다.

    심협은 미리 준비해온 소뢰부와 원석을 각각 하나씩 꺼냈다. 지금 물속에 있기는 하지만, 부적을 동유로 처리해 기름종이로 만들었기 때문에, 부적 문양은 조금도 변화가 없었다.

    심협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소화양공을 운공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소뢰부 표면에 빛이 일었는데, 백색광을 형성하지 못하고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심협은 몇 차례 호흡한 뒤, 남아있는 소뢰부를 꺼내 다시 한번 소화양공을 운공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운이 따라주지 않아, 조금 전과 같은 현상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심협은 풀이 죽지 않았다. 어쨌거나 검은 돌무더기는 면적이 크지 않으니, 이곳에 만일 무명천서가 있다면 만수하의 모든 돌무더기들을 다 뒤지는 것보다 훨씬 수월했기 때문이었다.

    심협은 실패한 부적들을 품속에 다시 집어넣으려고 했다. 그런데 이때 주변에 돌연 소용돌이가 발생하여 심협은 순간 휘청거렸고, 그의 수중에 있던 부적들은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가게 되었다.

    심협은 그 부적들을 잃은 것을 개의치 않고, 수면으로 올라가 숨을 고른 뒤 다시 검은 돌 돌무더기 쪽으로 헤엄쳐갔다.

    그런데 이때, 실패한 부적 한 장이 물속에서 몇 차례 회전하더니, 공교롭게도 검은 돌무더기 위쪽으로 떠내려갔다.

    그러자 이변이 발생했다!

    십여 개의 검은 돌에 돌연 짙은 푸른색 빛이 일었는데, 물속에서 자못 눈에 띄는 것이었다. 그 빛들이 순식간에 응집되어 수 장(丈) 크기의 짙은 푸른색 광막(光幕)이 형성되었다. 그 광막은 모든 검은 돌을 에워싸고 있었다.

    부적은 광막에 부딪치자, 아무런 소리도 없이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심협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바로 움직임을 멈췄다.

    눈앞의 이 광경은, 심협이 꿈속에서 보았던 우혁 등의 선사들이 흑랑왕을 상대할 때 썼던 진법을 연상하게 했던 것이다.

    물론 지금 눈앞의 광막은 꿈속 선사들의 육합화진에 비하면 크기도, 위력 등도 모두 비교도 되지 않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심협은 광막을 주시하며 망설이고 있다가, 강바닥에 있던 밥그릇 크기의 돌을 주워 검은 돌무더기로 던졌다.

    돌은 물살을 가르며 광막을 향해 부딪쳐갔다. 그러자 한차례 굉음이 일더니, 돌이 광막에 닿자마자 바로 잘게 부서져, 주변을 향해 튀어나갔다.

    심협은 이 광경에 간담이 서늘해졌지만, 다시 강바닥에서 사람 머리만 한 돌을 주워다가 광막으로 던졌다.

    이리 큰 돌은 광막에 닿자 조금 전 광경처럼 산산이 부서졌다. 하지만, 광막은 조금의 미동조차도 없었다.

    심협은 더 광막에 무언가를 던지지 않고, 수면 위를 향해 헤엄쳐갔다. 물 밖에서 숨을 고르고 나니, 곧 마음도 진정되어 갔다.

    물 밖에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어, 콩알만 한 크기의 빗방울이 끊임없이 심협의 얼굴에 떨어졌는데, 빗방울이 아프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도 다행히 강물의 유속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심협은 잠시 휴식을 취하고는, 다시 강바닥을 향해 헤엄쳐갔다.

    그런데 검은 돌무더기의 광막은 언제 사라진 것인지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다. 방금 보았던 광경은 마치 꿈을 꾼 것만 같았다.

    심협은 광막의 위력을 회상해보며 신기하다고 여기고 있었으나, 함부로 다가가지 않았다.

    잠시 생각해 보던 심협은 강바닥에서 돌을 하나 주워 던져보았다. 돌이 검은 돌무더기 위로 막 떨어지자, 십여 개의 검은 돌에서 빛이 일더니 십여 개의 빛이 비쳐 나와 순식간에 광막을 형성했다.

    돌은 광막 위에서 또 소리도 없이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심협은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며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이 광막이 사라진 것은 행적을 감추기 위한 것일 뿐, 외부 충격이 발생하면 바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심협은 조금 뒤로 물러나서는 광막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 검은 돌무더기에 누군가 진을 쳐놓았다면, 안에 분명 무언가 있을 것이야. 어쩌면 무명천서가 저 안에 들어있을지도 몰라.’

    이런 생각이 들자, 심협은 품속에서 소뢰부 한 장과 원석 하나를 꺼냈다.

    저 광막은 일반적인 방법으로 깰 수가 없을 듯하니, 심협이 쓸 수 있는 방법 중에는 소뢰부가 가장 시도해볼 만했다.

    심협은 소화양공을 운공해, 소뢰부의 효과를 발휘시켰다. 그러자 곧 소뢰부에서 하얀 번갯불이 떠올랐다.

    심협의 몸이 순간 마비가 되어, 손발이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떨리기 시작했다. 그의 온몸도 수많은 침이 찌르는 듯하여 지극히 고통스러웠다.

    “이런. 번개의 힘이 물로 전달되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군…….”

    심협은 의식이 아직 있으니, 속으로 후회막급이었다.

    하지만 그 고통도 오래가지 않았다. 하얀 번갯불이 나타나고 바로 앞을 향해 날아갔으니, 심협의 몸에도 고통이 크게 줄어들었다.

    하얀 번갯불은 순식간에 7, 8장 거리를 넘어가 광막을 공격했다. 마치 백사처럼 광막 안을 향해 매섭게 파고들었다.

    광막은 바로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리 두껍지 않던 광막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속도로 얇아지기 시작하더니, 곧 무너질 것 같았다.

    그런데 이때, 하얀 번갯불도 힘을 다 써버린 것인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심협은 눈을 찡그리며, 아직 떨리고 있는 손을 품 안으로 넣어 두 번째 소뢰부를 꺼내 바로 운공을 시작했다.

    소뢰부는 그대로 부서지며, 다시 한번 하얀 번갯불이 나타났다. 심협의 몸도 다시 마비되며 손발이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그저 앞의 검은 돌무더기가 있는 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번갯불은 그대로 날아가 다시 한번 광막을 공격했다.

    이미 얇아진 광막은 다시 번갯불의 공격을 받자, 다시 한번 격렬히 요동치더니 빠르게 얇아지기 시작했다. 이내 광막은 굉음과 함께 무수히 많은 짙은 푸른빛 빛으로 화하여 흩날리며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이때, 십여 개의 검은 돌 중 가장 중간에 있는 것, 즉 해골 도안의 코에 해당하는 검은 돌에서 옅은 하얀 빛이 일었다가 바로 사라져버렸다.

    하얀 빛이 나타났던 시간이 지극히 짧았지만, 심협은 이를 놓치지 않고 보았다.

    심협은 이번에도 함부로 가까이 가지 않고, 다시 한번 강바닥에서 돌을 주워 던져봤다.

    이번에는 돌이 부서지지 않고, 검은 돌무더기 위로 떨어졌다가, 그대로 강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심협은 기쁜 표정으로 수면 위로 헤엄쳐 갔다. 수면 위에서 숨을 고르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그는 안심하고 검은 돌무더기를 향해 헤엄쳐 가서, 하얀 빛이 일었던 그 검은 돌 부근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는 일 촌(寸) 일 촌, 샅샅이 뒤졌다.

    그런데 이때, 폭우가 내린 탓인지 강의 유속이 급격히 빨라졌다. 심협의 몸도 물살에 비틀거리다가, 다급히 검은 돌을 잡고서야 겨우 몸을 가눌 수 있었다.

    심협은 순간 두려워져, 더 빨리 뒤지기 시작했다.

    이 기세라면, 최대 향이 반개 정도 탈시간 안에 물 밖으로 돌아가야 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분명 위험했다. 하지만, 이 돌무더기를 보호하던 법진을 자신이 깨버렸으니, 물살이 이리도 세지면 돌무더기가 내일도 이 상태를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게다가 폭우가 이리도 쏟아지니, 내일 비가 그치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심협은 곧 검은 돌의 옆에서 밥그릇 크기의 석굴을 더듬어 찾았다.

    이 굴은 그가 전에 찾아냈던 굴들과는 달랐다. 굴 입구가 매끄럽고 동그란 것이, 분명 자연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 파낸 것이었다.

    심협은 기뻐하며 급히 손을 넣어봤다.

    그 굴의 내벽 또한 매끄러웠고, 원통형 모양을 하고 있었다. 손을 뻗어보니, 굴 안은 진흙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다행히 진흙이 굴 안에서 응고되어 있지 않아, 심협의 손이 다 들어갈 수 있었다. 자세히 더듬어 봤지만 굴 안에 별다른 것이 없자, 심협은 팔까지 뻗어 넣었다.

    굴은 꽤 깊어서, 심협은 자신의 몸을 거의 강바닥에 밀착시키고서야 바닥 부분까지 겨우 더듬어 볼 수 있었다. 이때 손가락에 갑자기 딱딱하고 평평한 물건이 만져졌다.

    심협은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그 물건을 잡고 애써 끌어올렸다.

    그런데 이 물건은 너무 깊은 곳에 들어있는 데다 위에 진흙이 가득 쌓여있어,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아무리 꺼내려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때, 유속이 다시 한번 빨라지며, 심협은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게 되었다.

    “한번 해보자!”

    심협은 아랑곳하지 않고, 상반신을 강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뒤이어 그는 두 손을 굴 안에 집어넣어 그 물건을 잡고는 온 힘을 다해 끌어올렸다.

    그러자 그 물건이 결국 굴 안에서 꺼내어졌다.

    물속은 어둡고, 게다가 유속이 너무도 빠르니, 심협은 그 물건이 무엇인지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대충 기다란 모양의 물건이라는 것만 추측할 수 있을 뿐이었다.

    심협은 그 물건에 신경 쓰느라 제대로 안정되게 서 있지 못했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급류가 몰려와, 심협은 하마터면 떠내려갈 뻔했다.

    ‘드디어 손에 넣었구나!’

    심협은 속으로 외치며, 급히 그 물건을 품 안에 집어넣고, 바로 수면 위를 향해 힘차게 헤엄쳐 갔다.

    그런데 얼마 가지도 않았을 때, 검은 그림자 하나가 앞에 나타났다. 바로 강바닥의 큰 바위였다.

    펑 소리가 울리며, 심협은 급류에 휩쓸려 그대로 그 바위에 부딪치고 말았다.

    심협은 신음을 내뱉으며, 몸의 한쪽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공교롭게도 머리까지 그 바위에 부딪치는 바람에, 그는 눈앞이 캄캄해지며 잠시 사고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심협은 연달아 기포를 내뱉으며 급류에 휩쓸려 갔다.

    그런데 이때, 심협의 허리에 묶여있던 밧줄이 팽팽해졌다. 밧줄의 길이에 한계가 있었던지라, 밧줄이 팽팽해지며 그의 몸을 잡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물살이 너무도 급한 나머지, 밧줄은 심협의 허리를 세게 조였다. 순간 늑골에 강렬한 통증이 전해져 오자, 의식이 흐려져 가던 심협은 바로 정신을 차리고 급히 수면 위로 헤엄쳐 갈 수 있었다.

    심협은 연거푸 강물을 삼켜가며 헤엄쳐, 마침내 탈진하기 직전에 수면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는 거친 숨을 내쉬며, 여전히 방금 전 상황에 두려움을 느꼈다. 만일 조금이라도 늦게 정신이 들었다면, 지금쯤 이미 강 속에서 익사했을 것이었다.

    심협은 크게 숨을 들이쉬며, 그나마 몸에 남아있던 기력을 끌어모아 밧줄을 잡고 배 옆으로 헤엄쳐 돌아왔다.

    심협은 자신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기력을 쥐어 짜가며 겨우 나룻배로 기어 올라왔다. 그리고는 그대로 드러누워, 크게 심호흡을 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심협은 기력을 조금 회복할 수 있었다. 그는 몸을 일으켜 앉아서는, 품속에 손을 넣어보고서야 긴장된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 석합은 아직 품속에 있었다.

    심협은 석합을 꺼내봤다. 약 3척 정도 길이에, 손바닥 정도 너비의 백색 석합이었다. 표면에는 진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석합은 크기가 작지 않은데도 무게는 별로 나가지 않았다.

    심협은 석합을 들고 무게를 가늠해보기도 하고, 귀 옆에 대고 흔들어 보기도 했는데, 안에 무언가 들어있는 것 같았다.

    이때, 비가 점점 더 거세져, 늘어난 강물이 끊임없이 나룻배를 흔들고 있었다. 다행히 나룻배가 꽤 견고한 데다, 배를 밧줄로 잘 묶어둔 덕에 떠내려가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당분간 나루터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었다.

    심협은 얼굴에 묻은 물기를 닦아내고, 석합에 묻어있는 진흙도 깨끗이 닦아낸 후, 자세히 석합을 살펴봤다.

    석합의 색상과 재질은 옥돌과 꽤 비슷했다. 그런데 표면의 결은 심협에 여태껏 보아온 옥돌과는 많이 달랐다.

    게다가 석합에는 자물쇠 고리와 같은 장치도 없었고 새겨진 무늬 같은 것도 없어, 전체가 옥돌 한 덩이로 만든 것 같았다. 다만 석합의 뚜껑과 본체가 만나는 자리에 옅은 금 한 가닥이 어렴풋이 보였다.

    심협은 잠시 망설이더니, 그 금에 손톱을 밀어 넣고 손으로 열어봤다. 손톱이 석합 덮개에서 그대로 미끄러지며 손톱에 통증이 느껴지자, 심협은 순간 숨을 들이켰다.

    심협은 아픈 손을 흔들어가며 석합을 뒤집어 봤다. 반대 방향에서 같은 방법으로 열어보려 한 것이었다. 하지만, 반대 방향에서 시도해도 여전히 열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석합에 나있는 금은 석합의 이음새가 아니라 그저 금일뿐인 것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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