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9화 (39/1,214)

39화. 빗속의 탐색

“심공자, 이리 빨리 길을 서두르십니까?”

후씨 성의 주인장은 심협이 봇짐을 메고 나온 것을 보고 친절히 맞이했다.

“주인장, 이것은 숙박료와 유의원의 진료비요. 어제 너무 정신이 없어 그만 진료비를 잊고 있었소. 주인장께서 대신 전달해 주시오.”

심협은 작은 은자 조각 두 덩어리를 계산대에 두며 말했다.

“겨우 하룻밤 묵으셨는데, 이리 많이 주실 필요 없으십니다.”

주인장은 연신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어제 제가 발병했을 때 주인장의 도움이 있어 무사할 수 있었소. 남는 돈은 사례금으로 쳐주시오.”

심협은 공수하며, 주인장이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밖으로 향했다.

주인장은 무언가 말하려는 듯했지만, 심협이 조급한 표정으로 나가는 것을 보자, 다시 말을 삼켰다.

객잔 밖에는 소삼자가 이미 말을 끌고 와 있었다. 심협은 바로 말에 올라 서둘러 그곳을 떠났다.

* * *

심협은 우선 송번현성으로 들어가, 역참에서 집으로 보낼 편지를 부쳤다. 그러고는 바로 말을 달려 성을 빠져나가 황위탕 나루터로 질주해 도착했다.

여름의 날씨는 그야말로 변화무쌍했다. 방금 전까지 맑았던 하늘에 돌연 먹구름이 가득 끼어있고, 거센 바람이 몰아쳤던 것이다. 이는 분명 폭우가 내리기 전에 나타나는 상황이었다.

심협은 하늘을 한번 쳐다보더니, 말을 나루터 부근 나무에 묶어두고, 나룻배가 묶여있는 밧줄을 풀고 바로 배에 올라탔다.

“도련님, 오늘은 배를 모실 수 없습니다. 하늘 좀 보십시오! 곧 폭우가 내릴 것입니다. 이곳 강은 물길이 좁아, 큰 비가 내리면 유속이 급속히 빨라져 숙련된 사공도 배를 몰지 않습니다.”

우대담이 초막에서 나오며 말했다. 그는 허리에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것이,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가 심협이 배에 오르는 것을 보고 급히 저지하려 나온 것 같았다.

“우형 알려주셔서 고맙소. 내 알아서 하리다.”

심협은 우대담을 향해 손을 내저으며, 들고 있던 상앗대로 강변을 밀었다. 그러자 나룻배는 그대로 강을 향해 밀리더니, 하류를 향해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우혁의 설명대로 라면, 우천사는 폭우가 내리던 날 무명천서를 발견했다고 했었다. 지금 이 날씨도 폭우가 내릴 모양새이니, 어쩌면 심협이 무명천서를 찾을 기회일지도 몰랐다.

물론 폭우에 강의 상황이 너무도 위험해진다면, 심협도 무리해서 찾을 생각은 아니었다.

“도련님, 하류 방향에 암초가 많으니, 물살이 너무 급하면 아무리 견고한 배라도 암초에 부서질 수 있습니다. 빨리 돌아오십시오!”

우대담은 급한 마음에 연달아 소리쳤다.

심협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룻배는 물살과 바람의 영향을 받아, 순식간에 멀리 떠나버렸다.

* * *

심협의 나룻배 모는 실력이 어제보다 훨씬 나아졌으니, 어제 왔던 돌무더기까지 금방 이르렀다. 날씨는 출발할 때보다 더 흐려지기는 했지만, 아직 비가 내리지는 않았다.

심협은 나룻배를 갈색 암초 옆에 정박해두고, 앞을 향해 가려다 돌연 걸음을 멈췄다. 심협이 바로 앞에 있는 암초를 위아래로 훑어보니, 암초는 수면 밖에 2척 정도 솟아있었다.

“여기서부터 시작해보자!”

심협은 잘 고정시켜둔 밧줄을 허리에 묶으며 중얼거리더니, 소뢰부 한 장과 원석 하나를 꺼내 조심스럽게 운공을 시작했다.

잠시 후, 원석 안의 백색 기체가 요동쳤다. 백색 기체가 원석 밖으로 조금 넘쳐 나오자, 심협의 장심에 있던 붉은 선에 이끌려 소뢰부로 주입되었다.

소뢰부의 문양이 빛나기 시작하면서 옅은 백색광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심협은 장심의 붉은 선을 거두고 더는 운공하지 않았고, 백색 기체가 요동치던 원석은 잠잠해져 갔다. 그 안에 담겨있던 백색 기체도 육안으로 봤을 때엔 조금 전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심협은 비록 부적의 효과를 제대로 내려고 시도하지는 않았지만, 방금 부적에서 나타난 낌새를 봤을 때 보니 예전에 옥침을 찾았던 소뢰부처럼 백색광이 밝게 나타날 것 같지는 않았다.

사실 그는 수중에 원석이 몇 개 밖에 없으니, 최대한 아껴 써야겠다고 생각한 나머지 이리 약은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었다.

이어서 심협은 수차례 시도했지만, 7, 8장의 소뢰부가 모두 예전과 같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실패했다. 원석 안의 백색 기체도 1/5 정도 줄어들었다.

심협도 어느 정도 실패를 예상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예전에 옥침을 찾게 해준 소뢰부는 우연히 써낸 것이니, 다시 한번 그때와 같은 효과를 내는 것이 어찌 그리 쉽겠는가?

심협은 가볍게 한숨을 쉬더니, 다시 새로운 소뢰부를 꺼내 원석에 소화양공을 운공했다.

실패……. 실패……. 또 실패……….

순식간에 잔뜩 준비했던 소뢰부는 이제 몇 장 밖에 남지 않았다. 원래 원석 안에 가득했던 백색 기체도 거의 사라져 버렸다.

심협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는 하나, 연속으로 40여 차례를 실패하고 나니 그의 사기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옥침을 찾았던 소뢰부의 효과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란 말인가?’

정말 그렇다면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 만수하의 돌무더기가 이리도 많은데, 어느 곳에 무명천서가 숨겨져 있는지 찾기란 바다에 빠진 바늘 찾는 것과 같은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안 되면 내일 또 시도하면 되지. 설마 몇백 번 몇천 번 시도하면 한 번은 성공하지 않겠는가?”

심협은 중얼거리며 말했다.

‘지금 나에게는 무명천서가 유일한 희망이니,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할 수는 없어.’

이런 생각이 들자, 심협은 다시 마음을 다잡고 새로 소뢰부를 꺼내어 원석에 운공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펑 하는 굉음이 울렸다.

원석에 마지막 남은 백색 기체가 부적으로 주입되더니, 부드러운 백색광이 부적에서 터져 나와 세숫대야만 한 크기로 빛이 비쳐 나왔다.

심협은 순간 멍해졌다가 조금 뒤에야 상황을 파악하고 기쁨으로 얼굴이 상기되었다.

바로 이 백색광이었다. 조금 작기는 했지만, 옥침을 찾게 해준 그 소뢰부의 백색광과 똑같은 것이었다.

뒤이어 심협은 무언가 생각난 것인지, 웃음을 거두고 부적을 옆에 있던 갈색 암초에 가까이 가져갔다.

소뢰부에 주입된 법력이 얼마 되지 않아 부적의 효과를 낼 수는 없었기에, 지금 부적에서 발하는 하얀 빛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숫대야 크기의 백색광은 암초를 비출 수 있었다.

백색광 안의 빛이 조금 흔들리는가 싶더니, 암초가 빠르게 반투명한 상태로 변해갔다. 이 상태는 겨우 두 차례 호흡할 정도의 시간만 유지될 수 있을 뿐이었다. 백색광은 한두 번 반짝이는가 싶더니, 부적에 일었던 하얀 빛이 사라지자 함께 모습을 감췄다.

심협은 다음 부적을 시도하지 않고, 대신 방금 백색광이 나타났던 부적을 소중히 가지고 와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는 부적 문양의 세세한 부분을 모두 외우고, 부적을 썼던 과정을 다시 한번 자세히 회상했다. 그러면서 이 부적이 다른 소뢰부와 어떤 차이점이 있는 것인지 생각해 봤다.

심협이 계속 자세히 살피려던 그때, 하늘의 먹구름이 돌연 점점 더 낮아져, 금방이라도 폭우가 쏟아질 것 같아졌다.

심협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살피고는 부적은 그만 살피기로 하고 원석을 꺼내 부적의 효과를 발휘시켰다.

다시금 펑 하는 굉음이 울렸다.

소뢰부 표면에 하얀 빛이 일더니, 1장(丈) 정도 크기의 백색광이 형성되어 근처에 있던 갈색 암초들까지 뒤덮었다. 백색광 안에 뒤덮이게 된 암초들은 순식간에 반투명한 상태로 변했다.

백색광은 근처의 강물까지 뒤덮었는데, 혼탁한 강물은 암초들처럼 투명해지지도 않았고, 물속을 밝게 비출 수도 없었다.

심협은 망설임 없이 그 부적을 바스러뜨렸다. 그러자 백색광도 깨지는 소리와 함께 수많은 백색 광구(光球)로 화하여 주변을 날아다녔다. 마치 반딧불이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였는데, 일부 광구는 바로 물속으로 들어가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심협은 시선을 빠르게 이동하며 모든 광구들의 동향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빽빽한 광구들은 빠른 속도로 주변 수십 장 범위로 퍼져 나갔다. 날이 어두우니 광구들은 상당히 눈에 띄었다.

그런데 이때, 좌측 앞쪽에 흩날리던 백색 광구들이 무언가에 이끌리듯 미미하게 떨리더니 돌연 물에 빠겼고, 모든 광구들이 다 물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심협은 기뻐하며, 시간을 조금도 지체할 수 없어 배를 타지 않고 바로 강 속에 뛰어들어 광구가 향하는 방향으로 헤엄쳐갔다.

심협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속도를 냈지만, 광구의 속도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 심협이 강바닥까지 이르렀을 때 광구들은 모두 흔적 없이 사라진 뒤였다. 그는 광구들이 근처 남쪽 강변의 갈대숲에 있는 돌무더기로 갔으리라 대충 짐작만 할 수 있었다.

심협은 재빨리 광구들이 갔을 거라 짐작한 곳으로 헤엄쳐 갔지만, 도착하고 난 후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심협은 그리 밝지 않은 빛에 의지해 주변을 살피다가, 강바닥에 돌이 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돌은 모두 맷돌 크기의 검은 돌이었는데, 표면에 윤이 나고 매끄러운 것이 일반적인 돌과는 확연히 달랐다. 돌은 십여 개가 쌓여 있었다.

그런데 이 검은 돌이 놓인 위치는 마구잡이로 놓여있는 것 같지 않았다. 마치 어떤 도안대로 놓인 것 같았다.

심협은 잠시 생각해 보다가, 무언가 떠오른 듯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도안은 바로 해골 머리 모양이었다.

마침 숨이 찰 대로 차있던 데다 놀라는 바람에 심협은 어쩔 수 없이 기포를 내뿜으며 급히 수면으로 헤엄쳐 올라갔고, 다행히 질식하기 직전에 수면 위에 이르렀다.

한참을 크게 숨을 헐떡이고서야 그는 겨우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어찌 강 속에 이리도 기이한 상황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우연히 생겨난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 일부러 검은 돌을 그리 쌓았단 말인가?”

심협은 놀란 가슴이 아직 가라앉지 않은 채 생각했다.

하늘의 먹구름은 거의 정수리에 닿을 듯 낮아져 있었고, 수면은 광풍에 끊임없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나룻배도 바람에 불어 이리저리 흔들려, 큰 바위에 부딪히며 굉음을 내고 있었다.

“하늘이시여, 제발 비가 조금만 더 늦게 내리게 해 주십시오.”

심협은 중얼거리더니, 좌우를 살피며 자신이 있는 곳의 위치를 기억하고는 몸을 돌려 나룻배로 돌아왔다.

* * *

심협은 나룻배를 앞으로 더 이동시켜 돌무더기의 큰 바위 두 개 사이에 끼이도록 하고는 밧줄로 단단히 고정시켜 급류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했다.

심협은 다시 거리를 계산해보며 다시 물속으로 뛰어들려 하다가 잠시 머뭇거렸다.

이윽고 그는 배에 있던 자신의 짐에서 남아있는 소뢰부 전체를 꺼낸 뒤, 소뢰부 두 장과 마지막 남은 원석 세 개를 몸에 지니고서 물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이때, 하늘에서 눈부신 하얀 빛이 번쩍이더니, 바로 천둥소리가 크게 울리며, 콩알만 한 빗방울이 수없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모든 사물은 자욱한 비안개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하늘이 나를 버렸구나!”

심협은 속으로 욕을 퍼붓고 있었다. 이제야 겨우 단서를 하나 찾았는데, 저 비가 제대로 그의 발목을 잡는 것이었다.

하지만, 심협은 지금 다른 것은 전혀 고려할 수도 없었다. 결국 그는 그대로 물에 뛰어들어, 방금 보았던 검은 돌이 쌓인 곳으로 헤엄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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