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8화 (38/1,214)
  • 38화. 보물 찾는 부적

    유의원은 심협의 말대로 침을 놓았다. 순식간에 심협의 흉부와 복부에는 침이 빽빽하게 놓여졌다. 그 침은 하나같이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제 심협의 안색은 많이 회복되어, 조금 전처럼 창백하지 않았다. 기력도 많이 회복되어, 팔도 겨우 들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유의원은 신기하다는 듯 놀라는 표정으로 다시 심협의 맥을 잡았다. 그러자 흐트러졌던 맥이 반 이상 회복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신의께서 납시었군요! 방금 귀하의 의술을 의심했던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유의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심협에게 공수하며 말했다.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이 광경에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유의원은 원래 서생이었으나 수차례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자, 학문을 접고 의술을 배운 것이었다.

    그는 의술에 정통했지만, 서생 특유의 고고함이 남아있어 여태껏 누구에게 머리를 숙여본 적이 없는 자였다. 그런데 지금 이 젊은이에게 이리도 크게 예를 갖추다니…….

    “귀하께서 이리 예를 갖추실 필요 없습니다. 만일 저를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지금 저도 이리 회복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심협이 입을 열었는데, 조금 전보다 훨씬 유창하게 말하고 있었다.

    “저는 유백천(劉百川)이라고 합니다. 신의의 존함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유의원이 물었다.

    “신의라니 가당치 않습니다. 저는 심협이라고 합니다.”

    심협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심협? 귀하께서 혹시 춘화현 심가의 젊은 신의 아니십니까? 오랫동안 명성을 들어왔습니다. 심기약포의 금향옥은 정기를 크게 보하면서도 몸을 상하게 하지 않는 명약인데, 귀하께서 옛 의서를 연구하여 개발하신 것이라 들었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유백천의 표정은 더욱 공손해졌다.

    후씨 성의 주인장 등은 의술을 알지도 못하고, 춘화현 심협의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었지만, 유백천의 표정을 보니 심협의 출신이 보통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하여 심협을 바라보는 그들의 표정도 전과 크게 달라졌다.

    특히 방금 심협에게 불리한 말을 수차례 했던 그 중년 부인은 심협이 자신의 말을 들었는지 알 수 없어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심협은 유백천의 말에 순간 당황했다.

    ‘금향옥을 개발한 일은 나와 아버지만 알고 있는 것인데, 어떻게 퍼지게 되었단 말인가?’

    “유형, 과찬이십니다. 금향옥은 저와 저희 약포의 여러 의원이 함께 연구하여 만들어낸 것이지, 제가 혼자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심협은 속으로 이상하다 여겼지만, 겉으로는 전혀 티 내지 않으며 말했다.

    심협의 말은 자신의 신분을 인정하는 셈이었으니, 유백천의 얼굴에도 기쁜 기색이 스쳤다.

    “심공자께서 송번현에 오셨는데, 제가 도와드릴 만한 일이 있습니까? 제가 자랑하는 것이 아니고, 이 부근 일대에 저와 친분 있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그저 사적인 일로 왔을 뿐입니다. 그리 신경 써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심협은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심협은 유백천이 이렇게 과하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춘화현의 명의라고 한들, 이리 친절을 베풀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공자께서 이상하게 여길 필요 없으십니다. 공자께서 만들어낸 금향옥이 제 가까운 친척의 목숨을 살렸으니, 그저 은혜에 보답하고 싶을 뿐입니다.”

    유백천은 심협이 미심쩍어하자 바로 해명했다.

    “저는 이번에 정말 사소한 일로 온 것입니다. 제가 스스로 처리할 수 있으니, 귀하를 번거롭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다면,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심협은 웃으며 말했다.

    “잘 알겠습니다. 심공자께서 몸이 불편하시니, 휴식을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유백천은 더 머무르지 않고 바로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럼 귀하의 은침을 돌려드리겠습니다.”

    심협은 몸에 꽂혀있던 은침을 모두 뽑아 돌려주었다.

    유백천은 은침을 받아 챙기고, 방을 나섰다.

    “유형, 가시지요.”

    후씨 성의 주인장이 배웅했다.

    방 안에 있던 점소이 3인과 중년 부인도 이 틈에 방을 나서, 심협 혼자 남게 되었다.

    심협은 손을 뻗어 자신의 봇짐을 뒤적이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내 그는 안에서 백옥병을 꺼내어, 그 안에서 백색 단약을 꺼내 복용했다.

    이 약은 바로 보원단이었다. 보원단이 뱃속에 들어가자 바로 따뜻한 기운으로 화하여 심협의 몸 안에 흘렀다. 심협은 약 기운 때문에 무력감이 조금 해소되어 앉을 수 있었다.

    심협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소화양공을 운공하기 시작했다. 이내 그의 단전에서부터 양기가 솟아나 보원단이 화한 따뜻한 기운과 합쳐져서는 전신을 흐르기 시작했다.

    * * *

    한참이 지난 후 심협은 눈을 떴다. 체내의 무력감은 이제 모두 사라진 후였다. 하지만, 그는 회복한 것을 기뻐하기는커녕 오히려 얼굴에 짙은 어둠이 드리워졌다.

    ‘방금 상황은 기이한 꿈에서 깬 직후의 상황과 거의 비슷했어. 이는 분명 원기가 크게 상하여 일어난 일일 것이야.’

    심협은 근래 매일 보원단을 복용하고, 꾸준히 소화양공을 수련하여 이 병이 발작하지 않았었다. 그러니 또다시 기이한 꿈만 꾸지 않는다면 당분간 별 일 없으리라 여겼는데, 이제 와서 보니 너무 쉽게 생각한 듯했다.

    만일 방금 풍양진인이 자신을 구해줄 때 썼던 침구술을 기억해 시전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자신이 어찌 되었을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원기의 손상으로 나타나는 증상은 이제 더욱 뚜렷해졌다. 이것이 낮에 무명천서를 찾느라 체력을 많이 소모한 것과 관련이 있기는 하나, 심협에게 남은 시간은 너무도 빠듯해 보였다.

    심협은 심지어 자신의 수명이 풍양진인이 이야기한 2년도 다 채울 수 없을 것이라는 예감도 들었다.

    심협은 고개를 내저으며, 마음속에 드는 온갖 불안한 생각을 접어두고, 방문으로 가 식사를 주문했다.

    잠시 후, 소삼자가 식사가 담긴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쟁반에는 고기 요리와 채소 요리가 각각 2가지씩 놓여 있었다.

    심협은 진작 허기가 졌기에, 바로 식사를 하기 시작하여 순식간에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소삼자는 심협이 식사를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그릇과 수저를 정리하여 방을 나서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때, 심협이 소삼자를 불러 세웠다.

    “잠시만. 젊은 친구 혹시 송번현 사람이오? 송번현의 물정에 대해 잘 아시오?”

    “소인은 근처의 서가집 사람입니다. 하지만, 평소 송번현성에 가서 물건을 구입하니, 송번현 물정에 대해서는 잘 아는 편입니다. 무슨 분부가 있으십니까?”

    소삼자가 공손하게 물었다.

    “그럼 송번현에서 황지와 주사를 살 수 있는 곳이 있소?”

    심협이 물었다.

    “부적용 황지와 주사요? 이 두 가지 다 저희 객잔에 있습니다.”

    소삼자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이 두 가지는 평소 잘 사용하지 않는 것들인데, 정말 객잔에 있단 말인오?”

    심협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공교롭게도 저희 주인장이 지난달 법사를 초빙하여 복과 재물 부르는 의식을 치렀었습니다. 그때 쓰고 남은 황지와 주사가 많아, 아직 후원에 쌓여 있습니다. 공자께서 필요하시다면, 주인장에게 달라고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소삼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수고해 주시오.”

    심협은 이리 말하며, 작은 은자 조각을 소삼자에게 주었다.

    “공자님, 감사합니다. 혹시 황지와 주사 외에 또 필요하신 것이 있습니까? 소인이 같이 준비해 오겠습니다.”

    소삼자는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이 은자는 2, 3냥은 되는데, 자신의 3, 4개월 품삯과 맞먹는 것이었다.

    “자네가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잊을 뻔했군. 혹시 신선한 검은 개의 피를 좀 구해올 수 있겠소? 그러고 붓, 먹, 종이, 벼루도 필요하오. 아, 그리고 동유(*桐油 : 기름오동나무의 열매에서 짠 기름)도 조금 구해다 주시오.”

    심협이 잠시 생각해 보고 말했다.

    “고을에 도살장이 있으니, 개의 피는 구하기 쉽습니다. 근처 잡화점에서 동유는 팔고 있고요. 붓, 먹, 종이, 벼루는 저희 객잔에 갖춰져 있습니다. 잠시 기다리시지요. 제가 모두 가지고 오겠습니다.”

    소삼자는 말을 마치고 재빨리 방을 나섰다.

    반 시진이 채 되지 않아, 소삼자가 뛰어왔다. 그는 심협이 요구한 물건들을 담은 쟁반을 들고 왔다.

    심협은 쟁반 위를 살펴보고 이상이 없자, 소삼자를 물러가게 한 후 바로 보물 찾는 기능이 있는 소뢰부를 쓰기 시작했다.

    붓을 든 심협은 바로 부적을 쓰지 않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 비록 소뢰부를 쓰는 것에는 익숙해졌으나, 옥침을 찾게 해준 소뢰부를 쓸 때에는 어쩌다가 써낸 것이라 지금 다시 그때처럼 쓰려고 하니 오히려 더 어려웠던 것이다.

    심협은 애써 그 소뢰부를 썼던 때의 상황을 기억해보려 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지난 데다 근래에 많은 일이 발생했으니, 아무리 노력해 봐도 3, 4할 정도만 겨우 기억해낼 수 있었다.

    심협은 그 3, 4할의 기억을 여러 번 반복해서 떠올려 보고는, 겨우 붓을 들어 부적을 써봤다.

    그는 기억나는 부분 외에 다른 부분은 최대한 예전의 방법대로 써보려고 애썼다.

    * * *

    얼마나 지났을까. 심협의 앞에는 소뢰부가 잔뜩 쌓여 있었다.

    “이리 많이 썼으니, 이만하면 됐겠지. 적어도 한 장은 효과가 나타나겠지.”

    심협은 중얼거리며 말했다.

    이내 그는 부적을 한 장 한 장 동유에 담갔고, 동유는 바로 부적에 스며들었다.

    심협은 부적을 다시 한 장 한 장 건져내어 표면의 기름얼룩을 닦아내고, 등불에 조심스럽게 기름을 말렸다.

    그렇게 그는 한 장씩 기름종이 부적을 만들어냈다.

    심협은 기름종이 부적 중 하나를 물이 가득 담긴 대야에 담가봤다. 그러자 기름종이 부적에는 전혀 변형이 일어나지 않았고, 부적 문양 또한 원래대로 선명하였다.

    다음날 강 속에서 무명천서를 찾을 때, 부적이 물에 젖어 망가지는 것을 방지하려 생각해 낸 방법이었다.

    ‘춘화현 집에 머물던 때, 집안의 하인들이 동유를 이용해 방수용 기름종이를 만드는 것을 본 적이 있어 그 방법을 모방해 시험해본 것인데, 정말 효과가 있을 줄이야.’

    심협은 춘추관에서 가지고 나왔던 소뢰부 세 장도 동일한 방법으로 기름종이 부적을 만들었다.

    기름종이 부적들은 다 만들고 나자, 심협은 이미 피로가 극에 달해, 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밖에는 해가 쨍쨍하게 떠 있었다. 햇빛이 창을 통해 방 안에 들어오는데, 마치 금색 선들이 방 안을 갈라놓은 것처럼 보였다.

    심협은 일어나 창문을 열어봤다. 하늘은 푸르고, 깨끗한 거울처럼 날이 맑았다. 간혹 자잘한 하얀 구름만 보이는 것이, 너무도 좋은 날씨였다.

    심협은 재빨리 세수와 양치를 마쳤지만 바로 길을 나서지 않고, 지필묵을 준비해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춘추관에서 아버지의 편지를 받아왔는데, 최근 한동안은 그가 온갖 기이한 일을 겪으면서 회신한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어제 유백천을 만나고 나니, 다시 아버지에게 편지 쓸 일이 생각났다.

    [아버지, 이 편지를 직접 만나 뵙는 것처럼 여겨 주십시오.

    저는 춘추관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수련도 꽤 순조롭게 진행 중이며, 체질도 많이 바뀌어 예전처럼 허약하지도 않습니다.

    집안 상황은 어떠한지요? 둘째어머니와 동생들은 모두 잘 지내고 있는지요?

    지난번 아버님께서 편지에 춘화현성 서쪽의 우월진 일대에 역병이 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지요.

    이 역병은 모두 폐에 열이 많이 생기는 증상입니다. 제가 며칠간 고심하다가, 연화청온탕(蓮花淸瘟湯)과 결합한 처방을 하나 개발했습니다. 연화, 마황, 행인, 광곽향, 홍경천, 박하, 감초 7가지를 배합한 약입니다.

    이 약은 증상을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자세한 용량은 편지 끝에 다시 자세히 기재하겠습니다.]

    심협은 춘추관에서 지내는 일을 기재하고, 자신의 병증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가족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한 것이었다.

    편지는 여기까지 쓰고, 다시 ‘연화청온탕’에 결합한 처방을 상세히 기술한 뒤에 입으로 편지를 불어 먹물을 말리고는 편지를 챙겨 넣었다.

    심협은 무명천서 찾는 일이 간절하니, 편지를 다 쓰자마자 바로 객잔 대청으로 나섰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