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7화 (37/1,214)
  • 37화. 인사불성

    우대담 부부에게 돌아갔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우대담 부부는 걱정 어린 표정으로 심협이 돌아오기만을 목을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심협이 피곤한 기색이긴 해도, 안전하게 돌아온 것을 보고 겨우 한숨을 돌렸다.

    심협은 배에서 내려 잠시 우대담 부부에 이야기를 나눈 후, 다음날 다시 오겠다고 말하고는 말을 타고 떠났다.

    그는 그대로 송번현성으로 향했다.

    * * *

    심협이 송번현성 밖에 도착했을 땐 이미 술시가 넘어 성문이 닫혀 있었다. 성에 들어갈 수 없자, 그는 바로 성 동쪽에 있는 작은 고을로 향했다.

    송번현은 상업이 발달했고, 이 고을은 성문 밖 주요 길목에 위치해있어, 온갖 상점이 늘어서 나름 큰 규모의 저자가 형성되어 있었다. 상점 중 가장 많은 것은 객잔이었는데, 주로 송번현을 왕래하는 상인들을 상대로 하는 곳이었다.

    객잔들의 입구에는 점소이들이 나와 큰소리로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손님 묵을 곳을 찾으십니까? 저희 객잔에는 따뜻한 물과 방금 만든 따끈한 소고기 요리가 있습니다. 아주 맛이 좋습죠. 거위찜도 하고 있습니다. 분명 만족하실 겁니다.”

    “손님 저희 객잔에서 한 달간 지내시지요. 저희가 직접 담근 백일향주는 이 근방에서 이름난 술입니다. 한번 맛보면 그 맛을 잊지 못하지요. 저희 객잔으로 오십시오.”

    심협이 다가오는 것을 보자, 근처 객잔의 점소이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어 호객행위를 하였다.

    심협은 점소이들을 상대하지 않고 주변의 객잔을 한번 훑어보더니, 화려하지 않고 비교적 외진 곳에 위치한 객잔을 향해 말을 달려갔다.

    몰려들었던 점소이들은 다들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심협의 복장이 화려하고 좋은 말을 타고 있으니, 누가 봐도 돈 많은 손님인 것을 알 수 있었으니 말이다.

    심협이 향한 객잔의 입구는 젊은 점소이가 지키고 있었다. 대략 15, 16세 정도로 보였는데, 큰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것이 꽤 영리해 보였다.

    “손님 묵어가시렵니까? 저희 객잔이 크지는 않아도, 조용하고 가격도 합리적입니다.”

    심협이 다가오는 것을 보더니, 젊은 점소이가 웃는 얼굴로 맞이했다.

    “조용한 최고급 방을 내어주시오. 그리고 음식도 준비해 주고. 음식은 푸짐히 준비하게.”

    심협은 낮 동안 강 안을 한참 뒤지고 난 터라, 지금 몹시 배가 고픈 상태였다.

    “알겠습니다!”

    젊은 점소이는 활짝 웃으며 정중히 말을 끌고 객잔으로 들어갔다.

    근처의 다른 객잔 점소이들은 이 광경에 부러움과 질투 섞인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심협은 말에서 내려 발이 땅에 닿자마자, 돌연 온몸에 힘이 빠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몸 안에 구멍이라도 생겨 체내의 기력을 다 흡수하는 듯했다. 귓속에서도 굉음이 울리고 눈앞은 캄캄해져, 그는 그대로 땅에 쓰러지고 말았다.

    “손님, 괜찮으십니까?”

    젊은 점소이가 크게 놀라, 급히 심협을 부축했다.

    심협은 겨우 점소이를 보고 입을 열어 무어라 말을 하려 했지만, 말할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아 한 글자도 내뱉지 못하였다. 그의 안색도 급격히 창백해져 갔다.

    “무슨 일이야? 말에서 떨어졌나?”

    “아니오. 방금 말에서 내려오다가 돌연 땅바닥에 쓰러졌는데, 갑자기 무슨 병이 발작한 것 같소.”

    “소삼자, 자네가 불러들인 손님이 골칫덩어리가 됐네 그려.”

    밖에 있는 사람들은 심협의 동정을 주시하고 있다가 모여들어 떠들었다. 다른 객잔의 점소이들도 몰려와서 빈정거리고 있었는데, 조금 전 심협에게 거절당했던 점소이들은 고소하다는 듯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젊은 점소이는 주변에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몰려들자, 이마 한가득 땀이 맺히며 다급히 객잔 안을 향해 사람을 불렀다.

    객잔 안에는 손님 없이 심부름하는 점소이 두 명과 머리에 두건을 쓴 깡마른 중년 남자가 장부를 살피고 있었다. 세 사람은 바깥 상황을 알아차리고, 급히 달려 나왔다. 그들도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놀라는 눈치였다.

    “소삼자, 어떻게 된 일이냐?”

    깡마른 중년 사내가 나지막한 소리로 물었다.

    “주인 어르신,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소삼자는 빠르게 상황을 설명한 후, 울상이 되어 물었다.

    “이 손님이 아마 여정이 무리가 되어 기절하신 것 같구나. 그리 소란 피울 것 없다. 너희 둘, 이 손님을 들고 들어오너라. 소삼자, 너는 유기약포(劉記藥鋪)에 가서 유의원을 모셔오거라.”

    주인장은 상황을 파악하고 생각해 보더니, 근처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도 다 들릴 정도로 큰 소리로 이야기했다.

    주인장 곁에 있던 점소이 2인은 민첩하게 심협을 들고 들어갔고, 소삼자도 재빨리 밖으로 뛰어갔다.

    “여러분, 이 손님께서 피곤하여 혼절했을 뿐, 별일 아니오. 모두들 돌아가시오.”

    주인장은 심협의 말안장에 걸려있던 봇짐을 꺼내며, 입구에 모여있던 사람들을 향해 포권하고는 객잔으로 들어갔다.

    모여있던 사람들은 이제 구경거리가 없어지자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 * *

    심협을 들고 가던 점소이 두명은 후원의 객실로 가, 침상에 조심스럽게 심협을 내려놨다.

    심협이 무겁지는 않지만, 그리 오랫동안 들고 이동하니, 점소이 두명은 지쳐 쓰러질 것 같았다.

    “주인 어르신, 이 손님은 피곤해 혼절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직 저렇게 눈도 뜨고 있고, 몸도 차가운 것이, 무슨 큰 병에 걸린 것 아닐까요?”

    작고 뚱뚱한 점소이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함부로 혀 놀리지 말거라. 이따가 유의원이 와서 진맥하시고 나면 다시 이야기하자꾸나.”

    주인장은 짙은 눈썹 사이를 찌푸리며 훈계했다.

    “네.”

    작고 뚱뚱한 점소이는 자신이 괜한 말을 한 것을 알고, 급히 대답했다.

    “방금 밖이 소란스럽던데, 무슨 일 생겼어요?”

    밖에서 말소리와 함께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중년 부인이 들어왔다.

    이 부인은 뚱뚱한 체형에, 얼굴에도 뒤룩뒤룩 살이 쪄 눈이 실눈이 되어 있었다. 피부도 많이 검었는데, 의상은 화려한 붉은 비단옷을 입고, 머리에 금비녀를 꽂아 꽃단장을 하고 있으니,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를 걸친 격이었다.

    “사모님.”

    점소이 두명은 급히 그 중년 부인을 향해 인사했는데, 그녀를 꽤 두려워하는 듯했다.

    “주방에 있지 않고, 여길 무엇 하러 나왔소?”

    주인장은 부인을 보더니, 불쾌한 기색으로 물었다.

    “왜? 이 객잔이 당신 한 사람 거예요? 나는 나오면 안 돼요?”

    중년 부인은 눈썹을 치켜세우고 허리춤에 손을 올린 채 소리쳤다.

    “여기 손님이 계시는데, 왜 시끄럽게 구는 것이오!”

    주인장은 표정을 굳히며,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중년 부인은 그제서야 침상의 심협을 발견하고는, 표정을 조금 누그러뜨렸다.

    “저 사람은 왜 저런 것이래요? 왜 누워서 꼼짝을 안 하는 거지?”

    중년 부인은 심협을 살펴보더니 물었다.

    작고 뚱뚱한 점소이가 급히 중년 부인에게 다가가, 방금 일어난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뭐라고! 저런 병자를 우리 객잔에 들였다고? 어서 후문 밖으로 내다 버리거라!”

    상황을 들은 중년 부인은 바로 점소이 두명을 향해 언성을 높이며 분부했다.

    점소이 2인은 난감한 표정으로 주인장을 바라봤다.

    “무슨 헛소리인가! 이 손님은 우리 객잔에 투숙하러 왔다가, 객잔 입구에서 혼절하였는데, 어찌 수수방관할 수 있단 말이오? 그렇게 손님을 푸대접한다는 소문이라도 난다면, 우리 객잔이 앞으로 어떻게 되겠소?”

    주인장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당신이야말로 헛소리하는구먼. 이 사람이 우리 객잔에서 죽기라도 한다면, 앞으로 누가 우리 객잔에 오려고 하겠어요?”

    중년 부인이 말을 되받아치며 말했다. 목소리도 훨씬 더 커져 있었다.

    “내 이미 소삼자에게 유의원을 모셔오라고 했소.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당신은 더 끼어들지 마시오!”

    주인장은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도 차가워지며 말했다.

    “후량재(侯亮才), 내 말을 거역하겠다는 건가요! 내가 우리 친정에서 돈을 빌려오지 않았더라면, 당신 같은 시골 출신 촌놈이 이 객잔을 차릴 수나 있었겠어요!”

    중년 부인은 크게 노하여, 마치 사자후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당신…….”

    후씨 성의 주인장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주인 어르신, 유의원 오셨습니다.”

    그때, 마침 소삼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삼자가 말을 마치자마자, 두 사람이 들어왔다.

    소삼자의 안내를 받아, 들어온 사내는 흰옷을 입었고 약 40여 세로 보였다. 수척해 보이는 외모에, 턱에는 수 촌 길이의 검은 수염을 기르고 있는 것이 학자처럼 기품 있어 보였다.

    “주인장, 환자는 어디 있소?”

    흰옷의 중년 남자는 방 안의 상황에 잠시 멈칫했다가 물었다.

    “유의원이 오셨으니, 할 말이 있으면 이따가 다시 이야기하시오. 남 앞에서 망신시키지 말고!”

    후씨 성의 주인장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부인을 향해 나지막한 소리로 망한 후, 흰옷 입은 사내를 맞이하러 갔다.

    중년 부인은 주인장의 뒷모습을 보며, 더는 무어라 하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입을 다물었다.

    “환자는 여기 있소. 어떤 병증이 있는지 좀 봐주시오.”

    주인장은 유의원을 침상으로 안내한 후, 의자를 가지고 와 앉도록 청했다.

    유의원은 심협의 안색을 자세히 살피고는, 바로 심협의 맥을 짚더니 가벼운 탄식을 내뱉었다.

    “유형, 이 젊은이의 병이 심각한 것이오?”

    주인장이 급히 물었다.

    “맥이 허하고 다 흐트러져 있는 데다, 삼초(三焦)가 모두 조화를 이루지 못하니, 정말 심각하기는 하오. 이런 맥은 곧 죽을 노인에게 많이 나타나는데, 이 젊은이에게 어찌 이런 병이 들었는지, 실로 기이할 따름이오.”

    유의원은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곧 죽을…….”

    주인장은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점소이 3인도 같은 반응이었다. 특히 소삼자라는 점소이는 제대로 울상이 되어 있었다.

    뒤에 있던 중년 부인은 양팔을 팔짱 끼고, 주인장을 비웃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는데, 방금 전의 불만을 표하는 것 같았다.

    “유형, 이 젊은이는 우리 객잔의 손님이니, 부디 최선을 다해 구해주시오.”

    주인장은 공수하며 말했다.

    “후형, 내가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이 젊은이의 병증을 여태껏 본 적이 없소. 그러니 어찌할 방법이 없소이다.”

    유의원이 말했다.

    주인장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더니, 탄식을 내뱉었다.

    유의원은 이 동네에서 가장 유명한 의원인데, 보아하니 이 수려한 청년은 정말 가망이 없는 것 같았다.

    “못 고친다니 됐어요. 너희 셋, 얼른 저자를 후문 밖으로 옮기거라. 재수 없게 여기서 죽게 놔두지 말고.”

    중년 부인이 입을 열었다.

    주인장의 표정이 굳어지며, 막 입을 열려던 때였다.

    “침…… 천돌…….”

    가느다란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심협이 힘겹게 입을 열고 있었다.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이를 보고 경악하였다.

    “무엇이라 했소?”

    유의원이 일어나, 자신의 귀를 심협에게 가까이 댔다.

    “천돌……. 천돌…….”

    심협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조금 더 커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들을 수 있었다.

    “나에게 당신의 천돌혈에 침을 놓으란 말이오?”

    유의원이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심협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유의원은 미간을 찌푸리며 주인장에게 물었다.

    “후형, 이 젊은이는 당신 객잔의 손님이니, 어찌하시겠소?”

    “유형, 이 젊은이가 보통 사람 같지는 않소. 어쩌면 의술을 아는 자일 지도 모르니, 한번 시도해보시오.”

    주인장은 잠시 침묵하더니, 결심한 듯 말했다.

    “침을 놓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요?”

    뒤에 있던 중년 부인이 냉소적으로 말했다.

    “사람 구하는 것이 그 어떤 일보다 큰 공덕을 쌓는 것이오. 내 죽어가는 사람을 내버려 둘 수 없소. 유형, 시도해보시오.”

    그 중년 부인은 다시 무어라 말하려다 결국 입을 다물었다.

    유의원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심협의 옷을 풀어헤치고 침을 꺼냈다. 이내 그는 은침 하나를 꺼내 심협 복부의 천돌혈에 꽂았다.

    “수분…….”

    심협이 다시 입을 열었다.

    유의원은 심협을 한번 쳐다보더니, 그의 말대로 침을 놓았다.

    “관원…….”

    심협이 천천히 말했다. 이렇게 연달아 18개의 혈자리를 언급했다. 이 혈자리들은 바로 풍양진인이 심협을 구해줄 때 침을 놓았던 곳이었다.

    심협은 어려서부터 병을 앓아왔으니, 오랜 병에 뛰어난 의원이 될 수 있었다. 그러니 혈자리에 대해서 꽤 익숙했다.

    풍양진인이 침을 놓을 때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 심협에게는 18개 혈자리를 외우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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