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주머니
심협은 상앗대를 돌무더기에 던져두고, 뱃머리를 암초에 잘 묶고 나서 최대한 배가 물살에 쓸려 내려가지 않게 잘 처리한 후 배에 드러누웠다.
여기까지 배를 타고 오는 동안, 심협은 이미 기진맥진해져 있었다. 하여 지금은 무명천서를 찾기는커녕, 뱃머리에서 뛰어내릴 힘도 없었다.
심협은 한참을 쉬었다가 건량을 조금 먹고서야 심호흡하며 일어났다. 그러고는 배에서 엄지손가락 굵기의 밧줄을 가지고 와서, 한쪽을 암초에 단단히 묶었다.
그는 다른 한쪽을 자신의 허리에 두 겹으로 감아 묶고서 돌무더기 위로 뛰어내렸다.
돌무더기는 전체적으로 타원형과 비슷해 보였다. 물살의 방향과 동일하게, 동, 서 방향으로 길었고, 남, 북 방향으로 좁았다. 심협과 연결된 암초는 돌무더기의 서쪽에 위치해 있었다. 심협은 암초 옆에 서서 물속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나 물속은 어두컴컴하고, 옅은 진흙 비린내가 가득했다. 돌무더기 근처에는 하얀 물거품이 일고 있었고, 조금 멀리 수면에는 다양한 크기의 소용돌이가 치고 있어, 밖에서는 물속 상황을 살피기가 어려웠다.
심협은 정신을 가다듬고 발 하나를 조심스럽게 물 안으로 집어넣으며 물속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수면에 인접한 돌이 굴러 떨어지면서 그대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심협은 그대로 허공을 밟고 물속에 빠지게 되었다.
이곳의 물은 꽤 깊어서, 심협은 완전히 물에 잠기게 되었다. 게다가 급물살을 맞아, 그의 등이 그대로 돌무더기에 부딪쳤다. 순식간에 진흙 섞인 물이 그의 입에 한가득 들어갔다.
심협은 당황하여 다급히 몸을 돌려 돌무더기를 잡고 오르기 시작했다. 머리가 수면 위로 나오자, 바로 숨을 들이쉬니 심한 기침이 터져 나왔다.
심협은 한참 기침을 하고서야 정신이 들어 얼굴의 물을 닦아냈지만, 아직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이곳은 정말 위험하구나. 하긴 이런 곳이 아니었다면, 어찌 무명천서가 그리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발견되지 않았겠는가.’
심협은 이리 생각하자, 무명천서를 더욱 갈망하게 되었다.
이번에 심협은 우선 숨을 크게 들이 마시고, 코를 막은 후 물로 들어갔다. 큰 돌을 뒤에 등진 채, 그는 한 손으로 그 돌을 더듬어 가며 조금씩 물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입수한 후, 심협은 천천히 눈을 떴지만, 물이 혼탁하여 앞이 잘 보이지 않았고 먼 곳은 아예 보이지가 않았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암초에 의지해 손으로 더듬어가며 살피게 되었다.
그러나 물이 너무도 깊었기에, 심협은 발이 강바닥에 닿았을 때 이미 숨이 차기 시작했다. 그는 억지로 숨을 참아가며 눈을 크게 뜨고 돌무더기 아래를 살폈다. 시야가 흐린 가운데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작은 굴이 있는 것 같았지만, 제대로 보이지가 않으니 급히 손으로 더듬어 보기 시작했다.
손으로 가늠한지 얼마 되지 않아, 심협은 오랫동안 숨을 참은 탓에 현기증과 가슴이 답답함을 느꼈다. 하여 그는 어쩔 수 없이 돌무더기를 잡고 조금씩 물속에서 올라왔다.
심협은 크게 입을 벌리고 호흡하니, 가슴이 미칠 듯이 요동쳤다. 호흡이 조금 안정된 후, 그는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시간을 벌기 위해 최대한 빠른 속도로 강바닥을 향해 내려갔고, 강바닥에 이르자 바로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물속이 어둡고 모래도 물속에서 부유하고 있어, 눈이 제 역할을 하기 어려웠다. 심협은 그저 갈 길을 잃은 것 마냥 여기저기 더듬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숨이 찬 그는 물 밖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물 밖에서 숨이 조금 안정되자, 그는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 돌무더기 아래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차례 왕복했던 심협은 춥고 피곤한 나머지, 입술도 파랗게 질려 있었다. 암초를 부여잡고 물 밖에서 숨을 고르던 그는 고개를 들어 서쪽 하늘을 바라보고는 해가 이미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것을 발견했다.
“다시 시도해보자…….”
심협은 다시 정신을 집중하고 힘껏 숨을 들이 마시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 강바닥으로 향했다.
돌무더기 아래에는 진흙과 돌로 된 작은 굴들이 있었다. 거의 대부분은 심협이 더듬어가며 가며 살펴본 상태였다. 심협은 돌무더기를 돌아 돌무더기 남측으로 헤엄쳐갔다. 물론 손바닥은 강바닥을 짚은 채였다.
이번에 심협은 손을 작은 굴에 넣었을 때, 손끝에 돌과는 전혀 다른 촉감을 느낄 수 있었다.
손끝에 만져진 것은 마치 삼베 같은 촉감이었는데, 모양이 무언가 가득 들어있는 주머니 같았다. 안에 울퉁불퉁한 걸 보니, 들어있는 물건이 많은 듯했다.
‘설마 무명천서인가?’
심협은 마음이 동하여 서둘러 주머니 한쪽을 잡고 끌어내려고 했다.
우혁이 무명천서를 언급할 때 어떤 모양인지는 이야기하지 않았으니, 어쩌면 주머니 안에 든 것이 무명천서일지도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그 굴 입구는 겨우 밥그릇 정도 크기였고, 안에 있던 주머니는 무언가 잔뜩 들어있어 작은 항아리 정도 크기는 되었던지라, 주머니가 굴 안에 꽉 끼어 아예 꺼낼 수가 없었다.
심협은 몇 차례 꺼내려고 시도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때 숨이 차기 시작하자, 그는 결국 다시 수면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심협은 돌무더기 위에 엎어졌다. 가슴은 미칠 듯이 쿵쾅거렸지만, 흥분된 눈빛은 감출 수 없었다. 심지어 빠르게 뛰고 있는 자신의 심장 박동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방금 우대담을 대면했을 때, 심협은 꿈속에서 우혁에게 들은 이야기가 거짓이 아님을 7, 8할 정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기막힌 우연이 바로 목전에 있는데, 어찌 흥분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숨을 고르고 난 심협은 바로 물에 들어가지 않고 오히려 나룻배로 돌아가더니, 손에 2척 정도 길이의 검은 끌을 들고 뱃머리에서 뛰어내려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심협은 그 좁은 굴을 찾은 후, 들고 있던 끌을 굴 입구에 넣었다. 그러고는 안에 들어있는 주머니에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입구를 넓히기 시작했다.
돌 자체의 크기가 거대하여 무게도 물론 많이 나갔다. 물론 심협도 돌 전체를 어찌하려는 것이 아니라, 굴 안에 있는 주머니를 꺼낼 수 있을 만큼 입구를 넓히려는 것이었다.
물속에서 미세한 마찰음이 이어졌다. 모래를 퍼내니 물속에 끝없이 모래가 떠다녀, 심협은 눈을 잠시 감고 있다가 다시 조심히 뜰 수밖에 없었다.
바위가 오랫동안 침식이 일어났다고 해도 예상보다 훨씬 단단했던지라, 심협은 한참을 많은 힘을 들여 굴 입구를 조금 넓히고서 손을 넣어 봐도 여전히 안에서 손가락을 펼 수도 없었다.
심협은 조급했지만, 안에 있는 주머니에 무명천서가 들어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온몸에 기운이 솟아나 수면 위로 올라갈 때마다 숨만 한번 고르고 바로 물속으로 돌아왔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반 시진이 넘는 시간이 지나자, 심협은 굴 입구를 두 배 정도 넓혀놓을 수 있었다.
주머니를 꼭 쥐고 밖으로 끌어내고 있을 때, 그의 손은 저도 모르게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심협은 마음속으로 제발 무명천서가 들어있기를 기도했다.
심협이 그 주머니를 꺼내고 나니 생각보다 꽤 무거운 것을 알 수 있었으나, 주머니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바로 수면 위로 올라갔다.
심협은 돌무더기 위로 올라가, 자신의 허리에 묶여 있던 밧줄을 풀고 온몸이 젖은 채로 바위에 기대 잠시 쉬고 있었다. 그는 크게 호흡해가며, 그 주머니를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심협은 기운이 조금 돌아온 뒤 곁눈으로 손에 들고 있던 주머니를 보았다. 그는 그제야 들고 있던 것이 삼베 주머니가 아닌 것을 발견했다.
그 주머니를 손으로 만져봤을 때는 삼베처럼 거친 무늬가 느껴졌지만, 사실 일종의 금속사(金屬絲)로 짠 것이었다. 주머니에는 진흙과 수초가 가득 묻어있어, 원래 황금색이었을 것이 어두운색으로 변해 있었다.
주머니의 입구는 금색 줄로 묶여 있었고, 줄에는 손바닥 크기의 금박이 걸려있었다. 심협이 금박을 떼어 오른손으로 위에 묻어있던 진흙을 닦아 보니,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심협은 긴장해 침을 삼키며 흐려져 있는 글씨를 살폈다.
“칙령(勅令)…….”
금박에 새겨진 글의 첫 시작 두 글자는 심협에게 너무도 익숙한 것이었다. 그가 평소 부적을 쓸 때 첫 시작 두 글자와 같은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 금박도 부적이란 말인가?
하지만, ‘칙령’ 이하의 글씨는 이미 너무 흐려져 있어, 무엇이라 쓰여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심협은 우선 금박을 소매 안에 챙겨두고, 주머니를 묶고 있는 금색 줄을 풀기 시작했다.
줄이 풀리고, 주머니가 열렸다.
안을 들여다본 심협은 순간 모골이 송연해졌다. 주머니 안에 담겨있던 것은 바로 백골이었던 것이다!
“이건…… 사람 뼈잖아…….”
심협이 이를 한눈에 알아보고 말했다.
그렇게 잠시 멈춰있던 심협은 불편한 감정을 참아가며 주머니 안에 있던 백골을 모두 쏟아냈다.
백골을 전부 쏟고 나서야 심협은 단념할 수 있었다. 주머니 안에 무명천서 따위는 아예 없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쏟아져 나온 백골을 본 심협은 놀란 듯 들고 있던 끌로 백골을 헤치고 자세히 살펴봤다.
그 백골은 전부 부러져 온전한 것이 없었다. 게다가 뼈에 이빨 자국들이 나 있는 것이 누군가 골수를 빨아먹은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에 심협은 자신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졌다.
심협은 잠시 망설이더니, 배에서 다 헤진 천을 가지고 와 바닥에 깔고는 쏟아낸 백골을 하나하나 주워 다시 주머니 안에 넣었다.
그런데 백골을 줍는 과정에서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 백골 중 머리가 없었던 것이다.
심협은 이에 대해 별로 자세히 생각하지 않고, 그저 무명천서는 고사하고 이런 해괴한 것만 찾아냈으니 재수가 없다는 생각만 들었다.
백골을 다 줍고 나자, 그는 돌무더기 틈에서 깨진 나무 구슬을 몇 개 발견했다. 이미 다 썩어버려 건드리기만 해도 바스러질 것 같은 구슬이었다.
“죽은 이는 존중해야 하니. 내가 당신을 찾아낸 것 또한 인연 아니겠소. 이곳에 당신의 무덤을 만들어 드리겠소. 부디 왕생하시오.”
심협은 줄곧 귀신과 관련된 일을 경원(敬遠)해 왔기에, 이 백골들도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그는 돌무더기 중앙에 구덩이를 파고 주머니에 담긴 백골을 넣고, 다시 돌을 겹겹이 쌓아 돌무덤을 만들었다.
무덤을 만들고 나니 이미 날이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심협은 순식간에 피로가 몰려와 돌무더기 위에 누워 두 손을 머리 뒤에 받치고 멍하니 저물어가는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명천서를 찾기도 쉽지 않구나.”
이 돌무더기는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정도였으나, 심협은 이미 기운을 다 써버렸기에 다시 강 속을 뒤진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돌무더기 전체를 다 뒤지려면 아마 사흘의 시간도 부족할 터였다. 그래도 시간이 부족하면 우대담 부부에게 배를 며칠 더 빌리면 될 것이었다.
“무명천서가 그리 신통하다면, 어찌 쉽게 찾을 수 있겠나?”
심협은 생각을 달리하며, 근심도 덜어냈다.
이때, 심협이 무언가 생각난 듯 갑자기 일어나 앉았다.
‘무명천서도 보물이고, 그 옥침도 보물 같아 보였지. 예전에 내가 쓴 어설픈 소뢰부로 옥침을 찾아냈으니, 이번에도 소뢰부를 사용해보면 되지 않을까? 지난번 같은 효과를 볼 수 없다고 해도, 물속에서 조명으로 사용해도 될 것 같은데…….
하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소뢰부는 세 장뿐이야.’
이 생각이 들자, 심협은 급히 허리에 묶었던 밧줄을 풀고, 다시 배를 타고 우대담 부부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몸을 일으키자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고 다리가 계속 떨려와, 그는 어쩔 수 없이 기어서 배로 돌아가야 하였다.
심협은 물을 좀 마시고 보원단을 복용한 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잠시 쉬고 나서야 다시 배를 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