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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35화 (35/1,214)
  • 35화. 우대담(于大膽)

    “그건…….”

    점소이는 눈알을 굴리더니,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심협은 점소이의 태도에 바로 무슨 뜻인지 알아듣고, 소매 안에서 작은 은자 하나를 꺼내 식탁에 올려놓았다.

    점소이는 은자를 힐끗 보더니, 눈빛을 빛내며 은자를 가져가려고 했다.

    “먼저 이야기해 보시오.”

    심협은 손으로 은자를 살며시 가리며 온화한 미소를 띠고 말했다.

    “흠……. 제가 알기로는 우씨 성을 가진 자가 딱 한 명 있습죠. 황위탕(黃葦蕩) 수역에서 나룻배를 운영하는 자입니다. 그곳 인근 10여 리(里) 수역에는 암초며 돌무더기도 너무 많고, 물살도 급해, 그 우씨 같은 사내나 그곳에서 나룻배를 운영할 수 있습죠.”

    점소이는 마른기침하며 손을 거두더니, 짜증스러운 어투로 말했다.

    점소이의 말에 심협은 기뻐하며 손으로 감추고 있던 은자를 점소이의 손에 놓아 주었다. 그러나 손을 바로 놓지 않고 계속 물었다.

    “황위탕은 어디에 있소?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오?”

    “찾기 쉽습니다요. 서쪽 성문으로 나가서, 서남쪽으로 50, 60리를 가시면 바로 나옵니다. 혹시 길을 찾기 어려우시면, 지나는 이 아무에게나 물어보십시오. 우대담(于大膽)을 찾는다고 물어보시면 됩니다.”

    점소이는 손바닥에 은자의 차가운 감촉이 느껴지자, 얼굴에 웃음을 띄며 빠르게 말했다.

    “알려주어 고맙소.”

    심협은 웃으며 은자에서 손을 뗐다.

    “별말씀을요. 손님 또 다른 분부 있으시면 얼마든지 말씀하십시오. 요즘 들어 성문을 일찍 닫습니다. 보통 술시(*戌時 : 19시~21시)면 닫습죠. 유람하실 때 꼭 돌아오는 시간을 유념하셔야 합니다.”

    점소이는 웃음이 만개하며 연신 감사 인사를 한 후, 은자를 챙겨 넣었다.

    심협이 손을 내저어 보이자, 점소이는 허리를 굽히고 물러갔다.

    * * *

    식사를 마친 후, 심협은 말을 끌고 성문을 나섰다. 서남쪽으로 반 시진 정도 가다 보니 강가에 이르렀다.

    만수하의 상류에서 흘러온 물살이 적지 않았다. 강은 드넓었고, 양측에는 인공으로 지은 제방과 모래를 쌓아 간석지가 있었는데, 곳곳에 느릅나무와 버드나무가 울창하게 자라있었다. 무성하게 늘어져 있는 버드나무 가지들은 여름날의 미풍에 한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심협은 강가를 따라 걸었다. 십 여리 정도를 걷다 보니, 만수하가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드넓었던 수면이 수십 장이 좁아지자, 유유히 흐르던 물살도 점점 급물살로 변해갔다.

    앞으로 걸어갈수록, 수면 사이로 모래톱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모래톱에는 갈대가 무성하게 자라있었다. 푸른 갈댓잎은 바람에 날려 바스락 소리를 내고 있었고, 그 안에 수시로 물새들이 드나들었다.

    다시 말을 달려 십여 리를 가자, 앞쪽 강가 근처에 수십 장 높이의 느릅나무와, 그 나무 그늘에 세워진 초막이 눈에 들어왔다.

    초막 바로 근처 강기슭에는 나룻배가 하나 묶여 있었고, 배 옆에는 십여 장 길이의 상앗대(*배질을 할 때 쓰는 긴 막대)가 꽂혀 있었다.

    심협은 느릅나무 근처에서 말에서 내려, 말을 끌고 다가갔다.

    “사공 계시오?”

    심협은 초막 밖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네, 나갑니다…….”

    그러자 바로 거친 목소리의 대답이 들려왔다. 뒤이어 꽤 건장한 체격의 중년 남자가 초막에서 나왔다.

    심협이 위아래로 훑어보니, 이 사내의 피부가 많이 까맣게 탄 것을 제외하면 우몽과 3, 4할은 닮아 있었다. 심협은 속으로 신기해하며, 이 사람이 우씨 집안의 조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우씨 사공 되시오?”

    “하하, 손님 어떻게 아셨습니까? 송번현 경 내 만수하 수백 리에 우대담이 또 있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 중년 남자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의 말투에서 자부심이 느껴졌다.

    “바로 우형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것이오.”

    우대담의 말에 심협도 웃으며 말했다.

    “손님 강을 건너시려는 것입니까? 하나 저 말은 같이 건너기가 어렵습니다. 저희 배에 말을 태울 수가 없습니다.”

    우대담이라는 중년 남자는 심협을 살펴보더니, 난감하다는 듯이 말했다.

    “강을 건너려는 것은 아니오. 나는 그저 형님의 배를 빌려 쓰고 싶소. 값은…… 협의해서 정하지요.”

    심협은 눈을 껌뻑이며 말했다.

    심협의 말에 우대담은 순간적으로 심협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부호 집안 공자로 보이는 저 청년이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듯 보였다.

    심협은 그러 웃으며 우대담을 바라보고, 그가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손님, 보아하니 외지에서 오신 것 같습니다. 이곳 황위탕은 유람하기 좋은 곳이 아닙니다. 손님께서 갈대 늪 풍경이 좋다고 여기실지 모르겠으나, 물속에 암초도 많고 중간에 모래톱도 있어서 노련한 뱃사공도 조심해서 배를 몰아야 하지요. 손님이 직접 배를 모시는 것은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닌 듯합니다.”

    우대담은 미간을 찌푸리며 권했다.

    “괜찮소. 내 나름 물에 익숙하오. 나는 그저 갈대 늪 안에 들어가서 경치를 감상하고 돌아오고 싶을 뿐이오.”

    심협은 이리 말했다.

    “손님, 경치를 감상하시는 것은 좋습니다만, 왕복 뱃삯만 주시면 제가 배를 몰아 모셔다 드릴 것입니다. 그러면 손님께서 배를 빌리는 것보다 비용도 저렴하고, 위험 부담도 적을 것입니다.”

    우대담은 여전히 권유하고 있었다.

    “손님 저 사람 말 들을 필요 없습니다.”

    우대담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초막에서 한 여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초막 안에서 한 중년 부인이 나왔는데, 중년 부인은 거친 베옷을 입고 수건으로 머리를 감싼 차림새에 만삭의 몸이었다. 그녀의 피부는 까맣게 그을린 데다 홍조가 돌고 있어, 바람과 햇볕 아래 고생한 흔적이 역력했다.

    “와, 이리도 잘생긴 청년이었구먼…….”

    중년 부인은 심협을 보자마자 바로 감탄하며 말했다. 심협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 나왔소? 바깥바람 쐬지 말라니까.”

    우대담은 부인이 나온 것을 보고 바로 곁으로 가더니, 관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부인은 우대담을 매섭게 쏘아보더니, 자신을 부축하려는 우대담의 손을 쳐내며 말했다.

    “당신 같은 촌놈이 무슨 운치를 알겠어요? 저 도련님께서 홀로 갈대 늪에 들어가 경치를 감상하시겠다는데, 무슨 시상이라도 떠올라 천하에 널리 알릴 시라도 써내실지 어떻게 알아요? 당신처럼 무식한 사내가 옆에서 성가시게 하면 방해만 되지 않겠어요?”

    심협은 물론 우대담의 부인이 나룻배 대여비를 벌고 싶어 하는 말인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배를 빌리려는 의도는 잘못 짚고 있자, 심협이 웃으며 말했다.

    “형수님, 농담도 잘하시오. 나는 그저 홀로 기분 전환이나 하려는 것뿐, 시 짓는 재주 같은 건 없소…….”

    아내의 눈치에 심협의 대답이 더해지자, 우대담은 풀이 죽은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도련님, 배를 며칠 동안 빌리시렵니까? 저희 배가 크지는 않지만, 나름 장사가 잘 되는 배랍니다. 도련님께서 배를 빌리시려면 값은 두둑이 쳐주셔야 합니다.”

    우대담의 부인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사흘간 배를 빌리겠소. 지금부터 사흘 뒤 이 시간까지요. 10냥 은자를 드리면 어떻겠소?”

    심협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얼마…… 요?”

    심협의 말에, 우대담의 부인은 놀라는 기색이었다. 심협이 이리도 손이 클 줄은 생각도 못 했던 것이다.

    “10냥 은자요.”

    심협은 다시 한번 언급했다.

    “안됩니다, 안 돼……. 그건 너무 많이 주시는 것입니다.”

    우대담도 연신 손을 내저었다.

    “이건…… 정말 많긴 합니다. 그 값이면 저희 배를 사시고도 남습니다. 10냥은커녕 1냥만 주셔도 충분합니다.”

    우대담의 부인은 돈을 밝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이리 많은 돈을 많을 수 없다고 여기며 말했다.

    “형수님, 그리 따지실 것 없소. 우형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저와 마음이 잘 맞는 것 같아 그렇소. 10냥 은자로 새로 친구를 사귄 셈 치지요. 그럼 이 배는 제가 빌리겠소.”

    심협은 우대담 부부가 더는 값을 가지고 무어라 할 수 없게 대답했다.

    “도련님은 호탕하고 대범하신 것이 평범한 사람에 비할 수가 없군요. 나중에 분명 장수하고 부귀할 것입니다…….”

    우대담의 부인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심협이 볼수록 괜찮은 청년이라 여겨졌다.

    배를 빌리기로 한 후, 심협은 우대담 부부에게 말을 맡기고, 배를 타고 강으로 들어갔다.

    출발할 때, 우대담은 혹시 심협에게 사고라도 날까 걱정되어 주의사항을 자세히 알려줬다. 심협도 물론 우대담의 안내에 귀 기울여, 각각 수역들의 상황 및 주의사항을 자세히 기억해 뒀다.

    우대담의 부인은 깨끗한 마실 물과, 구운 전병, 그리고 육포를 헝겊에 싸서 준비해 주었는데, 갔다가 배에서 먹으라고 한사코 준비한 것이었다.

    심협은 정성을 보아 거절하지 못하고, 먹을 것들을 받아 챙겼다.

    * * *

    나룻배는 물살을 따라 표류해 갔다. 심협은 뱃머리에 서서 상앗대를 들고 있었지만 제대로 배를 몰 수가 없었다. 결국 나룻배는 계속 암초에 부딪쳤다.

    곧이어 나룻배는 사람 키만 한 갈대가 빽빽하게 자라있는 갈대 늪에 이르렀다.

    우대담의 설명대로라면, 이곳 수역은 만수하에서 물살이 가장 급한 곳이었다. 배가 강에 막 들어왔을 때는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았지만 물살을 타고 내려갈수록 속도가 빠르게 붙어, 심협은 상앗대로 속도를 늦추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물살이 세지 않을 때는 괜찮았지만 급물살을 만나니, 나룻배 모는 일이 익숙하지 않았던 심협은 아무리 정신을 집중해도 배가 여기저기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펑, 펑, 펑…….

    나룻배는 이리저리 암초에 치이고 있었다. 그 소리에 양측 갈대숲에 있던 기러기와 물새들도 놀라 다 날아가 버릴 정도였다.

    심협은 큰 소용돌이와 암초가 나타날 때마다 죽을힘을 다해 배를 몰아 피했다. 피하지 못한다면 까닥하다간 배가 뒤집힐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금방 심협은 온몸이 땀에 젖을 정도로 피로해지고 어지러웠다. 하지만, 물살 때문에 조금도 쉴 수가 없어, 그저 이를 악물고 버틸 수밖에 없었다.

    배를 타로 내려오며, 심협은 계속 양측 강가를 살피며 강이 좁아지는 곳이 있는지 찾고 있었지만, 너무 높고도 빽빽이 자란 강가의 갈대가 시야를 방해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강이 좁아지는지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 심협은 어쩔 수 없이 물살의 변화로 판단해보고 있었다. 어쨌거나 강이 좁아지는 곳에서는 물살도 더욱 빨라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심협은 그렇게 7, 8리를 표류하고 있었다. 표류하던 중 돌무더기는 보이지 않고, 모래톱만 많이 나타났다. 심협의 나룻배는 곧 좁고 긴 두 개의 모래톱 사이에 들어가게 되었다.

    모래톱 위에는 푸른 갈대가 잔뜩 자라있었다. 두 모래톱 사이는 자연스럽게 물길이 생성된 듯했는데, 나룻배가 그 사이에 들어가자 속도가 돌연 빨라지며 맹렬히 빠져나갔다.

    별안간 나룻배가 갈대숲 사이를 빠져나갈 때, 큰 굉음이 울렸다. 심협은 비틀거리며 하마터면 뱃머리에서 떨어질 뻔했다.

    그는 상앗대를 잡고 버텨, 겨우 몸을 가눈 후에야 겨우 앞쪽을 살펴봤다. 뱃머리는 앞에 있는 대략 수십 장정도 규모의 돌무더기에 부딪혀 있었다. 다행히 배가 튼튼하여 부서지지 않았다.

    “강이 좁아지는 곳, 돌무더기, 물속의 암초. 보아하니 여기 같구나.”

    심협이 중얼거렸다. 우혁이 말하기를, 자신의 조상이 돌무더기 아래에서 무명천서를 찾았다고 했는데, 지금 눈앞에 있는 이곳이 우혁이 설명한 장소와 딱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원래는 한참을 잘 찾아야 무명천서가 숨겨진 곳을 찾을 줄 알았는데, 이리도 쉽게 찾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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