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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33화 (33/1,214)
  • 33화. 발설할 수 없는

    나씨 도인은 몸을 틀어 목합을 힐끗 쳐다보고는 탄식하며 말했다.

    “예전 네 집에 갔을 때, 내가 이미 너에게 수명을 연장할 방법은 알려주지 않았느냐. 홍설산과 소화양공을 모두 예외적으로 너에게 허락해 주었지. 하지만 너의 수행 자질이 너무도 떨어져, 가장 기본적인 공법을 수련하면서도 문제가 생기지 않았느냐.

    내가 너를 제자로 받은 것이 너를 살린 것인지, 아니면 너에게 해가 되었는지 모르겠구나.”

    “사부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만일 사부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진작 한줌의 흙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살려주신 은혜는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심협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심협의 말에 나씨 도인은 표정이 풀어지며, 마음이 많이 누그러진 것 같았다.

    “사부님, 혹시 수명을 연장할 다른 방법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혹여 막대한 금액을 치러야 한다고 해도, 제자는 지불할 의사가 있습니다.”

    심협이 이어서 말했다. 그가 막대한 금액 이야기를 시작할 때에는, 한 글자 한 글자 분명하게 진지한 어투로 이야기했다.

    “됐다. 내 너를 위해 다시 한번 전례를 깨보마. 네가 3년 이내에 소화양공을 능숙하게 수련해낼 수 있다면, 내 장문사형에게 청하여 너에게 순양검결 제1층 공법을 전수해 주마. 얼마의 대가를 치를지는 그때 가서 이야기하자꾸나. 하지만 이 또한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나씨 도인은 잠시 침묵하더니, 가볍게 탄식하며 말했다.

    ‘3년 이내? 풍양진인이 나에게 앞으로 2년을 넘기기 어렵다고 하지 않았던가?’

    심협은 뭔가 이상했지만, 겉으로는 연달아 감사하다고 인사를 올렸다.

    “감사합니다, 사부님.”

    “내게 그리 감사해할 것 없다. 내 사실대로 이야기해주마. 사실 난 이것도 그리 좋은 방법 같지는 않구나. 어쨌거나 네 자질로 3년 이내에 소화양공을 능숙하게 수련해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그러니 차라리 최대한 안정과 휴식을 취하고, 수명을 연장시키는 영약선초(靈藥仙草)를 찾아볼 궁리를 해 보거라.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야.”

    나씨 도인은 손을 내저으며 심협을 일깨워주었다.

    “그럼 수명을 연장시키는 영약선초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춘추관에도 있는 것입니까?”

    심협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춘추관에 있다면 내 무엇 하러 너에게 찾아보라고 하겠느냐? 진짜 목숨을 연장시킬 수 있는 영약(靈藥)은 수련하는 자라면 모두 얻으려고 안달이지. 나타났다 하면 다들 얻으려고 난리 법석이니, 일반인들은 구경조차 할 수가 없다. 요행히 구경할 수 있다 쳐도, 수천 수만금을 들여도 살 수 없는 것이야.”

    나씨 도인은 일어나 뒷집을 지고 천천히 말했다.

    “거금으로도 살 수가 없다니, 이유가 무엇입니까?”

    심협은 의아하여 물었다.

    지금까지 심협은 소화양공과 홍설산으로 목숨을 이어왔다. 이것은 모두 거금을 들여 얻어온 것들이 아닌가? 그는 입관할 때에도 거금을 들였고, 또 매년 집안에서도 춘추관으로 거금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니, 결국 돈으로 목숨을 이어오고 있는 것 아닌가?

    “네가 아직 수련에 발을 들이지 않았으니, 수련계 고수들의 눈엔 금은보화가 돌멩이나 나무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모르겠지.

    그들 사이에도 거래할 일이 생기는데, 이때 전설 속의 선옥(仙玉)을 사용한다.”

    심협은 나씨 도인의 말에, 순간 벼락이라도 맞은 것 같았다.

    심협도 선옥의 명성은 들어본 적이 있었다. 백소천이 언급한 적도 있었고, 잡서에서 읽어본 적도 있었던 것이다. 선옥이야말로 진정한 신선의 돈이라고 하지만, 심협의 집안처럼 현성(縣城)의 부호는 물론이고 주성(州城)에서 내로라하는 대부호들도 구경해본 적이 없었다.

    ‘목숨을 이어갈 선약(仙藥)을 사려면 물론 신선의 돈이 필요하겠지…….’

    심협의 마음속엔 무력감이 몰려왔다. 그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재력마저도 소용없었던 것이다.

    심협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을 보자, 나씨 도인도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마음이 동요하는 가운데, 돌연 심협은 한 가지 일을 떠올렸다.

    ‘내 원기를 상하게 한 원흉은 바로 그 옥침이야. 그러니 혹시 그 옥침에서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로 인해 목숨을 이어갈 방도가 생기지는 않을까? 게다가 내가 그 옥침을 어쩌지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그 옥침을 어쩌지 못하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 아닌가?’

    그 옥침이 그의 수명을 이리도 줄여놨으니, 설령 보물이라 할지라도 우선 살고 봐야 할 일이었다. 정말 아무 방법이 없다면, 그 보물로 춘추관에서 더 좋은 것과 교환하면 될 것이었다.

    “사부님…….”

    잠시 망설이다가, 심협은 마침내 마음을 다잡고 옥침의 일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런데 심협이 막 입을 열자, 돌연 머릿속에 윙 소리가 울렸다. 지금껏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고막을 찢어버릴 듯한 날카로운 소리였다. 그 소리가 마치 밀물이 들어오듯 몰려오자, 심협은 눈앞이 캄캄해지며 옆으로 넘어지게 되었다.

    나씨 도인은 당황하며 바로 심협의 어깨를 잡고 부축해 의자에 앉게 했다.

    심협의 머리가 계속 어지러운 가운데, 나씨 도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심협의 팔목을 틀어쥐고 손목의 맥을 짚었다. 나씨 도인은 숨죽이고 맥을 잠시 살피더니, 고개를 흔들며 손을 풀었다.

    “맥이 허하고 힘이 없구나. 이건 확실히 공법이 역효과가 났을 때의 증상이야. 원기가 꽤 많이 손상되었구나. 도대체 어찌 수련했길래 이리 된 것이냐?”

    심협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는 겨우 자신의 일과를 조금 이야기할 수 있었다.

    “아…….”

    하지만 심협이 다시 옥침 이야기를 언급하려고 하자, 머릿속에 다시 찢어질 듯한 소리가 울려,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나씨 도인은 진지한 표정으로 심협의 등을 받쳤다. 그러자 나씨 도인의 장심에서 붉은 빛이 빛나면서 따뜻한 기운이 심협의 등에서부터 체내로 전해졌다. 심협은 따뜻함이 느낀 후부터 머릿속의 괴로운 소리도 점점 사라지는 걸 느꼈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설마…….’

    심협의 몸은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지며, 마음은 놀라면서도 불안했다.

    또 한 번 심협이 옥침의 일을 발설하려 생각했을 때, 그 찢어질 듯한 소리가 다시 머릿속에 울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조금 전 두 번보다 더 심하게 울려와, 입을 열 수조차 없었다.

    “왜 그러느냐?”

    나씨 도인이 무언가 이상한 것을 알아차리고 물었다.

    “몸…… 몸이 좀 허한 것 같습니다. 아마…… 아마 공법의 역효과일 것입니다…….”

    심협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심협은 이제 옥침의 일은 아예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당분간 수련은 좀 쉬거라. 그리고 이 홍설산을 가지고 가거라. 한 번에 복용하지 말고, 세 번에 나눠 복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네 몸이 버티지 못할 것이야.”

    나씨 도인이 품속에서 종이로 포장된 것을 꺼내 심협의 손에 쥐여 주었다. 이와 동시에 다른 손 장심에 다시 붉은 빛이 일더니, 심협의 등에 있는 대혈(大穴) 몇 곳을 몇 차례 쳐 주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심협은 한참이 지나서야 기운을 차리더니, 나씨 도인에게 예의를 갖춰 감사를 표했다. 심협은 더는 사부의 거처에서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나씨 도인에게 물러가겠다고 인사하고는 그곳을 나섰다.

    나씨 도인은 심협의 비틀거리는 뒷모습이 문밖 저 멀리로 사라지자, 소매 안에 챙겨둔 금괴를 만지작거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생각해보면 저 녀석이 참 괜찮은 놈인데, 안타깝구나……. 어쩌면 2년 후에 다시 부호 집안의 기명제자를 찾아야할지도 모르겠군.”

    나씨 도인은 중얼거리더니,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거처의 모든 문이 스스로 닫혔다.

    * * *

    이미 깊은 밤이었다. 청석평 벼랑가 근처의 1층 정실 한곳은 아직 촛불을 밝히고 있었다.

    탁자에 앉아 있는 심협의 앞에는 그 기이한 옥침이 놓여 있었다. 심협의 시선은 바로 옥침을 향해 있었는데, 그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방금 사부를 만났을 때 있었던 일은 너무도 믿기 어려운 것이었어. 도대체 어떤 힘이 옥침의 일을 발설하지 못하도록 막는 거지?’

    * * *

    1시진 전, 심협은 막 자신의 정실로 돌아와 침상 옆 아무도 없는 벽을 향해 옥침의 일을 발설해보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입을 열자마자 찢어질 듯한 굉음이 울려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두 번을 시도하고 나니, 심협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져 더는 시도하지 못했다.

    이번에야말로 심협은 이 기이한 옥침이 막대한 힘을 가진 보물이라 확신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보물이 자신을 두 번이나 두려운 악몽을 꾸게 만들었고 더욱이 자신이 원기를 크게 상하게 하여 수명까지 짧아졌으니, 심협의 마음속 근심은 더해만 갔다.

    “옥침의 일은 우선 내버려 두자. 수명 연장할 방법 찾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일 아닌가?”

    심협은 일어나서 방안을 천천히 배회하기 시작했다.

    심협은 스스로도 2년 이내에 가장 기본적인 소화양공을 능숙하게 수련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것이 가능하다고 한들, 장문인이 심협에게 순양검결을 전수하도록 허락할지도 미지수였다.

    “남에게 도움을 기대하느니 스스로 방법을 찾는 것이 낫지. 아무래도 모험을 해봐야겠구나.”

    심협은 돌연 발걸음을 멈추더니, 속으로 무언가 결심했다.

    * * *

    며칠 후, 춘추관의 산길 위.

    심협은 돌계단을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그의 찌푸려진 미간은 무슨 근심이 있는 듯 줄곧 펴질 줄 몰랐다. 그는 내려오면서 몇몇 사형제들을 마주쳤지만 말을 걸지 않고, 가볍게 인사만 하고 바삐 지나쳐갔다.

    심협이 재당 근처까지 이르렀을 때, 익숙한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췄다.

    “전사형.”

    심협이 소리쳤다.

    전철생은 그의 목소리를 듣고 바로 고개를 돌렸다. 심협이 눈에 들어오자, 전철생은 입을 한번 삐죽여 보이더니 재빨리 심협을 향해 갔다.

    “심사제, 자네 사부님을 찾아…….”

    전철생은 말을 하는 도중에 심협에게 이끌려, 조금 떨어진 외진 곳으로 갔다.

    “사형, 내 사형을 찾고 있었소.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구려.”

    심협은 먼저 입을 열었다.

    “날 찾았다고? 무슨 일인가?”

    심협의 말에 전철생은 뒤통수를 긁으며 의아해하며 물었다.

    “별일 아니오. 내 며칠간 고향에 돌아가 가족들을 만나고 올 것인데, 사형에게 작별 인사하러 왔소.”

    심협은 웃으며 말했다.

    “심사제 자네 하산하여 집에 돌아갈 수 있는가? 사부님께서 허락하신 것인가? 내 입관한 지 여러 해 되었지만, 사부님이 내게 고향에 다녀오는 것을 허락하신 적이 없었네.”

    심협의 말을 들은 전철생의 표정에는 놀라움과 부러움이 공존했다.

    “아침에 사부님께 가서 허락받았소.”

    심협은 전철생의 반응에, 저도 모르게 씁쓸해졌다.

    춘추관은 봉쇄한 지 여러 해 되었기에, 규율대로라면 수련의 성과가 없을 경우 마음대로 하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나씨 도인이 예외적으로 심협에게 하산을 허락한 것은, 그에게 남은 날이 얼마 남지 않아 가족들을 만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였다.

    전철생의 평소 행실로 미루어 봤을 때, 그는 분명 여기까지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심협도 굳이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사제가 고향에 다녀온다는 것을 백사제에게도 이야기했나?”

    전철생이 물었다.

    “사부님께 허락받고 나오면서 백사형의 거처로 갔는데, 그곳에 없더군요. 돌아오는 길에 또 백사형이 평소에 수련하던 곳으로 갔는데 거기에도 없었소. 아마 몰래 하산하여 술을 사러 간 것 같은데, 사형이 백사형을 만난다면, 저 대신 이야기 좀 해 주시오.”

    심협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알겠네. 자네 안심하고 다녀오게. 백사제에게는 내가 이야기하겠네.”

    전철생은 자신의 가슴을 치며 장담했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작별 인사하고 발길을 돌렸다.

    전철생은 심협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보자, 마음속엔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이질감 같은 것이 들었다.

    그러다 문뜩 전철생은 방금 심협에게 말이 끊기는 바람에, 그의 몸 상태에 대해 사부가 무어라 이야기했는지 묻는다는 걸 깜빡한 걸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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