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1화 (31/1,214)

31화. 숲속의 대련

심협은 잠시 망설이다가 발소리를 죽이며 가까이 다가갔고, 금방 소리가 나는 곳에 이르렀다.

‘이건……….’

동공이 수축된 심협은 무의식적으로 큰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앞에 있는 숲속에는 백소천과 정화, 두 사람이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약 5, 6장 거리를 두고 서 있었다. 움직이지 않고 있는 둘의 주위로, 수척 길이의 붉은색 검영(劍影) 두 줄기가 공중에서 서로 뒤엉켜 맞서고 있었다. 검영에서는 마치 용이 꿈틀거리듯 쟁쟁거리는 마찰음이 나고 있었다.

주변의 나무들은 쓰러지거나 가지가 잘려, 어질러져 있던 것이 한쪽으로 정리되어 공터가 되어 있었다. 검영이 지나는 곳은 큰 나무나 바위를 가리지 않고 모두 두 동강이 나버렸다. 잘린 곳에는 검게 탄 흔적이 남는 것이 마치 불에 탄 것 같았다.

‘비검(飛劍)!’

심협의 눈이 반짝였다.

붉은 검영이 빠르게 움직이기는 했지만, 심협의 꿈속 동래현성에서 두 선사들이 사용하던 비검에 비하면 한참 느린 것이었다. 하지만, 맹렬한 검기는 꿈속 동래현성의 비검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보이니, 붉은 검영은 분명 비검일 듯했다.

두 비검은 붉은 빛에 싸여있어, 어렴풋한 형태만 볼 수 있었다. 백소천의 비검은 동전을 꿰어 만든 동전검 같았다. 모양이 특이한 동전검은 움직임이 시원시원했고, 위세가 천둥 번개가 치는 것 같았다.

순간 검광(劍光)이 번득이는가 싶더니, 동전검의 초식이 연달아 펼쳐져 촘촘한 검망(劍網)을 만들어 냈다. 정화의 비검은 동전검의 검망 안에 갇히는 형세가 되었다.

반면, 정화의 비검은 보통의 목검(木劍)같이 보였지만, 민첩하고 초식의 변화가 다양했다.

비록 동전검의 검망에 갇혀있다고는 하나, 빈틈없이 수비하고 있는 것이 절대 열세에 처하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수시로 독사가 혀를 날름거리듯 공격하는 게 검망을 파하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동전검은 목검의 공격을 전부 막아냈다.

시간이 길어지자, 정화의 목검에서 발하던 붉은 빛이 점점 사라져갔고, 움직임도 처음보다 둔해졌다.

그에 표정이 굳어진 정화는 비검이 다시 효과를 발하도록 애썼지만, 열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백사형이 더 뛰어난 것 같군.’

멀리서 보던 심협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더 가까이 다가가서, 다른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춘추관 사람들의 대련을 이리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던지라, 어렵게 얻은 기회이니 놓치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정사형, 사형의 청타여목검(靑陀黎木劍)은 방금 완성한 것이니, 여기서 더 나아갔다가는 손상이 생길 수도 있소.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것이 어떠시오?”

백소천이 목검을 제압하고 있다가, 더는 압박하지 않으면서 입을 열었다.

이 말을 들은 정화는 분노의 눈빛을 번득이며 대련을 멈추지 않았다.

돌연 그는 낮게 일갈하더니, 두 손을 결인하여 검지(劍指)를 만들더니, 허공을 향해 뻗었다.

정화의 손끝에서 붉은 빛이 번득였고, 얼굴에도 똑같은 기이한 붉은 빛이 돌았다. 검망 안에 있던 목검에는 붉은 빛이 가득 차올랐는데, 마치 보약이라고 섭취한 것처럼 검광이 돌연 몇 배는 커졌다. 한참 더 커진 거대한 붉은 검은 대단한 위세를 떨치며 허공을 갈랐다.

이내 찢기는 소리와 함께, 동전검이 만든 검망에 그대로 큰 구멍이 뚫리고 말았다. 목검은 그 구멍으로 튀어 나가 조금의 멈춤도 없이 휙 소리를 내며 붉은 검영으로 화하더니, 곧바로 백소천의 얼굴을 향해 갔다.

순간 백소천의 표정이 굳었다. 대련 시 상대방의 비검이 자신의 몸 가까이 닿는 것은 금기였던 것이다. 그는 다급히 한 손으로 초식을 펼쳤다.

곧이어 동전검에도 빛이 가득 차오르더니, 지극히 빠른 속도로 백소천 곁으로 돌아와 순식간에 목검을 따라잡았다. 동전검의 검신(劍身)은 회전하며, 목검을 맴돌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쨍 소리가 크게 울리며 돌연 목검의 붉은 빛이 깨졌다. 붉은 빛은 여러 줄기의 미세한 검광으로 화하더니, 방향을 틀어 동전검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찢어질 듯한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동전검은 공격에서 밀려나 공중에서 연달아 공중제비를 돌았지만, 전혀 손상을 입지 않은 것 같았다.

정화는 이 광경을 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목검이 동전검을 쫓아가도록 하였다. 목검이 쏜살같이 움직이는 걸 보니, 분명 상대를 끝장내려는 듯했다.

하지만 이때, 요동치던 동전검이 돌연 움직임을 멈추더니, 공중에서 한 바퀴 선회하여 자신을 쫓아오고 있는 목검을 공격해갔다. 동전검의 이번 공격은 매우 절묘해서, 목검 중간 부분 가장 약한 곳을 정확히 적중했다.

쨍 하는 검의 울림과 함께, 목검의 붉은 검광이 반 이상 사라지고, 목검은 수 장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정화는 굳은 표정으로 연달아 체내의 법력을 이끌어 내고서야 겨우 검을 제대로 가눌 수 있었다. 얼굴이 한참 붉으락푸르락하던 그가 손을 들어 초식을 펼치자, 목검이 다시 돌아와 정화의 수중에 떨어졌다. 정화는 더는 공격하지 않았다.

백소천은 상대가 공격을 멈춘 것을 보고서 자신도 동전검을 거두었다.

“백사제의 어검(御劍)술 잘 배워가네. 그럼 이만 가보겠네!”

정화는 공수하며 인사하고 자리를 떴고, 몇 걸음 가다가 심협이 숨은 곳을 향해 곁눈질하며 코웃음 쳤다. 하지만, 가던 길을 계속 가더니 금방 저 멀리로 모습을 감추었다.

“심사제, 나오시게.”

백소천이 정화가 가는 것을 보고는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백사형, 당신들 귀가 너무 밝은 것 아니오? 그리 멀리 있었는데도 알아차리다니.”

심협이 저 멀리 나무 뒤에서 멋쩍게 웃으며 나왔다.

“방에서 쉬지 않고 어찌 여기까지 나왔는가?”

백소천은 심협이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것을 보며,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수련하다가 잘 풀리지 않는 부분이 있어 기분 전환하러 나왔는데, 예상치 못하게 사형의 대련을 맞닥뜨린 것이오.”

“자네 이제 막 소화양공에 입문하지 않았나? 어찌 풀리지 않는 부분이 생긴 겐가?”

백소천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사형도 자질이 떨어지는 사람이 소화양공을 수련하면 문제가 안 생길 리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오?”

심협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 뜻은 아니었네……. 그 이야기는 그만하고. 나와 함께 뒷산을 좀 거닐지 않겠나?”

백소천은 심협의 기분이 그리 좋지 않은 것을 알아채고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더니 돌연 제안했다.

심협도 물론 거절하지 않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나란히 숲속 깊이 들어갔다. 나지막한 관목 숲을 지나자, 잡초 속에 가려진 오솔길이 나왔다.

* * *

“방금 사형과 정사형이 대련할 때, 각자의 물건을 가지고 겨루던데. 동전검과 도목(*桃木 : 복숭아나무)검이 모두 위력이 상당하여, 너무도 쉽게 나무와 숲을 베었다오. 두 검은 분명 전설 속의 법기인 것이오?”

심협은 걸으며 백소천에게 물었다.

“자네, 이 장난감 말하는 겐가? 이게 무슨 법기라고.”

백소천은 고개를 저으며, 소매 안에 있던 동전검을 꺼내 심협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심협은 바로 받아들고,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동전검은 2척 정도 길이밖에 되지 않았지만, 꽤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보아하니, 약간 동녹이 슬어있는 81매의 옛날 동전을 붉은 끈으로 꿰어 엮어 만든 것 같았다.

동전의 양식은 모두 같았는데, 한 면에는 네모난 구멍을 둘러싸고 십이지신 도안이 새겨져 있었고, 다른 한 면에는 해서체(楷書體)로 ‘장명부귀(長命富貴)’라는 네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81매의 동전이 모두 구하기 어려운 옛 화전(花錢)이었다.

화전은 화폐처럼 관부에서 주조하기는 하나, 보통 팔거나 유통하지 않고 주로 사당 등에서 액땜하고 복을 부를 때 사용하였다.

화전을 일반 화폐처럼 많이 주조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진귀한 물건도 아닌데 이리 신통한 힘을 지닐 수가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동전을 꿰고 있는 붉은 줄에 다른 점이라도 있는 것인가?

심협은 호기심에 붉은 줄을 문질러 보고, 또 코에 갖다 대고 냄새도 맡아봤다. 붉은 줄에서는 옅은 주사 향이 느껴졌는데, 어떤 재질로 만든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백소천은 심협의 행동을 보고, 괜히 코를 만지작거리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고 있었다.

“됐네, 그리 살펴볼 것 없네. 핵심은 동전검에 있는 것이 아니니 말이야. 자네가 이걸 다 뜯어봐도 결론을 낼 수는 없을 것이네.”

백소천은 말을 마치자 심협에게서 동전검을 다시 가져가더니, 소매 안에서 황지로 쓴 부적을 꺼내어 칼자루에 붙였다.

백소천이 한 손으로 결인하며 나지막한 소리로 무어라 읊조리자, 순간 부적에 옅은 붉은 빛이 돌더니 검 전체를 감싸기 시작했다. 방금 정화와 대련할 때와 같은 상태가 된 것이다.

백소천이 두 손가락을 치켜세우자, 동전검은 미세하게 떨리더니 돌연 날아가 공중에서 한 바퀴 돌고는 심협과 백소천을 에워싸듯 돌며 날았다.

심협은 눈빛을 빛내며, 진심으로 백소천을 부러워했다.

백소천은 그저 시범을 보이려 했을 뿐,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려던 것은 아니었기에, 손을 흔들어 동전검을 거둬들이고 부적을 떼어 냈다.

“자네도 보았겠지. 이 동전검은 부적으로 효력을 발휘하는 것일세. 부적의 힘을 빌려 위력을 나타내는 것뿐이네. ‘부기(符器)’라고 불리는 가짜 법기일 뿐이지. 진정한 법기에 비하면 위력은 천지 차이일세.”

백소천은 동전검과 부적을 정리하며 설명해 주었다.

백소천이 심협에게 부기로 시범을 보이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동전검에 붙였던 부적은 함부로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을 심협도 잘 알고 있었다. 이는 춘추관의 규율이기도 했고, 또 백소천의 처세 원칙이기도 했던 것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넘어서는 안 됐다.

하여 심협은 이에 대해 전혀 서운해 하지 않았고, 오히려 백소천이 더 가깝게 지내고 싶은 훌륭한 벗이라고 생각했다.

“부기도 이렇게 신묘한데, 법기의 위력은 얼마나 대단할지 모르겠소.”

심협은 동경하는 마음으로 말했다.

“진정한 법기는 위력이 대단할 뿐 아니라, 사용자가 갖춰야 할 조건도 만만치 않네. 수련이 벽곡기(辟穀期)에는 이른 다음에 법기를 사용할 수 있지. 어찌 흔히 볼 수 있겠는가. 춘추관을 통틀어, 아마 장문인과 그 사숙조님만 법기를 가지고 계실 것이네. 아마 우리 사부님과 왕사백에게도 없을 것이야.”

백소천도 동경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장문인은 그렇다 치고, 그 사숙조님을 뵌 적이 있소?”

심협은 백소천의 말을 듣자, 호기심이 일어 물었다.

그 사숙조로 말할 것 같으면, 춘추관의 신기한 전설이라고 할 수 있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들어본 적은 있지만, 그를 실제로 봤다는 제자는 한 명도 없었기에 사숙조의 존재는 지극히 신비로웠다.

어떤 이들은 사숙조가 수백년을 살았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사숙조의 수련이 깊어 이미 신선이 되었다고 하고, 심지어 어떤 이들은 사숙조가 이미 세상을 떠났는데 춘추관이 명성을 드높이기 위해 숨기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심협은 내심 이 사숙조가 수명을 연장하여 지금까지 살아계신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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