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0화 (30/1,214)
  • 30화. 풍양진인(風陽眞人)

    반 시진이 조금 더 지나자, 심협은 뻐근함이 거의 사라진 것을 느끼고 운공을 마쳤다.

    그는 다시 옥침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어젯밤 꿈에서 겪은 일들이 머릿속에 계속 스치는 바람에, 정신을 제대로 집중할 수가 없었다.

    심협은 탁자 위에 있는 여러 서적들을 훑어보다가, 돌연 꿈에서 우혁이 언급한 우천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탁자로 가서는 서적들 사이에서 두꺼운 책 한 권을 꺼냈다. 바로 지역의 지리지였다.

    심협은 우혁이 언급한 송번현을 찾아냈다. 심협은 책에 있던 송번현의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만수하! 정말 만수하라는 강이 있었어!”

    심협은 눈빛을 빛내며 지도를 주시하고 있었다.

    지도대로라면, 만수하가 위치한 곳은 심협의 예상보다 더 가까운 곳으로 춘화현에서 약 200리(里)정도 거리밖에 되지 않았다.

    심협은 책을 내려놓고 생각에 잠겼다.

    “심사제.”

    바로 이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묵직하게 울리며 밖에서 누군가 심협을 불렀다.

    심협이 소리를 듣고 방문을 열자, 우람한 체격의 청년이 앞에 서 있었다. 바로 전철생이었다.

    “전사형, 사형의 청양수가 곧 대성에 이를 정도로 수련되었는데, 이 방문은 나무로 만든 것이라 사형이 두드리면 아마 그 충격을 못 버틸 것이오.”

    심협이 농담하며 인사했다.

    “심사제, 농담 마시게나. 내 자질이 부족하여 청양수를 십 년 더 수련한다고 해도 대성하기 어려울 걸세.”

    전철생은 자신이 입을 떼기도 전에 심협의 짓궂은 농담을 듣자,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형, 너무 겸손해 마시오. 혹시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소?”

    심협은 전철생을 방으로 들어오도록 청하며 물었다.

    “며칠 전 백사제에게 자네 몸이 편치 않다고 들었네. 오늘 아침 수련을 마치고 옥황전으로 갔는데 자네가 없더군. 자네 옆방을 쓰는 임사제도 자네가 오늘 아침에 방을 나서지 않았다고 하고. 그래서 자네를 보러 왔네. 역시나 자네 안색이 정말 좋지 않은 듯하군. 무슨 병이라도 난 겐가?”

    전철생은 심협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물었다.

    “전사형,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하오. 어젯밤 잠자리가 불편했던 것뿐이지, 별일 아니라오.”

    심협은 우선 옥침의 일을 다른 이에게 말하고 싶지 않아, 대충 둘러댔다.

    “별일 아니라니 다행이네. 자네 충분히 잘 쉬어야 하네. 절대 무리해선 안 되네.”

    전철생은 심협의 말을 진짜로 믿는 듯했다.

    “곧 점심시간인데, 같이 식사하러 하세나.”

    전철생이 시간을 보며 말했다.

    심협도 마침 허기가 느껴져, 전철생과 함께 재당으로 갔다.

    * * *

    “전사형, 사부님께서 출타하신지 며칠 되었는데, 혹시 언제쯤 돌아오시는지 알고 계시오?”

    심협은 몸 상태가 이미 회복되기는 했지만, 두 차례 꿈에서 깨고 났을 때의 몸 상태가 계속 걱정이 되었다.

    ‘사부님께선 분명 내 몸 상태를 알아차리실 수 있을 것이야.’

    심협은 자신의 몸 상태를 사부에게 확인하기 전까지 안심할 수가 없었다.

    “사부님께서 정원성(定遠城)에 있는 어느 부잣집에 귀신을 퇴치하러 가신 것이네. 거리가 멀지 않으니, 아마 곧 돌아오실 것이네. 사부님을 뵐 일이 있는 겐가?”

    “수련하면서 모르는 것이 있어, 사부님께 가르침을 청하려…….”

    심협은 나씨 도인이 곧 돌아온다는 말에 기뻐하며 대충 둘러댔다. 그런데 말하던 도중 갑자기 몸 안의 힘이 전부 사라졌고, 순간 눈앞이 아찔해지더니 뒤로 자빠지고 말았다.

    “심사제, 왜 그러나?”

    옆에 있던 전철생이 크게 놀라, 다급히 그를 안아들었다.

    심협의 온몸에선 경련이 그치지 않고 있었다. 체내에선 마치 큰 구멍이라도 난 듯, 심협의 생명력을 미친 듯이 빨아들이는 것만 같았다.

    지금 심협에게 느껴지는 고통은 꿈속에서 느껴지던 고통보다 더 강렬한 것이었다. 하지만 심협은 아무런 목소리도 낼 수가 없었으니, 실로 죽느니만 못했다.

    순간 눈앞의 모든 것이 빠르게 흐려지더니, 심협은 순식간에 모든 지각이 끝없는 어둠으로 빠져들며 기절하고 말았다.

    * * *

    얼마나 지났을까. 심협의 지각이 서서히 돌아오고 있었다. 몸 안에는 한 줄기 따뜻한 기운이 서서히 흐르는 것이 느껴졌는데, 너무도 편안히 느껴졌다. 심협은 서서히 눈을 떴다.

    그의 눈에 낯선 방의 천장이 들어왔다. 지붕 천장 중앙에는 커다랗게 ‘도(道)’자가 쓰여 있었다. 청색 꽃무늬가 ‘도’자를 에워싸고 있었으며, 꽃무늬 바깥에는 더 큰 자색의 네모난 틀이 있었다. 네모난 틀의 각진 모서리 4곳에는 청룡, 백호, 주작, 현무 등의 네 가지 상서로운 동물이 그려져 있었다.

    심협은 깨어나자마자 낯선 천장이 보이니, 잠시 어안이 벙벙해져,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심사제, 일어났는가?”

    이때, 한 사람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저 높이서 쳐다보는 사람은 바로 전철생이었다.

    “전사형, 내가 어찌 된 것이오?”

    심협은 전철생을 보자, 방금 전 일어났던 일들이 순식간에 떠올랐다. 그는 애써 몸을 일으켜 앉으려 했다.

    “움직이지 마라!”

    그때, 위엄 있는 목소리가 심협을 제지했다.

    심협이 고개를 돌려보니, 장대한 체격에 잿빛으로 머리가 센 노인이 옆에 서 있었다. 그는 검푸른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연화상청관(蓮花上淸冠)을 쓰고 있었다. 냉담한 표정에 두 눈썹이 비스듬히 아래로 드리워진 게 마치 목을 매달아 죽은 귀신처럼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장문인!”

    심협은 머리 센 노인의 얼굴을 보고 놀라, 그의 말대로 감히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그 머리가 센 노인이 바로 춘추관의 장문인, 풍양진인(風陽眞人)이었다.

    심협은 그제야 자신의 흉부에 풍양진인이 왼손을 모아 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의 손끝은 붉은 빛이 번득이고 있었는데, 한 줄기 난류가 그의 손끝을 통해 심협의 체내로 들어오고 있었다.

    심협은 갑자기 자신의 등허리에 찌르는 듯한 통증이 경미하게 느껴져 곁눈으로 살펴보니, 풍양진인이 오른손으로 붉은 빛이 번득이는 금침을 들어 자신의 등허리의 혈자리에 꽂는 것이 보였다.

    그러고 나서 바로 심협이 경악할만한 광경이 펼쳐졌다.

    심협의 허리와 배에는 이미 17,18개의 금침이 빽빽이 꽂혀있었는데, 모두 옅은 붉은 빛을 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심협은 풍양진인이 자신을 위해 침구(鍼灸) 비술을 시전하는 것을 알고, 감히 그를 방해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의 마음속엔 왠지 모를 걱정이 들었다.

    ‘내 몸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것인가? 됐다. 그런 생각 해봐야 소용도 없는 것을. 풍양진인께서 치료해 주고 계시니, 분명 호전될 것이야.’

    심협은 이리 생각하고 나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심협은 자신이 있는 곳이 꽤 넓다는 걸 알았다. 사방의 벽에는 하얀 칠이 되어 있었고, 별로 장식이 많지 않아 꽤 소박해 보였다.

    문 맞은편에는 드넓은 제사상이 놓여 있었다. 제사상에는 원시천존(元始天尊), 영보천존(靈寶天尊), 도덕천존(道德天尊) 세 신의 신위가 모셔져 있었는데, 장엄한 위엄이 느껴졌다.

    신위 앞에는 6개의 단향목 의자가 놓여 있었다. 좌우로 각각 3개씩 놓여있는 것이 회의할 때 쓰는 것 같았다. 지금 심협이 누워있는 나무 침상은 이곳의 좌측 벽에 붙어 놓여 있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놓여있지 않아 조금 휑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 때문인지 위엄이 느껴지기도 했다.

    심협은 이곳이 장문인이 사무를 보는 춘추관의 경정당(京靜堂)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 춘추관에 입관할 때 한번 와본 이후로, 줄곧 올 기회가 없었던 곳이었다.

    풍양진인은 심협이 사방을 둘러보는 것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침을 놓고 있었다. 이윽고 심협의 허리에 5, 6개의 금침이 더 놓였다.

    심협의 허리와 배에 점점 작열감이 퍼지더니, 곧 전신으로 퍼졌다. 이에 심협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편안함을 느꼈다.

    심협의 몸은 점점 회복되어 갔고, 백지장처럼 창백하던 얼굴도 혈색이 돌아왔다. 풍양진인은 심협의 안색을 살펴보더니 왼손을 거두고는 오른손을 허공에서 초식을 시전했다. 그러자 장심에서 붉은 빛이 비쳐 나왔다.

    곧이어 20여 개의 금침들이 뽑히는 소리와 함께 심협의 몸에서 튀어나와 풍양진인의 소매 안으로 들어갔다.

    “장문인, 감사합니다.”

    심협은 아직 몸에 기운이 없었지만, 억지로 몸을 일으켜 앉아 풍양진인에게 공수하여 예를 갖추며 말했다.

    “나(羅) 사제에게 네 몸이 좋지 않다고 듣기는 했다만, 이리도 몸이 약할 줄은 생각도 못했구나. 도대체 어떻게 수련한 것이냐? 고작 소화양공 좀 수련했다고, 공법(功法)이 역효과가 나게 되었다니. 네가 소화양공을 입문할 때까지 수련한 것만 해도 참으로 희한한 일이구나.”

    풍양진인은 심협을 살펴보며 말했다.

    “네? 공법(功法)이 역효과가 났다는 말씀입니까?”

    심협은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에,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장문인, 심사제의 몸 상태가 많이 심각합니까?”

    옆에 있던 전철생도 풍양진인의 말에 안색이 어두워지며 다급히 물었다.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맥이 다 흐트러져있고 원기의 손상도 심각한 걸 보니, 공법이 역효과를 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 확실하다!”

    풍양진인은 전철생을 보며 말했다.

    “심사제, 자네 수련하면서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사부에게 가르침을 청하지 그랬나. 그렇게 함부로 수련하면 안 되네. 체내의 원기는 그리 쉽게 회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네. 하…….”

    전철생은 발을 구르며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장문인, 원기가 손상되었다면 저의 수명에도 영향이 있습니까?”

    심협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억지로 혼란스러운 마음을 억누르며 풍양진인에게 물었다.

    * * *

    심협은 산속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어떻게 원기를 보충하여 수명을 연장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풍양진인의 대답과 자신의 추측을 종합해 본다면, 첫째로 보원단(保元丹)과 같은 원기를 보충할 수 있는 단약을 써야 했다. 물론 보원단보다 효과가 더 좋은 단약을 써야 했다. 두 번째로, 하루빨리 소화양공의 수련을 대성에 이른 후, 그 다음 단계의 공법을 수련해야 했다.

    이 두 가지는 분명 춘추관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다만 심협은 고작 기명제자가 될 때에도 집안에서 거금을 들여 겨우 입관했는데, 더 좋은 단약은 사재를 더 털어 거금을 지불한다고 해도 얻기 어려울 것 같았다.

    또한, 소화양공을 대성의 경지에 이르러 능숙해지도록 수련한다는 것은 자신의 자질로는 2년 이내에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심협은 사색에 잠겨 실행 가능한 방법을 생각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뒷산으로 오게 되었다.

    뒷산의 숲은 깊고 나무도 많았다. 숲은 푸른빛으로 가득했고, 귓가에는 여기저기서 울리는 벌레 우는소리가 들려와, 심협의 긴장되었던 마음도 조금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바로 이때, 앞에 있는 우거진 숲속에서 묵직한 굉음이 울려왔다. 아마 병기가 서로 맞부딪치는 소리 같았다.

    심협은 발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날카로운 소리를 동반한 굉음이 들려왔다.

    “무슨 일이지?”

    뒷산은 사람의 발길이 뜸한 곳이었다. 그런데 이런 소리가 나다니, 설마 누군가가 여기서 싸우는 것인가? 심협은 의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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