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29화 (29/1,214)

29화. 다시 돌아오다

거대한 구름 늑대가 고개를 숙이고 네 발을 허공에 구르더니, 사나운 기세로 선사들에게 달려들었다. 우혁 등의 선사들은 다급히 후퇴함과 동시에 불덩이와 번갯불로 구름 늑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폭발하는 굉음이 크게 울리며, 구름 늑대의 양 앞발과 머리가 폭발해 버렸다. 구름 늑대는 머리와 앞발을 잃은 기괴한 모습을 하고도 공격을 이어갔다.

구름 늑대의 몸에서는 보이지 않는 힘이 나오고 있었다. 산과 바다를 뒤엎을 만한 위세로 구름 늑대가 습격해오니, 앞에 있는 공기에도 파동이 일 정도였다.

모여 있던 선사들은 경악하며 다급히 흩어졌다. 구름 늑대는 체구가 워낙 거대해서 선사들만큼 민첩하지 못했기에, 선사들은 구름 늑대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때, 득의양양한 섬뜩한 웃음소리가 구름 속에서 퍼져 나오더니, 세 줄기 검은 선이 구름 속에서 발사되어 한 사람을 공격했다. 바로 우혁을 공격하려는 것이다.

검은 선은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가진 검은 지렁이였다. 온몸이 칠흑처럼 검은 것이 마치 검은 쇠처럼 보였다. 길이는 족히 3척은 되는 게 공중을 날 수도 있는 것이 분명 요사스러운 법술로 만들어낸 괴물인 것 같았다. 지렁이의 입과 발톱 사이에는 미세한 녹색의 빛이 번득이고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맹독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검은 지렁이들은 지극히 빠른 속도로, 눈 깜짝할 사이에 우혁의 바로 앞에 당도했다. 지렁이들은 각각 우혁의 목, 손, 발을 노리고 물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도 우혁은 아무 반응이 없어, 금방이라도 지렁이의 공격에 당할 것 같았다.

아래에 있던 심협은 이 광경에 낯빛이 변했다. 그의 옆에 있던 우몽도 몸을 떨며, 놀라 소리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때 공중에서 굉음이 한차례 울리더니, 검은 지렁이들이 순간 날려졌다. 그 모습에 심협과 우몽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우혁의 몸 주위에 나타난 붉은빛은 마치 계란 껍질 같은 보호막을 형성하며 우혁을 보호하고 있었다.

우혁의 손에는 언제부터 나타나 있었는지 모를 붉은색 작은 깃발이 들려 있었다. 우혁을 보호하고 있는 붉은빛은 그 붉은 깃발에서 나오고 있었다.

‘저 작은 깃발은 또 무슨 보물이란 말인가? 설마 전설 속의 법기(法器)란 말인가!’

심협이 눈을 반짝였다.

그는 춘추관에서 머무는 2년 동안, 각종 경로로 어렴풋이 수련에 대해서 조금 알 수 있었다. 그가 듣기론, 법기는 수련이 높은 자들이 연마해 만들어낸 보물로, 수련하는 자의 역량을 몇 배는 더 강화하여 발휘시켜주는 막대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심협이 법기로 보이는 우혁의 물건에 빠져 있는 동안, 흑랑왕의 습격을 막아낸 놀라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공중의 전세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방금 사방으로 흩어졌던 선사들이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는, 구름 늑대를 중간에 두고 원을 그리며 에워쌌던 것이다.

우혁 외에도 나머지 5인의 선사들도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붉은 깃발을 들고 있었는데, 깃발에서는 점멸을 반복하는 붉은빛이 발하고 있었다.

6개의 깃발은 서로 호응이 되는 것 같았다. 깃발들이 동시에 빛을 발하자, 발하는 붉은빛이 공중에서 교차하며 연결되더니 하나의 붉은 막을 형성했다.

검은 구름 늑대는 그 붉은 막 안에 있는 형세였다.

“법진(法陣)을 펼쳐라!”

붉은 막 안에 갇힌 구름 늑대는 마치 늪에 빠진 듯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안에서는 흑랑왕의 격노한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검은 구름의 표면에서 검은빛이 감돌며 미친 듯이 솟구치듯 움직였다. 마치 붉은 막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것 같았다. 검은 구름은 계속 붉은 막에 부딪치며 뒤흔들었다.

“어서 육합화진(六合火陣)을 펼치세. 절대 저놈이 도망가게 해서는 안 되네!”

6인의 선사 중 푸른 옷을 입은 노인이 크게 소리쳤다. 그는 말을 마치고 재빨리 두 손으로 결인했다.

나머지 5인의 선사들도 붉은 깃발을 향해 결인했다. 6개의 붉은 깃발이 발하는 붉은빛이 다시 빛나더니, 붉은 막 안에서 붉은 빛덩이가 떠오르며 안에서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푸른 옷의 노인이 수중의 깃발을 흔들더니, 붉은 빛덩이를 향해 공중에서 조준하였다.

그러자 한 줄기 붉은빛이 깃발 안에서 발사되더니, 붉은 막을 통과해 빛덩이에 녹아들었다. 나머지 5인도 동일한 동작을 취하자, 다섯 줄기의 붉은빛이 사방에서 날아들며 빛덩이로 흡수되었다.

붉은 빛덩이는 마치 대단한 보약이라도 섭취한 것처럼 크기가 몇 배는 더 커졌다. 그와 동시에 빛덩이는 천둥 같은 소리도 내고 있었다.

뒤이어 폭발음이 울리더니, 붉은 빛덩이가 폭발하며 붉은 화염으로 화하여 화력을 발사했다. 화염은 구름 늑대의 머리 부분을 공격하더니, 순식간에 구름 늑대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거대한 폭발음이 검은 구름 안에서 울리면서 처참한 비명소리도 함께 울려왔다.

* * *

그대로 폭발하여 해체된 구름 늑대는 무수히 많은 검은 기운으로 화하여 사방에 흩어지더니 붉은 막에 부딪쳤다.

격렬한 화염 공격을 마치고 나자, 6개의 깃발이 형성했던 붉은 막도 힘을 많이 소모한 것인지 빛이 꽤 어두워져 있었다.

이때, 무수히 많은 검은 기운이 맹렬이 충격을 가하자, 폭발음과 함께 붉은 막이 파괴되었다. 이에 6인의 선사들은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뒤로 날아갔다.

검은 기운은 계속 퍼지고 있었고, 그 속엔 열기 가득한 화염도 있었다.

아래쪽 땅에 있던 심협 등 사람들에게도 그 뜨거운 열기가 전해졌다. 얼굴이 후끈한 것이, 붉은 화염이 폭발했을 때 얼마나 뜨거웠는지 알 수 있었다.

검은 기운이 퍼지는 가운데, 그림자 하나가 멀리 도망치려는 것이 보였다. 그 그림자는 바로 흑랑왕이었다.

흑랑왕은 다시 늑대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한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몸의 반이 까맣게 탔고 왼쪽 팔이 보이지 않은 것이 분명 화염 속에서 팔을 잃은 것 같았다.

바로 이때, 각각 금빛과 은빛의 두 줄기 빛이 아래에서부터 위로 날아갔다. 바로 금빛, 은빛의 보검이었다. 뒤에도 긴 날을 달고 있는 보검은 용처럼 맹렬하면서도 번개처럼 빠르게 교차하며 흑랑왕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흑랑왕은 고개를 돌리고, 입속에서 주먹 크기의 눈부신 검붉은 빛을 발하는 구(球)를 내뱉었다. 흑랑왕이 뱉은 구는 두 보검에 부딪쳤다.

쾅 하는 굉음이 울리더니 거대한 폭풍이 몰려 와 두 보검을 날려버렸다. 그러나 검붉은 구에도 균열이 일었는지, 발하고 있던 빛이 반 이상 어두워졌다.

그 순간, 흑랑왕이 선혈을 토해냈다. 그의 두 다리는 검은빛이 번득이더니 늑대의 다리로 화하였다.

흑랑왕의 눈에 분노가 스쳤다. 그러나 시간을 더 지체할 수 없었던 흑랑왕은 검은 기운을 토해내, 그 검은 기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의 주변에서 요사스러운 검은 바람이 일더니, 바람의 속도가 빨라지며 순식간에 그는 저 멀리로 사라져버렸다.

성을 공격하던 회색 늑대와 검은 늑대들은 흑랑왕이 도망치는 것을 보고는, 순식간에 전의를 상실하여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다. 그들은 재빨리 성 밖 황야로 가 자취를 감추었다.

성벽 외측에서 두 사람의 그림자가 날아올랐다. 한 명은 붉은 옷을 입은 중년 사내였고, 한 명은 대머리 노인이었다.

심협은 두 사람을 알지 못했지만, 어제 낮 성벽 근처에서 본 적은 있었다.

그 두 사람은 분명 밖에서 매복하고 있다가 성벽 안의 선사들과 안팎으로 호응하여 흑랑왕을 사살하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흑랑왕은 도망치고 말았다.

그래도 흑랑왕이 중상을 입고 도망쳤고 늑대 무리도 격퇴했으니, 봉지성은 큰 위기를 넘긴 셈이었다.

심협은 광경을 지켜보며, 극도로 긴장되었던 마음이 조금은 풀어졌다.

그런데 긴장이 풀리고 나니, 쌓여있던 피로가 순식간에 폭발하면서 더 손을 써보기도 전에 눈앞이 캄캄해지며 인사불성이 되었다.

모든 것이 어렴풋한 가운데, 심협은 자신이 마치 기이한 곳에 떠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주위에는 모든 것이 오색찬란하면서도 이상하리만치 모호하여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심협은 손을 들어 눈을 비비고 싶었지만, 자신의 손발이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심협은 크게 놀라 소리치고 싶었지만, 조금의 소리도 낼 수가 없었다.

바로 이어서, 사지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무엇인지 모를 힘이 각기 다른 방향에서 자신을 잡아끌고 있는 것 같았다. 통증은 빠르게 사지에서부터 전신으로 퍼져갔다. 심협은 자신의 몸이 이 힘에 의해 여러 조각으로 찢길 것만 같았다.

심협은 몸부림치고 싶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아 그저 고통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주변의 모든 것이 돌연 거울처럼 깨지더니,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 * *

춘추관 제자의 방 안.

심협이 몸을 떨면서 맹렬히 눈을 떴다. 그의 머리는 땀에 가득 젖어 있었고, 가슴은 끊임없이 쿵쾅거렸으며, 입으로는 거칠게 숨을 쉬고 있었다.

익숙한 방 안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따스한 햇살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자신의 침상을 비추고 있었다. 환한 방안에는 평화로운 기운이 가득해, 꿈속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심협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펴봤다. 그는 꿈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온 것을 확인한 후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양손으로 침상을 짚고 몸을 일으켜 앉으려 했지만, 양팔에 극심한 뻐근함이 느껴지는 바람에 손에 힘이 풀려 다시 침상에 쓰러지고 말았다.

“다시 돌아왔어!”

심협은 조금 감격스러워하면서도, 감히 몸을 다시 움직이지 않고 눈을 감은 채 몸 상태를 가늠해봤다.

심협은 온몸에 양팔과 마찬가지로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체내에는 한기가 느껴지는 것이, 지난번 꿈에서 깼을 때보다 몸 상태가 더 좋지 않았다. 이에 심협은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어, 다급히 소화양공을 운공하여 몸을 회복시키려 하였다.

단전에서부터 양기가 일어나 흉부와 복부 사이에서 운공되자, 체내에 있던 한기가 조금 사그라들었다.

심협은 조금은 안심되었다가, 곧 무언가 생각난 듯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꿈속에서 그는 우혁의 사담주를 마시고 양기가 강해졌었는데, 지금 체내의 양기는 원래의 상태 그대로였던 것이다.

“역시, 꿈은 꿈일 뿐이었군.”

심협은 조금 실망한 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얼른 마음을 다잡고는 소화양공의 운공을 이어갔다. 소화양공으로 양기를 운공하자, 체내의 한기가 조금씩 사라지며, 뻐근했던 몸도 조금씩 회복었다. 그제야 심협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꿈속에서 겪은 기이한 경험이 너무도 사실 같았지만 갑작스러운 이변들을 연이어 겪으니, 심협은 어떻게 꿈을 꾸게 된 것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시 현실로 돌아왔고 마음도 차분해졌으니, 한 가지 문제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분명 그 옥침을 제자리에 돌려놨는데, 어떻게 또 기이한 꿈을 꾸게 된 것인가? 혹시 옥침을 둔 곳이 멀지 않아, 아직도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들자, 심협은 고개를 돌려 베개 옆쪽을 곁눈질로 보았다가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침상 위 베개 좌측에 감노란색 물체가 놓여있는 것이 아닌가! 바로 심협이 제자리에 돌려놓았던 기이한 옥침이었다.

심협은 이번엔 제대로 경악했다.

‘이 옥침이 돌아왔단 말인가?’

하지만, 기이하고도 너무도 사실적인 꿈을 두 번이나 꾸고 나니 심협의 마음가짐도 전과는 많이 달라졌는지, 그는 곧 침착한 상태로 돌아왔다.

“누군가 여기에 들어왔던 것인가?”

심협은 의심스러운 생각이 들어, 문과 창문 쪽을 바라봤다.

하지만, 문과 창문은 모두 잘 닫혀 있었고, 누군가 열었던 흔적도 없었다.

춘추관은 보통 도관과 달랐다. 의외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제자들의 방문과 창문을 모두 특별히 제작한 것이다. 상당히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이라 아예 부수는 것이 아닌 이상, 밖에서는 열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더구나 아무 기척 없이 들어온다는 것은 더욱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스스로 돌아왔단 말인가?”

심협은 몸에 전율을 느끼며, 점점 더 이 옥침이 기이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의 머릿속에서 무수히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지만, 바로 정리하기가 어려웠다. 하여 그는 아예 이 일을 잠시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다시 소화양공을 운공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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