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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27화 (27/1,214)
  • 27화. 모습을 숨기는 늑대

    심협과 우몽은 나란히 성문을 향해 질주했다. 그들은 금방 저잣거리까지 이르렀고, 계속 발걸음을 서둘러 성문으로 달려갔다.

    동래현의 주민들도 긴급 신호음을 들었는지, 많은 집에서 등불을 밝히고 있었다.

    성문을 지키다가 교대하여 집에서 쉬던 사람들도 하나 둘 뛰쳐나와 성문으로 향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20, 30명이 모여 다 같이 성문으로 향하게 되었다.

    성문으로 향하며 다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변에는 엄숙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성문으로 향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빨랐던지라 금방 성문 근처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그곳의 상황을 보고, 모든 이들은 순식간에 안색이 변하고 말았다.

    공중에 떠 있는 검은 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있으니, 숨 막힐 듯한 압도감이 전해져 왔다.

    검은 구름 위에는 장대한 사람이 서 있었는데, 바로 심협이 낮에 보았던 늑대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한 괴물이었다.

    그 괴물의 몸은 낮에 봤을 때보다 몇 배는 더 커져 있었다. 지금은 키가 7, 8장은 되는 무서운 모습이었다. 그 몸은 칠흑처럼 검게 변해 있었고, 가슴과 팔뚝에는 검붉은 털이 자라있었다. 검붉은 털 너머로 검붉은색 기이한 무늬가 어렴풋이 보였는데, 영문(靈紋)과는 확연히 다른 듯했다.

    우혁 등 여섯 명의 선사들은 검은 구름 맞은편에서 결인한 채 법술을 시전하고 있었다.

    번갯불, 불덩이, 검기가 선사들의 몸에서 나와, 비가 내리듯 빽빽하게 늑대 머리 괴물에게 향하고 있었다.

    이때, 늑대 머리 괴물이 두 손을 움직였다. 그러자 아래에 있던 검은 구름이 출렁이며 용솟음치더니, 마치 촉수 같은 수십 가닥의 검은 기운이 검은 구름에서 튀어나와 선사들이 시전한 법술을 상대했다.

    붉은 빛, 하얀 빛, 검은 빛……. 각종 빛깔의 빛이 공중에서 격렬히 충돌하고 있었다. 빛들이 매번 충돌할 때마다 똑바로 쳐다보기 힘들 만큼 눈부신 빛이 일어났고, 귀를 멀게 할 듯한 굉음도 함께 일어났다.

    아래 성벽 쪽에서도 서로 죽고 죽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성벽에 보초를 서던 장정들은 성벽을 타고 올라오는 회색 늑대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성벽 외측에서 또 수많은 회색 늑대들이 올라오고 있을 것 같았다.

    성벽 쪽은 그런대로 방어하고 있었으나, 성문 쪽은 상황이 심각했다.

    원래 지극히 견고해 보이던 성문이 반쯤 허물어져 있었던 것이다. 성문의 가장자리가 검게 변한 것이 무언가에 의해 부식된 것 같아 보였다.

    그 허물어진 성문의 구멍으로는 거대한 체구의 늑대들이 연이어 들어오고 있었는데, 성문으로 들어오는 늑대들은 모두 다 검은 늑대였다.

    이때는 이미 20, 30마리의 검은 늑대들이 성 안에 들어와 있었다. 성벽 안으로 진입한 검은 늑대들은 여기저기 달려들고 있었고, 성문 밖에서 검은 늑대들은 계속 성문의 구멍을 뚫고 들어오고 있었다.

    검은 늑대의 체구는 회색 늑대의 두 배가 되었기에, 힘도 회색 늑대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강했다. 이 검은 늑대는 사람 한두 명이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야간 보초를 서던 백여 명의 장정들이 성문 근처로 모여들었다. 다행히 성문을 지키던 장정들의 보호 장비가 성벽에 있던 장정들보다 잘 갖춰져 있는 편이었다. 모두 철제 갑옷을 입고, 손에 큰 방패를 들고 있었는데, 모여서 하나의 방어벽을 만들어 검은 늑대들을 필사적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성벽에 있던 장정들은 아래 성문 쪽 상황이 심각한 것을 보고는 창, 화살 등을 아래로 날렸다. 마치 비가 내리는 것처럼 창과 화살이 쏟아져 내리더니, 끊임없이 검은 늑대의 몸에 꽂혔다.

    심협은 이 상황을 지켜보다가, 순간 두려움이 일었다.

    검은 늑대들의 모습이 조금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눈은 붉은 핏빛을 하고, 악다문 이빨 사이로 침이 계속 흐르는 것이, 마치 실성한 상태 같았다. 몸에 창과 화살들이 꽂혀 있어 피가 솟구치는데도 전혀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주변의 장정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원래도 검은 늑대들의 전투력은 가공할만한 것이었는데, 지금은 돌연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미쳐 날뛰니 더욱 두려웠다.

    방어벽을 만들어 성문을 지키는 장정들이 꽤 있었지만, 저리 미쳐 날뛰는 검은 늑대들을 상대하는 건 점점 힘에 부치는 것이 금방이라도 다 무너질 것 같았다.

    * * *

    “죽여라! 성문을 지켜라!”

    이 상황을 본 우몽은 바로 팔을 휘두르며 크게 외쳤다. 그는 사람들을 이끌고 성문으로 향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이때, 커다란 검은 그림자가 갑자기 공중에서 바람을 일으키더니 떨어져 내려왔다.

    “얼른 흩어져!”

    우몽은 크게 외치며 왼쪽으로 뛰어올랐다.

    그 말에 심협은 오른쪽을 향해 다급히 몸을 굴려 피신하면서 동시에 소뢰부를 꺼내 손에 쥐었다.

    그 검은 그림자가 너무 빨라서인지 아직 많은 이들이 피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바탕 뼈 으스러지는 소리가 전해오더니, 검은 그림자에 깔린 이들이 피를 토해냈다. 그들은 비명 한번 지르지도 못한 채 정신을 잃었고,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 검은 그림자는 바로 검은 늑대였다. 땅에서 몸을 일으키는 검은 늑대는 앞발 하나가 부러져 기이한 각도로 몸에 걸려 있었다. 부러진 곳의 살가죽은 찢어져 있어, 허연 뼈가 어렴풋이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검은 늑대는 전혀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듯 뒷다리로 땅을 디디더니, 바로 사납게 근처의 사람들을 덮쳤다. 별로 둔해지지 않은 움직임이었다.

    늑대에 가장 가까이 있던 중년 사내는 결국 피하지 못하고, 늑대에게 목을 물리고 말았다.

    “아…….”

    처참한 비명소리가 퍼지는가 싶더니, 소리는 금방 멈추었다.

    검은 늑대의 입에서 선혈이 콸콸 쏟아지더니, 중년 사내의 몸부림도 멈추었다. 분명 목숨을 잃은 것 같았다.

    “이 짐승 놈!”

    우몽은 검은 늑대 근처에 있다가 이 광경을 보더니, 성난 표정으로 고함을 치며 달려들었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도 우몽이 달려드는 것을 보자, 함께 덤비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보던 검은 늑대의 벌건 눈에 난폭한 눈빛이 돌았다. 늑대는 곧바로 물고 있던 중년 사내를 날려 버리고, 거대한 앞발을 들어 사람들을 쓸어버렸다. 근처에 있던 두 사람은 그 발에 맞아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우몽은 상반신을 뒤로 젖혀 등이 거의 땅에 닿을 정도가 되어서야 늑대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그는 꿇어앉은 자세를 한 채 앞으로 빠르게 미끄러져 가더니, 순식간에 검은 늑대 바로 앞에 이르렀다.

    우몽이 오른팔을 휘두르자, 검은 장도가 순식간에 부채꼴의 검은빛으로 화하여 늑대의 아랫배를 찔렀다.

    검은 칼은 신기하리만치 날카로워, 가르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검은 늑대의 배에 깊은 상처를 내었는데, 선혈이 쏟아질 뿐 아니라 뱃속 장기까지 분명하게 드러나게 할 정도였다.

    별안간 중상을 입은 검은 늑대가 고개를 돌려 우몽에게 달려들었다.

    우몽은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선혈이 낭자한 늑대 입이 자신의 바로 앞에 나타난 것이 보였다. 갈고리처럼 날카로운 늑대 이빨이 얼굴을 덮쳐오자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다행히도 우몽은 무예가 뛰어났기에, 몸을 뒤로 굴려 늑대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몽이 한숨 돌리기도 전에, 늑대는 그를 향해 공중에서부터 바람을 가르며 앞발을 내리치고 있었다. 만일 저 앞발에 맞는다면, 우몽의 몸이 금속으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버틸 수 없을 터였다.

    지금 우몽은 힘을 많이 소모한지라 몸을 일으켜 피하지 못하고, 손으로 땅을 세차게 쳐서 그 힘을 이용해 몸을 옆으로 이동하여 공격을 피했다. 그러나 옆으로 몸을 피했어도, 속도가 그리 빠르지 못하여 여전히 늑대의 공격 사정권 안에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바로 이때, 강렬한 빛이 일더니 하얀 번갯불 한 줄기가 옆에서 비쳐왔다. 그 번갯불은 검은 늑대의 머리를 정확히 공격했다.

    곧이어 펑 하는 굉음이 울리더니, 검은 늑대의 머리가 폭발하며 사방에 선혈이 흩날렸다. 그 거대한 몸은 폭발에 날려졌다가 육중하게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는데, 다행히 아무도 없는 곳에 떨어져 늑대 시체에 깔린 이는 없었다.

    수 장(丈) 밖에서 심협은 부서진 부적을 들고 있다가, 천천히 내려놓는 중이었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검은 늑대가 이리도 빨리, 또 처참하게 죽어버린 것을 보고는 놀라 숨을 들이켰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수많은 눈빛이 심협에게 쏟아졌다.

    혼란스러워야 할 상황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몸을 일으키던 우몽도 얼굴에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상황이 위급하니 감사하다는 말 대신 심협을 향해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검은 장도를 들고 늑대와 사투를 벌이는 이들을 향해 달려갔다.

    이를 본 다른 이들도 잇달아 늑대와의 사투에 합류했다.

    심협은 들고 있던 부서진 부적을 버리고,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꽤 흥분된 상태였다. 이번이 처음으로 소뢰부의 효과를 발휘시킨 것이고, 진정한 의미의 부적을 써낸 것이기 때문이었다.

    예전처럼 선혈로 자신의 몸 위에 부적을 쓰고 운이 따라줄지 시험해보던 때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심협은 다시 늑대와의 사투가 벌어지는 현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는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은 장도를 쥐고 싸움에 합류하려 했지만, 몇 걸음 옮겼다가 돌연 발길을 멈추고 검은 늑대의 시체를 바라봤다.

    그가 자세히 살펴보고 또 그 옆을 살펴봤어도, 늑대 시체에서 이상한 점은 없었다.

    “눈이 침침해졌나…….”

    심협은 방금 무언가를 본 것 같았다.

    바로 이때, 이변이 발생했다!

    근처 허공에서 푸른 그림자가 스쳐 가더니, 회색 늑대와 비슷한 크기의 푸른 늑대가 아무런 기척도 없이 나타났던 것이다. 좁고 긴 늑대의 눈동자는 마치 사람처럼 교활함이 가득했다.

    심협은 크게 놀라, 몸을 굴려 피신하려 했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푸른 늑대의 움직임이 너무 빨라, 온몸의 털이 순식간에 곤두설 정도였다. 푸른 늑대의 배가 불룩 솟아오르게 한차례 포효하니, 1장(丈) 정도의 거대한 푸른 풍인(風刃)이 늑대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 풍인(風刃)은 휙 소리와 함께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순간 심협의 동공이 한번 수축했다. 심협은 갑자기 허리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고, 이내 온몸에 힘이 빠져 천천히 쓰러지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성문을 지키던 사람들도 푸른 풍인(風刃)에 의해 풀이 베어지듯이 잇달아 쓰러지기 시작했다.

    심협의 시야가 빠르게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의 눈에 들어온 마지막 장면은 무수히 많은 늑대 무리가 포효하며 성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곧바로 심협은 끝없는 암흑 속으로 빠져들었다.

    * * *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서로 죽고 죽이는 소리가 심협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는 아직 비몽사몽간이라 상황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 지금 들리는 이 소리들도 자신의 착각인 것 같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처참한 비명소리가 날카롭게 고막을 자극해 왔다. 비명소리는 들리는가 싶다가 바로 멈추었다.

    심협은 바로 정신을 차렸다. 그에겐 익숙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눈을 뜨자, 심협은 주변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성문 쪽에는 장정들이 검은 늑대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고, 성벽 위에는 회색 늑대를 방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또 부활한 것인가?”

    머릿속에 이 생각이 스치자마자, 심협은 자신의 손에 소뢰부 부적이 들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부적은 아직 사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의 앞쪽 근처에는 앞발이 부러진 검은 늑대가 물고 있던 중년 사내의 시체를 날려 버리고 있었다.

    상황을 모두 파악한 심협은 조금 어리둥절해졌다.

    이전에도 몇 번 죽었다 부활했지만 부활하면 항상 처음 꿈에 등장한 시점으로 돌아갔었는데, 이번에는 그전과 달랐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 된 일인지 생각해볼 때가 아니었다.

    하여 그는 재빨리 옷을 벗어, 땅에서 건조한 잿빛 흙들을 마구 집어 옷 안에 싸기 시작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심협의 행동을 보며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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