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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26화 (26/1,214)
  • 26화. 지름길을 엿보다

    우혁은 부적술에 꽤 조예가 깊었다. 되는대로 몇 마디 가르침을 줬을 뿐인데 그동안 이해하지 못하던 부분들이 거의 다 명확해지는 것이, 심협은 마치 머릿속에서 모든 것이 정리되는 것 같았다.

    우혁의 설명이 끝난 후, 심협은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방금 들은 가르침을 다시 되뇌어봤다.

    잠시 후, 눈을 뜬 심협은 돌연 백옥 붓으로 새로운 부적을 쓰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소뢰부가 생동감 넘치게 움직이는 붓을 따라 써졌다.

    우혁의 가르침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심협은 마음과 정신을 차분히 한 후, 정, 신, 기를 최대한 한 곳에 집중시켜 수중의 붓에서부터 부적 안에 주입시켰다.

    이번 소뢰부는 아주 잠깐 사이에 완성되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빈틈없이 매끄러운 것이 전혀 끊어진 느낌도 들지 않았다.

    심협이 손목을 한번 비틀자, 마지막 한 획이 날카로운 병기를 휘두른 듯 그려졌다. 늠름한 모양새가 마치 허공을 뚫고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때, 갑자기 소뢰부 전체가 미미하게 빛나더니, 금속음 같은 소리가 한번 울렸다. 소리는 잠시 뒤 사라졌고, 부적의 빛도 함께 자취를 감췄다.

    “잘했네. 한번 시험해보게.”

    웃으며 칭찬하던 우혁이 손을 한번 휘두르더니, 회백색의 작은 돌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바로 원석이었다.

    심협은 감사 인사를 올린 뒤 원석을 부적 위에 올려두고, 소화양공으로 원석을 힘을 이끌어 내 부적으로 주입시키기 시작했다.

    이미 여러 차례 연습을 거쳤기에, 심협은 원석의 힘을 이끌어내는 것에 꽤 익숙해져 있었다.

    이윽고 아주 가는 붉은 빛이 비치는가 싶더니 원석이 깨졌고, 부적의 표면에 백색광이 담기며 부적이 그대로 부서졌다.

    뒤이어 짝 소리와 함께, 공중에서 나타난 한 줄기 백색 번갯불은 그대로 날아가더니 앞에 있는 연못 속으로 떨어졌다.

    한바탕 하얀 물결이 치던 연못 속에서 물길이 1장 정도 높이로 치솟았고, 무수히 많은 물방울이 사방에 흩뿌려지기 시작했다. 심협의 얼굴에도 약간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물방울이 튀었다.

    하지만, 심협은 그 통증도 느껴지지 않는 듯, 주먹을 힘껏 쥐어 손톱이 살에 파고들 지경이 되어도 풀지 않은 채 흥분되는 마음을 겨우 억누르고 있었다.

    심협은 오늘에서야 첫 번째 부적 쓰는 방법을 터득했다. 게다가 그 부적은 공격력이 이리도 강한 것이었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이제 도법 수련에 한발 더 다가갔다는 것이다.

    “백부님의 가르침, 정말 감사합니다!”

    심협은 마음속 흥분을 겨우 가라앉히고, 우혁을 돌아보며 크게 예를 갖추었다.

    “별일도 아닌데 무엇을. 자네가 부적술에 대한 자질을 타고났으니, 하나만 알려주어도 바로 습득하는 것일세. 내 아들 놈이 자네 같은 자질을 타고났으면 얼마나 좋았겠나.”

    우혁은 손을 내저으며, 가벼운 탄식을 내뱉으며 말했다.

    “우대형은 무예에 조예가 깊지 않습니까. 저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심협은 지금 이 순간 우몽의 칭찬을 할 수밖에 없었다.

    “흥, 무예 좀 잘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 녀석이 단체공법(鍛體功法)도 익히질 못했는데. 녀석을 가르칠 수가 있어야지.”

    우혁은 발끈하며 콧방귀 뀌고 말했다.

    ‘단체공법이라니!’

    심협은 단체공법에 대해 더 알고 싶었지만, 우혁의 화난 표정을 보고는 눈치를 살피며 더 묻지를 못했다.

    “현질이 이러한 자질을 타고난 것도 큰 복일세. 하지만 안타깝게도 선조들께서 정하신 규칙이 있어, 부적술은 우리 집안사람에게만 전수할 수 있다네. 그렇지 않았다면 자네에게 더 알려줄 수도 있었을 텐데…….”

    우혁은 심협을 한번 바라보고, 껄껄 웃으며 말했다.

    심협은 더 많은 것을 배우려는 욕심이 없었지만, 그의 말을 들으니 실망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감사를 표했다.

    “백부님께서 특별히 가르침을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그저 제가 박복할 뿐이지요. 백부님의 부적술은 집안에서 전해 내려온 비전술이었군요!”

    심협은 호기심 어린 말투로 물었다.

    “그야 물론이지. 우리 우씨 집안의 법술은 천 년 전 명성이 자자했던 우천사(于天師)로부터 전해져 온 것이네. 당시 수련계에서 꽤 이름을 떨치셨던 분이지.”

    우혁은 이 일을 언급하며, 자신도 모르게 자랑스러운 표정이 드러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마겁일 이후, 우천사께서 요괴와 마(魔)를 막으려 싸우시다가 전사하셨지. 그래서 우리 집안에 법술이 전해 내려오기는 하나, 이미 많이 실전(失傳)되어 온전하게 전해온 것은 아니라네.

    이후 세월이 흐름에 따라 우리 집안에서 배출한 역대 고수들도 계속 잃게 되면서, 그 절세 법술들도 갈수록 더 실전되었다네. 지금 내 대(代)에 이르러서는 극히 일부분만 전수받게 되었는데, 그것도 부적술과 결합해야만 익힐 수 있는 것들만 남아 있지. 후손으로서 정말 조상들 뵐 면목이 없다네!”

    우혁은 말을 이어갈수록 비통해져, 또 술을 들이켰다.

    심협은 술김에 근심을 털어놓는 우혁을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사색에 잠겼다.

    ‘천년 전? 바로 자신이 실제로 살고 있는 시대 아닌가!’

    “태양도 빛이 어두워질 때가 있고, 달빛도 밝았다 어두웠다 반복하며, 달이 찰 때가 있으면 기울 때도 있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세상의 어느 집안이 한 번도 쇠락하지 않고 번영만 할 수 있겠습니까. 백부님께서는 신통력이 상당하시니, 앞으로 계속 수련에 정진하신다면 나중에 백부님의 조상들만큼 뛰어난 법력을 이뤄내실 것입니다.”

    사색에 빠져 있던 심협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우혁을 위로하며 말했다.

    “그건 자네 같은 애송이가 몰라서 하는 말일세. 내가 지니고 있는 이 정도 공력으로 수련한다고 뭘 얼마나 이룰 수 있겠나? 이리 오랫동안 수련했는데 말이야. 난 진작 알고 있었네, 대성을 이루려면 노력만으로는 소용이 없다는 것을…….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연(機緣)을 만나는 것이네.

    우리 조상님이신 우천사만 하더라도, 원래는 송번(松藩)현 외곽의 만수하(巒水河)라는 강 나룻배 사공이셨지. 그런데 조상님께서 복이 많은 분이시라, 우연히 ‘무명천서(無名天書)’라는 책을 얻어 수련을 시작해 신통한 경지에 이르신 걸세. 이렇듯 그런 기연을 만나지 못한다면, 아무리 목숨 걸고 노력해 봐야 결국 헛고생으로 끝나고 마는 것이네.”

    우혁은 또 술 한 잔을 들이켰다. 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걸 보니, 이미 술에 취한 것 같았다.

    “송번현 만수하…….”

    심협의 눈빛이 반짝였다.

    ‘송번현이라면 춘화현 부근 아닌가? 춘추관에서도 며칠 만에 도착할 거리에 있을 것이야.’

    심협은 만수하라는 강의 이름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았다.

    “우천사께서 출신이 평범하신데도 신통한 경지에 이르셨다니, 정말 하늘이 도우신 것입니다. 당시 우천사께서 어떤 우연한 기회를 만나셨는지, 백부님께선 구체적인 내용을 알고 계십니까?”

    심협은 우혁에게 술을 따르며 무심코 물었다.

    “자네, 무엇하려고 그리 자세히 묻는 겐가? 설마 그 장소에 가서 다시 찾아보려고? 소용없네. 우리 우씨 집안사람들이 대대로 얼마나 많이 가서 찾아봤는지 찾을 수 없었네. 이미 뒤질 대로 뒤져봤어.”

    우혁은 곁눈질로 심협을 바라보며, 껄껄 웃으며 말했다.

    “백부님께서 농담도 다 하십니다. 저는 그저 견문을 좀 넓히고 싶을 뿐입니다.”

    심협은 머리를 긁적이며 웃으며 말했다.

    “그게 벌써 천년 가까이 지난 일이니, 자네에게 이야기 못할 것도 없지. 다만 문중의 문헌에도 이 일에 관한 기록이 자세하지가 않네. 조상님의 말씀만 전해올 뿐이지.

    한 번은 송번현에 심한 홍수가 일어났는데, 만수하의 강이 물이 불어났다고 하더군. 조상님께서 나룻배를 운영하시던 곳이 마침 물길이 좁아지는 곳이라, 급류가 더욱 심하여 배도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갔다고 하네. 그러다가 강 중간의 돌무더기에 부딪쳐 배가 뒤집힐 뻔했는데, 기가 막히게도 뱃머리가 돌무더기 앞의 바위에 끼어 안 뒤집어졌다지 뭔가. 그러나 조상님께서는 그만 물에 빠지셨다네.

    그런데 조상님은 복이 많은 분이신지, 무사하셨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 일로 인해 돌무더기 아래에서 ‘무명천서’를 얻으셨다고 하더군. 조상님께서는 이때부터 수련의 길을 걸으셨다네.”

    차분히 말하는 우혁의 말투에는 부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런 것이었군요. 우천사께서는 정말 복과 기연이 남다른 분이신 듯합니다.”

    심협은 천천히 말하면서, 속으로는 머리를 굴리며 더 자세한 내용을 물으려 했다.

    그런데 이때, 고막을 찌를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오더니, 성문 쪽에서 불꽃 몇 개가 터지는 것이 보였다.

    “저게 무엇입니까?”

    심협은 하늘의 불꽃을 의식하며, 순간 놀라 몸을 일으켰다.

    “긴급 신호 불꽃이네! 그 늑대 무리가 밤을 틈 타 공격해 온 것이야!”

    순식간에 얼굴에서 취기가 싹 사라진 우혁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심협은 이 말을 듣자, 순간 두려움이 일었다.

    “현질은 어서 우몽을 깨워 성문에 지원 나가라고 전해주게. 그 늑대의 우두머리 요괴는 매우 교활하다네. 그 늑대 무리가 감히 야밤에 공격해온 건 단순히 혼란에 빠뜨릴 목적으로 온 것이 아닐 것이야.”

    우혁은 아주 빠르게 말하며, 이미 몸을 공중에 띄우기 시작했다. 그가 부적 하나를 꺼내 바스러뜨리자, 잿빛 구름이 우혁의 몸 아래에 떠올랐다. 구름은 우혁을 태우고 성문 방향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심협은 부러운 눈빛으로 우혁이 구름을 타고 날아가는 것을 바라봤다.

    그러다 우몽을 깨우러 가려는 순간, 심협의 시선이 탁자 위에 이르렀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탁자로 다가갔다.

    탁자 위엔 우혁이 방금 꺼냈던 술 단지, 붓, 부적 종이 등이 놓여 있었다. 우혁이 너무 급히 떠나느라 그대로 놔두고 간 것이다.

    “우대형, 늑대들이 성을 습격했다고 하오! 어서 일어나시오!”

    심협이 큰 소리로 외치자, 그의 목소리가 우부 안에 울려 퍼졌다.

    심협은 외치는 동시에 붓을 들어 빠르게 소뢰부를 써냈다.

    우몽이 무예를 하는 사람이라 청력이 남다를 것이라 생각한 그는 분명 우몽이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테니 직접 가서 깨우는 것보다 이렇게 소리치는 게 오히려 시간을 지체하지 않을 거라 여겼다.

    역시 심협이 말을 마치자마자, 누군가 빠르게 뛰어왔다. 바로 우몽이었다.

    그는 옷도 다 챙겨 입지 못했지만, 활과 장도 두 자루는 챙겨 나왔다.

    “정말인가? 늑대 무리가 성을 습격했다고?”

    우몽이 다급히 물었다.

    심협은 부적 쓰는 데에 집중하고 있었다. 부적은 거의 완성될 참이었다. 그가 손목을 한번 돌리자 부적의 마지막 획이 그려졌고, 부적 전체에서 어렴풋한 하얀 빛이 비치더니 바로 원래의 상태로 어두워졌다.

    “확실하오. 방금 백부님과 여기서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성문 쪽에서 긴급 신호 불꽃이 나타났소. 백부님께서는 이미 출발하셨고, 우리에게 얼른 지원 나오라고 하셨소.”

    심협은 부적이 완성된 것을 보고는 품 안에 집어넣으며 빠르게 말했다.

    “그럼 우리도 빨리 가세.”

    우몽은 수중의 장도 한 자루를 심협에서 건네주고 바로 뛰쳐나갔다.

    “우대형, 혹시 원석을 가지고 있소? 내게 하나 빌려주시오.”

    심협이 손을 뻗어 우몽을 막으며 물었다.

    심협은 원석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부적을 제대로 썼다고 하더라도 효과를 발휘시킬 수가 없었다.

    심협의 말을 이상하게 여기던 우몽은 방금 심협이 부적을 써낸 것을 떠올리고는 품 안을 뒤져 원석을 찾아 심협에게 던졌다. 심협은 바로 그 원석을 받아들었다.

    우몽은 도법을 수련하지 않았지만, 부친이 부적술에 능통하니 일반인이 부적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원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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