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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24화 (24/1,214)

24화. 마겁일(魔劫日)

“아버지, 오셨습니까.”

우몽은 급히 손을 거두고, 겸연쩍어하며 말했다.

“백부님, 방금 제가 우대형과 백부님의 서재에 들렀다가 책을 보는 바람에 조금 늦어졌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심협이 급히 일어나 예를 갖추며 말했다.

“심현질이 책 보러 갔었군. 내 서재에 들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는데 말이야. 거기서 얻은 것이 좀 있었나?”

우혁이 심협을 돌아보며, 조금 전과 완전히 다른 태도로 물었다.

“감사합니다, 백부님. 나름 얻은 것이 조금 있었습니다.”

심협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얻은 것이 있다면 되었네. 저 녀석은 하루 종일 쏘다니기만 해서 무식하고 재주도 없다네.

네가 심현질의 반만큼만 진득하게 앉아서 책을 좀 봤더라면, 이 아비의 능력을 하나도 못 배우진 않았을 것이다.”

우혁은 처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다가, 갑자기 우몽을 훈계하며 말했다.

“서재에 있는 책들은 아버지께서도 별로 안 보셨지 않습니까. 그저 장식으로 사 오신…….”

우몽은 코를 비비며,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이게 무슨 말버릇이냐!”

우혁이 식탁을 세게 치며 말했다.

그 모습에 우몽은 기가 죽어 감히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됐다. 이 이야기는 그만하자꾸나. 오늘 너희들 다 성을 지키느라 고생했다. 어서 먹거라.”

우혁은 아들이 기를 펴지 못하고 있는 걸 보면서도 여전히 완강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내 그는 한번 탄식하더니, 손을 휘둘러 심협과 우몽을 앉으라 한 뒤 수저를 들었다.

우몽은 반나절이나 격전을 치르고 나니 진작부터 배가 고픈 상태였다. 하여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리에 앉더니, 바로 마음껏 음식을 들기 시작했다.

심협도 배가 고프기는 했지만, 자신은 손님인지라 우몽처럼 편하게 식사할 수 없었다. 그런데 심협이 자리에 앉자마자, 우몽이 닭다리 하나를 찢어 심협의 밥그릇에 놓아줬다.

“자, 많이 들게! 잘 먹어야 힘내서 그 늑대들을 물리칠 것 아닌가!”

“그 늑대들이 다시 공격해올 수도 있소?”

순간 심협의 머릿속으로, 늑대 머리에 사람 몸을 한 괴물과 형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푸른 늑대가 스쳐지나갔다.

“예전의 상황으로 미루어볼 때, 늑대들이 쉽게 포기할 것 같지는 않네. 아버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몽은 입안에 음식이 가득한 상태로, 우혁에게 시선을 돌려 어물거리며 물었다.

“모르지. 관아에서 늑대들의 뒤를 캘 사람을 보냈다고는 하나 늑대 우두머리인 그 괴물이 갈수록 교활해지니, 한동안 그것들의 다음 계획을 알기가 어려울 듯하구나.”

우혁이 우려 섞인 눈빛을 하고 말했다.

“그렇다면 밤에 제가 성문을 지키고 있어야겠습니다. 늑대들이 또 쳐들어올지 모르니까요.”

우몽이 중간에 벌떡 일어서서 나가며 말했다.

“저도 같이 가서 우대형을 돕겠습니다.”

심협도 일어나며 말했다.

“그럴 것까진 없다. 너희는 며칠 동안 성을 지켰으니 피곤할 것 아니냐. 오늘 밤은 집에서 편히 쉬거라. 성문 보초를 교체하는 것은 관아의 지시에 따르면 된다.”

우혁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관아에서 계획이 나오면, 아버지께서 사전에 저에게 알려주십시오.”

우몽이 말했다.

우혁은 무어라 대답해 주지 않고, 손을 휘두르며 두 사람에게 다시 자리에 앉아 식사하도록 손짓했다.

“아버지, 오늘 제가 부적 종이와 주사를 사러 갔을 때, 재미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식사 자리에서 우몽은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말이 많았다. 우혁은 끊임없이 떠들어대고 있는 아들을 냉담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지만, 두 눈 깊은 곳에는 아들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었다.

심협도 가끔 한두 마디씩 거들어가며 식사를 했다.

이윽고 손님과 주인 모두 즐거웠던 식사가 거의 마무리되었다.

“이번 늑대들의 공격이 얼마나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심노제만 괜찮다면, 계속 우리 집에 머물러도 된다네.”

우몽이 웃으며 말했다.

심협은 우몽의 제안에 마음이 동했다. 어쨌거나 당분간 현실 세계로 돌아가긴 어려울 것이니, 이곳에서 지내는 것도 꽤 좋은 방법 같았던 것이다.

이곳에서 지낸다면 계속 자료를 찾아 기이한 꿈의 진상을 밝힐 수도 있을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우혁에게 부적술에 대한 가르침을 청할 수도 있었다.

“심현질은 어느 지역 사람인가?”

우혁은 수저를 내려놓고, 찻물을 한 모금 들이켜며 물었다.

“저는 등평 춘화현 사람입니다.”

심협은 거짓 없이 자신의 출신지를 밝혔다.

우혁은 아는 것이 많으니, 어쩌면 말투와 복장 등으로 그의 출신지를 예상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심협이 거짓말을 한다면, 금방 탄로 날 수도 있었다.

“등평의 춘화현? 그곳은 몇 해 전에 짐승 떼가 습격해 쑥대밭이 되었다고 들었는데.”

우몽이 의아해하며 말했다.

“내가 살았던 곳은 춘화현에서도 아주 외진 곳이라, 잠시 동안은 안전했었소.”

심협은 두루뭉술하게 얼버무렸다.

“지금 천하는 사방에 괴물과 마(魔)가 판을 치는데, 현질은 어째서 고향을 떠나 이곳까지 오게 되었나?”

우혁은 찻잔을 내려두고 계속 물었다.

“제가 사정이 있어 고향에서 나섰는데, 중간에 길을 잃어 떠돌다가 동래현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동래현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이런 상황을 만나게 되었지요.”

심협은 진작 생각해둔 이유를 들어 해명했다.

“자네는 운이 좋은 것이네. 살아서 동래현까지 올 수 있었다니……. 지금은 세상이 어지러워, 백성들은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지.

신선과 부처님께서는 얼른 강림하시어, 이 난세를 끝내고 백성들을 구해주시옵소서.”

심협의 자연스러운 대답을 듣고 잠시 일었던 의심이 사라졌던 우혁은 한 손을 몸 앞에 세우며 작은 목소리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우몽도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이 없는 것이, 마치 속으로 묵묵히 기도하는 것 같았다.

“백부님, 우대형. 제가 계속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왜 이리도 많은 늑대의 공격을 받은 것입니까?”

잠시 침묵하던 심협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수많은 짐승과 괴물들이 주기적으로 사람 사는 성을 공격하지. 여태까지 계속 그래왔지 않았나?”

우몽은 머리를 긁적이며,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사실 저는 그 늑대들이 어디서 온 것인지 궁금한 것입니다.”

심협은 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우혁 부자는 서로를 바라봤다가, 이상한 눈빛으로 심협을 바라봤다.

“심노제, 자네 ‘마(魔)의 기운이 하늘을 집어삼키고, 천화(*天火 : 하늘의 불)가 인간계에 떨어졌다’는 전설을 모르는가?”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전에 살던 마을이 너무도 외져서 오랜 기간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왔습니다. 하여 제가 세상 물정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심협이 차분하게 말했다.

“그런 것이었군. 어쩐지 자네가 입고 있던 옷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네.”

우몽은 순간 모든 것이 이해됐다는 듯 말했다.

“심현질이 세상일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하니, 처음부터 이야기해 주겠네.”

우혁은 잠시 침묵하다가 천천히 말했다.

“그럼 감사히 경청하겠습니다!”

심협이 답했다.

“수백 년 전, 요사스러운 절세(絶世)의 마(魔)가 해와 달과 천지를 집어삼켜, 인간계 전체가 암흑 속에 빠졌고 하늘은 흐느껴 울었지……. 그 후, 하늘에서는 불타는 운석이 무수히 많이 떨어져 온 세상을 뒤덮었다네. 그로 인해 인간의 사상도 엄청났었지. 이날을 우린 마겁일(魔劫日)이라 부르고 있다네.”

우혁은 탄식하며, 옛날 일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마겁일이요?”

심협의 눈빛이 궁금증으로 반짝였다.

“마겁일 이후, 인간계 전체가 크게 변했다네. 무수한 괴물과 마의 기운이 판을 치고, 살아있는 것이라면 마음대로 죽였지. 하지만, 신선과 부처님은 세상에 나타나지 않으셨다네.

처음에는 조정에서 각지의 괴물을 그런대로 막아냈지만, 그 괴물들이 해를 거듭할수록 더 강해지니 조정에서도 점점 어찌할 수가 없게 되었다네. 이제 수백 년이 지나고 나니, 조정은 그저 이름만 남아 있게 되었지.

지금은 대당의 각지, 심지어는 모든 남첨(南瞻) 지역까지도 크고 작은 세력들이 각자 뭉쳐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네.”

우혁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심협은 여기까지 듣고는 놀라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한참 지나서야 우혁의 말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사실 나도 어렸을 때 아버지께 들은 이야기일세. 직접 본 일은 아니지. 정말 일어날 수도 없는 일들이기는 하네.”

우몽이 턱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너 이 녀석, 만일 아비도 직접 목격했다면 네가 아직 살아 있었을 것 같으냐?”

우혁은 우몽의 머리를 때려 꾸짖으며 말했다.

하지만 우몽은 머리를 움츠려 교묘히 아버지의 손을 피하더니, 억지웃음을 짓고는 감히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백부님, 마겁일이 수백 년 전이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언제입니까?”

심협이 다시 물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모든 서적들에 마겁일의 구체적인 시점은 제대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네. 조정의 역사서도 마찬가지지.”

우혁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이미 이리도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 그 괴물들을 소탕할 방법이 없었단 말입니까?”

심협은 참지 못하고 또 질문했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방법이 없네. 어쩌면 잃어버린 신선과 부처님들은 가능할지도 모르지. 천하의 백성들은 괴물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데, 도대체 언제쯤에나 신선과 부처님이 다시 세상에 강림해 주실지 모르겠네.”

우혁이 탄식하며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우몽도 숙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심협은 묵묵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 *

밤늦은 시각, 만물이 정적을 유지하고 있을 때.

달빛이 창문을 뚫고 나와, 우부의 곁채 한곳을 비추고 있었다.

방 안에는 심협이 침상에 누워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우몽의 코 고는 소리가 어렴풋이 전해져 왔다. 누구라도 우몽이 깊이 숙면을 취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심협은 계속 잠을 못 이루고 있었다. 우몽의 코 고는 소리 때문이 아니라, 우혁이 식사를 마치고 해 준 이야기 때문이었다.

심협은 아직 그가 꿈속에서 천년 후 세상으로 온 것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미래의 일을 미리 알고 있다고 해도 충분히 신기할 텐데, 직접 미래의 세상으로 왔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었던 것이다.

만일 진짜라면, 미래의 세상은 각종 고난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일반 백성들에겐 편안히 밥 먹는 것조차 사치인 세상이었다. 게다가 우혁처럼 법력이 뛰어난 선사조차 이 상황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니…….

그나마 심협에게 조금 위안이 되는 것이 있다면, 마겁일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기보다 한참 뒤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다. 아마 그는 마겁일까지 살아 있을 가능성이 없었다.

심협은 머릿속에 각종 잡념이 떠올라, 다시 침상에 누워 봐도 잠이 오지 않았다. 결국 그는 아예 일어나 앉더니, 옷을 걸치고 어둠 속에서 잠시 정좌를 한 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희고 깨끗한 달이 걸려 있는 하늘에는 옅은 검은 안개가 날리고 있었는데, 마치 마겁처럼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심협은 검은 안개를 주시하고 있다가, 시선을 돌려 바깥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잠시 후, 심협은 작은 연못에 이르렀다. 연못 주위에는 하얀 큰 돌이 꽤 많이 놓여 있었다. 하얀 돌은 달빛이 비쳐오자, 옅은 빛을 반사해내고 있었다.

청량한 밤바람이 촉촉한 습기를 머금은 채 얼굴에 불어왔다. 심협은 그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마음속 근심까지 줄어들지는 않았다.

마겁은 마치 무거운 돌덩이처럼 답답하게 심협의 마음을 누르고 있었다. 심지어 숨이 막힐 것 같은 답답함을 동반하고 있어, 심협은 지금 뭐라도 할 만한 것을 찾아 이 답답함을 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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