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23화 (23/1,214)
  • 23화. 한 번의 꿈에 천년의 시간이…….

    두 사람은 뒤편의 별채로 갔다. 우몽은 목욕하러 갔고, 심협은 소순자의 안내를 받아 옆에 있는 방으로 갔다. 그곳에는 이미 따뜻한 물이 가득 담긴 목욕통이 준비되어 있었다.

    소순자는 손에 가죽 주머니 하나를 들고 있다가, 안에 들어있던 담녹색 액체를 목욕물에 따랐다. 그러자 목욕물은 순식간에 담녹색으로 변해버렸다.

    “이것은 저희 나리께서 배합하진 약물입니다. 이것으로 목욕하면 몸에 매우 좋다고 합니다. 저희 도련님께서 분부하신 것입니다.”

    소순자는 심협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설명했다.

    “수고했네.”

    심협은 차분히 말했지만, 속으로는 이 약물이 너무도 신기했다.

    “심공자님, 우부에는 시녀가 소화(小花) 한 명 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도련님 목욕 시중을 들고 있는데, 심공자님께서 시녀가 필요하시다면 잠시 기다리시지요. 도련님께서 금방 목욕을 마치실 것입니다.”

    소순자가 물었다.

    “괜찮네. 내가 직접 하면 되네.”

    그에 심협이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소순자는 “네.” 하고 대답하더니, 깨끗한 옷을 한쪽에 놓아두고 물러갔다.

    심협은 옷을 벗고 목욕통에 들어갔다. 그는 몸을 씻으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전에 발생했던 일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번 꿈에서 등장한 지역과 처음 꿈에서 등장한 산촌이 전혀 다르기는 하지만, 두 지역이 서로 관련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관련이 어떤 것인지는 아직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심협은 계속 머리를 굴리면서도 몸 씻는 동작을 멈추지 않았기에, 금방 목욕을 마치고 나서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었다.

    거울에 모습을 비추자, 심협은 피부가 뽀얀 것이 자신의 용모가 준수하게만 보였다. 마치 난세 속의 미남 같이 현실 속 자신보다는 더 총기 있어 보였다. 뿐만 아니라, 체내에 있던 피로도 순식간에 사라져 정신이 상쾌해진 것 같았다.

    심협은 소순자가 목욕물에 따랐던 약물을 떠올렸다. 아마 그 약물의 효과를 본 것 같았다.

    * * *

    “와, 전에는 미처 몰랐었는데, 심노제 인물이 이리도 준수했나? 앞으로 조심해야 하네. 요즘 세상엔 사내가 적고 여인이 많으니, 자네가 밖에 나가면 얼마나 많은 아가씨들이 자네를 따라다닐지 모르네.”

    심협이 방을 나섰을 때, 우몽은 이미 밖에 나와 있었다. 그는 심협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면서 껄껄 웃으며 말했다.

    심협도 함께 웃어 보이며, 우몽의 농담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저녁 식사는 아직 조금 기다려야 하네. 내 우리 집을 구경시켜주겠네. 가세나.”

    우몽은 심협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다짜고짜 바깥쪽으로 데리고 갔다.

    이곳은 선사의 거처였던지라,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던 심협은 이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 * *

    우부는 족히 반경이 수백장은 될 만큼 면적이 컸다. 가옥이 열몇 칸이나 있었고, 규모가 큰 화원과 큰 연못도 있었다. 전반적으로 오래된 감은 있었지만, 조경이 꽤 잘되어 있었다.

    그리고 꽤 큰 면적의 연무장도 있었다. 연무장에는 칼, 창, 검 등 수많은 병기도 갖춰져 있었다.

    손님 접대를 좋아했던 우몽은 심협을 데리고 집안 전체를 돌아다니며, 입으로 끊임없이 소개를 해주었다.

    “우대형, 저곳은 꽤 특별해 보이는데, 어떤 곳이오?”

    심협은 연못 옆에 홀로 지어져있는 고풍스러운 누각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기는 아버지의 서재라네. 내가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동래현 전체에서 아버지 서재에 있는 장서가 제일 많다네. 가세나, 내 자네에게 구경시켜주겠네. 어쩌면 자네가 좋아하는 책이 있을지도 모르지.”

    우몽이 스스로 가슴팍을 탁 치며 말했다.

    “그건 곤란하지 않겠소?”

    심협은 주저하며 말했다.

    “괜찮네, 구경하는 것뿐인데. 평소에 아버지께서 나한테 서재에 가라고 하시지만,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네.”

    우몽은 전혀 개의치 않으며, 심협을 이끌고 서재로 들어갔다.

    우몽이 이렇게 나오니, 심협도 따라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 * *

    서재는 약 50보 평방(*한 변이 50보 정도의 정사각형 면적) 정도로, 면적이 꽤 되었다. 벽마다 사람 키만 한 서가가 놓여 있었고, 서가에는 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중앙에는 팔보정상 탁자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백옥 문진(文鎭)에 녹옥 필통, 1척 평방 정도의 흑석 벼루가 놓여 있었는데, 모든 것이 고급스러운 물건이었다.

    “이리도 장서가 많다니, 우백부님께서는 정말 여러 서적을 다양하게 읽으셔서 학문에 조예가 깊으시겠소. 어쩐지 부적술도 그리 정통한 경지에 이르셨더니…….”

    심협이 칭찬의 말을 했다.

    “뭐 그렇다고 할 수는 있겠네.”

    그러나 우몽은 오히려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심협은 곁눈질로 우몽의 표정 변화를 살핀 후 살며시 웃고는 서가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서재 안의 서적은 종류가 굉장히 많아, 춘추관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무런 분류도 되지 않은 채 아무렇게나 꽂혀있는 것이 마치 졸부가 서적을 대량으로 사들여 고상한 척하느라 장식해놓은 것 같아 보였다.

    심협은 순간 우혁의 졸부 같은 차림새가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심협은 바로 서가에서 지리지를 꺼내 들었다. 이 꿈속 세상이 자신이 있는 세상과 너무도 달랐기에, 그는 자신이 대당의 경내에 있기는 한 것인지 의심이 든 나머지 상황을 이해하기 가장 쉬운 지리지를 꺼낸 것이다.

    “등운주, 청주, 적수……. 동래현.”

    익숙한 지명들을 보고 있자니, 심협은 마음속 의문이 더 커졌다. 그는 지리지를 한바탕 뒤지더니, 바로 동래현의 위치를 찾아냈다. 동래현은 춘화현과 거리가 꽤 먼 것이, 여러 지역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이것은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것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지리적 위치는 다 맞아. 여기가 바로 그 동래현이야.’

    심협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춘추관과 거리가 그리도 먼데, 내가 어떻게 여기로 왔단 말인가?’

    “어!”

    심협은 놀라 외마디 감탄사를 뱉으면서도 지리지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춘화현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던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지리지의 기록이 조금 다르다는 걸 알아챈 것이다.

    예를 들면, 춘화현에 있는 ‘백련하’라는 강은 그가 기억하고 있는 한 계속 이름이 바뀌지 않았다. 이곳은 그가 어렸을 때에 자주 가서 놀기도 했던 곳이기도 한데, 이 책에서는 왜 ‘옥박하’라고 기재되어 있는 것일까?

    그 외에도 춘화현의 동편에 ‘천평현’이라는 지역이 있는데, 그도 여러 차례 왕래한 곳이었다. 그런데 지리지에는 왜 ‘풍요현’이라고 기재되어 있는 것일까?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심협은 속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심노제, 지리지에 관심이 있나? 지리지에 뭐 볼만한 게 있나? 지금 세상에 조정도 이미 관여하지 않는 것을. 그 지리지도 광화(光化) 20년에 발간한 것이라, 이미 발간한지 100년도 더 지난 것이네. 그것보다 이 도보(刀譜) 한번 보는 게 어떠한가?”

    우몽은 심협 수중의 책을 곁눈질로 한번 보더니, 고개를 내젓고는 바로 파란색 표지의 얇은 책을 건넸다.

    심협은 대답하고 지리지를 내려둔 후, 도보를 건네받다가 순간 동작이 굳어버렸다.

    “우대형, 방금이 책이 언제 발간됐다고 하셨소?”

    심협이 다시 지리지를 집어 들고, 우몽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물었다.

    “광화 20년일세. 책 뒤에 나와 있는 발간 일자를 확인해보게나. 왜 그러나?”

    우몽은 그 지리지의 뒤편을 가리키며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심협은 급히 지리지를 뒤집어 뒤편을 보니, 역시 ‘광화 20년 간인’이라는 글자가 있었다. 순간 그 자리에서 멍해진 심협은 수중의 책 두 권을 모두 내려놓고, 빠르게 서가 곳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심노제, 지금 뭘 찾는 겐가? 내가 같이 찾아주는 게 어떠한가?”

    우몽이 당황해하며 물었다.

    심협은 그를 상대도 하지 않고 계속 서가 곳곳을 뒤지다가, 잠시 후 뒤지는 것을 멈췄다. 그의 손에는 두꺼운 황력(皇曆)이 들려 있었다.

    “자네 황력을 찾고 있었던 겐가? 이건 찾아서 무엇 하려는 것인가?”

    우몽은 웃으며 다가와서 물었다.

    심협은 심각한 표정으로, 황력의 마지막 장부터 앞으로 책장을 거칠게 넘겼다. 그렇게 절반 정도를 넘기고 나서야 그의 손이 멈추었다.

    심협이 멈춘 곳에는 개원(開元) 29년이 기록되어 있었다.

    심협은 그 책장을 보고 있자니, 머릿속에 폭풍이 이는 것 같았다.

    개원 29년, 그것은 바로 그가 살고 있는 시기였다. 이 황력대로라면, 우몽이 말한 광화 20년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기에서 거의 천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렇다면 내가 꿈속에서 천년 뒤 미래로 온 것인가?’

    심협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지리지 상의 지명 변화, 건축 양식, 복식과 외모 등의 현격한 차이가 모두 자연스럽게 설명되었다.

    심협의 표정 변화를 본 우몽은 어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어 뒤통수만 긁으며 무어라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도련님, 저녁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나리께서 심공자님과 함께 오라고 하십니다.”

    이때, 소순자가 서재 문 앞으로 와서 소리쳤다.

    “알겠다. 심공자와 곧 가겠다.”

    우몽은 몸을 돌려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내가 순간 떠오르는 일이 있어서 황력을 좀 찾아봤는데, 시간이 지체된 모양이오.”

    심협은 평정심을 되찾더니, 황력을 내려두고 조금 미안한 기색으로 말했다.

    “미안하다니, 자네가 차분하게 책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부럽기만 하네. 아버지께서 줄곧 내게 책 읽고 부적 쓰라고 강요하시지만, 나는 태생이 거친 사람이라 무술만 좋아하거든. 내가 만일 자네 같은 취향이었다면, 어릴 때부터 이렇게 고생하지 않고 지냈을 거야.”

    우몽이 쾌활히 웃으며 말했다. 심협은 따라 웃기만 할 뿐, 무어라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됐네, 그럼 이제 이 얘기는 그만하자고. 오늘 하루 종일 사투를 벌였으니, 가서 제대로 배를 채워야겠네. 아버지께서 자네를 마음에 들어 하시니, 분명 맛있는 음식이 많을 것이네.”

    우몽은 양손을 비비며 말했다.

    심협은 책들을 원래 자리에 다시 꽂아 두고, 우몽의 재촉을 받으며 서재를 나섰다.

    * * *

    심협은 우몽의 안내를 받아 식당에 도착했다.

    “식탁에 닭고기가 오르다니! 심노제, 내가 자네 덕에 배에 기름칠 좀 하게 됐네.”

    우몽은 식탁에 오른 음식들을 보자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차려진 음식들은 대부분이 채소로 만든 것이었지만, 고기 요리도 세 가지가 올라와 있었다. 두 가지는 검은 고깃덩어리로 만든 것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닭 한 마리를 통째로 양념해 구운 것이었다.

    그러나 심협에게 이 음식들은 평범한 수준이었다. 춘화현에서 지낼 때, 대충 한 끼 때운다고 해도 상차림이 지금 우부의 식탁에 비해 훨씬 풍성했던 것이다.

    ‘이 시대 사람들의 식사는 이리도 부실하다니!’

    이때, 우몽은 참을 수 없는 듯 닭다리에 손을 뻗고 있었다.

    “이놈 자식! 손님이 아직 수저도 안 들었는데 먼저 먹으려 하다니. 게다가 손으로 음식을 들겠다고? 이게 어디서 배운 버릇이냐? 네가 미개한 지역의 야만인이라도 되는 줄 아느냐?”

    냉소적인 목소리가 옆에서 전해지더니, 우혁이 옆에 있는 방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의 얼굴에는 노여움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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