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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22화 (22/1,214)
  • 22화. 그 사람이라니

    심랍은 우부 앞에서 주변 환경을 살펴보며 기다리고 있으니, 전혀 무료하지 않았다.

    잠시 후, 우몽이 눈시울이 붉어진 채 돌아왔다.

    “심노제, 오래 기다렸네. 들어가세. 날 따라 들어오게나.”

    우몽은 미안한 듯 말하며 대문을 두드렸다.

    “도련님, 돌아오셨습니까?”

    중후한 대문이 끼익, 열리더니, 약 15, 16세 정도 되는 통통한 사내가 만면에 웃음을 띠며 맞이했다. 그는 뒤에 있는 심협을 발견하더니 의아한 눈빛을 보였지만, 신중하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돌아오셨느냐?”

    우몽은 평온해진 표정으로 물었다.

    “나리께서는 돌아오셨습니다. 지금 내실에 계십니다.”

    통통한 사내는 바로 시선을 옮기며 대답했다.

    “이분은 내가 조금 전 사귄 심협 형제일세. 소순자, 우선 별채를 정리하거라.”

    우몽은 그 통통한 사내에게 분부하고, 심협을 데리고 대문을 들어서 내원(內院) 방향으로 갔다.

    * * *

    우부 저택은 꽤 장관이었다. 삼진(三進) 구조로 넓게 지어진 것이 가옥의 배치도 잘 되어있고, 처마 끝도 정교하게 솟아있었으며, 담도 높게 지어져 있었다.

    하지만, 조금 이상한 것은 이렇게 큰 저택에 시종이 전혀 보이지 않아 꽤 쓸쓸해 보인다는 것이다. 대문을 들어서 지금까지 걸어오며, 심협은 시종이라고는 소순자 한 명 밖에 볼 수가 없었다.

    심협의 춘화현 집도 우부에 비해 손색이 없었지만, 그의 집에는 그래도 꽤 많은 남녀 시종을 두고 있었다.

    집안을 한참 들어와서, 두 사람은 드넓은 대청에 이르렀다. 바닥은 커다란 청록빛 청석(靑石)들로 깔려있어, 거울처럼 반들반들하고 쇠처럼 견고했다. 탁자와 의자는 모두 짙은 색 자단목(紫檀木)으로 만든 것이었다. 좌우 양측 벽에는 골동품들이 놓여 있었는데, 꽤 호화스럽게 배치되어 있었다.

    다만 대청 제일 안쪽, 조각이 새겨진 병풍 앞에 큰 조각상이 놓여 있었다. 조각되어 있는 인물은 도가에서 모시는 삼청육어(三淸六御)나 오방오로(五方五老) 같은 신이 아닌, 붓을 든 중년 문인이었다. 문인 조각상은 긴 수염을 가슴까지 기르고 있었는데, 꽤 기품 있는 모습이었다.

    조각상 앞에는 향 피우는 상이 놓여 있었는데, 상에는 각종 향, 초, 제물 등이 가득 올려져 있었고, 향 피우는 연기도 피어올랐다.

    조각상과 향 피우는 상은 대청의 호화스러운 배치와 어울리지 않았다. 이도 저도 아닌 것이, 익살맞아 보이기까지 했다.

    대청 안을 보고 있던 심협은 자신도 모르게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심협의 집도 춘화현에서 부유한 집안이었기에, 그는 부유한 자들이 겉치레와 체면을 가장 중시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부유한 집에서는 손님맞이하는 대청을 구석구석 신경 써서 배치하지. 그런데 지금 이곳은 어떻게 이런 배치를 할 수 있는 거지?’

    심협이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심노제에게 부끄러운 꼴을 보였군. 아버지께서 도를 공부하시는 분이라, 모든 일을 마음대로 하신다네. 집안의 배치도 조금 특이할 것이야.”

    우몽은 심협의 표정을 보고 웃으며 설명했다. 이 대청의 배치를 심협만 이상하게 생각한 게 아닌 것 같았다.

    “부끄럽다니요. 우백부님께서 격식에 구애받지 않으시니, 이것이야말로 대가의 품격 아니겠소? 우백부님께서 지금 시간 여유가 나실 것 같소? 가서 인사드리고 싶소.”

    심협이 웃으며 말했다.

    지금 그는 대청을 도관처럼 만들어 둔 사람에게 오히려 흥미가 생긴 상태였다.

    “사실 자네도 아까 뵈었었네.”

    우몽은 눈을 깜빡이며 속삭이듯 말했다. 심협은 의아해하며, 자세히 물으려 했다.

    “몽아, 너 이 녀석 어디 가서 딴청을 피우다가 이제 돌아온 것이냐? 네가 오기까지 한참을 기다렸다! 내가 사 오라고 한 것들은 다 사 온 게냐?”

    조금 나이 든 듯한 목소리가 밖에서 울려오더니, 이내 작고 뚱뚱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심협은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사람이라니!’

    나타난 사람은 늑대들과 사투를 벌일 때 나타났던 선사들 중 금색 비단옷을 입은 작고 뚱뚱한 노인이었다. 바로 우몽을 구했던 그 사람이었다.

    술이 담긴 주홍색 호리병을 든 노인의 얼굴은 벌게져 있었는데, 눈이 풀려있는 것이 약간 취해있는 것 같았다. 지금의 모습은 그저 평범한 술 좋아하는 노인 같아 보였다. 하늘 높은 곳에서 신기한 도술을 부리던 선사의 풍모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네, 샀습니다! 최상급 학정(鶴頂) 주사입니다. 그리고 여기 청상지(靑霜紙)도 있습니다.”

    우몽은 순간 얼굴에 웃음기를 싹 거두고, 품속에서 급히 밥그릇 크기의 옥병, 그리고 청색 종이 한 뭉치를 꺼내어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아버지에게 전달했다.

    우몽의 표정은 조금 긴장되어 보였다. 그는 양손 사이로 노인을 슬그머니 쳐다보고 있었는데, 마치 노인의 표정을 살피는 것 같았다.

    심협은 무의식적으로 우몽의 손에 올려진 물건을 보다가, 순간 마음이 동했다. 그 종이는 부적에 쓰는 종이로, 심협에게도 아주 익숙한 것이었다.

    다만 우몽 수중에 있는 청색 종이는 심협이 사용했던 황지보다 더 두껍고 탄탄한 것이, 훨씬 질이 좋은 물건인 것 같았다.

    금포 입은 노인이 한 손을 휘두르자, 우몽 수중에 있는 물건들이 모두 공중에 뜨게 되었다. 물건들은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끌려가더니, 3, 4장 거리를 지나 바로 노인의 수중에 들어갔다.

    ‘물건을 공중에서 이동시켜 가져가다니!’

    심협의 두 눈이 더 커지며, 속으로 외쳤다.

    이렇게 법술을 이용해 물체를 공중에서 이동시켜 취하는 것은, 심협이 춘추관에서 봤던 잡서에서도 묘사되어 있었다.

    당시 심협은 동경하는 마음이 생겼었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가까이에서 실제로 누군가 시전하는 것을 보게 되니,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두근거렸다.

    노인은 청색 종이는 몇 번 보지도 않고, 옥병에 담긴 것에 훨씬 더 신경 쓰는 눈치였다. 그는 병마개를 열고 안을 살피고는 새끼손톱으로 안에 들어있던 붉은 가루를 조금 꺼내어, 냄새도 맡아보고 혀끝으로 맛도 보고서야 만족한 듯한 반응을 보였다.

    우몽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번에 사 온 주사는 괜찮구나. 앞으로 이번에 사 온 주사와 같은 급으로 사 와야 한다. 절대 질 떨어지는 걸로 사 오지 말거라. 그렇지 않으면 내 너를 제대로 혼내…… 응? 너는 누구냐?”

    노인은 말을 하다가 말고, 그제야 우몽 뒤에 있던 심협을 발견하고 물었다.

    “아버지, 이 사람은 심협 형제입니다. 오늘 성벽 근처에서 저와 함께 늑대 무리를 방어했지요. 심노제가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거처를 마련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여 제가 집으로 초대하여 머물도록 했습니다.

    심노제, 이분은 내 아버지 우혁(于焱)이시네. 낮에 자네도 뵈었었지.”

    우몽이 급히 소개하며 말했다.

    “우백부님을 뵙겠습니다.”

    심협은 앞으로 나아가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우혁은 곁눈으로 심협을 한번 훑어보더니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중에 있던 물건들을 품속에 넣었다.

    “오늘 백부님과 선사님들께서 나서주신 덕에 안목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특히 백부님의 부적술은 위력이 정말 가공할 만했습니다. 이 후배는 정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심협은 이 선사와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우혁의 냉담한 표정을 보고는, 머리를 굴려 부적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자네 부적술을 아는가?”

    역시 부적 이야기가 나오니, 그제야 우혁은 관심을 보이며 심협을 살폈다.

    심협을 살펴보던 그의 눈에 심협이 입고 있는 다 헤진 춘추관 도포가 들어왔다.

    “저도 약간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제 자질이 우둔하여 여러 해 연습했지만 부적술을 제대로 연마해내지 못했습니다. 신통하기 그지없는 백부님과 비할 수가 없지요.”

    심협이 공수하며 말했다.

    “부적술은 다른 법술들과는 달라서 어렵고 재미도 없지. 많은 시간을 들여 하나하나 힘들게 수련해야 겨우 이룰 수 있는 것이네. 자네가 지금까지 연습해온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야.”

    우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는 말하는 도중 우몽을 한번 노려보았고, 우몽은 뒤통수를 긁으며 켕기는 것이 있는 듯 시선을 회피했다. 이를 본 우혁은 다 들릴만한 소리로 콧방귀를 뀌었다.

    “백부님 칭찬은 가당치도 않습니다. 제가 예전에 음기가 몸에 든 적이 있었는데, 온갖 치료법을 다 시도해도 낫지를 않더니 고명한 분의 부적술로 치료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부적술을 동경하게 되어, 조금이나마 부적술을 연마해내고 싶었을 뿐입니다.”

    심협은 우몽 부자의 표정을 보고, 겸손하게 말했다.

    “세상에 아둔한 사람이 넘쳐난다네. 대부분은 안목이 없어서 부적술은 연마하려면 시간과 힘만 들어가고, 또 세속의 유행에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부적술은 일단 완성하고 나면 신을 부르고 귀신도 떨게 만들 수 있어, 사악한 귀신들을 물리칠만한 위력을 가진다네. 세상의 다른 도술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한 것이야.”

    심협의 말이 우혁의 억한 심정을 자극한 것인지, 우혁은 분연한 태도로 말했다.

    심협은 부적술을 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도술 연마에는 더더욱 아는 것이 없었다. 지금 우혁에게서 부적술이 도술 연마 중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들으니, 마음속으로는 놀라면서도 얼굴에는 동감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우혁은 분연하게 할 말을 내뱉은 후, 금방 평온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자질의 부족함도 보완할만한 성실함이 부적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네. 앞으로 계속 노력한다면, 이룰 수 있는 성과는 무궁무진할 것이야.”

    우혁은 격려의 뜻으로 심협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말했다.

    “네. 백부님의 가르침 감사드립니다.”

    심협도 정중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심현질, 오늘 우리 집에서 머문다고 했는가? 여기가 자네 집이라 편하게 생각하게.”

    우혁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처음 심협을 발견하고 보였던 냉담한 태도는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몽아, 이 아비는 일을 봐야 하니, 네가 아비 대신 심현질을 잘 대접하거라.”

    우혁은 우몽에게 말했다.

    “네, 아버지 걱정 마십시오.”

    우몽이 얼른 대답했다.

    우혁이 방향을 돌려 내당으로 들어가자, 심협과 우몽은 앞으로 몇 걸음 나가 배웅하고서야 멈춰 섰다.

    “대단하네, 심사제! 이렇게 우리 아버지의 환심을 산 사람은 자네가 처음일세! 내가 친구를 데리고 올 때마다 아버지께서는 제대로 상대하신 적도 없으셨다네.”

    우혁이 가고 나자, 우몽은 마치 죄를 사면 받기라도 한 사람처럼 바로 원래의 활기 넘치는 모습으로 돌아갔다.

    “나는 진심으로 백부님의 부적술에 탄복한 것이오. 그런데 우대형이 선사의 아드님일 줄 상상도 하지 못했소.”

    심협이 웃으며 말했다.

    이내 그는 우혁 등의 선사들이 성 위에서 시전했던 신통한 도술들을 생각해보면, 마음속으로 꽤나 부러워졌다.

    춘추관에도 어쩌면 비슷한 도술들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자질이 부족한 심협은 소화양공도 이제 겨우 입문에 이르렀을 뿐이라 연마할 자격은 논할 것도 없고 접해볼 기회조차도 없을 것이다.

    “그거 뭐 부러워할 것이 있나? 부적 쓰는 그런 일은 너무 무료해서 나는 절대 못하겠네. 나한테는 도법이나 활쏘기가 잘 맞지.”

    우몽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정말 아쉽군요.”

    심협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됐네, 됐어. 이제 그 얘기는 그만하지. 우리 둘 다 옷이 피와 땀으로 엉망이 되지 않았나. 우선 옷부터 갈아입게나.”

    우몽은 이 이야기는 더 꺼내고 싶지 않은 듯, 더러워진 소매를 휘둘러 보이며 화제를 돌렸다.

    “아까 싸움터에서 혼란 중에 내 짐을 잃어버렸소.”

    심협은 자신의 옷을 내려다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그까짓 옷 몇 벌쯤이야. 우선 내 옷 입게나. 사양하지 말게.”

    우몽은 손을 휘두르며 따지지도 않고 바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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