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20화 (20/1,214)
  • 20화. 죽을 고비에서 살아나다

    “성공한 것인가? 이 위력이…….”

    심협은 어안이 벙벙했지만, 눈빛만은 빛나고 있었다.

    쾅쾅, 우르르 쾅쾅.

    그런데 심협이 기뻐할 겨를도 없이 하늘에서 돌연 천둥소리가 울리기 시작하더니, 팔뚝만한 굵기의 하얀 번개가 하늘에서 빈번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연달아 하늘에서 하얀 번개가 내리쳤고, 성안의 늑대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번개가 내리친 곳에는 하얀 번개가 작렬하며 사방의 늑대들을 공격해 산산조각 내고 있었다.

    번개와 함께 불빛이 번득이며, 하늘에서 한 말(*斗 : 부피의 단위. 한 되의 열 배) 크기의 붉은 불덩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불덩이는 늑대의 몸에 떨어짐과 동시에 큰 화염으로 변하며, 늑대의 몸을 전부 불살라 버렸다.

    화염 속에서 타는 소리가 울리자, 늑대들은 장기가 다 찢기기라도 하는 듯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댔다.

    몇 번 호흡할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성안에 있던 늑대들은 거의 사멸되었다.

    심협이 고개를 들어보니, 성 위의 공중에 7, 8명의 사람이 떠있는 것이 보였다. 어떤 이는 도포를 입고 있었고, 어떤 이는 승복을, 어떤 이는 갑옷과 투구를 입고 있었다. 이들의 의복은 각각 달랐지만, 모두 후광이 비치는 듯했고, 비범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들은 계속 법력을 발휘하며, 성벽에 붙어있는 늑대 무리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선사께서 오셨다! 선사께서 오셨어!”

    성 안이 환호성으로 술렁이고 있었다.

    “살았구나, 살았어…….”

    “지켜주시는구나, 우리를 지켜주셔…….”

    어떤 이들은 기뻐 눈물까지 흘렸다.

    “선사, 이들이 신선이란 말인가?”

    심협은 이번에야말로 정말 멍해졌다.

    ‘정말로 하늘을 나는 신선이 있단 말인가?’

    심협은 얼른 정신을 차리고, 집중하여 그들을 살펴보았다. 그 선사들 중에 어떤 이는 동전을 꿰어 만든 칠성보검(七星寶劍)을 가지고 있었고, 어떤 이는 금빛이 번쩍이는 자금색 발우(鉢盂)를 들고 있었다. 또, 어떤 이는 청동으로 만든 긴 창을 들고 있었는데, 그들은 각자의 법술을 시전하고 있었다.

    그들 중 금색 비단옷을 입고 있는 작고 뚱뚱한 노인은 턱에 회백색 긴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차림새를 보니, 마치 부유한 집의 주인 같았다. 그들이 시전하는 법술 중 그의 것이 가장 눈에 띄었다.

    그 선사는 한 손은 도술 펼치는 듯한 모양을 하고, 한 손은 끊임없이 부적을 날리고 있었다.

    날아다니던 부적들은 공중에서 스스로 불이 붙더니, 부적의 불빛 안에 있던 하얀 번갯불이 폭발하듯 나와 순식간에 늑대들을 공격했다.

    노인의 시전 속도는 매우 빨라서, 심협은 그가 손가락으로 법술을 부리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주문(呪文)을 외고 있는 것인지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다만 그가 원석을 사용하지 않고 있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심협은 그제야 방금 우몽을 구했던 하얀 번갯불이, 자신이 소뢰부의 효과를 발휘시켜 얻은 위력이 아니라 저 작고 뚱뚱한 선사가 법술을 시전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 * *

    이 선사들의 등장으로, 성안의 형세는 완전히 역전되었다.

    번갯불들과 거대한 불덩이들이 번갈아가며 날아오고, 또 육안으로 잘 보이지 않는 기운과 검광들이 끊임없이 베어 대니, 성을 공격하던 늑대들은 순식간에 죽거나 부상을 입어 어쩔 수 없이 후퇴해야 했다.

    우몽은 겨우 검은 늑대의 시체 아래에서 빠져나오더니, 긴 칼로 몸을 지탱하며 심협 곁으로 왔다. 그는 심협의 어깨를 치며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말했다.

    “정말 고맙네, 형제여.”

    아직 그 선사들의 경이로운 법술에 빠져있던 심협이 그 말에 정신을 차리고는 우몽에게 억지로 웃어 보였다.

    뒤이어 그는 성벽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더니 성 밖 멀리를 살펴보았다. 아래에는 늑대 무리가 썰물 빠지듯 성 밖 해자 방향으로 멀리 도망치고 있었는데, 빽빽한 늑대 무리 사이에서 뭔가 눈에 띄는 것이 보였다.

    심협이 눈을 비비고 다시 그쪽을 자세히 살펴보니, 해자 바깥쪽 작은 산비탈에는 거의 100마리 가까이 되는 늑대 중 회색 늑대가 한 마리도 없었다. 모두 체구가 거대한 검은 늑대였다. 그 늑대 무리의 정중앙에는 가장 큰 검은 늑대가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그 늑대를 타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것은 흉측한 늑대 머리를 하고, 사람의 몸을 가진 괴물이었던 것이다. 그 괴물은 거친 베로 만든, 어깨가 다 드러나는 옷을 입고 있었다.

    심협이 바라보고 있을 때, 그 괴물이 고개를 돌려 성을 바라봤다. 괴물의 두 눈에는 짙은 녹색 빛이 번득이고 있었다. 벌어진 괴물의 입 사이로는 날카로운 이빨들이 무시무시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심협은 그 괴물의 얼굴을 보자, 등골이 다 오싹해졌다. 그 괴물은 마치 웃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 웃음에 오히려 소름이 끼쳐왔던 것이다.

    그 괴물은 한번 돌아보더니, 바로 다시 몸을 돌려 손을 들고 앞으로 한번 휘둘렀다. 그 모습이 마치 군대를 지휘하는 것만 같았다.

    괴물의 신호를 본 늑대 무리 전체는 바로 속도를 내기 시작하더니, 저 먼 곳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시선을 거두려 하던 심협의 눈에 무언가가 스쳤다. 심협이 다시 급히 그쪽을 바라보니, 검은 늑대의 무리 중에 짙은 푸른빛 털을 가진 괴이한 늑대 두 마리가 있었다.

    푸른 늑대의 몸집은 검은 늑대보다 작고 회색 늑대와 비슷했다. 하지만, 속도 내서 달릴 때에는 그 모습이 모호하게 보일 정도로 빠른 것이, 보였다가 보이지 않는 상태를 반복하니 보고 있어도 모습을 제대로 보기가 어려웠다.

    심협이 더 자세히 보기도 전에 늑대 무리는 모두 저 멀리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그는 계속 극도의 긴장 상태에 있다가, 지금에서야 겨우 긴장을 풀 수 있었다. 그러자 순간 온몸에 힘이 빠지고 공허감이 몰려왔다. 온몸 곳곳에서도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심협은 양손으로 성벽을 받치며, 성벽 외측의 아랫부분을 바라봤다. 그는 그제야 산처럼 쌓여있는 늑대 시체들 외에도, 성벽의 외측 아래부터 해자까지 곳곳에 처참한 시체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시체에는 늑대의 것도 있었고, 성을 지키던 장정의 것도 있었다. 시체들은 빽빽이 층을 이루며 쌓여 있었다.

    심지어 해자 안에도 늑대와 사람의 시체 더미로 막혀 있어, 붉게 물든 물이 흐르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 사람들이 각루로 퇴각하기 전, 성 아래부터 해자에 이르는 구역에서 한바탕 처참한 사투를 벌였을 터였다. 그곳은 아마 생지옥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성안 곳곳에서는 통곡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다행히 살아남았다며 너무 기쁜 나머지 눈물을 흘렸고, 어떤 이들은 가족이나 친구의 사망에 비참하여 눈물을 흘렸다. 통곡 소리 가운데 간혹 누군가가 선사들에게 감사해하는 소리도 섞여 있었다.

    심협은 공기로 전해오는 피비린내를 맡고 순간 어지럽고 구역질이 나, 자신의 명치를 부여잡았다.

    심협은 힘이 빠져 성벽에 기댄 채 주르륵 주저앉았다. 양손과 양발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그는 성안의 시신들과 살아남은 사람들을 한번 훑어봤다. 모두가 얼굴에 두려움, 기쁨, 그리고 절망의 표정이 너무도 뚜렷했고, 또 너무나 생동감이 넘쳤다.

    ‘이 모든 것이 정말 꿈이란 말인가?’

    별안간 심협은 눈빛이 조금 흔들리더니, 뭔가 놓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협은 조금 전까지 늑대와의 사투에 모든 정신을 집중하느라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곳 사람들의 복장이 자신이 평소에 보던 것과 많이 다른 걸 알 수 있었다.

    대다수 사람들의 옷은 목이 둥근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상의는 앞뒤 기장이 많이 짧은 형태였다. 이것이 늑대와 싸울 때 거슬리지 않도록 일부러 짧게 자른 것인지, 아니면 원래 이런 모양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심노제, 괜찮은가?”

    우몽은 심협의 안색이 좋지 않자, 앞으로 다가와 물었다. 심협은 지금 말하는 것조차 힘이 들어,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내저었다.

    “괜찮다면 다행일세.”

    우몽이 웃으며 말했다.

    “우대형, 어째 기분이 좋아 보이시오?”

    심협은 조금도 웃을 수가 없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살아남은 것만 하더라도 다행이지. 게다가 우리는 방금 죽을 고비에서 살아났는데, 어찌 기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우몽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그의 눈은 먼 곳을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심협은 그저 쓴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엔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남아 있었다.

    ‘분명 옥침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았는데, 어떻게 다시 기이한 꿈을 꾸게 된 것이지? 게다가, 이번 꿈에 처음 등장했을 때 내 의복 상태와 몸의 부상 상태는, 첫 번째 꿈이 끝났을 때와 완전히 똑같았어.

    유일한 차이점이 있다면, 지난번 꿈에서는 벙어리 소녀와 함께 귀신을 물리치고 나서 힘이 모두 고갈되었었다는 거지. 하지만, 이번 꿈이 시작되었을 때에는 힘이 전혀 고갈되지 않은 것이, 전혀 지난번 꿈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 같더군.

    어쨌거나 이곳이 이리 위험하니, 빨리 현실로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꿈에서 깨어날지는 전혀 방법을 알 수 없군.

    지난번 꿈에서 난 몇 차례나 죽었었고, 결국 그 귀신을 물리치고 나서야 꿈에서 깨어났었지. 그렇다면 이번에도 몇 차례 죽음을 경험하거나, 혹은 그 늑대들을 모두 죽이고 나서야 꿈에서 깨어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생각이 들자, 심협은 머리가 지끈거리며 온몸 곳곳이 더욱 아파지는 것 같았다.

    바로 이때, 갑옷 입은 장정 세 명이 목판에 사람 한 명을 싣고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들이 가까워지자, 심협은 목판에 실려 있는 사람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는 늑대의 발톱에 공격을 받아 가슴에 길게 찢어진 구멍이 나 있었는데, 그의 몸은 곳곳이 응고된 피로 얼룩져 있었다.

    우몽은 이를 보자 두 손을 불끈 쥐어 공수하며 맞이했다.

    심협은 목판을 든 세 사람을 알아볼 수 있었다. 바로 우몽의 호종들이었다. 그리고 목판에 실려 있는 죽은 이는, 바로 심협과 우몽이 늑대 무리에 포위되어 있을 때 제일 앞장서서 구하러 오려던 호종이었다.

    이를 본 우몽의 손이 미미하게 떨렸다. 그는 목판에 누워 있는 호종의 얼굴에 핏자국을 닦아주고, 옆에 있던 피로 물든 깃발을 주워 천천히 호종의 몸을 덮어 주었다.

    “이 사람은 내 형제와 같은 전충(田冲)일세…….”

    고개를 돌려 이야기할 때, 우몽의 두 눈은 조금 붉어져 있었다.

    그 모습에 심협의 표정도 숙연해졌다. 심협은 몸을 일으켜 세우고 호종 3인을 향해 포권하며 인사했다.

    호종 3인도 숙연한 표정으로 심협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이때, 늑대 무리를 성 밖 백여 리(里) 너머로 쫓아낸 선사들이 늑대 무리가 확실히 퇴각한 것을 확인하고 다시 돌아와 성 안쪽으로 내려왔다. 그중에는 부잣집 노인 행색의 그 선사도 내려와 있었다.

    그는 몇 사람을 대동하고 성안을 순시하는 중이었고, 승려와 도인 행색의 선사들은 각자 흩어져 성안 곳곳에 살아남은 사람들의 부상을 살피고 있었다.

    일부 부상이 심한 자들은 보통의 금창약으로 치료가 어려울 수 있었기에, 선사들은 가루약과 단약을 나누어 주며 구명 활동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단약은 수량도 한정적이고 매우 진귀하여, 모든 사람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약을 받은 사람은 대부분 신체 건강한 청년들이었고, 나이가 조금 많거나 혹은 손발이 잘리는 등의 심각한 부상을 입은 자들은 보통의 약으로 치료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는 인간의 생사를 운명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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