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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7화 (17/1,214)
  • 17화. 원래 자리로 되돌려놓다

    심협은 정신을 가다듬고, 허리에서 날이 반짝일 정도로 잘 갈린 도끼를 꺼내 들었다. 도끼는 그가 오는 길에 재당에서 빌린 것이었는데, 날카로운 도끼의 날이 햇빛 아래서 매섭게 번뜩이고 있었다.

    예전에 그는 몸에 지니고 다니던 작은 칼로 옥침을 시험해봤지만, 옥침에 아무런 흔적도 남길 수 없었다. 하여 이번에는 아예 옥침도 쪼갤 수 있을 법한 큰 도끼를 가지고 온 것이다.

    도낏자루를 잡은 심협은 바로 쪼개려 들지 않고 도끼날 한쪽 끝으로 옥침을 가볍게 쪼아봤다.

    그러자 가벼운 소리가 울리면서 옥침이 미미하게 떨렸다.

    도끼를 치운 심협은 옥침에 역시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이번에 심협은 도낏자루를 꽉 잡고 옥침을 그어보고 다시 도끼를 돌려보면서 도끼 뒤쪽 두꺼운 부분으로 옥침을 맹렬히 부수어 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펑 하는 묵직한 소리가 울리며 도끼가 튕겨나갔고, 옥침은 오히려 아무 손상 없이 온전했다.

    사실 심협은 이번에도 그저 시험해봤을 뿐이었다. 그는 온 힘을 다해 옥침을 부수었다가 혹시라도 안에서 뭔가 튀어나오기라도 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이건 옥침의 내구성을 과소평가한 것이었다.

    펑 하는 묵직한 소리가 다시 한 번 울렸다.

    이미 두 번의 시도를 거쳤으니, 이번에는 심협도 온 힘을 다해 도끼를 휘둘렀다.

    하지만, 반동의 힘이 너무 강해, 손이 심히 떨려 순간 마비되는 것 같았다.

    도끼가 휘둘러지는 것과 동시에, 쫙 갈아지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쪼개졌나…….”

    심협은 기뻐하며 아픈 손을 흔들어 풀어가며 살펴봤다.

    하지만, 옥침은 아무런 손상 없이 온전했다. 오히려 옥침 아래 있던, 평소 햇빛을 잘 받고 있는 그 바위가 갈라지며 틈이 생겼다.

    “보아하니 제대로 한번 해봐야겠군.”

    심협은 미간을 찌푸리며, 이번에는 도끼를 돌려 도끼날이 옥침을 향하도록 하고는 도끼를 높이 들어 다시 옥침을 향해 강하게 내리찍었다.

    쨍강.

    금속과 돌이 서로 맞부딪치는 소리가 울리며, 옥침 위에서 순간 불꽃이 일었다.

    도끼가 반동하여 튀어 오르자, 심협은 호구(*虎口 : 엄지와 검지 사이에 있는 손등과 손바닥의 경계 부위)가 떨렸고, 순간적으로 손아귀 전체가 다 마비되는 것 같았다.

    심협은 손목을 돌려 손을 풀어가며 한 손으로 도끼를 땅에 내려놓았고, 옥침을 살펴보다가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날이 날카롭게 갈려있던 도끼는 지난번 작은 칼처럼 날이 휘어버렸는데, 옥침은 여전히 아무런 손상이 없었던 것이다.

    “이 도대체 무슨 귀신같은 재료인가…….”

    심협은 옥침 위의 무늬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는 점점 지난밤 기이한 꿈이 분명 이 옥침과 관련이 깊을 것이라 확신하게 되었다.

    * * *

    잠시 생각해보던 심협은 헝겊으로 다시 옥침을 감쌌고, 근처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마른 풀과 마른 나뭇가지들을 주워 나무를 장작 삼아 쌓기 시작하더니, 주변의 초목들을 깨끗이 정리한 후 헝겊에 싸인 옥침을 장작 사이에 놓았다.

    심협은 도끼로도 옥침을 깨뜨리지 못했으니 불을 크게 피워 태워보려는 아주 단순한 생각을 했던 것이다.

    지난번에도 불에 그을려보았지만, 불도 너무 약했고 시간도 너무 짧았었다. 하여 이번에는 꼭 활활 타는 불에서 태워볼 작정이었다.

    고서에서 귀신들은 불을 두려워한다 했으니, 옥침에 귀신과 같은 기괴한 것이 붙어있다고 해도 장시간 태운다면 분명 다 타 없어질 터였다.

    심협이 품속에서 화절자(*火折子 : 휴대하고 다니며 불을 붙이는 도구)를 꺼내 뚜껑을 열었다. 그가 안에다 입김을 몇 번 불어넣자, 반짝이는 불씨가 연기와 함께 피어올랐다.

    심협은 몸을 구부리고 마른 나무에 불을 붙이려다가,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소매에서 작은 자기병을 하나 꺼냈다.

    “만일 정말 귀신이라도 숨어있다면, 주사도 좀 써야 안전하겠구나…….”

    심협은 중얼거리더니, 병마개를 열고 안에 있던 주사를 따라냈다. 이내 그는 마른 장작 틈으로, 옥침을 싸고 있는 헝겊에 주사를 뿌렸다.

    주사를 뿌린 그가 화절자로 장작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자욱한 연기가 피어오르며, 옥침 주변에 화염이 치솟고 열기가 가득 전해졌다.

    심협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사방의 나무가 빽빽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그는 불길이 아무리 세어진다고 해도 연기가 그리 많이 새어 나가지 않을 것 같았기에, 춘추관 제자들의 주목을 받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싶었다.

    마른 장작은 거의 다 기름을 머금고 있는 소나무 가지로, 불이 붙자 나무 타 들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심협은 화력이 충분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한쪽 옆에 무릎을 안고 쭈그려 앉은 채, 계속 불 속에 장작을 추가하고 있었다.

    이윽고 헝겊이 모조리 타서 재가 되어버렸고, 안에 있던 옥침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옥침에는 전혀 그을린 흔적조차 생기지 않은 채 본래의 감노란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심협은 조급해하지 않고, 계속 장작을 추가하며 한편으로는 꿈속에서 발생했던 일들을 떠올려봤다. 혹시 꿈속에서 겪은 일 중에 무언가 실마리가 있지는 않을까 싶어서였다. 예를 들면, 꿈속에서 자신이 있었던 장소가 어느 지역인지 등등 말이다.

    하지만, 심협이 꿈속의 경험을 여러 차례 되짚어 보아도, 실마리가 될 만한 것은 전혀 찾지 못했다.

    * * *

    반 시진은 족히 지나고 나니, 심협은 불길에 자신의 얼굴도 다 바짝 마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가 근처 십여 장(丈) 이내에 있는 마른 가지는 전부 다 주워서 장작으로 쓴 바람에, 불은 결국 꺼져버리고 말았다.

    심협은 부지깽이로 쓰려고 남겨둔 마른 가지로 아직 불씨가 살아 있는 장작 잿더미를 치워냈다. 그러자 재에 뒤덮여 원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 옥침이 나타났다.

    심협은 기대를 품을 채 도끼를 들어 옥침을 내리쳤고, 펑 하는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이번에도 심협은 꽤 힘을 들여 내리쳤다. 그 바람에 팔도 다 마비될 것 같았으나, 옥침은 여전히 손상이 없었다. 옥침 표면에 덮여 있던 재만 도끼에 부서졌을 뿐, 옥침이 다시 본래의 감노란색을 드러냈던 것이다.

    심협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옥침에 아무 변화가 없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었다.

    심협은 부지깽이로 옥침을 조금씩 밀어 꺼내고, 위에 덮여있던 재를 힘껏 불어 날렸다. 불에 탄 흔적 하나 남지 않은 옥침의 모습은 이전과 아무 차이가 없었다.

    심협은 눈살을 찌푸리며 잠시 망설이더니, 손끝으로 옥침을 튕겨보았다.

    정말 옥침이 아직도 차가울 것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런데 반 시진(*현재의 한 시간)이나 불에 태웠는데도 옥침은 여전히 차가운 것이, 조금도 뜨거워지지 않았다.

    ‘그냥 일반 돌덩어리라도, 이렇게 오랫동안 불에 태운다면 이리도 차가운 상태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야. 그런데 이 옥침은 너무도 기이한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자, 심협은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본 그는 하늘에 태양이 높이 떠 있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심협은 옥침을 두고 몇 바퀴 돌다가, 옥침의 중간과 측면 모서리를 건드려 보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없었다.

    “도끼에도 손상을 받지 않고 활활 태워도 전혀 뜨거워지지 않으니, 혹시 예전에 백소천 사형이 술에 취해 이야기한 법기(法器)인가?”

    중얼거리는 심협의 안색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었다.

    ‘실제로 발생한 것처럼 생생한 악몽을 꾼 것이 정말 이 옥침 때문이라면, 옥침은 고서에 나오는 기이한 법력을 지닌 법기일지도 몰라. 어쩌면 원석은 이 옥침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부적 쓸 재료를 모두 써버렸기에, 옥침을 찾게 해주었던 소뢰부는 당분간 쓰지 못하겠구나.’

    심협은 이런 생각이 들자, 무언가 결연히 소매 안을 뒤져 마지막 남은 원석을 꺼냈다. 그러나 그는 원석을 손에 올려두고 주저하기 시작했다. 원석이 워낙 귀한 데다 구하기도 어려운데, 마지막 남은 한 알을 여기에 사용할 것인지 고민되었던 것이다.

    “됐다. 원석 한 알일 뿐인데. 아무리 귀해봤자 목숨보다 귀하겠나.”

    잠시 후, 심협의 팔에 양기가 흐르더니 천천히 장심으로 모여졌고, 서서히 3촌이 채 되지 않은 한 줄기 옅은 붉은 선이 장심을 뚫고 나왔다.

    심협의 장심이 점점 다가갈수록, 그 붉은 선은 조금씩 옥침 위의 원석에 유입되기 시작했다.

    곧이어 원석이 옅은 붉은 빛을 발하더니 반짝이고 투명한 느낌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원석 안의 백색 기운도 격렬히 요동치기 시작했다.

    심협은 뒤로 몇 보 물러나, 침을 삼키며 긴장된 눈빛으로 원석과 옥침을 지켜보았다.

    원석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백색광이 깨진 원석 틈으로 빠져나왔다. 백색광을 흡수한 옥침의 윤곽도 모호하게 보일 정도로 빛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도 잠시만 유지되었을 뿐, 백색광은 순식간에 흩어져 사라졌고, 옥침은 예전처럼 아무 변화도 없었다.

    이제 심협은 옥침에 시도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었다.

    그는 무심히 장작 타고난 재를 묻어버리고 남은 흔적들을 모두 수습한 뒤,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옥침을 안아 들고 수풀을 떠났다.

    * * *

    반 시진 후.

    예전에 옥침을 발견했던 산벽에 온 심협은 막아뒀던 동굴 입구를 다시 열었다.

    “네가 어떤 기이한 물건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눈치 없이 네 휴식을 방해한 것 같구나. 이제 너를 돌려보내 줄 테니, 우리 여기서 헤어져 앞으로 서로 귀찮게 하지 말자꾸나.”

    심협은 중얼거리며, 옥침을 동굴 안에 놓았다.

    심협은 옥침을 아예 깊은 못이나 낭떠러지에 버릴까도 생각했지만, 예전 고서에, ‘귀신과 관련된 일은 경원(*敬遠 : 공경하되 멀리하라)하라.’ 라고 적혀 있던 게 떠올랐다.

    하여 혹시라도 이 옥침을 경솔하게 버렸다가, 도리어 더 큰 화가 일어날까 두려워 그럴 수 없었다.

    심협은 사방의 돌멩이를 주워 동굴 입구를 막았다. 하지만 동굴 입구를 막은 흔적이 눈에 띄었기에, 근처에서 등나무 덩굴을 끌어다가 동굴 입구를 한 번 더 가려야 했다.

    이렇게 처리한 후, 심협은 몸을 일으켜 손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깊이 숨을 내쉰 뒤, 마치 큰 짐을 덜어낸 듯 홀가분하게 돌아갔다.

    * * *

    밤중.

    심협은 여전히 근심이 가득했으나, 하루 종일 바삐 움직인 탓인지 일찍 졸음이 쏟아졌다.

    잠이 들기 전, 그는 예전에 썼던 부적을 전부 꺼내 방 안 곳곳에 붙여두고는, 침상에 누워 잡념이 들기도 전에 바로 깊이 잠에 들었다.

    * * *

    밤새 꿈도 꾸지 않고 잠들었다가, 다음 날 날이 밝아서야 심협은 잠에서 깼다.

    고단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옥침을 원래 자리에 되돌리고 난 후 마음이 홀가분해져서인지, 심협은 유달리 달게 잠을 잤다.

    일어난 후 기력이 많이 회복되었음을 느낀 심협은 세수와 양치를 한 후, 옥황전으로 가 수련했다.

    이날 온종일 그는 최상의 몸 상태를 유지했다. 유일하게 좋지 않았던 것은 어떤 연유에서인지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날에는 다시 편안히 잠을 잤기에, 심협은 그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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