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6화 (16/1,214)
  • 16화. 난공불락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심협은 의구심이 들었다. 자면서 악몽을 꿨을 뿐이라면, 절대 이만큼 몸 상태가 이상할 리가 없었다.

    이전에 몸에 음기가 들었을 때, 심협은 악몽을 꽤 여러 번 꿨었다. 당시에도 꿈에서 온갖 기이한 상황을 다 만나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당시의 악몽과 어젯밤의 경험은 확연히 달랐다.

    ‘정말 꿈이라면, 어떻게 이리도 뚜렷하고 생생하게 꿈을 기억해 낼 수 있단 말인가? 또, 몸은 어찌 이리도 피로해질 수 있지? 실제로 사투를 벌이고 일어난 것처럼 말이야.

    하지만, 꿈이 아니라면 어젯밤 일은 도대체 어찌 된 일이지? 설마 내가 몽유병에 걸려 실제로 하산해 어느 산촌에 갔다가, 다시 몽유 상태로 돌아왔단 말인가?

    그러나 몽유병도 말이 안 되는 일이야. 어젯밤 난 그 산촌에서 목숨도 잃었었고, 온몸엔 상흔이 가득했었잖아. 또한, 입고 있던 옷도 누더기처럼 너덜너덜해졌었는데, 이건 지금의 내 상태와는 너무도 다르지 않은가.’

    이런저런 생각에, 심협의 표정도 계속 변하고 있었다. 심협은 어젯밤 일이 생각할수록 너무도 기이하여,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그는 이마를 문지르며 몸을 뒤로 젖혀 아예 침상에 다시 누우려 했다.

    그런데 그때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심협은 뒤통수에 뭔가 딱딱한 물건이 부딪힌 것을 느꼈다.

    심협은 흠칫 놀라 다시 앉으며, 몸을 돌려 무엇인지 확인했다.

    침상에는 직사각형 모양의 황색 물건이 놓여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심협이 찾아온 ‘보물’, 신기한 옥침이었다. 심협이 원래 사용하던 등나무 덩굴 베개는 한쪽 벽 앞에 치워져 있는 상태였다.

    심협은 아연실색했다.

    ‘어젯밤에 밤새 이 옥침을 베고 자면서도 전혀 몰랐단 말인가! 그러나 분명 어젯밤 잠들기 전에 옥침을 고서적이 쌓여있는 탁자 위에 뒀었는데, 어찌 이게 내 침상에 와있단 말인가?’

    “설마 어젯밤 꿈이 이 옥침과 관련된 것인가? 이 옥침 안에 불길한 것이라도 들었단 말인가?”

    그 순간, 심협은 ‘장천사항요기사’에 쓰여 있는 이야기 하나를 생각해냈다.

    [영남 계안(啓安)현의 서생 하나가 봄나들이 갔다가 강가에서 오래된 청동 거울 하나를 주웠는데, 그 뒷면에는 금문 소전(小篆)체로 ‘소요(逍遙)’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옛 골동품이라 여긴 서생은 그 청동 거울을 가져와 집에서 보관했다.

    그런데 그 ‘소요경’이라는 청동 거울에는 여자 귀신 하나가 봉해져 있어,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거울에서 빠져나와 서생의 양기를 빨아들였다. 만일 장천사가 이곳에 우연히 왔다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이 서생은 아마 양기가 끊어져 연유도 모른 채 죽었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떠올린 심협은 몸 상태에 신경 쓸 틈도 없이, 급히 탁자에서 작은 붓을 가져와 붓대로 옥침을 툭툭 찍어봤다. 옥침은 뒤로 살짝 밀려났지만, 옥침에서 특이한 빛이 발한다거나 하는 귀기 어린 특이한 현상은 없었다. 옥침은 보기엔 그저 보통의 물건들과 전혀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심협은 작은 자기병 하나를 꺼내어 안에 있던 주사를 손에 가득 묻히고 조심스럽게 식지 끝으로 옥침을 건드려봤다. 하지만, 옥침에서는 차가운 감촉이 전해지는 것 외에 아무런 이상이 느껴지지 않았다.

    “또 무슨 음기나 귀신 따위가 붙은 것은 아니겠지…….”

    심협은 손을 거두고 미간을 찌푸리며 마음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옥침을 힐끗 바라보고는 얼른 문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거기서 가부좌를 틀더니 손으로 원 모양을 만들고, 정신을 집중하여 묵묵히 소화양공을 운공하기 시작했다.

    다만 어젯밤 꿈속에서 한참 고생한 탓인지 정신이 집중되지 않아, 두 시진이나 허비하고 나서야 겨우 소화양공을 한차례 운공할 수 있었다.

    운공이 끝나고 나니 체내의 양기가 온몸 곳곳에 충만해져, 몸이 훨씬 개운해졌다.

    운공이 끝난 후, 천천히 두 눈을 뜨며 가볍게 숨을 내뱉은 심협은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았다.

    “보아하니 그저 몸이 피곤했을 뿐, 별일 아니었구나.”

    근심 하나가 사라지자, 의혹이 하나 늘었다. 심협은 다시 한 번 어젯밤 일어났던 일들을 회상해봤지만, 생각할수록 자신이 산촌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직접 겪은 것 같았다.

    “그것이 꿈이었는지 확인하려면 이 방법을 쓸 수밖에 없겠구나.”

    심협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다시 기운을 차린 심협이 상의를 벗더니 식지를 깨물어 피를 내어, 어젯밤 꿈속에서 했던 것과 똑같이 헐벗은 상반신에 선혈로 부적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두 개의 부적 문양을 그려냈는데, 하나는 ‘구귀부(驅鬼符)’, 다른 하나는 ‘소뢰부(小雷符)’로, 모두 어젯밤 부적의 효과를 발휘시켰던 것들이었다.

    만일 산촌에서의 일들이 꿈이 아니라면, 그는 현실에서도 똑같이 부적의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심협은 두 눈을 감고, 어젯밤과 동일하게 체내의 양기를 상반신의 부적 문양으로 주입시키기 시작했다.

    그런데 양기를 구귀부(驅鬼符)로 주입해도 아무런 반응이 보이질 않자, 심협은 심장이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어젯밤 폭발 반응까지 보였던 소뢰부(小雷符)도 양기와 만나 아무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심협은 이리저리 궁리해보다가 이를 악물고는 양기 주입의 속도를 몇 배 더 빠르게 진행해 보았다. 그러자 가슴의 부적 문양 부분이 조금씩 따뜻해지기 시작하더니, 점점 뜨거워졌다. 이는 어젯밤 부적이 폭발하기 전에 있었던 작열감과 어느 정도 비슷했다.

    심협은 기뻐하며 더 많은 양기를 주입하려 했다. 하지만, 가슴의 소뢰부가 빠르게 식어가더니, 다시는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심협은 잠시 의아했으나 다시 남아 있는 양기 모두를 가슴의 부적 문양에 주입시켜 봤다. 하지만, 부적은 여전히 아무런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것이 도대체 부적이 효과를 낸 것인지 아니면 실패한 것인지, 심협 스스로도 어리둥절했다.

    심협은 내키지 않았지만, 우선 부적에 양기 주입하는 걸 잠시 멈추었다. 그러고는 좌선하여 양기가 어느 정도 회복된 이후, 다시 몸에 새로운 소뢰부를 그려냈다.

    하지만, 새로 그린 소뢰부에 양기를 주입해도 잠시 동안 미미하게 따뜻해졌을 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심협이 어떻게 된 일인지 한참을 생각해봐도 알 수 없었던 그때, 그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됐다. 우선 잠시 내려두자. 점심시간이니 우선 식사부터 하고 생각해야겠구나.”

    심협은 아쉬움이 남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적을 시험하느라 운공을 한 덕인지, 온몸의 근육통은 많이 사라져 있었다.

    심협은 문을 나서 몇 보 걸어갔다가 다시 방으로 돌아와서는, 소매 안에 있던 부적 하나를 꺼내 옥침의 정중앙에 붙였다.

    조심스럽게 옥침을 침상에서 안아 올려 탁자 아래에 놓아둔 그는 마지막으로 손을 탁탁 털어내고서야 안심이 되었다.

    * * *

    재당(*齋堂 : 절이나 도관 등에서 식사하는 곳)에서 점심시간은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리는 시간이었다. 다행히 심협은 조금 일찍 도착했기에, 아직은 사람이 많지 않았다.

    심협은 배식을 받고 자신이 항상 습관적으로 앉던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그가 식사를 반쯤 마쳤을 때쯤 재당 안에 사람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때, 누군가 심협의 왼쪽 어깨를 쳤다. 심협은 고개를 돌려 왼쪽을 봤지만 아무도 보지 못했다.

    그런데 누군가 그의 오른쪽을 스치더니 바로 자리에 앉았다. 바로 백소천이었다.

    “심사제, 내 한마디 해야겠네. 수련이 조금 진전했다고 해서 게으름 피우면 안 된다네…….”

    백소천은 식사를 자리에 놓자마자 근엄한 얼굴로 마치 어르신이 후배를 가르치듯 말했다.

    “백사형, 무슨 말씀이시오?”

    심협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내 오전에 수련을 마치고 옥황전 바위로 자네를 찾으러 갔었네. 그런데 자네가 보이지 않더군. 평소 자네는 덥거나 추워도 한 번도 수련을 빠진 적이 없었는데 말이야. 말해 보게, 어디 갔었는가?”

    백소천이 평소의 장난스러운 기색을 거둬둔 채 물었다.

    “아……. 오늘 아침에 몸이 안 좋아서 방에서 좌선하고 있었소.”

    심협은 조금 머뭇거리다가, 어젯밤 꿈 이야기는 꺼내지 않고 이렇게 둘러댔다.

    백소천은 심협의 안색을 자세히 살피더니, 정말로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물었다.

    “그럼 지금은? 내 자네를 사부님께 데려가 상태를 여쭙는 건 어떠한가?”

    “그리 신경 쓰실 것 없소. 이미 많이 나았으니. 식사하고 조금 쉬고 나면 내일쯤에는 다 나을 것이오.”

    심협이 웃으며 대답했다.

    “자네가 그리 얘기하니, 강요하지 않겠네. 푹 쉬게나.”

    백소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심협은 백소천에게 웃어 보이고는 다시 고개 숙여 식사를 계속했다.

    “이봐, 자네 무슨 말 못 할 고민이 있는 건 아닌가? 나에게만 귀띔해 주게. 내 절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겠네.”

    백소천은 잠시 심협의 눈치를 살피다가, 갑자기 다가와서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그러자, 심협은 백소천을 괜히 노려보며, 화난 척 말했다.

    “그만하시오.”

    “하하…….”

    그 말에 백소천은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 * *

    점심 식사를 마치고, 심협과 백소천은 각자 갈 길로 헤어졌다.

    심협은 바로 돌아가지 않고, 춘추관의 장서각으로 가서 그곳에서 금석(金石) 재료와 관련된 서적을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뒤져도 그 기이한 옥침의 재료와 비슷한 것의 기록은 찾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정실로 돌아온 심협은 문을 열자마자 바로 탁자 아래부터 살폈다. 다행히 그 기이한 옥침은 탁자 밑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는 문을 닫고, 그 옥침을 탁자 위로 옮겨놓고 살펴보며 한참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안 되겠어. 이번엔 이게 도대체 무슨 물건인지 알아내야겠다.”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심협은 결심한 듯 이를 악물고 말했다.

    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잿빛 헝겊으로 옥침을 감싼 후 바로 방을 나서 뒷산으로 갔다.

    * * *

    이때는 막 오시(*午時 : 11시~13시)를 지났을 때라, 천지간의 양기가 가장 왕성할 때였다. 만일 귀신, 음기 따위의 불길한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분명 숨어서 나오지 못할 터였다.

    지금 심협은 이렇게 양기가 왕성할 때에 이 옥침에 어떤 기이한 점이 있는지 알아내고 싶었다.

    뒷산은 해를 등지고 있어, 뒷산의 대다수 구역에서는 석양 때에나 볕이 들었다.

    따라서 심협은 한참을 찾아다니고서야 우뚝 솟아 사방에 햇빛을 가리는 것이 없는 바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심협은 한창 햇볕을 받고 있는 바위 위에 옥침을 내려놓고, 잿빛 헝겊을 풀었다.

    옥침은 햇빛을 받자, 원래 어두운 감노란빛을 띄던 것이 조금 투명한 듯한 질감으로 보였다. 그 외에는 지극히 평범했다.

    “네가 난공불락처럼 계속 아무 반응이 없을지 지켜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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