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귀신과의 사투
심협이 향 태운 재를 두 주먹에 움켜쥐고 힘을 다해 흩뿌리기 시작하자, 향 태운 재가 집 안 가득 곳곳에 흩날리기 시작했다.
별안간 소녀가 아아 소리를 내며 심협의 뒤를 가리켰다.
이에 다급히 고개를 돌린 심협은 순간 놀라 동공이 축소되었다.
자신의 뒤엔 그 장대한 귀신이 느닷없이 나타나 있었는데, 양팔이 다시 자라 있었던 것이다. 다시 자란 다섯 손가락은 하나하나 검은 비수처럼 매섭게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위급한 상황에, 심협은 몸을 움츠렸다가 우측을 향해 굴러갔다.
심협의 동작이 빠르긴 했으나, 그의 오른팔은 귀신의 손톱에 공격을 당해 3개의 긴 상처가 그어졌다. 상처에선 선혈이 새어 나왔다.
심협은 팔에 난 상처를 보고 낯빛이 굳어졌다. 이번에도 귀신과 끝장을 보지 않는다면, 다시 한번 죽어야 할 것이 분명했던 것이다.
“어쨌거나 또 부활할 가능성은 있는 거지. 어디 한번 해 보자!”
심협은 바로 마음을 독하게 먹고, 허리에 차고 있던 토막 난 말뚝 하나를 꺼냈다. 이내 그는 혀를 깨물어 선혈을 냈고, 선혈 한 모금을 말뚝의 부적 문양에 뿜었다.
그러자 말뚝의 부적 문양은 한번 빛나더니, 피처럼 붉은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마음 입구에 세워진 부적을 새긴 말뚝은 보통 귀신을 쫓기 위한 것이었다. 이 말뚝의 부적은 부적의 고수가 쓴 것 같았다. 말뚝은 반 토막이 났음에도 양기를 머금은 선혈이 닿자 바로 일부 효과를 나타냈다.
“몽둥이를 받아라!”
심협은 속으로 기뻐하며 낮게 일갈하더니, 앞으로 나아가 귀신을 향해 내리찧듯이 수중의 말뚝을 매섭게 휘둘렀다.
장대한 귀신은 심협 수중의 말뚝이 두려운 것인지 바로 몸을 피하려했다.
집 안의 검은 그림자가 움직이자, 소녀는 수중에 마지막 남은 검은 개의 피를 뿌려 귀신이 피하려는 방향을 막아버렸다.
귀신은 검은 개의 피도 두려워했기에, 급히 몸을 날려 물러섰다. 그러다 결국 귀신을 바짝 따르던 심협의 말뚝에 정면으로 맞게 되었다.
심협은 장심이 한번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말뚝은 귀신의 몸을 통과하지 않고, 귀신의 몸을 정확히 맞춰 때렸다. 뿐만 아니라 말뚝에 있던 붉은 부적 문양이 귀신의 몸에 닿자, 마치 달궈진 철판에 생고기가 놓일 때 나는 듯한 소리가 들리며 귀신의 검은 기운이 증발하기 시작했다.
장대한 귀신의 몸은 원래 반투명한 몸이었는데, 지금은 더욱 투명해졌다.
귀신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심협은 정신이 크게 진작되어, 수중의 말뚝을 몽둥이처럼 휘두르며 귀신을 향해 공격했다.
심협은 춘추관에서 대단한 외공을 배우지는 못했지만, 몸을 건강하게 해주는 곤(棍)과 봉(棒) 쓰는 법은 조금 배웠다. 지금 목숨을 걸고 사투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라 그에게 잠재되어 있던 모든 능력이 발휘되어 나왔는지, 그는 곤법(棍法)도 꽤 그럴 듯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귀신은 장대한데다가 실내에 있으니 더욱 애를 먹고 있었다. 더구나 향 태운 재가 날리고 있으니 몸을 숨길 수도 없었다.
영리한 소녀는 검은 개의 피를 다 사용한 것을 알고, 심협이 했던 방법을 배워 감실에서 향 태운 재를 흩뿌려 귀신의 행동을 제한시켰다.
흉폭하기 그지없던 귀신은 심협과 소녀의 협공을 받자 열세에 처했다. 이 상황에서 심협이 만든 말뚝 부적으로 연신 두들겨 맞으니, 귀신의 몸은 더욱 투명해졌다.
말뚝이 귀신에게 상해를 입힌다고 하나, 지금 말뚝 위 부적에서 나오던 붉은 빛은 빠르게 어두워지고 있었다.
심협은 이 상황을 발견했지만, 지금 상황이 위급하니 다른 것은 고려할 틈도 없이 계속 말뚝을 휘둘렀다.
말뚝이 이번에 아랫배를 향하자, 귀신은 몸을 좌우로 흔들어 왼쪽으로 조금 이동하여 이번 공격을 피해냈다.
우측의 감실을 한번 바라보던 심협은 방금 귀신이 오른쪽으로 피했더라면 훨씬 쉽게 말뚝을 피했을 것 같았다.
심협은 기억을 더듬어, 집 안에서 귀신과 싸우던 과정을 돌이켜봤다.
귀신은 감실을 심히 두려워하는 듯 계속 피하려고 할 뿐 가까이 가지 못했다.
“설마…….”
심협의 머릿속에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심협이 생각하는 사이, 귀신의 머리카락이 휘날리며 귀신의 창백하고 부패한 얼굴이 드러났다.
마치 물속에 오래 잠겨있었던 듯 입술과 양 볼은 흐물흐물하게 부패되어 있었고, 손상되어 온전하지 않은 살가죽은 밖으로 뒤집어져 안쪽이 보이게 얼굴에 드리워져 있었다.
안와(*眼窩: 눈알이 박혀있는 구멍) 속은 살이 반 이상 부패하여 끊임없이 찐득한 고름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충혈된 두 안구는 오로지 일부 혈관에 의지해 붙어 있어 계속 흔들거리는 것이 언제라도 떨어져 나올 것 같았다.
담력이 세지 않았더라면, 심협은 이 귀신의 얼굴을 보고 크게 놀랐을 것이다.
귀신이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무형의 살벌한 바람을 입안에서 뿜어내자, 바람이 마치 두 개의 화살처럼 각각 심협과 소녀의 얼굴로 향했다.
이와 동시에 귀신이 양팔을 양쪽으로 뻗으니, 집 안의 모든 곳에서 순간 살벌한 바람이 일었다.
집 안에 있던 작은 물건들은 모조리 바람에 의해 날리기 시작했는데, 유독 감실만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심지어 위에 있는 향로조차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심협은 전에 귀신이 내뿜는 바람에 당한 것이 있어, 귀신이 입을 열자마자 급히 바닥에 엎드려 다른 한쪽으로 굴러가서 정면으로 맞지 않았다.
귀신에게 당한 경험이 없었던 소녀는 살벌한 바람에 얼굴을 맞아 눈을 뒤집고 쓰러지더니 바로 정신을 잃었다.
“안 돼!”
심협은 몸을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집 안에선 온갖 물건들이 날리고 있었다. 찻잔의 나뭇조각이 머리 위를 날아다니고 살벌한 바람이 계속 불어 대니, 그는 어쩔 수 없이 바닥을 굴러 집 안 한구석으로 피신해야 했다.
그 장대한 귀신은 심협과 소녀를 쫓지 않고, 몸을 날려 후퇴하면서 손을 들어 문밖을 향해 휘둘렀다.
웅웅웅…….
바깥에서 진동 소리가 나더니, 혼탁하고 음한한 기운이 다량의 안개를 이끌어 들어와 귀신의 몸에 유입되었다.
귀신의 몸은 육안으로 확인 가능할 정도로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고, 귀신의 몸에 있던 검은 기운도 크게 늘었다.
마치 해초 같은 귀신의 머리카락도 생명이라도 가진 것처럼 미친 듯이 자라고 있었다.
기운을 회복한 귀신은 마치 동물의 촉수처럼 심협을 향해 다가왔다.
귀신을 본 심협은 놀라면서도 후회가 되었다. 그는 다급히 바닥에서 뛰어올라 머리카락을 피하고자 했지만, 그를 향해 날아오는 머리카락이 너무 많아 피할 수가 없었다.
집 안의 공간이 넓지 않았기에, 심협의 몸과 양손, 양발은 빠른 속도로 귀신의 머리카락에 묶이게 되었다.
다시 그의 몸에 남아 있는 4개의 부적의 효과를 발휘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말뚝 또한 귀신의 머리카락에 묶여, 더 이상 휘두를 수도 없었다.
심협은 다급히 소화양공을 다시 운공하려 했지만,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게다가 조금 전 소뢰부의 효과를 발휘시켰을 때 체내에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양기를 모두 소진했기 때문에, 그는 단시간 내에 다시 무언가를 시도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지체되는 동안 심협의 몸을 묶는 머리카락은 점점 더 많아졌고, 점점 더 조여 왔다. 결국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심협은 바닥에 쓰러졌다.
귀신은 몸을 한번 비틀더니, 마치 뱀 같아 보이는 검은 그림자로 화하였다. 그러고는 머리카락으로 묶여 있는 심협의 근처로 오더니, 심협의 얼굴을 향해 입을 벌리고 양기를 흡입하기 시작했다.
심협은 한기가 덮쳐오는 것이 느껴졌고, 바로 온몸을 전율하기 시작했다.
그는 양기가 그의 체내에서 빠져나와 밖으로 날아가는 게 뚜렷이 느껴졌다.
‘귀신이 내 양기를 빨아들이고 있구나! 설마 내가 또 한번 죽는 것인가…….’
심협은 점점 더 심한 추위를 느꼈다. 사지에서도 힘이 빠져나가, 점점 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비록 내키지 않는 상황이었으나,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이때, 바깥의 칠흑 같은 하늘에서 한 줄기 번갯불이 반짝하더니 천둥소리와 함께 장대비가 쏟아졌다.
침상 옆에 쓰러져있던 소녀는 몸을 한번 떨더니 천둥소리에 놀라 깼고, 이내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심협이 처한 상황을 보고 당황한 소녀는 급히 침상 아래에서 작은 나무통을 끌어냈다. 나무통 안에는 검고 끈적이는 액체가 반 정도 담겨 있었다. 바로 검은 개의 피였다.
소녀는 자신의 손가락을 힘껏 깨물어 피를 내더니, 검은 개의 피에 자신의 선혈을 떨어뜨렸다.
심협의 양기를 빨아들이고 있던 귀신도 뭔가 느껴졌는지, 돌연 몸을 돌리더니 몸을 뒤틀어 심협의 몸에서 뛰어올랐다.
그러나 소녀는 이미 비틀거리며 나무통을 들고 있었다. 소녀가 맹렬히 바깥쪽으로 나무통을 휘두르자, 통 안에 있던 검은 개의 피가 모조리 귀신에게 확 퍼부어졌다.
피를 퍼붓고 난 소녀는 힘이 다한 것인지, 온몸에 힘이 풀리며 주저앉았다.
귀신은 퍼붓는 피를 피하지 못하고, 몸의 반 이상이 검은 개의 피에 젖어버렸다. 귀신의 몸 표면에서는 순간 찌지직대는 소리가 크게 울리더니, 다량의 검은 기운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방금 검은 기운이 응집된 몸이 다시 투명해지기 시작하는 걸 보니, 마치 극심한 상해를 입은 것 같았다.
귀신은 고막을 찢어놓을 듯한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한쪽으로 몸을 날렸지만, 이내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벽에도 검은 개의 피가 꽤 많이 발려 있었던 것이다. 귀신은 벽을 통과해 나가지 못하고, 바닥에 나동그라지며 괴로운 비명을 질러댔다.
귀신의 비명에 집 전체가 흔들릴 정도였다.
이때, 심협의 몸을 묶고 있던 귀신의 머리카락도 점점 느슨해지며 풀리고 있었다. 심협은 사지에 힘이 남아 있지 않았지만, 머리카락이 느슨해지는 것을 느끼곤 죽을힘을 다해 빠져나왔다.
심협은 거친 숨을 헐떡이며 가슴이 격렬히 뛰는 것이 곧 탈진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는 다시 이를 악물고 말뚝을 던져버린 후 몸을 돌려 마지막 남은 힘으로 감실 안의 신상을 가져다 품속에 넣었다. 그러고는 재빨리 움직여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귀신의 몸을 덮쳤다.
심협의 행동을 빤히 지켜보던 소녀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그녀는 놀라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아무런 소리도 낼 수가 없었다.
이번엔 귀신의 몸이 통과되지 않았기에, 심협은 온몸으로 귀신의 몸 전체를 정면으로 안을 수 있었다.
뒤이어 심협의 품속에 있던 신상이 타오르더니, 다량의 황색 빛을 발하며 귀신의 몸을 비추기 시작했다.
황색 빛이 귀신의 몸을 비추자, 한바탕 타는 소리가 울리더니 검은 기운이 귀신의 몸 표면에서 날리기 시작했다. 귀신은 연신 처참한 비명을 지르며, 심협의 품을 벗어나려 양손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그러나 심협은 단단히 결심한 듯,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힘으로 귀신을 필사적으로 끌어안고서 조금도 힘을 풀지 않았다.
검은 기운이 날아갈수록 귀신의 몸은 형태가 점점 모호해지고, 작아지기 시작했다.
이때 심협은 안색이 창백해져 있었고, 입술에도 혈색이 전혀 없었다. 귀신의 몸 전체가 지극히 차가워 뼈에 사무칠 지경이었던 것이다. 음기가 전해져 와서 체내 혈액을 거의 얼려 버렸는지, 이가 계속 떨려왔다.
심협은 겨우 붙잡고 있는 의식으로, 지금은 절체절명의 순간이니 한번 손이 느슨해지면 지금까지 고생한 것이 모두 물거품이 된다고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