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3화 (13/1,214)
  • 13화. 위험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다

    “무서워하지 말거라, 난 나쁜 사람이 아니다.”

    심협은 시선을 돌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소녀를 바라보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녀는 눈을 깜빡이더니 심협을 자세히 살폈다. 특히 심협의 그림자를 유심히 살펴본 소녀는 긴장되어 있던 표정을 조금 풀었다.

    “지금 뭐하고 있었던 것이냐?”

    심협은 소녀가 들고 있는 나무통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 아아…….”

    소녀는 나무통을 내려놓고 심협을 바라보며 두 손을 끊임없이 움직였다. 소녀는 벙어리였던 것이다.

    수화를 알아보지 못했던 심협은 미간을 조금 찌푸리며 무언가 말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차가운 바람이 소리 없이 뒤에서 불어왔다. 심협의 몸에 그려져 있던 부적도 이 바람에 뜨거워지며 한 줄기 붉은빛이 나타났다.

    “왔구나!”

    심협은 이미 그 귀신과 두 번이나 사투를 벌였었기에, 몸도 돌리지 않은 채 쥐고 있던 향 태운 재를 뒤로 맹렬히 흩뿌렸고, 화살처럼 빠른 속도로 민가 안으로 들어갔다.

    * * *

    심협은 스산하고 날카로운 소리가 뒤에서 들려 와 돌아보니, 자신이 원래 있던 자리에서 약 2척 정도 떨어진 곳에 장대한 검은 귀신이 나타나 있었다.

    이를 보고 동공이 수축된 심협은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쳤다. 바로 자신이 전에 만났던 귀신이었던 것이다.

    귀신은 향 태운 재를 맞아서인지 자신의 모습을 숨기지 못했다. 귀신의 붉은 눈에는 고통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아마 향 태운 재에 다친 듯했다.

    ‘책에서 향 태운 재로 악귀를 물리칠 수 있다고 하더니, 역시 허튼소리는 아니었구나.’

    심협은 놀란 눈으로 귀신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심협이 생각에 잠겨있을 때, 귀신은 검은 그림자로 화하여 민가 안으로 침입하더니 심협을 향해 달려들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재빨리 앞으로 간 심협은 귀신과 가까워지자 돌연 몸을 쭈그리듯 숙여 목을 조르려던 귀신의 손을 피했고, 이와 동시에 오른쪽 다리로 바닥을 쓸며 귀신의 하반신을 찼다.

    심협은 애초에 소녀와 나무통을 살피고 있을 때부터 이 순간의 공격을 위해 몰래 소화양공을 운공하여, 양기를 오른쪽 다리와 오른손 장심으로 이끌어 놓았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도 귀신의 몸은 그림자 같아, 옅은 붉은빛으로 자욱한 심협의 오른쪽 다리는 귀신의 몸을 그대로 통과해 지나갔다.

    심협은 바로 이어 오른손으로 공격하려 했지만, 공격을 시도하지도 못했다. 오히려 힘을 너무 많이 실은 탓에 몸을 비틀거리며 앞으로 넘어질 뻔했다.

    귀신은 심협이 비틀거리는 틈을 타, 칠흑 같은 손을 아래로 뻗어 심협의 목을 조르려 했다. 심협은 속으로 ‘안 돼!’라고 외쳤지만, 몸을 비틀거리고 있어 피할 수 없었다.

    위기일발의 순간에, 별안간 옆에서 피비린내가 강하게 풍기며 검은 피가 흩뿌려졌다. 벙어리 소녀가 상황이 심상치 않자, 들고 있던 검은 개의 피를 뿌린 것이다.

    귀신은 검은 개의 피에 정면으로 맞아 처참한 비명을 질러댔다. 검은 기운이 증발하자, 귀신의 몸이 꽤 투명하게 변화하였다.

    심협은 이 틈을 타 바닥을 굴러 소녀 옆으로 가 피신했는데, 크게 놀라 등에 한가득 식은땀이 나 있는 상태였다.

    소녀는 이 행동으로 귀신의 분노를 산 듯했다. 귀신이 흉악한 눈빛을 번득이며 맹렬히 달려들어, 양손을 좌우로 신속하게 뻗어갔던 것이다.

    휙 하는 소리와 함께 귀신의 두 팔은 마치 밧줄처럼 발사되더니, 2, 3장(丈) 거리를 뛰어넘어 순식간에 심협과 벙어리 소녀의 목을 움켜쥐었다.

    차디찬 다섯 손가락은 심협의 목을 잡더니, 바로 강력한 힘을 줘서 심협의 발을 지면에서 떨어지게 하였다.

    심협과 소녀는 순식간에 들어 올려졌다. 심협은 손을 뻗어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는 귀신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이번에도 허공만 휘저을 뿐이었다.

    그는 음한한 기운이 귀신의 손을 통해 자신에게 전해지는 걸 느꼈다. 그는 귀신의 기운이 몸속으로 들어오자, 마치 수많은 차가운 벌레들이 자신의 몸을 뚫고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결국 심협은 호흡이 곤란해져왔고, 온몸도 극히 차가워져 뼈까지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

    그는 마지막 남은 일말의 힘에 의지해, 숨을 참으며 소화양공을 운공하였다. 그러고는 단전에서 일어난 양기를 가슴 부분의 부적 문양까지 옮기려 하였다. 이것이 심협에게는 마지막 희망이었던 것이다.

    ‘내가 두 번이나 죽었다가 기적처럼 살아나 다시 이곳에 처음 왔을 때의 시점으로 돌아갔었다고는 하나, 이러한 기적이 또 발생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어. 난 어찌 될지 모르는 일에 목숨을 걸고 싶지 않아.’

    그가 생각하는 동안, 체내 양기가 가슴에 그려진 첫 번째 부적 구귀부(驅鬼符)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부적 문양은 양기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심협은 이 상황에 대해 진작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다급히 운공하여 양기를 좌측 가슴에 그려진 두 번째 부적 진수부(鎭祟符)로 이끌었다.

    이번 부적은 양기를 만나자 조금 뜨거워졌던지라 반응이 있는 듯 보였지만, 심협이 기뻐할 겨를도 없이 온열감은 바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귀신의 손이 더욱 목을 조여 왔다. 이렇게 목이 조인다면, 아마 앞으로 2, 3번 정도의 호흡만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러나 심협은 절망하지 않고, 양기를 우측 가슴에 그려진 세 번째 부적 방향으로 이끌었다.

    이 양기는 급하게 만들어낸 것이라 안 그래도 기운이 약했는데 2개의 부적을 거치고 나니, 이미 처음보다 기운이 절반 정도로 약해져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이번 부적 문양이 효과를 내지 못한다면 남은 양기로는 아마 다른 부적의 효과를 촉진시킬 수 없을 것이다.

    세 번째 부적은 벽사부(辟邪符)였다.

    심협이 애초에 부적을 그릴 때, 심사숙고를 거쳐 그렸다. 처음에 이 세 가지 부적 문양을 선택한 이유는 그가 알고 있는 부적 문양 중에 귀신 쫓는 데에 가장 효과가 좋은 부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머지 다섯 개의 부적은 소뢰부를 제외하면 모두 진댁 부적이거나 정화 작용이 있는 부적으로, 귀신 쫓는 데에는 별 관련이 없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세 번째 부적도 마찬가지로, 그의 양기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때 심협의 얼굴은 이미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는 마지막 남은 일말의 의지로, 미약한 양기를 운공하여 소뢰부까지 이끌었다.

    그는 비록 소뢰부가 귀신을 진압하는 효과도 없고 부적을 잘못 다루거나 역효과가 날 가능성도 있기는 했으나, 소뢰부 문양을 그리는 데엔 숙련되어 있었고 황지에 그려본 적도 있으니 남아있는 5개의 부적 중 효과를 발휘할 가능성이 가장 큰 부적이라 생각했다.

    너무 옅어서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의 한 가닥 붉은 선이 우측 가슴 중앙의 소뢰부에 이르렀을 때, 부적 문양 전체에 미미하게 하얀 빛이 솟아올랐다. 하지만, 하얀 빛은 빠르게 두 번 반짝이고는 바로 사라졌다.

    이 상황에,심협은 붙잡고 있던 마지막 희망도 놓고 말았다.

    심협이 포기하려던 그때, 놀랄만한 광경이 펼쳐졌다.

    원래 어두워져가던 소뢰부 문양에 다시 하얀 빛이 나타나더니, 점점 밝아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순식간에 부적 문양 전체가 반짝이는 하얀 빛을 내뿜기 시작했는데, 하얀 빛 안에는 아주 작은 불꽃이 요동치는 것이 희미하게 보이는 듯했다.

    심협은 우측 가슴 중간 부분, 즉 소뢰부 문양이 그려진 곳에서 작열감을 느꼈다. 마치 뜨겁게 달군 인두로 지지는 것 같았다. 심지어 살갗이 타들어가는 냄새도 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때 심협은 몸이 공중에 매달린 데다 목이 졸려있어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기세였기에, 이런 아픔은 느낄 틈이 없었다.

    ‘빨리 효과를 내! 빨리!’

    심협은 속으로 미친 듯이 포효했다.

    소뢰부의 문양이 다시 빛나자, 심협은 다시 한 가닥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놀랄만한 또 다른 일이 발생했다. 소뢰부가 있는 곳에 강한 흡입력이 생기더니, 체내에 얼마 남지 않은 양기를 미친 듯이 빨아들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전신의 혈액도 뜨거워지기 시작하며, 우측 가슴 부위를 향해 흘렀다. 원래도 작열감이 느껴지던 그의 우측 가슴은 더더욱 뜨거워져갔다.

    심협은 현기증이 났고 입이 바짝 마르기 시작했다. 마치 전신의 혈액이 모두 끓다가 증발해버릴 것 같았고, 우측 가슴은 다 타서 구멍이 난 것만 같았다.

    이때 심협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간 귀신에게 목 졸려 죽기 전에 자신이 먼저 부적에 기를 빨려 탈진하거나 혹은 타 죽을 것 같았다.

    그러나 멈추고 싶어도 부적이 체내의 원기를 빨아들이는 것을 제지할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이때 소뢰부가 원기를 충분히 빨아들인 것인지, 흡입을 멈추고 내뿜고 있던 하얀 빛도 모조리 거두었다. 심협은 우측 가슴이 불에 그을린 것처럼 따가워 괴로운 신음소리를 내었다.

    그 순간, 소뢰부 문양이 맹렬히 빛을 발하더니, 눈이 부시다 못해 따가울 정도의 하얀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하얀 빛은 주변의 어둠과 음기를 모두 파괴하기 시작했고, 심협의 목을 조르고 있던 귀신의 팔에도 번개 같은 속도로 공격을 가했다.

    이 모든 과정은 말하자면 길지만, 실제로는 심협이 첫 번째 부적으로 양기를 이동시킨 때부터 지금까지 고작 한두 번 호흡할 정도의 시간이 걸렸을 뿐이었다.

    심협의 목을 조르고 있던 귀신의 팔과 손아귀는 마치 불을 만난 눈과 얼음처럼 하얀 빛에 의해 너무도 쉽게 파괴되어 없어졌다.

    목이 풀리자, 심협이 숨을 돌리기도 전에 먼저 양발이 묵직하게 지면에 닿았다. 이내 그는 몸이 비틀거리더니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를 하고는 몸이 쓰러지지 않도록 버텼다.

    한편, 그 하얀 빛은 귀신의 한쪽 팔을 공격한 후 계속 앞을 비춘 채, 귀신을 공격하지 않고, 그저 1장 정도 거리의 바닥을 비추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쾅 하며 마른벼락이 치는 듯한 큰 굉음이 울리더니, 바닥이 크게 흔들리며 1척 정도 크기의 구덩이가 생겼다.

    온통 어두운 주변으로 파편들이 사방에 흩날렸고, 공기 중에 뜨거운 폭풍이 일어 심협, 소녀, 귀신의 몸이 모두 흔들렸다.

    이와 거의 동시에, 소녀의 품에서 돌연 황색 빛이 빛나더니 목을 조르고 있던 귀신의 손을 공격했다.

    소녀의 품에는 털이 덥수룩한 황색 개의 꼬리가 있었는데,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황색 화염으로 귀신의 손을 태워버렸다.

    엉덩이부터 바닥에 떨어진 소녀는 양손으로 자신의 목을 가리며 연신 기침을 해댔다. 소녀의 얼굴도 심협처럼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귀신은 양팔이 모두 훼손되자 다시 처참한 비명을 질러댔고, 몸이 흐릿해지더니 바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하얀 빛이 만든 바닥의 구덩이를 바라본 심협은 놀라면서도 기쁜 내색이었다.

    그는 우연히 만난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이렇게 성공적으로 소뢰부의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지도 못했다. 이 부적의 하얀 빛은 그 귀신을 완전히 적중하지 못했음에도 나타냈던 위력은 자신의 상상을 한참 뛰어넘었다.

    스윽…….

    순간 심협이 우측 가슴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고개를 숙여 살펴보니, 소뢰부가 그려져 있던 위치가 이미 까맣게 타 피와 살이 뒤엉켜 있었다.

    “큰일이다. 그 귀신이 아직 떠나지 않았어!”

    돌연 무엇인가 눈치챈 심협은 소뢰부가 어떻게 성공적으로 효과를 내었는지 더 생각할 틈도 없이, 다급히 집 안의 감실 앞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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