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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2화 (12/1,214)

12화. 계속 같은 곳을 맴돌다

부적을 다 그린 심협은 산촌과 반대 방향을 향해 빠르게 뛰어갔다. 그 산촌은 분명 불길한 곳이었으니, 또 그곳에 다시 들어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최대한 산촌에서 멀리 달아나는 것이 상책이었다.

옛 성현들도 군자는 위험한 곳은 멀리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다른 문제들은 우선 그 기이한 산촌에서 멀리 벗어난 후에 다시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달아나던 그는 안개가 더욱 자욱해져 시야가 흐려지는 것을 느꼈고, 머지않아 앞의 길도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심협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전력을 다해 달렸다. 이때 그는 오로지 산촌에서 최대한 멀리 떠날 생각뿐이었다.

한참을 달리자, 눈앞의 안개가 돌연 옅어지며 앞이 뚜렷하게 보였다. 심협은 기뻐하며 더 빨리 걷기 시작했지만, 곧 표정을 굳히며 걸음을 멈추었다.

눈앞에 오솔길, 그리고 산을 따라 지어진 작은 산촌이 보이더니, 산촌에서 등불 하나가 비춰왔던 것이다.

“이럴…… 이럴 수가. 내 분명 반대 방향으로 달려왔는데!”

심협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급히 사방을 둘러본 후, 다시 이를 악물고 방향을 돌려 광야를 향해 달려갔다.

* * *

안개 속에 파묻혔던 심협은 잠시 후 눈앞의 안개가 옅어지자, 눈앞에 다시 익숙한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처음 접했을 땐 따뜻하게만 느껴지던 산촌의 등불은, 지금 다시 마주하니 모골을 송연하게 만들었다.

당황스러웠던 그는 길가의 풀숲을 바라보더니, 돌연 풀숲을 향해 재빨리 달아났다.

그 순간 안개가 산촌 전체의 주변에 자욱해지더니, 사방을 모두 에워쌌다. 심협이 더는 그 길을 가지 않으려 해도, 안개는 여전히 그를 파묻어 버렸다.

풀숲은 발을 디디기가 꽤 어려웠기에 심협은 거기에서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지만, 조금도 지체할 수 없어 앞만 보고 전력으로 질주했다.

조금 더 걷다 보니, 눈앞의 안개가 돌연 옅어졌다. 걸음을 늦춘 심협은 침을 삼키고 다시 앞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눈앞의 광경은 빠른 속도로 뚜렷해지기 시작했지만, 곧 눈앞의 광경에 그는 정신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오솔길이 앞에 나타나 있고, 길의 끝엔…… 역시나 바로 그 산촌이 있었다!

“설마…… 귀신이 제자리를 맴돌도록 희롱하는 것인가?”

억지로 마음을 진정시킨 심협은 서적에서 읽었던 것들을 기억해봤는데, 돌연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이때, 밤바람이 돌연 세게 불기 시작했다. 주변에 있던 안개도 격렬히 요동치더니 산촌을 향해 밀려가기 시작했다. 주변의 수목들도 끊임없이 흔들렸고, 나뭇잎에서는 스산한 소리가 퍼지기 시작했다.

공기 중의 음산한 기운도 더욱 짙어졌다. 온몸의 털이 곤두선 심협은 두려움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건 마치 독사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자신이 어디로 가든 다 간파 당하는 듯했다.

심협은 깊이 숨을 한번 들이 마시고 무거운 표정으로 몇 보 뒷걸음을 쳤다가, 다시 몸을 돌려 안개가 자욱한 곳을 향해 뛰어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이번에는 몇 걸음 가지도 못하고 어떤 것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심협이 뭔가를 더 하기도 전에, 순간 목 부분이 차가워지더니 바로 검은 손바닥 자국 두 개가 나타났다.

손바닥 자국은 다시금 재빨리 심협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허튼 생각마라!”

심협은 마음속으로 포효하고는 미친 듯이 소화양공을 운공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붉은 빛이 심협의 몸에서 새어 나오며, 그를 습격한 무형의 존재를 제압하려고 했다. 이와 동시에 그는 체내의 양기를 가슴 앞 부적 문양으로 미친 듯이 주입시키기 시작했다.

이번에 처음으로 귀신 쫓는 부적을 시험해본 것이기는 하나 상황이 다급하니 가망이 없는 일이라도 시도해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옷의 부적 문양 부분이 미미하게 따뜻해지는 것 외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별안간 심협의 두 눈에 미미하게 따뜻해지는 것이 느껴지더니, 바로 컴컴해지며 검은 그림자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 검은 그림자는 1장(丈)은 족히 되어 보였고, 머리가 심히 길어 바닥에 끌리고 있었다. 머리가 얼굴을 가리고 있어 생김새는 볼 수 없었지만, 얼핏 붉게 충혈된 두 눈이 보였다. 그 눈에는 살벌한 악의와 생명을 뺏고자하는 탐욕이 엿보였다. 귀신은 검은 기운이 자욱한 긴팔로 심협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정말 귀신이었군!”

심협은 심히 놀란 나머지 호흡이 곤란해져 가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귀신을 발로 찼다.

귀신은 심협의 발이 닿기도 전에 먼저 스산하고도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고, 순간 심협은 머리에 울림을 느꼈다.

결국 그의 몸에 있던 붉은 빛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더니, 그의 눈과 귀, 그리고 코에서 양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는 시야가 마치 붉은색으로 물드는 것처럼 느껴졌고, 다른 감각기관들의 기능을 잃어가는 것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귀신은 심협의 목을 점점 더 세게 조였고, 심협은 점점 의식을 잃어갔다. 귀신을 찼던 그의 다리는 허공에서 빳빳하게 경직되었다가 바로 힘없이 떨구어졌다.

심협은 어렴풋이 벼락 치는 소리, 이어서 장대비가 쏟아지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으나 이내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다.

* * *

어렴풋이 심협은 자신이 끝없는 암흑 속에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사방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아 매우 고요했다.

심협은 두 눈을 뜨고자 했지만, 자신의 신체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것만 같았다. 눈꺼풀을 조금도 뜰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손발도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어렴풋이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지만,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심한 권태감이 몰려와 자꾸만 될 대로 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이렇게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쉬고만 싶었다.

바로 이때, 요란한 벌레 울음소리가 귓가에 들리며 정적이 깨졌다. 심협은 흠칫 놀라 다급히 두 눈을 떴고, 바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신이 또다시 처음의 그곳에 누워 있었던 것이다.

익숙한 오솔길, 익숙한 농경지, 익숙한 밤안개와 초승달…… 그리고 멀리 어렴풋이 보이는 안개 속 산촌과 그 희미한 등불까지!

‘아닐 거야! 꿈이 이렇게 실감날 수는 없어. 현실에서 어찌 이렇게 반복될 수 있겠냐고! 내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심협은 마음속으로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이내 그는 벌떡 일어섰다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났는지 쪼그리고 앉아 땅을 깊이 팠다.

지표면은 이슬 때문에 조금 습했지만, 안쪽 깊은 곳은 말라있는 상태였다.

‘조금 전 의식을 잃었을 때엔 분명 폭우가 쏟아졌었지. 비록 의식을 잃은 후 얼마나 지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만일 실제 일어난 일이라면 절대 땅의 상태가 이렇지 않았을 것이야.’

심협은 오솔길의 앞뒤 좌우를 살폈다. 길에는 전혀 사람이 다녀간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분명 몇 번이나 이 길을 왕복했으니, 자신의 족적이 남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설마 이곳은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복원되거나 반복되는 것인가! 방금 귀신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라, 죽었다가 부활하여 이곳에 막 도착했을 때로 돌아가는 것인가?”

두뇌 회전이 빨랐던 심협은 재빨리 모호한 추측이나마 해낼 수 있었다. 그가 보았던 잡서들에 이런 기이하고 해괴한 이야기가 꽤 등장했었던 것이다.

순간 무언가 떠올랐던 심협은 손을 들어 지난번 부적을 그릴 때 깨물었던 식지를 살폈다. 식지의 피부는 매끈한 것이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역시 그런 것이었군. 다만 그래도 좀 이해가 되지 않는구나.”

심협의 눈빛에 놀라움이 스쳤다.

자신이 오늘 겪은 상황들이 명확해지자, 그는 긴장되었던 정신이 조금은 느슨해지고 더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조금 전 겪었던 일들을 떠올려 보던 심협은 조만간 또 귀신의 습격을 받을 거라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렸다.

그는 이곳에서 부활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 귀신을 대하는 게 지난번처럼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부활할 때마다 귀신에게 고통스럽게 목이 졸려 죽는 것은 절대 원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미 2번이나 부활했는데, 3번째에도 똑같이 부활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만일 다시 부활할 수 없다면? 목숨은 하나뿐이었기에, 그는 목숨을 가지고 모험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미련 없이 한번 싸워보는 수밖에 없었다.

심협은 묵묵히 생각한 끝에 두려움이 많이 사라지자, 오히려 몸이 근질근질해졌다.

서적들에서 봤던 귀신 쫓는 부적들을 다시 떠올려보기 시작했던 그는 돌연 상의를 벗더니, 손가락을 깨물어 선혈을 내고 상반신 곳곳에 부적 문양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8개의 부적 문양을 그리고서야 멈추었다. 부적을 더 그리고 싶었지만, 각각의 부적 문양을 그릴 때마다 이유를 알 수 없이 체내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기력이 약해지는 것이 느껴졌기에 8개의 부적만 그릴 수 있었다.

연달아 8개의 부적 문양을 그리고 나자, 심협은 심한 피로를 느꼈다. 더 그리다가는 곧 있을 행동에 영향을 미칠 테니 멈출 수밖에 없었다.

심협이 몸에 그린 부적의 문양은 예전에 책을 보고 모사해봤던 부적들이었다. 그 8개의 부적들 중에는 소뢰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비록 소뢰부의 백색광이 구체적으로 어떤 효과를 가졌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았다.

심협은 다시 옷을 챙겨 입었다. 조금 전 같은 곳을 맴돌았던 경험이 있으니, 이번에는 다른 곳을 향하지 않고 바로 산촌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원래 겁이 별로 없었다. 다만 조금 전까지는 겪었던 일들이 너무도 기이하여 두려웠을 뿐이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상황 파악이 되었으니, 그는 아예 진상을 밝히고 싶어졌다. 만일 귀신의 습격에서 벗어나거나 혹은 귀신을 물리치고 나면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지 꼭 알고 싶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심협은 마을 입구에 이르렀다.

마을 입구에는 그가 처음 마을 입구에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두 동강난 말뚝이 앞을 막고 있었다. 말뚝을 발견한 심협은 자신의 추측에 더욱 확신이 생겼다.

심협은 산촌으로 들어가려다가 문득 무슨 생각이 떠오른 듯 두 동강 난 말뚝을 자신의 허리에 꽂아두고서야 마을 안 등불이 새어 나오는 민가로 달려갔다.

* * *

민가 앞에 이른 심협은 우선 문 앞에 쓰러져있던 감실에서 향 태우고 남은 재를 한 움큼 쥐고서 문 앞으로 달려갔고, 검은 피가 문에서 흘러나오기 전에 발로 문을 세게 찼다.

그러자 펑 소리가 나며 목제 문이 열렸는데, 문안 광경은 오히려 그를 당황스럽게 했다.

그곳에는 잿빛 짧은 옷을 입은 7, 8세 정도의 깡마른 소녀가 오들오들 떨며 서 있었던 것이다. 소녀는 검은 선혈이 가득 담겨있는 나무통을 안고 있었고, 문 쪽으로 쏟아버리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소녀는 갑자기 문을 부수고 들어온 심협을 보며 겁에 질린 표정으로 뒷걸음쳤다.

재빨리 정신을 차린 심협은 소녀를 상대하지 않고 집 안을 훑어보았다. 집 안 한구석에는 온몸이 경직된 순수한 검은색의 개 시체가 누워있었다.

“검은 개의 피.”

심협은 소녀가 들고 있는 나무통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리더니, 시선을 돌려 다시 집 안의 살피기 시작했다.

검은 개 시체의 옆에는 목제 침상이 있었는데, 머리가 하얀 노인이 누워 있었다. 노인은 두 눈을 꼭 감은 것이 의식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집 안 중앙에는 감실이 하나 더 있었다. 감실 위에는 촛불이 켜져 있었고, 감실 안에는 구두인신(*狗頭人身 : 개의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한 작은 신상이 모셔져 있었다.

집 안 곳곳의 벽, 그리고 문과 창문에는 검은 핏자국이 가득 발려 있었다. 분명 일부러 바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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