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0화 (10/1,214)
  • 10화. 옥침(玉枕)

    심협이 놀람 반, 의심 반으로 어찌할지 몰라 멍하니 서 있을 때, 더욱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사방에 흩날리고 있던 빛 조각들이 마치 어떤 힘에 이끌려가듯 돌연 산벽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빛 조각들이 산벽에 닿자, 마치 쥐가 쥐구멍에 들어가듯 앞다투어 산벽을 뚫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빛 조각이 산벽에 들어갈수록 산벽 또한 점점 투명해졌다. 안은 칠흑처럼 어두웠는데 마치 동굴이 있는 것 같았다.

    심협은 이 광경을 보며 산벽으로 다가가 작은 돌로 두드려보기 시작했다. 그가 두드릴 때마다 쿵 하는 소리가 다시 메아리쳤다.

    “비어있네.”

    심협은 이렇게 중얼거리고 나서 주변을 한번 살핀 후, 풀더미 정도 크기의 더 큰 돌을 찾아 산벽을 찧기 시작했다.

    몇 번을 찧고 나자, 산벽엔 마침내 사발 크기의 구멍이 났다. 심협은 그 구멍 주변을 또 찧어 구멍을 꽤 넓혔다.

    아니나 다를까 구멍 안에는 역시 작은 동굴이 있었는데, 깊이가 겨우 4, 5척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산벽에 들어갔던 빛 조각들은 이제 모두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동굴 한구석에 직경 2척 정도의 동구란 석구(石球)가 놓여 있었다.

    “설마 이것이 부적의 백색광을 모두 흡수한 것인가?”

    심협은 의심이 들어 바로 석구를 꺼낼 수가 없었다.

    ‘예전에도 음침한 곳에 갔다가 음기가 몸에 들지 않았었던가? 이리 은밀한 곳에 숨겨져 있고, 백색광을 모두 흡수하는 것을 보면 이것도 불길한 물건일지 모를 일이야. 물론 잡서와 유람기에 등장하는 보물일 수도 있겠지!

    어쨌거나 난 이미 소화양공의 입문을 완성했으니, 일반적인 음기로는 내 몸에 침입할 수 없는 상태일 것이야.’

    심협은 동굴 입구에서 한참 망설이다가 겉옷을 벗어 양손을 감싸고는, 시험하고 난 부적들을 장심으로 밀어 넣어 손과 옷 사이를 메웠다. 이와 동시에 체내의 소화양공을 운공하여 몸을 보호했다.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마친 후에야 심협은 동굴 안으로 손을 넣어 석구를 들었다. 석구는 의외로 가벼웠고, 그 외에는 전혀 이상한 점이 없었다.

    조금 마음이 놓인 심협은 석구를 가볍게 안아 들고, 자신의 가슴 앞에 둔 채 고개 숙여 관찰하기 시작했다.

    석구의 뿌연 잿빛 표면에는 작은 구멍이 빽빽하게 나 있었다.

    ‘어쩐지 너무 가볍더라니.’

    석구는 마치 천연에서 생성된 것 같았다.

    심협은 석구를 이리저리 돌리며 살폈지만 다른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무의식적으로 석구를 흔들어 보았는데, 석구 안에서 덜컹덜컹 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심협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안에 무언가 신기한 것이 들어있다니!’

    석구를 바닥에 내려놓은 심협은 장심에 있던 부적을 꺼내더니 감겨있던 겉옷을 풀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손가락으로 석구를 가볍게 어루만져도 보고, 또 약간 힘을 주어 눌러도 보았다.

    석구의 표면은 구멍이 가득해서 거칠게 느껴졌지만, 약간의 탄성이 있어 그리 단단하지는 않았다.

    심협은 잠시 생각한 후, 주먹 크기의 돌을 주워 석구의 표면을 가볍게 긁어보았다. 그러자 쫙 하며 갈리는 소리와 함께 다량의 잿빛 분말이 날리기 시작했고, 석구의 표면에 수 촌(寸) 길이로 깊이 긁힌 자국이 남았다.

    석구는 마치 밀가루 반죽처럼 부드러웠던 것이다.

    잠시 당황한 기색을 보였던 심협은 바로 기뻐하며 석구를 풀밭에 놓고, 들고 있던 돌로 석구를 갈아내기 시작했다.

    * * *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자, 석구는 모두 가루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심협은 석구 대신 수중에 다른 물건을 들고서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물건은 약 1척(尺)이 조금 넘는 길이에 너비는 반 척(尺)이 채 되지 않은 직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었다. 전체가 순수한 감노란색을 띄는 것이 꼭 옥돌 하나를 연마해 만든 것 같았다.

    게다가 양쪽 끝은 치켜 올라가 있었고, 중간은 오목하게 파여 있는 것이 약간의 아치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8개의 모서리는 꽤 매끄럽게 보였다.

    심협이 손으로 만져보니, 감촉은 차갑지만 얼음장 같진 않았고 시원하되 한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또한, 섬세하고 매끄러운 것이 옥돌 같은 재질인 듯했다.

    그 표면에는 길고 가늘게 새겨진 자국이 있었는데, 정교하게 새긴 물결무늬인 듯했다.

    다만 물건이 오래된 탓인지 표면의 광택이 약간 바래있었다. 가장자리에도 한두 곳 갈라진 부분이 있었으나 꽤 고풍스러운 느낌을 풍겼다.

    “이 물건은 마치 베개 같구나. 옥침(玉枕)인 건가?”

    심협은 그 물건을 자세히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심협은 집안에서 의관과 약방 사업을 했기에, 각종 종교와 문파 사람들을 접할 수 있었다. 나름 견문이 넓었던 그는 예전에 한 전당포에서 옥침을 본 적이 있었는데, 지금 그가 들고 있는 것과 꽤 비슷한 모양새였다.

    의학에서는 ‘머리를 차갑게 하고 발을 따뜻이 하라’는 원칙이 있었다. 옥침도 이 원리에서 나온 것이었다. 오랜 기간 옥침을 베고 잔다면, 두뇌와 지능에 도움이 되고, 정신이 맑아지는 효과를 볼 수 있었다. 하여 왕공 대신(王公大臣)부터 천자에 이르기까지, 몸과 두뇌를 건강히 하고 장수하기 위하여 옥침을 사용했다.

    다만 옥침에 쓸 옥돌은 까다롭게 골라야 했다. 아무 옥돌로 베개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 옥침은 보통의 부잣집에서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격이 엄청났다.

    그런데 이리 인적이 드문 깊은 산속에 어찌 옥침이 있는 것이며, 기이한 동굴 속 석구 안에 감춰져 있었단 말인가?

    심협은 옥침을 구석구석 수차례 살펴봤지만, 영험해 보이는 점은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옥침이 부적의 백색광을 흡수한 것을 미루어 볼 때 절대 평범한 물건은 아닐 것 같았다.

    어쩌면 책에서 종종 읽었던 ‘기적 같은 우연’으로 영험한 ‘보물’을 얻은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심협은 흥분과 긴장의 감정이 교차했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겉옷으로 옥침을 감싸 봇짐으로 만든 후 등에 둘러메고는, 동굴 입구를 돌로 막고 주변에 있던 덩굴로 가려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심협은 주변도 정리하고, 주변에 다른 사람이나 허점이 남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서야 그 자리를 떠났다.

    이 시간이면 춘추관 제자들이 각자 자신의 방에서 수련할 시간이라, 밖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을 터였다.

    역시나 돌아오는 길에 심협은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다. 빠르게 자신의 정실로 돌아온 그는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고서야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목제 대야에 깨끗한 물을 떠온 후 깨끗한 헝겊으로 옥침에 묻어 있던 더러운 것들을 다 닦아내고 나서 다시 옥침을 구석구석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한참을 살펴봤지만, 옥침엔 별다른 구석이 없었다.

    심협은 어쩔 수 없이 잡서와 유람기에 나와 있던 기이한 보물 구별법을 생각해냈다. 비록 믿을만한 방법은 아닌 것 같았지만, 지금으로서는 시도해 볼만 했던 것이다.

    심협은 우선 방금 떠온 깨끗한 물에 옥침을 담가두었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자 이번에는 불로 옥침을 그을려 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아무 변화가 없었다.

    계속 변화가 없자, 심협은 옥침의 소재가 평범한 것이 아님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보통의 옥돌이라면, 최소한 불에 그을렸을 때 표면이 변색이라도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어서 심협은 작은 칼을 가져와 자신의 손가락을 그었고, 손가락에서 나온 선혈(鮮血)을 옥침에 떨어뜨렸다. 그런데 옥침이 선혈을 맞고도 아무런 변화가 없자, 그는 칼로 옥침 표면을 몇 번 그어 보았다.

    * * *

    밥 한 끼 먹을 시간이 지났다. 심협은 머리에 땀이 흥건한 채 자신의 손에 있는 칼날이 휘어진 것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옥침은 여전히 아무 손상도 없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여전히 옥침이 보물인지 의심스러웠던 그는 다시 소뢰부를 제작해 이 옥침이 어떻게 백색광을 흡수하는지 살펴보기로 마음먹었다.

    어쨌거나 지금 그는 이 옥침의 특이한 점을 찾지 못했으나, 최소한 시험해봤던 보물 분별법으로 그 비범함은 확인한 셈이었다.

    심협은 옥침을 내려놓고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옥침을 집어 들어 탁자 위에 두었다. 그러고는 침상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양손은 원을 감싸는 듯한 모양을 하고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서 소화양공을 수련했다.

    다른 방법을 찾기 전까지는 소화양공의 수련이 그의 생명을 연장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니, 절대 소홀히 할 수 없었다.

    * * *

    심협의 수련은 자시(*子時 : 밤 11시~ 새벽 1시)까지 이어졌다.

    심협은 암울한 표정으로 품 안에 있는 붉은 선 한줄기를 입과 코로 흡입하고 나서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소화양공에 입문한 이후로 이제 겨우 1단계에 이르렀을 뿐이었는데, 수련의 진도가 예전보다도 더 늦어진 걸 깨달았다. 이 정도의 진도라면, 대성(大成)을 이루기는커녕 2단계에 도달하기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됐다. 부적 연구도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았으니, 앞으로 부적술도 깨우치고 한편으로는 소화양공도 부지런히 수련하면 돼. 두 가지 방법을 병행한다면 분명 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야.”

    심협은 자신을 위로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미 깊은 밤이었다. 심협은 하품을 하며, 침상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이고 나니 몸도 이미 지쳐있었다.

    그렇게 그는 금방 잠이 들었다.

    고즈넉한 여름밤, 벌레 우는 소리가 드문드문 들려왔고, 하늘에는 달이 떠있어 창밖으로 하얀 달빛이 비추었다.

    방 안에는 어둠이 내려와 있어 유난히 더 어둡고 고요했다.

    * * *

    단잠에 빠져있던 심협은 몽롱한 가운데 돌연 으스스한 한기가 느껴져 몸을 떨며 움츠렸다.

    그는 자신이 자면서 이불을 차버렸다고 생각하고, 손을 들어 옆에 있는 이불을 끌어 덮으려 했다. 그런데 그의 손은 허탕만 칠 뿐, 그의 손에 만져진 것은 차갑고 습하며 기다란 물건이었다.

    그는 잠이 덜 깬 상태로 아무 반응도 하지 못했다.

    이윽고 그는 무어라 중얼거리며 다른 한 손으로 이불을 잡으려던 방향으로 아무렇게나 움켜쥐었는데, 질척질척한 물건이 잡히며 손끝에 살을 에는 듯한 한기가 느껴졌다. 이와 동시에 코에는 짙은 초목 내음이 느껴지고, 귀에는 미미한 벌레 우는소리가 마치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했다.

    “뭔가 이상해.”

    깜짝 놀라 깬 심협은 순간적으로 똑바로 앉았다. 양손에 쥐어져있는 것을 재빨리 살펴본 그의 두 눈동자가 순간 심하게 흔들렸다.

    그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축축한 등나무 줄기와 습한 진흙 한 줌이었다. 진흙에는 몇 촌은 되어 보이는 풀도 하나 껴있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심협은 급히 손안에 있던 것들을 내버리고,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아직 덜 깼던 잠도 모두 달아나 버렸다.

    지금 그는 자신의 정실 침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황야의 진흙 위에 앉아있었다.

    심협은 어두운 표정으로 일어나 사방을 살폈고, 그제야 자신이 누워있던 곳 양옆에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있어 벌레 우는소리가 여기서 들렸던 것을 알게 되었다.

    앞뒤로는 사람 한 명만 겨우 지날 수 있을 만한 질퍽한 길이 있었는데, 어느 곳으로 통하는 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조금 먼 곳은 옅은 안개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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