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8화 (8/1,214)
  • 8화. 부적을 시험하다

    약 한 시진이 지났을까. 심협의 안색은 조금 초췌해졌으나, 눈은 도리어 흥분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한 손에 자신이 그린 황지 부적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장천사항요기사’를 펼쳐 들고는 끊임없이 그 두 가지를 비교하고 있었다.

    “좋다, 좋아. 이번에 쓴 것은 꽤 비슷하구나.”

    이번에 쓴 것도 책에 나온 부적과 비교해서 조금 다른 듯했으나, 숨이 끊긴 듯한 느낌은 확실히 나타나지 않았다.

    진전이 보이자, 심협은 온몸에 기운이 솟는 듯했고, 처음에 느꼈던 피로감은 흥분으로 모두 잊어버렸다.

    벼루 안의 피가 얼마 남지 않자, 심협은 자기병에 남아있던 검은 개의 피를 전부 쏟아 부었다. 그러고는 다시 붓을 들어 부적을 쓰려다가 돌연 멈추더니,

    “그런데 이 호신 부적이 진짜 영험한지 알 길이 없구나.”

    심협은 의구심이 들어 속으로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호신 부적은 간단하다고 하나, 진댁 부적이나 평안 부적과 마찬가지로 복을 부르고 화를 피하는 부적이었다. 따라서 명확한 공격 효과가 없으니, 몸에 지닌다거나 집에 두어 효과를 발휘한다고 해도 그 효과를 알기가 어려웠다.

    “그래, 아예 그걸 한번 시도해보자.”

    심협은 ‘장천사항요기사’에서 봤던 이야기 하나를 떠올렸다. 이건 장천사가 집 안에 해를 끼치는 쥐 요괴를 만났는데, 여러 화 부적, 진댁 부적을 써도 요괴를 물리치지 못하다가 ‘소뢰부’라고 불리는 공 부적을 써서 그 쥐 요괴를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는 이야기였다.

    심협은 바로 그 책의 이야기가 나와 있는 곳을 펼쳐봤는데, 역시나 뒷장에는 소뢰부의 도안이 붙어있었다.

    ‘장천사항요기사’에는 여러 일화가 수록되어 있었으나, 부적을 쓴 일화는 반도 되지 않았고 그마저도 대부분 귀신 쫓는 부적이었다. 더구나 진댁 부적을 쓴 것이라 공 부적을 쓴 일화는 이 이야기 하나뿐이었다.

    “하하, 이것이로구나…….”

    심협은 웃으며 자세히 도안을 관찰한 후, 다시 붓을 집어 들었다.

    이 부적은 호신 부적과 달리 첫 부분을 ‘뢰(雷)’자의 옛 서체로 시작하고 있어 꽤 쓰기가 어려웠다. 이 글자를 연습해본 적이 없었던 심협은 이 글자를 부적에 썼다가 몇 장이나 되는 황지를 버리게 되었다. 하지만, 아까운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부적 쓰기를 멈출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는 십여 장의 황지를 낭비하고서야 그럴듯한 ‘소뢰부’를 써내게 되었다.

    “부적에 기(氣)와 신(神)이 들었는지는 보장할 수가 없으니, 쓸 수 있는 부적인지는 운에 맡겨야겠군.”

    마음속으로 흥분한 심협이 손안의 부적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심협은 손에 감이 생긴 김에 계속 부적을 쓰기로 했다.

    그가 써낸 10장의 부적을 보니, 그중 한두 장은 꽤 쓸 만해 보였다.

    시간이 지나 벼루에 있던 검은 개의 피가 곧 바닥을 보일 참이었다. 심협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곧 주사(朱砂)가 들어있는 자기병을 열어 벼루에 조금 따르고는 몇 번 저었다. 주사는 피에 금방 녹아들었다.

    검은 개의 피에 주사를 섞는 것은 심협이 새롭게 생각해 낸 것이 아니라, 장천사가 썼던 방법이라고 책에 기재되어 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도 이리 귀하게 얻은 물건을 망치는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황지도 얼마 남지 않아 마지막으로 두 장의 소뢰부만 더 써낼 수 있을 뿐이었다. 벼루 안의 피도 함께 소진되어 더 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심협은 길게 숨을 내쉬고는, 허탈한 듯 의자의 손잡이를 짚고 녹초가 되어 주저앉았다.

    기마자세를 오래 하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숨을 자주 참아서인지, 심협은 온몸이 쑤시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마치 온종일 막노동이라도 한 것 같았다.

    “안 되겠다. 빨리 쉬어야겠어. 그렇지 않으면 내일 수련에 지장이 있을 것이야.”

    심협은 탁자 위를 대충 정리하고, 자신이 쓴 부적을 모아 한곳에 놓은 뒤 침상으로 가 결국 잠이 들었다.

    그는 이불도 덮지 않은 채 코 고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 * *

    새벽, 산속에 새 지저귀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마치 시냇물 흐르는 소리 같은 게 낭랑하니 듣기 좋았다.

    심협은 피로가 다 풀리지 않았지만, 강한 자제력으로 평소와 같은 시간에 일어났다.

    일어나서 탁상 위의 부적들을 바라본 그는 마음속에 미미한 흥분이 일었고, 이내 그 부적들을 소중하게 품속에 챙겨 넣었다.

    옷을 챙겨 입고 정실을 나선 심협은 산천을 끌어다 만든 연못에 이르러 세수하고 입을 헹구고는 옥황전을 향해 올라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침 수련은 빠질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 * *

    세 시진이 지난 후, 심협은 하루의 소화양공 수련을 완성했다.

    뒤이어 그는 수련하던 큰 바위 앞에 서서 밥을 먹으러 가는 대신 품속에서 건량(乾糧)을 꺼내 대충 몇 입 먹고는 뒷산으로 향했다.

    * * *

    심협은 금방 뒷산에 도착했다. 그는 작은 길을 따라 뒷산 깊숙한 곳을 향해 가더니, 주봉(主峯)에서 멀리 떨어진 은밀한 산골짜기에서 멈춰 섰다.

    ‘춘추관의 허락도 없이 부적을 썼으니, 부적을 시험하다 발각이라도 된다면 몰래 부적술을 배운 죄로 몰려 낭패를 볼 것이야.’

    심협은 귀 기울여 주변 소리를 들으며 동정을 살피다가,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품속에서 자신이 쓴 부적들을 꺼내 땅 위에 올려놨다. 그리고 다시 품속을 한참 뒤져, 6개의 회백색 옥돌을 꺼내 다른 한쪽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이 옥돌들은 바로 일전에 백소천이 구해주었던 원석으로, 빛에 비추면 안에 회전하는 백색 기체가 보였다.

    “안에 담긴 백색 기체가 아마 부적의 효과를 발휘시키는 핵심인 것 같구나. 어떤 것인지 모르겠으나 참으로 흥분되네.”

    심협은 몇 마디 중얼거리더니 호기심을 억누르며 부적 한 장을 가져다 평평한 바위 위에 놓고, 다시 원석 하나를 부적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 나서 그는 반쯤 웅크린 자세로 왼손으로는 결인(結印)하고, 오른손 장심으로는 원석을 누른 자세로 천천히 소화양공을 운공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아랫배가 은은하게 따뜻해지더니 난류(暖流)가 솟구쳐 몸의 경맥을 따라 퍼지기 시작했다. 난류는 오른쪽 흉부와 오른팔을 거쳐 오른손 장심까지 흘러갔다. 오른손 장심에 난류가 모이기 시작하자, 장심은 미미하게 붉어지고 있었다.

    심협은 주저하지 않고 계속 운공하였다.

    아랫배에서 시작된 양기는 계속 오른손 장심으로 유입되고 있었다.

    이렇게 십여 회를 반복하고 나니, 그의 오른손 장심은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손가락과 손바닥 사이에는 희미하고 가느다란 열류가 회전했다.

    심협은 콧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가면서 오른손이 흔들리지 않도록 애쓰고 있었다.

    지금 심협은 소화양공의 입문에 이른 후, 처음으로 정식 운공을 한 것이었는데, 원석의 효과를 이끌어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조금 더 수련하고 사용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다만 수중에 원석은 6개밖에 되지 않았고, 이마저도 백소천이 꽤나 애써서 구한 것들이라 조심스럽게 시험해보며 한편으로는 경험을 쌓으려 했다.

    곧이어 그는 장심의 열류를 끌어다가 장심의 한 곳에 집중시키고는 열류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심에는 3촌이 채 되지 않는 옅은 붉은 선이 응집되더니 아래에 있는 원석 안으로 주입되고 있었다.

    그 순간, 원래 표면에 광채가 없던 원석이 갑자기 변화하기 시작했고, 표면에 옅은 붉은빛이 돌더니 순식간에 밖에서부터 안으로 담홍빛이 물들어 영롱하게 빛났다. 원석 안의 백색 기체도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윽고 원석은 깨지는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났고, 안에 있던 백색 기체는 백색광으로 변했다.

    이 모든 과정을 말로 설명하자면 길었지만, 실제로는 붉은 선이 원석으로 들어갈 때부터 원석의 폭발까지 모두 순식간에 벌어졌다.

    심협은 그 백색광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 빛은 새끼손가락 끝보다도 작아, 마치 반딧불처럼 보였다.

    그는 마음속에 감격이 일었다.

    ‘처음 운용한 소화양공으로 원석 안에 담긴 기운을 이끌어 내다니! 정말 운이 좋았어.’

    심협은 소화양공의 입문에 이르러 얻은 영감으로, 백색광이 함축하고 있는 순수한 에너지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이제 절반은 성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진짜 핵심은 이제 시작이었다. 원석을 떠난 백색광은 자유를 얻은 듯 잠시 날아다니며 증발해버리려 할 뿐, 부적으로 들어가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다행히 붉게 변한 심협의 손바닥에 일종의 구속력이 있는지 백색광은 날아가지 못했다.

    지금 백색광은 심협의 장심과 부적 사이에서 빠르게 요동치고 있었다.

    이 백색광을 부적으로 끌어넣어야만, 그 힘을 빌려 부담(符膽)을 태워서 부적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기에, 심협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는 계속 소화양공을 운공하였다. 그러자 오른손 장심에서 다시 옅은 붉은 선이 응집되어 나타났다.

    이 붉은 선으로 백색광을 이끄는 건 마치 어린아이가 물이 가득 담긴 큰 통을 옮기듯 힘이 많이 들어갔다. 그러나 얼마 후 결국 심협은 요령을 터득해냈다.

    백색광이 장심 중앙부에 가까이 왔을 때, 심협이 낮은 소리를 일갈하자, 붉은 선이 돌연 반짝이더니 백색광 안으로 스치듯 들어갔다.

    백색광은 순식간에 붉은 선과 이어졌고, 붉은 선은 스르륵 소리와 함께 아래에 있던 소뢰부를 뚫고 들어갔다. 마침내 백색광도 붉은 선에 이끌려 부적에 닿았다.

    부적은 마치 해면과 같아서 빠르게 백색광을 흡수했고, 뒤이어 부적이 빛나기 시작했다. 밝은 빛이 소뢰부의 무늬를 따라 부적 양 끝을 향해 펴져가기 시작하자, 소뢰부 전체가 반짝거렸다.

    그러나 여기까지 변화가 이어진 후, 부적은 갑자기 변화를 멈추었다. 밝은 빛이 몇 번 반짝이더니 바로 어두워졌고, 부적 또한 원래의 모양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실패한 것인가?”

    혼잣말을 내뱉는 심협의 마음속에 실망이 일었다.

    ‘방금 소화양공의 운공에는 분명 문제가 없었어. 내 스스로 모든 과정을 다 지켜보았고, 백사형이 알려준 것과 거의 비슷하게 했지. 아마도 부적에 문제가 있는 것 같구나.

    내가 부적을 잘못 썼거나 부적 쓸 때 썼던 재료가 문제일 것이야. 둘 다 아니라면 이 부적 도안 자체가 애초에 가짜로 지어낸 것이라 아무런 위력도 없었을지 모르지.’

    심협은 낙담하고 있다가, 다시금 분발했다.

    “조금만 신경 쓴다면 원석의 힘을 이끌어내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이야. 만약 소화양공의 수련이 더 깊어진다면 모든 과정도 십중팔구 가망이 있겠지. 이 부적이 비록 효과를 나타내지 못했다고는 하나, 원석의 기운이 부적에 그려진 무늬를 따라 퍼지지 않았던가?”

    심협은 턱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리더니, 자신이 완전히 실패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부적을 교체하고 다시금 운공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빠직 소리와 함께 원석이 깨지며 안에 있던 백색광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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