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6화 (6/1,214)
  • 6화. 항요기사(降妖紀事)

    대략 반각(半刻)의 시간이 지나자, 심협은 영관전 부근의 청석평에 이르렀다. 심협이 기거하는 정실이 바로 여기였다. 그러나 심협은 정실로 돌아가지 않고 소매를 들어 이마의 땀을 닦은 후, 청석평을 돌아 다른 쪽방향의 산길로 향했다.

    이 산길은 다른 곳보다 길이 더 좁았다. 평소에 다니는 사람이 없어 길이 잘 정돈되어 있지 않아 마른 낙엽도 많이 쌓여 있었다. 낙엽 중 일부는 이미 썩어 부드럽게 변해버려, 밟으면 부드러운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다.

    산길 양측으로는 간혹 단칸 가옥이 보였는데, 돌을 쌓아 만들었거나 나무로 건축한 것으로 대부분 한참 낡은 것들이었다.

    심협은 이 길이 자못 익숙한 듯 발걸음에 망설임이 없었다. 그가 한참을 걸어가니, 오래된 가옥 한 채가 보였다. 그곳은 산길 옆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사람 키의 반만 한 잡초들이 둘러싸고 있어 분명 버려진지 오래된 곳인 듯했다.

    오랫동안 보수를 하지 않아 벽 위의 붉은 칠이 바짝 마르고 듬성듬성 떨어져 나가 지저분해 보였고, 문과 창문에 바른 창호지는 이미 반 이상 파손되어 있었으며, 창문턱에는 벌레 먹은 흔적이 있었다.

    심협은 이 가옥을 조금 살펴보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잡초를 헤치며 복도로 들어갔다.

    * * *

    심협이 바람이 새는 목제 문을 밀자, 찌익 하는 소리와 함께 습한 곰팡이 냄새가 그의 얼굴을 덮쳐왔다. 심협은 몸을 돌려 한손으로 코를 막고, 다른 한손을 공기 중에 내저었다.

    잠시 후 조금 적응이 되자, 그는 눈길을 돌려 내부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내부 면적은 그리 크지 않았다. 안에는 낡고 망가진 탁자와 의자가 쌓여 있었고, 한 구석에 낡은 빗자루와 물통 등도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이 곰팡이 핀 것들은 정말이지…… 눈 뜨고 보기가 어렵구나.”

    심협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는 말로는 혐오스럽다 하면서 손을 거침없이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가 탁자 위에 쌓여있던 낡아빠진 의자들을 하나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조금 정리해둔 후, 의자들을 방 안 한 구석에 옮겨 쌓아 두었다.

    * * *

    심협은 약 일각(一刻)의 시간이 지나서야 낡아빠진 의자들을 절반 이상 한 구석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마침내 아래 깔려있던 탁자가 모습을 드러내자, 그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심협은 소화양공에 입문한 후 체질이 처음보다 많이 개선된 것을 느꼈다. 그럼에도 이리 한바탕 고생하고 나니 등에 땀이 흥건했다.

    심협은 잠시 쉬고는 다시 탁자에 다가가서 탁자의 서랍을 열어 뒤지기 시작했다.

    “없잖아…….”

    첫 번째 서랍은 텅 비어 있었다.

    “없네.”

    두 번째 서랍도 마찬가지로 비어 있었다.

    “없어…….”

    * * *

    약 일고여덟 개의 탁자를 뒤지고 나니, 심협은 자신이 헛고생하는 것 같아 답답해졌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뒤진 끝에 결국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찾았다!”

    그가 부러져서 다리가 2개만 남은 9번째 탁자의 서랍 안에서 발견한 건 청색 표지의 낡은 서책이었다.

    지금 심협은 그저 내부를 정돈하겠다고 낡아빠진 탁자와 의자들을 정리한 것이 아니라, 이 방의 옛 주인이 남긴 서적을 찾으려고 했던 것이다.

    춘추관에는 도덕경과 같은 기본적인 도가 경전을 제외하면, 장서(藏書)가 많지 않았다. 그나마 있는 장서들도 대부분 문중의 선배들이 소장하고 있어, 빌려보는 것은 상당히 어려웠다.

    어려서부터 각종 잡서 읽기를 좋아했던 심협은 나중에는 자신을 구할 방법을 찾기 위해 대량의 잡서를 열람했는데, 심씨 집안 약방에 있는 묘약들도, 심협이 여러 서적을 읽고 각종 의서를 종합하여 개발한 것이었다.

    심협은 예전에도 몇 번 춘추관 내 버려진 가옥에서 잡서와 유람기 등의 서적을 찾아냈는데, 꽤 쓸모 있는 것들이었다. 하여 이번에도 서적을 찾을 수 있을지 운을 시험해본 것인데, 정말 또 서적을 찾아냈다.

    “장천사항요기사(張天使降妖紀事)…….”

    심협은 습기가 가득찬 그 고서적을 들고는, 표지에 세로로 쓰여 있는 큰 글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소리 내어 읽었다.

    제목을 보아하니, 장천사라는 이가 요괴를 제압한 경험들을 유람기로 만든 것 같았다. 아마 심협이 전에 읽었던 소설들처럼, 대부분은 후세 사람들이 날조한 기이한 이야기일 것 같았다. 하지만, 심협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 책 위의 먼지들을 털어낸 후 소매 안에 챙겨 넣었다.

    뒤이어 그는 남은 탁자와 의자들을 뒤졌는데, 별다른 소득이 없자 뒤지기를 멈추고 청석평으로 돌아갔다.

    * * *

    청석평의 정실은 2층짜리 복도식 건물이었다. 각 층에는 20여 개의 방이 있었는데, 춘추관의 일부 제자들이 기거했다. 그중 심협의 정실은 1층 가장 우측 방으로, 벼랑 끝과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제자들의 정실은 모두 크지 않았다. 침상 하나와 탁자, 의자 각각 하나씩을 제외하고 다른 것은 없었다. 심협의 정실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실 문을 열자, 짙은 송향(松香) 냄새가 확 풍겨 와 심협은 자신도 모르게 코끝을 찡그렸다.

    춘추관에는 단향(檀香)이나 송향(松香)과 같이 피울 수 있는 향이 많았고, 제자들도 이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다. 제자들은 주로 앉아서 수련했기에, 정신 집중과 마음을 차분히 하는 효과가 있는 향을 피워두면 수련에 집중하기가 더 수월했다.

    다만 다른 이들은 향을 한 개만 피우니 은은하게 향기가 났지만, 심협은 향이 아주 진하게 나도록 피워 매캐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이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심협의 방은 벼랑 끝의 비스듬히 자란 소나무가 채광을 반 이상 가리는 탓에 습하고 어두웠던 것이다. 게다가 그가 춘추관 내 여기저기서 수집한 고서적은 대부분 곰팡이가 핀 채 수십 권이나 탁자에 놓여 있었으니, 그 냄새가 어떨지 알만했다.

    분명 그가 이렇게 짙은 송향을 피우지 않았다면, 이 방에 잠시도 머물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미 이 환경에 익숙해져 있던 심협은 벽 쪽에 위치한 탁자 앞에 앉아서 방금 가져온 ‘장천사항요기사’를 꺼내 탁자에 놓았다.

    그 책은 외관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표지에 핀 곰팡이가 조금 역겨웠지만, 나머지 부분은 제대로 갖춰져 있었던 것이다. 심협이 수집해온 장서 중에 상태가 꽤 괜찮았다.

    그는 우선 탁자에 있던 물 주전자를 들어 물을 반 정도 따른 후, 향이 반 정도 타들어갈 시간 동안 마시며 한숨 돌렸다.

    잠시 후 그가 장천사항요기사의 표지를 넘기자, 노르스름한 속표지가 나타났다. 거기엔 연화관(蓮花冠)을 쓰고, 칠성포(七星袍)를 입은 작고 뚱뚱한 도사가 그려져 있었다.

    도사는 한 손은 법력을 펼치는 듯한 모양을 하고, 다른 한 손은 검을 든 채 성난 금강(*불교의 수호신)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는 분명 장천사의 초상화로, 그림의 선이 거친 것이 그림보단 내용에 충실한 책 같았다.

    만일 장천사가 실제로 이렇게 생겼다면, 오히려 괴물, 귀신보다 더 흉측하고 무서웠을 거란 생각에 심협은 한번 웃고는, 속표지를 넘겨 뒷면의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서적을 읽기 시작하자, 그는 바로 내용에 빠져들었다. 책에 기재된 것은 기이한 내용이었는데, 장천사가 영남 일대에서 요괴와 귀신을 물리친 일화였다.

    내용에 연대(年代)가 기록되어 있지 않아 해당 시기에 정말 발생했던 일인지 확인할 수 없었지만, 지역의 명칭은 명확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지역 명칭이 모두 현시점에서 찾아낼 수 있는 곳이라, 서적의 내용이 발생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았다.

    이 장천사라는 도가 진인(眞人)은 단도비술(丹道祕術)과 부적술에 능통하여, 금단(金丹)과 부적을 써 십여 마리의 괴물과 여러 요괴를 물리쳤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심협은 원래 이런 기이한 소설을 많이 봤었기에 책의 내용이 그리 참신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 책 안에 적혀있는 괴물, 귀신들의 술법은 다른 소설들만큼 다양하지도 않았다. 모두 악귀가 몸에 씌었다거나 요괴가 사람의 마음을 홀리는 등 세속적인 이야기였다.

    그러나 심협을 빠져들게 하는 것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악귀와 싸우는 술법, 시전 과정들이 책에 매우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중에는 어느 부자가 구미호의 유혹으로 고통 받고 있을 때 장천사가 불진(拂塵)을 주며 문머리에 걸어두라 하자, 이때부터 고통에서 벗어났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 외에도 검은 개의 피로 부적을 쓴다거나, 백정의 칼로 귀신을 제압했다거나, 옛 화폐로 제압에 성공했다는 등 기이한 방법이 많이 기록되어 있었다.

    심지어 몇 가지 이야기 끝머리에는 이야기에 나온 부적 도안이 붙어 있었는데, 필체에 들어간 힘이 웅건한 것이 단숨에 써 내려간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진짜 부적처럼 독특한 분위기를 풍겼다.

    책을 자세히 살펴보던 심협은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그가 봤던 춘추관 내 문머리에 붙어있는 부적들과 다른 책에서 봤던 부적들은 이 책에 붙어있는 부적과 그림 양식이 거의 비슷했으나, 필법 사용의 미세한 부분에서는 큰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심협은 몇 번 들여다 본 뒤, 책상에 쌓여있던 고서적을 뒤져 파손이 훨씬 심한 책 한 권을 찾아냈다.

    책 표지조차 다 떨어져 나간 고서적이었기에, 그는 앞부분의 얇은 십여 장만 볼 수 있었다. 뒷부분은 대부분 종이가 썩어 여러 장이 서로 붙어버려, 조금만 힘을 주어 붙은 부분을 펼치려 하면 바로 바스러져 버렸다.

    이 책의 서명은 ‘비법부록진감(秘法符籙眞鑑)’이었다. 이건 예로부터 전해오는 부적을 기록한 고서로, 안에는 여러 부적 제작, 부적 사용의 규칙 및 금기사항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 책에 따르면, 부적은 용도에 따라 ‘화(化), 진(鎭), 공(攻)’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소인부(*小人符 : 소인배의 음해를 막아주는 부적), 백해소재부(*百解消災符 : 각종 재난을 쫓아주는 부적)와 같은 것은 화 부적의 일종이었고, 평안부(平安符), 진댁부(*鎭宅符 : 집 안의 귀신을 쫓아주는 부적) 등은 진 부적이었다.

    공 부적의 경우,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지도 않고, 내용도 극히 적었다. 다만 연기부(燃氣符), 소뢰부(小雷符)와 같은 부적 명칭이 거론되어 있었다.

    심협이 가장 관심 있는 부적이 바로 공(공격성) 부적이었다. 그에겐 나 사부가 2년 전에 부적으로 음기를 제압했던 일이 인상 깊게 남아, 아직도 기억이 생생했던 것이다.

    다만 심협이 접할 수 있는 관련 서적에는 공 부적에 대한 내용이 적어도 너무 적어서, 공 부적이 마치 신비한 베일에 가려진 것처럼 느껴졌다.

    만일 그가 나중에 또 음기나 사람에게 붙는 귀신 따위를 만난다면, 평안부 등의 진 부적으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 테지만, 정말 대단한 귀신이라도 만난다면 공 부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 더 안전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책에서 볼 수 있는 부분에는 대강의 내용만 기록되어 있을 뿐, 부적의 역할이나 그리는 방법과 같은 내용은 모두 뒷부분에 있어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심협은 앞부분의 내용을 보다가 평안부가 아직 남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방금 가지고 온 ‘장천사항요기사’에도 이 부적이 있었던 것을 기억해내곤, 바로 두 부적을 대조해봤다.

    “어, 정말 똑같네!”

    그는 가볍게 숨을 들이마시며 혼잣말 했다.

    둥…….

    이때, 밤 시간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렸다. 생각에 잠겨있던 심협은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깊은 밤이 되어 있었다.

    춘추관에 입관한 이후 이러한 귀신이나 기이한 이야기 등에 관심이 많아졌던 심협은 평소 소화양공을 제외한 다른 수련은 할 수가 없으니, 대부분의 시간을 서적을 뒤져보는데 할애했다.

    하여 심협은 오늘도 서적을 한번 보았을 뿐이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한나절이 지나 있었다.

    그는 고개를 내저으며 웃어보더니, 탁자 위의 서적을 정리하고 방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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