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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5화 (5/1,214)
  • 5화. 괴롭힘

    “아니오. 그저 시험 삼아 해보려는 것이오.”

    심협은 웃으며 말했다.

    물론 심협은 1년여 전에도 사부에게 부적술(符籍術)을 알려 달라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평소 나름 심협을 온화하게 대하던 사부는 매몰차게 거절했다. 심협이 금 이백 냥이라는 거금을 제안해도 사부는 전혀 들어주지 않았다.

    사부가 말하기를, 춘추관의 부적은 강호의 사기꾼들이 남을 속이기 위해 쓰는 부적 따위가 아니기 때문에, 법력을 지닌 내문제자만이 진정한 비법을 전수받아 수련할 수 있다고 했다. 이건 기명제자는 물론이거니와 정식 외문제자라도 넘볼 수 없었다.

    “좋네. 내 구해주지.”

    백소천은 심협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가능하다면, 술집에서 수탉의 피와 검은 개의 피도 구해줄 수 있겠소?”

    백소천이 가려는 것을 보고, 심협이 덧붙여 말했다.

    “내 자네가 잡서를 자주 보는 것은 알고 있네만, 잡서에 쓰여 있는 내용을 너무 믿지는 말게나.”

    백소천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백소천은 문중에 세 명뿐인 내문제자 중 하나였기에, 자연히 진정한 부적술을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규율이 엄하여 심협과 친분이 아무리 두텁다고 해도 이를 함부로 발설할 순 없었다.

    “걱정 마시오. 나도 나름 분별력은 있으니. 막무가내로 일을 저지르지는 않을 것이오.”

    심협은 하품하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백소천은 어찌 충고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는 인사하며 떠났다.

    심협은 백소천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얼굴에 웃음을 거두었다.

    그도 백소천이 자신이 잘못된 길로 빠져들까 걱정되어 충고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처지는 그만이 제일 잘 아는 법. 심협은 일부러 잘못된 길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부지할 원기(元氣)에 한계가 있어 어쩔 수 없이 다른 방법을 찾으려고 했던 것이다.

    2년여 전에 음기가 몸에 들어, 이미 그의 생명의 근본은 망가져 버렸다. 하여 그는 근 2년간 산속에서 3개월마다 홍설산을 복용하며 목숨을 유지하고 있었다.

    심협은 자신의 몸 상태가 계속 악화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평소보다 조금이라도 많이 걷는 날에는 그만큼 더 숨이 찼던 것이다. 특히나 작년 겨울에는 모피 외투를 걸치고 있었음에도 여전히 체내의 한기가 치솟는 것이 느껴졌고, 사지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3개월에 한번 홍설산을 복용하는 것은, 심협이 은자를 더 지불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복용해야만 홍설산의 약효를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 자주 복용하는 것은 그저 낭비일 뿐, 몸에서 약효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 사부도 허락하지 않았다.

    수련 진전이 너무 늦었던 심협은 오늘에서야 겨우 소화양공의 입문 수준에 이르렀다. 이러한 수련 속도는 춘추관에서 기초가 제일 부실한 외문제자와도 견줄 수 없었다. 게다가 사부도 진작 언급하지 않았던가. 소화양공이 대성의 경지에 이른다 하더라도, 최대 일, 이십 년의 수명만 연장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심협의 수련 속도로 이루어 볼 때, 대성의 경지에 이르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어쩌면 대성의 경지에 이르기도 전에 먼저 저세상으로 떠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그리 많은 돈을 지불한 대가로 춘추관에 온 것은 빈사 상태의 목숨을 구차하게 몇 년 연장하려는 것이 아니야.’

    심협은 속으로 이리 생각하며, 느린 걸음으로 산 아래를 향해 걸었다.

    * * *

    춘추관은 청화산 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을 따라 건물이 지어져 있었다.

    산 중턱에 위치한 산문(山門)을 제외하고는 영관전(靈官殿), 옥황전(玉皇殿) 등 모든 건물이 산을 따라 층을 이루며 올라가는 형태로 배치되어 있었는데, 가장 중요한 삼청전(三淸殿)은 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었다.

    내문제자를 제외한 모든 제자들은 정실(静室)이라는 곳에 기거하였다. 정실은 산문에서 영관전에 이르는 산길의 양측 벼랑 끝 세 곳에 모여 있었다. 이곳의 지세가 드넓은 덕에, 모든 제자들은 방 한 칸을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춘추관은 제자들의 수행을 그다지 통제하지 않는 편이었다. 특정일에 모든 제자들이 삼청전에 모여 나 사부 등 문중 선배의 도가 경전 강의를 듣는 것 외에는 다 같이 수업 받을 일도 없었다.

    이미 모든 제자들에게 소화양공을 전수해 줬으니, 그다음은 각자 자신의 자질로써 수행하면 되는 것이었다.

    * * *

    심협이 수련하는 곳은 옥황전과 멀지 않았다.

    이제 막 옥황전 앞 광장까지 돌아온 심협은 옥황전 문에 가까이 다가가더니 들어가지 않고 문밖에서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추고는, 잠시 쉬었다가 아래로 내려가는 돌계단 쪽을 향해 가려고 했다.

    “이거 심사제 아닌가? 수련하고 돌아온 것인가? 어떠한가? 소화양공은 입문했는가?”

    이때, 자못 익숙한 목소리가 옥황전 안에서 전해져왔다. 심협은 속으로 한숨을 내뱉으며 돌아섰다. 역시 예상한 대로, 평소 심협과 사이가 썩 좋지 않은 정원(丁元) 사형이 있었다.

    심협이 문턱을 넘기도 전에, 배가 불룩하게 나온 사내가 옥황전에서 먼저 나왔고, 그의 뒤로 푸른 도포를 입은 청년 두 명이 따랐다.

    한 사람은 작은 빗자루를 들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물통을 들고 있었다. 보아하니, 방금 당번 일을 마친 듯했다.

    “사형님들을 뵙습니다.”

    심협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공수로 예를 표했다.

    “심사제, 내 훈계하는 것이 아니니 편하게 듣게. 소화양공의 수련은 절대 급하게 입문하려고 하면 안 되네. 자네가 비록 2년동안이나 입문도 하지 못했다고는 하나, 절대 조급해하지는 말게. 어쨌거나 앞으로도 시간은 많지 않은가. 자질 문제라면 급해도 소용이 없다네. 계속 노력한다면…….”

    정원은 심협이 예의 바르게 나오니 대놓고 뭐라 하지는 못하고, 위로하는 척하며 사형의 위세로 설교하기 시작했다.

    “염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오늘 전 운이 좋게도 입문에 이르렀습니다. 백사형도 확인해 준 바 있습니다.”

    심협은 눈을 끔뻑거리며 마치 자신도 모르게 내뱉었다는 듯 대답했다.

    “뭐…… 뭐라고? 자네가 이미 입문에 이르렀다고? 백소천도 알고 있다고?”

    당황한 정사형의 안색이 순간 어두워졌다. 뒤에 있던 두 청년도 의아한 표정으로 심협을 바라봤는데, 두 눈에 놀람이 서려 있었다.

    그들은 심협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심협에게 자질이 있었다면, 어찌 2년을 힘들게 수련하고도 진전이 없을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심협의 체격으로는 앞으로 3년에서 5년을 더 수련해도 입문에 이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심협은 진작 그들의 반응을 예상한 듯, 더 뭐라 말하지 않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순간 정원의 얼굴에 근심이 스쳐갔다. 만일 백소천이 몰랐다면 이 일을 숨기고 내기를 취소하면 그만인데, 이미 백소천이 알고 있으니 내기는 진 것이 아닌가.

    “다른 일 없으시면, 저는 사형님들께 방해되지 않게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심협은 웃으며 공수하며 예를 표했다.

    “잠깐! 심사제, 그리 급히 갈 것 뭐 있나? 백소천이 확인해 줬다고는 하나, 그도 입문에 이른지 얼마 안 되었으니 잘못 봤을지도 모르지 않나. 내가 다시 한번 확인해 주는 것은 어떻겠나?”

    정원은 억지웃음을 띤 채 곁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심협은 정원의 말에 순간 불쾌해졌다.

    정원이란 자는 심협과는 원수질만한 일이 없었으나, 백소천과는 갈등이 꽤 심했다.

    갈등 원인은 다름 아닌 정사형의 친동생 정화(丁華) 때문이었다. 정화 또한 춘추관의 제자로, 백소천과 같은 내문제자 3인 중 한 명이었다.

    내문제자 중 정화는 장문인을 사부로 모셨고, 백소천은 나씨 도인을 사부로, 나머지 한 명은 왕 사백을 사부로 모셨다. 3인은 모두 춘추관 내에서 수행 자질이 가장 높은 이들이었는데, 서로 간 경쟁이 꽤 심했다.

    “제 생각엔 그리하실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사형의 수행 수련도 바쁘실 텐데, 저까지 그리 신경 써 주실 것 없습니다.”

    심협은 웃음을 거두며 말했다.

    그는 비록 평소 예의 바르게 사람들을 대하긴 하지만, 그를 업신여기는 사람에게 가만히 당해줄 만큼 물렁한 사람은 아니었다.

    심협은 언제 강경하게 나와야 할지 언제 양보하고 배려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심사제, 사형은 호의로 제안한 것인데, 자네 어찌 정사형에게 그리 얘기하는가?”

    정원 뒤에 있던 청년 중 한 사람이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심협은 말을 꺼낸 청년을 냉랭하게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세 사람의 자질도 심협에 비해 별 대단할 것이 없었다. 정화와의 관계 때문에 다른 이들이 그들을 정중히 대하는 것뿐이었다.

    지금 심협의 냉랭한 표정을 본 그들은 오히려 난감해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여기 모여서 뭣들 하는 겐가?”

    이때, 홀연 차가운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심협이 고개를 돌려 소리 나는 곳을 바라보니, 마른 체형에 청색 장포를 입은 얼굴이 누런 청년이 있었다. 그는 한 손을 뒷짐 지고, 냉랭한 표정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정사형…….”

    심협과 3인은 약간 정숙한 표정을 지으며 그 청년을 향해 인사 올렸다. 정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청년은 다름 아닌 정화였다. 정화는 정원과 친형제였으나, 생김새도 사뭇 다르고 자질도 천지 차이였다. 만일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분명 그 둘이 혈연관계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심협은 정화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략의 경과를 설명했다. 자신이 느낀 불만과 불만의 감정 등은 모두 배제한 채로 말이다.

    “내기…….”

    정화는 말끝을 길게 늘어뜨리며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 그러자 정원의 얼굴에 식은땀이 흘렀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것이 책망을 들을까 두려운 듯했다.

    정원이 비록 형이었으나 정화 앞에서 형 노릇은커녕 자칭 ‘형’이라는 단어도 입에 올리지 못하는 걸 보니, 어려서부터 동생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 티가 났다.

    “백소천이 너희와 그런 내기를 했다니 따분한 모양이군.”

    정화가 코웃음 치며 냉랭히 말했다. 그 말에 순간 심협의 눈빛이 번득였다.

    ‘나와 정원 사이의 시비는 장문인의 내문제자 정사형의 안중에도 없을 것 같군. 정사형이 신경 쓰는 것은 오직 내문제자 백소천이겠지. 정원을 비롯한 앞에 있는 이들은 정사형에겐 존재감도 없을 것이야.’

    심협은 이를 간파하고, 물러가겠다 인사한 뒤 바로 그곳을 떠났다.

    심협이 자리를 뜬지 오래되지 않았을 때에 차가운 정화의 목소리가 미미하게 들려왔다.

    “저딴 쓸모없는 놈과 싸우려 들다니! 기세가 아주 등등하구나? 너 때문에 내 체면이 다 구겨지잖아…….”

    ‘쓸모없는 놈’이라는 단어가 귀에 들어오자, 심협의 눈빛은 점점 차가워졌지만, 걸음을 멈추진 않았다.

    심협이 기명제자의 신분으로 소화양공을 수련하는 것부터가 춘추관 사람들의 반감을 사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는 제자들 중 가장 부유한데다 유일하게 돈으로 춘추관에 입관한 제자였으니, 사람들이 뒤에서 험담을 하더라도 비난할 수 없었다.

    남들이 어찌 알겠는가. 그가 돈을 쓴 것은 사실이나 그에게 수련은 도술 수련이 아니라 목숨이 달린 일이라는 것을…….

    그래도 심협이 돈에 초연하여 평소 여러 사형들이 심협의 덕을 봤기에, 대체로 심협과 다른 제자들의 사이는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진정 친우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같은 사부를 모시고 있는 백소천과 전철생뿐이었다.

    자신이 정말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심협은 이상하리만치 풀이 죽었다.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서 한기가 올라오는 듯하여, 그의 걸음도 조금 빨라졌다.

    심협은 옥황전을 나서 내려오는 동안 여러 사형들과 마주쳤는데, 매번 자발적으로 일일이 인사를 하였고 간혹 잘 아는 사람과 만나면 담소를 나누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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