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3화 (3/1,214)
  • 3화. 나씨 도인(羅道人)

    심씨 집안 편전 안.

    심협은 앞에 서 있는 ‘나씨 도인’이라는 중년 도인을 자세히 관찰했다.

    그는 고생의 흔적이 역력한 검붉은 얼굴에 담청색(淡靑色) 도포를 입고, 등에는 목검 한 자루를 비스듬히 메고 있었다. 허리에는 하얗고 작은 포대를 차고 있었는데, 마치 긴 창과 같이 꼿꼿한 자태를 제외하고는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을 딱히 찾을 수가 없었다.

    “도장님, 우선 앉으시지요. 하인이 곧 좋은 차를 내올 것입니다.”

    심원각은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중년 도인을 보며 말했다.

    “차는 괜찮소. 심공자, 당신이 사람을 보내 증표를 가지고 우리에게 퇴마를 해 달라 청한 것이오?”

    나씨 도인은 유난히 친절한 심원각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심협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도장님, 저를 아십니까?”

    심협이 놀라 반문했다. 그러자 도인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빈도(*貧道 : 도인이 자신을 겸손히 이르는 표현)는 여기 오기 전 먼저 심공자의 상황에 대해 조금 알아본 후 정식으로 방문한 것이오. 그러나 춘추관은 이미 봉쇄한지 수년이 지났는데, 공자는 어찌 춘추관을 알았으며 또 그 증표는 어디서 얻으신 것이오?”

    도인은 심협을 똑바로 쳐다보며 초면에 실례가 될 만한 말투로 물었는데, 마치 심협의 대답이 시원치 않으면 바로 그를 외면할 것만 같은 태도였다.

    “도장님, 지금 따지러 오신 것입니까?”

    도장의 말을 듣고 있던 심원각은 낯빛에 웃음가 조금 사라지며 약간의 불쾌감을 드러냈다.

    “심대인, 책망은 거두십시오. 춘추관의 증표가 비록 진귀한 것은 아니나, 외부로 전해진 것 중 심씨 가문과 관련된 것은 없었소. 심공자가 사람을 보내 증표로써 춘추관 도인을 찾으니, 빈도로서는 먼저 자세히 여쭐 수밖에 없었소.”

    나씨 도인은 그제야 심원각을 돌아보며 담담히 대답했다.

    “봉쇄한 지 수년이 되었다고요? 그렇다면 춘화현에 춘추관을 모르는 이가 많은 것도 이상할 것이 없네요. 도장님, 안심하시지요. 저는 이 문헌을 통해 춘추관에 대해 알게 되었을 뿐입니다. 증표는 민간에 정착한 제자에게서 거금을 지불하고 구입한 것입니다.”

    심협은 조금 당황한 기색으로 소매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도인에게 건넸다. 그것은 바로 책상 위에 놓여있던 ‘춘화이문지’였다.

    한편에 있던 심원각은 그 낡아빠진 책에 자꾸만 눈길이 갔다.

    “그리된 것이었소?”

    나씨 도인은 조금 의아한 기색으로 책을 받아들고 몇 장을 자세히 읽어본 후에야 안색이 돌아왔다.

    “옛날 저희 춘추관에서 퇴마한 사건들이 이 책에 소상히 기재되어 있군. 이는 분명 당시 춘추관과 접촉했던 이들 중 누군가가 편찬했을 것이오. 심공자, 혹시 이 책을 빈도에게 줄 수 있겠소? 이 책을 춘추관으로 가지고 돌아가 문중의 다른 이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소만.

    증표의 일은, 심공자가 말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증표의 원주인이 스스로 공자에게 준 것이니 개의치 않겠소.”

    춘화이문지를 본 나씨 도인은 눈동자를 미미하게 굴리더니, 그대로 품 안에 책을 넣고는 능청스럽게 이야기했다.

    이 광경을 본 심원각은 경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반면, 심협은 개의치 않는 듯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도장님께서 마음에 드시면 그리하시지요. 그럼 지금은 우선 잠시 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음식도 드시고, 준비도 마치신 후에 제 몸속의 악귀를 몰아내는 게 어떠신지…….”

    “휴식도 준비도 다 필요 없소. 공자 몸속의 악귀라면, 하하…….”

    나씨 도인은 뚫어져라 심협을 바라본 후, 돌연 빠른 속도로 심협 곁으로 다가갔다.

    곧이어 팍 소리와 함께, 도인의 다섯 손가락이 심협의 팔을 꽉 움켜쥐었다.

    “지금 뭐 하는 것입니까? 여봐라!”

    심원각은 순간 멍해져 급히 뒷걸음질 치다가, 바로 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순식간에 편전 앞에 덩치 큰 머슴 일고여덟 명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격노한 심원각의 분부를 받아 나씨 도인에게 달려들었다.

    그 모습을 본 심협이 다급히 소리쳤다.

    “모두 멈추어라! 아버지, 걱정 마십시오. 도장님께선 소자를 해치시려는 것이 아니라, 소자의 몸에 있는 악귀를 쫓아내시려는 것입니다.”

    이때 심협은 뜨거운 기운이 잡혀있는 팔을 통해 몸속으로 주입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뜨거운 기운이 지나는 곳마다 몸속에 자리 잡고 있던 한기가 소실되고 있어, 곧 몸 전체가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해졌다.

    심원각은 심협의 외침을 듣고, 심협의 안색을 자세히 살펴보고서야 마음을 놓았다. 하여 도인에게 달려들던 머슴들에게 손을 저으며, 편전에서 물러가라 지시했다.

    이윽고 심협은 핑 하는 소리와 함께 가슴 속에서 옅은 잿빛 기운을 토해냈다. 잿빛 기운은 한 차례 배회하더니, 심원각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흥, 돌아오거라!”

    나씨 도인이 진작 예상했다는 듯 큰 소매를 잿빛 기운을 향해 휘두르자, 황색 부적이 튀어나와 잿빛 기운에 적중했다.

    훅.

    부적은 순식간에 주먹만 한 불덩이로 변화하더니, 잿빛 기운을 필사적으로 감쌌다. 잿빛 기운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불덩이 속에서 죽기 살기로 몸부림쳤지만, 얼마 버티지 못하고 타는 소리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잠시 후 불덩이도 순식간에 흩어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편전에는 불덩이가 있던 자리에 눌어붙은 흔적이 이글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심원각은 놀라 어안이 벙벙해졌다.

    “심공자, 몸속의 음기는 깨끗이 제거되었소. 앞으로 몸조리만 잘하면 될 것이오. 그럼 빈도는 이만 가보겠소.”

    나씨 도인은 심협의 팔을 놓으며 평온한 안색으로 말했다.

    “음기라니요? 그럼 낙이 몸에 악귀가 씐 것이 아니었단 말입니까?”

    정신이 든 심원각이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만일 악귀가 들은 것이라면 이리 쉽게 몰아낼 수 있었겠소? 악귀가 들었다면 빈도 또한 강적을 만난 것처럼 긴장했을 것이오. 심공자는 아마 불길한 곳에 가셨다가 그곳의 음기가 몸에 들어 이리 되었을 것이오.”

    나씨 도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나 도장님, 저는 일정 시간 간격을 두고 특이한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안색이 창백해졌지만 힘만은 비상하리만치 강해져, 저희 집안의 건장한 머슴 네다섯 명조차 근처에 얼씬하지 못할 정도였지요. 증상이 나타나고 나면 아무 기억도 나지 않았습니다. 이는 또 어찌 된 일인지 아십니까?

    그리고 도장님, 방금 제 체내에 주입하신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몸속에 여전히 따뜻한 기운이 조금 남아있음을 느낀 심협은 기쁘고도 놀라워하며 물었다.

    “음기 자체는 본래 영적인 기운이 없소. 간혹 생명체가 죽고 남아있던 기운이 음한(陰寒) 한 곳에서 응집되어 만들어진다오. 그러나 이 음기를 방치해둔다면, 가장 낮은 급의 사악한 잡귀가 될 수도 있소.

    심공자가 발작했을 때 온몸이 창백해지고, 힘이 세어지고, 심지어 발작 당시의 기억도 사라졌다고 말했는데, 이는 그저 음기가 시간 간격을 두고 공자의 두부(頭部)에 올라가 충격을 가하여 나타난 증상일 뿐이오. 이는 공자의 몸이 본래 허약한 탓도 있소. 만일 음기가 신체 건장한 사내의 몸에 들었다면, 도리어 바로 제압당했을 것이오. 그러므로 별다른 증상도 나타나지 않았겠지.

    방금 공자 몸에 주입했던 것은, 빈도가 여러 해 수련한 소화양공(小化陽功)의 힘이오. 음한(陰寒)을 제압하는 데에 가장 효과적이라오.”

    나씨 도인이 설명해 주었다.

    “그런 것이었군요. 이번에 정말 도장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심협은 비록 도인의 설명을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공손하게 감사를 표했다.

    “공자가 증표를 갖고 있는 데다 거금까지 지불했으니, 마땅히 빈도가 힘을 보태야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공자는 음기로 고생한 탓에, 남은 날이 많지 않은 것 같소.”

    나씨 도인은 고개를 끄덕인 후, 홀연 이런 말을 내뱉었다.

    심협은 도인의 말을 듣고 안색이 어두워졌다가, 다시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도인에게 예의 있는 말투로 물었다.

    “도장님께서는 진정한 득도 고수이시니, 분명 수명 연장하는 법을 알고 계시겠지요? 다른 건 몰라도, 방금 도장님께서 사용하신 그 소화양공은 분명 저의 몸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맞네, 맞아! 도장님께서 자비를 베풀어서, 저희 낙이를 좀 구해주십시오. 제 아들의 목숨만 연장해준다면 원하는 것은 다 들어드리겠습니다. 저희 심가가 다른 것은 몰라도 재산은 좀 있습니다.”

    심원각 또한 문득 깨달은 바가 있는지, 도인에게 공수(拱手) 하며 말했다.

    “허허, 만약 완전히 치료하고자 하신다면 빈도는 그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다만 공자님의 체질을 개선하고 수명을 연장하고자 하신다면 저희 춘추관에 방법이 있긴 하지요.”

    나씨 도인은 소리 내어 웃은 후, 웃는 듯 아닌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도장님, 부디 가르침을 주십시오!”

    심협은 기뻐하며, 재차 허리를 굽혀 예를 갖추며 말했다. 심원각 또한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도인을 바라봤다.

    “첫 번째, 춘추관에 ‘홍설산(紅雪散)’이라는 외부로 전해지지 않은 약이 있소. 이는 골수를 깨끗이 하는 효능이 있어, 장기간 복용한다면 공자의 체질이 점점 개선될 것이오. 다만 이 약은 원료가 희귀하고, 조제 또한 쉽지 않아 일반인들은 구할 수가 없소.

    두 번째, 공자가 말한 대로, 소화양공의 힘은 분명 몸에 유익하오. 만일 공자가 수련하여 대성(大成)의 경지에 이른다면, 다른 건 몰라도 이삼십 년은 더 살 수 있을 것이오. 심공자, 어떤 방법을 선택하시겠소?”

    나씨 도인이 심협을 바라보며 천천히 물었다.

    “물론 두 가지 모두 선택하고자 합니다. 도장님, 부디 도와주십시오.”

    심협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옆에 있던 심원각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나씨 도인은 대답을 듣고 소리 내어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심가에서 금액만 지불할 수 있다면, 그 홍설산이야 아무 문제가 안 될 것이오. 다만 소화양공은 춘추관의 비전술(祕傳術)인데, 어찌 외부인에게 함부로 전수할 수 있겠소? 심대인, 심공자에게 홍설산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겠소. 이 방법도 똑같이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오.”

    그 말에 심원각은 안색이 어두워지며 연달아 소화양공을 배우기 위한 온갖 조건을 제시했지만, 나씨 도인은 계속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심협이 옆에서 듣고 있다가 돌연 말하기를,

    “춘추관 비전술을 외부인에게 전수할 수 없다 했는데, 춘추관의 제자는 분명 정정당당히 ‘소화양공’을 배울 수 있겠지요?”

    심협의 말에 심원각은 안색이 미미하게 변했으나, 무슨 말을 하려다가 멈추었다.

    “심공자, 농담하는 것이오? 공자는 정녕 지금의 부귀영화를 포기하고, 춘추관의 일반 제자가 되길 원하는 것이오?”

    웃음을 멈추고 심협을 한번 훑어본 나씨 도인이 처음으로 진지하게 말했다.

    “만일 목숨을 잃는다면 부귀영화가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저 한 가지만 여쭙고 싶습니다. 도장님, 이 부족한 제자를 받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스승을 모시는 예는 절대 소홀히 하지 않겠습니다.”

    심협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빈도를 바로 스승으로 삼겠다는 것이오?”

    나씨 도인은 더욱 뜻밖이라는 듯 반응했다.

    “맞습니다. 저는 춘추관에 다른 고수들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저를 받아줄 지는 더욱 확신이 없습니다. 그러니 도장님을 스승으로 모시는 것이 가장 적합할 듯합니다. 게다가 도장님의 능력은 방금 직접 보았으니, 제가 스승을 잘못 선택했을 리는 없을 것입니다. 도장님께서도 분명 제자를 거둘 자격은 되시지 않겠습니까?”

    심협이 진지하게 말했다.

    나씨 도인은 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얼굴엔 마치 마음이 동한 듯한 기색이 드러나 있었다.

    심원각은 표정이 계속 변하고 있었으나, 저지하는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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