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2화 (2/1,214)
  • 2화. 심씨 가문(沈家)

    “콜록콜록…….”

    심협은 무의식중에 가쁜 기침 소리를 내며 침상에서 눈을 떴다. 그는 급히 입을 벌려 몇 차례 깊은 숨을 들이마시더니, 재빨리 베개 밑에서 작은 병을 꺼내어 안에 있던 콩알 크기의 황색 환약을 삼켰다.

    그러고 나서 그는 침상에서 미동도 없이 정좌한 후, 가슴 속의 답답함과 음한(陰寒)기가 사그라드는 것을 느끼고서야 한숨을 돌렸다.

    심협은 쓴웃음을 한번 짓고는 옆의 의자에 가지런히 개어져 있던 옷을 천천히 입으며 습관적으로 구석에 있던 책상을 훑어보았다.

    책상 위에는 담황색의 낡은 책 한 권이 놓여있었는데, 책 표지에는 ‘춘화이문지(春華異聞志)’라는 검은 글씨가 반듯하게 쓰여 있었다.

    심협은 미간을 찌푸리며 눈길을 돌리고, 천천히 방을 나섰다.

    * * *

    “대공자님.”

    문밖에는 열두세 살로 보이는 머슴이 푸른 옷을 입고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심협이 나오는 것을 보고 급히 앞으로 가 인사를 드렸다.

    저 멀리, 넓게 펼쳐져 있는 여러 가옥들이 희미하게 보였다. 붉은 기와에 흰 벽의 가옥들이었는데, 크고 작은 것들을 다 합치자면 40채에서 50채는 되어 보였다.

    “내 어젯밤에 기침을 몇 번이나 했느냐? 다른 움직임은 없었느냐?”

    심협이 머슴을 보고 담담하게 물었다.

    “대공자님께서는 어젯밤 기침을 열세 번 하셨고,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사옵니다.”

    머슴은 눈 밑이 거무스름해진 채로 공손히 대답했다. 그는 심협을 대하는 것이 조금 두려운 듯했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더는 묻지 않았다.

    그는 머슴을 지나쳐 앞으로 향했고, 푸른 옷의 머슴은 눈치 있게 그의 뒤를 바로 따랐다.

    * * *

    심협은 몇 개의 복도와 화원 한곳을 거쳐, 대청으로 보이는 건물 앞에 도착했다.

    대청 앞에 서있던 두 명의 시녀들은 심협을 발견하고, 황망히 앞으로 가 예를 갖추었다. 그녀들의 안색에도 심협에 대한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낙아, 왔구나. 어젯밤에는 잘 쉬었느냐? 어서 들어와 삼탕(蔘湯) 좀 들 거라. 내 방금 너에게 주려고 하인들에게 끓이라고 시켰다.”

    대청 안에서 한 사내의 관심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께서 걱정해 주신 덕에, 소자 어젯밤 편히 쉬었습니다.”

    심협은 얼굴을 조금 떨며 대답하고는 곧 대청으로 들어갔다.

    * * *

    대청 안에는 진수성찬이 차려진 원탁이 놓여 있었고, 몇 사람이 앉아 있었다. 상석에는 40대로 보이는 중년 사내가 앉아 있었는데, 머리가 희끗희끗하여 나이보다 늙어 보였다.

    이 중년 사내는 바로 심협의 부친 심원각(沈元閣)으로, 지금 흐뭇하게 심협을 바라보고 있었다.

    “낙이가 일어났구나! 소취야, 얼른 삼탕(蔘湯)을 올리거라. 내 분부를 못 들은 것이냐?”

    심원각의 옆에는 머리 한가득 장신구로 치장한 미모의 부인이 있었는데, 심협을 보며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밤새 평안하셨습니까, 둘째어머니.”

    심협은 미온적인 태도로 둘째어머니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큰 형님.”

    “큰 오라버니.”

    부인의 바로 옆에 있던 소년과 소녀가 일어나 심협에게 인사를 올렸다. 두 사람은 열네 다섯 살 정도로 보였는데, 생김새가 심협과 3, 4할 정도 닮아 있었다. 이들은 심협의 이복동생들로, 소년은 심사(沈辭), 소녀는 심목목(沈沐沐)으로 불렸다.

    이 둘은 비록 동복남매이나, 지금 심협을 대하는 태도는 전혀 달랐다.

    심사는 심협을 바라보는 눈빛이 자꾸 겉도는 것이 심협을 두려워하던 하인들과 비슷했다. 반면, 심목목은 인사를 나누고 호기심 많은 아기처럼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이 심협에게 무언가 묻고 싶은 듯했지만, 심원각의 눈치를 보며 주저하고 있었다.

    심협은 자리에 앉아 시녀가 올린 삼탕을 들이키고 음식을 조금 먹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젓가락을 내려놓고 더는 음식을 들지 않았다.

    “낙아, 식사 다 마쳤으면 날 따라 서재로 오거라. 내 사업상 알려줄 일이 있느니라.”

    심원각은 심협의 모습을 보고 걱정되었으나, 다른 말은 하지 않고 그저 이렇게 말하기만 하였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 둘째어머니에게 물러가겠다고 담담히 고하며 심원각을 따라나섰다.

    이 광경을 본 둘째어머니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고, 심사도 부러운 내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심목목은 작은 입을 삐죽거리며, 아버지와 심협 오라버니가 이렇게 빨리 식사를 마치고 떠나버린 것을 서운해했다.

    * * *

    “낙아, 어젯밤에 정말 괜찮았던 것이냐?”

    심원각은 서재 중앙에 앉자마자 관심 어린 말투로 심협에게 물었다.

    “아버지, 안심하십시오. 어젯밤에 정말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도 않았고요. 다만, 소자의 몸 상태가 더욱 악화되어, 소자가 직접 만든 금향옥(金香玉)이 있더라도 앞으로 몇 년 버티지 못할 것 같습니다. 소자의 몸은 더 이상 평범한 약으로 돌볼 수 없습니다.”

    심협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하……. 낙이 너는 정말 다사다난하구나. 네 어미가 너를 가졌을 때도 태기가 불안정해져 네가 어려서부터 병약했는데, 하필 작년에 사악한 잡귀가 들어 이리 심각한 병에 걸리고 말았구나. 만일 네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내 훗날 저승에서 무슨 낯으로 네 어미를 보겠느냐? 내 애초에 네 어미에게 너를 잘 보살피겠다고 약속했는데…….”

    심원각은 긴 한숨을 쉬며, 괴로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버지, 좋은 쪽으로 생각하십시오. 소자가 오래 병을 앓은 탓에 금향옥 등 여러 환약을 만들 수 있었고, 덕분에 우리 집안이 이리 크게 가업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집안은 전화위복을 맞이한 것입니다.”

    심협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말이 맞구나. 지금 춘화현 내에 심가의관과 심가약방을 모르는 이가 어디 있겠느냐? 현령 왕대인도 우리 심씨 가문을 중시하지 않느냐?”

    심원각은 이리 말을 하면서 마음이 조금 진작되었다.

    “그것은 모두 아버지께서 처세를 잘하신 덕 아니겠습니까? 왕대인께 금향옥을 보내 독자의 폐병을 치료하게 하셨으니 말입니다. 그리하시지 않았다면, 지금의 우리 심가 재산으로는 진작 곤란한 일을 겪었을 것입니다.”

    심협은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부친에게 아부를 했다.

    “하하, 우리 부자가 합심했기에 이리 큰 가업을 이룰 수 있었던 것 아니겠느냐. 다만 네가 명성을 떨치길 원치 않으니……. 그저 환약들의 개발은 모두 옛 의서에서 우연히 발견했다고 해야 하는 것이 애석하구나.

    이 일은 너와 나 두 사람만 알고 있을 뿐, 네 둘째어머니와 동생들도 전혀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네 둘째어머니가 평소에 너에게 잘못한 것이 있다면, 이 아비를 봐서라도 마음에 담아두지 말거라. 네 둘째어머니는 변변치 않은 집안 출신이라 식견이 짧아 그런 것이다.”

    처음엔 즐겁게 소리 내어 웃으며 말하던 심원각은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말을 주저했다.

    “아버지, 소자가 어찌 둘째어머니의 일을 마음에 담아두겠습니까? 그리고 소자가 만일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우리 집안은 작은 동생이 지켜줄 것입니다. 지금 소자의 가장 큰 바람은 몸속의 악귀를 몰아내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자는 몇 년 지나지 않아 목숨을 잃을 것이옵니다.”

    심협은 잠시 침묵하더니,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네가 이리 말해주니 안심이구나. 어쨌거나 가화만사성이다. 네 지금 몸 상태는 어떠하냐? 내 기억하기로는 지난번 발작이 7일 전이었던 것 같구나.”

    안색이 조금 누그러졌던 심원각이 다시 걱정이 되어, 묻기 시작했다.

    “맞습니다. 지난번 발작 때 소자는 하마터면 그 황대선을 목 졸라 죽일 뻔했었습니다. 작년 발작 때에는 자칭 인간계에 내려온 금신나한(金身羅漢)이라던 금광 화상을 반죽음이 되도록 때리기도 했지요. 그들은 원래 법술 따위는 전혀 없는 강호의 사기꾼이었을 뿐입니다.”

    심협은 분개하며 대답하고는, 낯빛이 어두워졌다.

    “하나 황대선과 금광화상 모두 인근 지역에서 유명한 퇴마사였다. 아마 다른 퇴마사들은 더한 사기꾼들일 것이야. 아니면 이 아비가 다시 주성에 사람을 보내 퇴마사를 더 찾아보는 것은 어떻겠느냐?”

    심원각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별다른 도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습니다, 아버지. 첫째로는 주성이 너무 멀고, 둘째로는 낯선 곳에서 어찌 퇴마사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찾는다고 해도, 십중팔구 황대선과 같은 사기꾼일 것입니다. 소자는 지금 발작 주기가 점점 더 짧아지고 있으니, 그리 긴 시간을 기다리지 못할 것입니다.”

    심협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네 뜻은…….”

    심원각은 자신의 큰 아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조금 놀란 듯했다.

    “소자가 최근 춘화현의 옛 지역 문헌을 찾았사온데, 우리 현에서 수백 년간 발생했던 기이한 일들이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소자가 사람을 시켜 조사해보니, 문헌에 기재된 내용이 대부분 실제 일어났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슨 연고에서인지 지금은 그 일들을 아는 이가 거의 없습니다.

    그 기이한 사건들에는 ‘춘추관(春秋觀)’이라 불리는 곳이 수차례 등장하는데, 문헌 기록에 따르면 그곳이 춘화현 경내에 있다고 합니다. 소자는 그곳 도인들이 분명 제대로 된 퇴마술을 지녔을 거라 생각합니다.”

    심협이 두 눈을 미미하게 반짝이며 대답했다.

    “이런 일이 있었단 말이냐! 그 춘추관은 어디 있느냐? 이 아비가 바로 사람을 보내 도인을 모셔오겠다.”

    심원각은 심협의 말을 듣고는 흥분하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아버지, 안심하십시오. 소자가 이미 거금을 들여 도인을 모셔오라 사람을 보냈습니다. 만일 별다른 일이 없다면, 서신에 쓰여 있는 대로 오늘 도인께서 당도하실 것입니다.”

    심협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것 정말 잘 되었구나. 내 바로 아랫것들에게 준비하라 이르겠다. 도인께서 오셨을 때 제대로 대접하지 못하거나 어수선하면 안 되지 않겠느냐.”

    심원각은 큰 아들이 독단적으로 도인을 모신 것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고, 오히려 손을 비비며 안도하면서 말했다.

    바로 이때, 서재 밖에서 돌연 심원각을 모시는 머슴이 공손한 어투로 말을 전하였다.

    “나리! 대공자님! 밖에 나씨 성의 도인께서 찾아오셨사온데, 대공자님과 약속이 있으시다고 합니다.”

    그 말에 두 부자는 잠시 놀람과 기쁨이 교차하여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버지, 우선 여기서 차를 드시고 계십시오. 소자가 직접 나가 춘추관 도인을 뵙겠습니다.”

    심협의 목소리에는 결단력이 서려 있었다.

    “너의 생사에 관련된 일인데, 아비로서 어찌 여기서 한가로이 차를 마실 수 있겠느냐. 함께 가서 도인을 만나보자꾸나.”

    심원각은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더니, 바로 입구를 향해 종종걸음으로 나섰다. 아버지의 모습에 심협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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