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화 (1/1,214)

1화. 서장

운무가 주변을 감도는 우뚝 솟은 전당 안.

금색 도포를 입은 사내 한 명이 수십 장(丈) 높이의 청색 옥계단 꼭대기에 있는 백옥과 같이 새하얀 큰 의자에 반듯이 앉아 있었다.

휘황찬란한 이 전당 안은 지금 아수라장과 같았다.

바닥에는 도끼, 월, 갈고리, 작살 등의 잔인한 병기들이 버려져 있었고, 진귀한 보물들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양쪽 측면에는 거대한 반룡주(*蟠龍柱 : 용이 새겨진 기둥)가 여러 조각으로 부서져, 기둥의 반절만 겨우 서 있었다.

죽은 듯이 고요한 웅장한 전당엔 금포를 입은 사내만이 홀로 이곳에 앉아있을 뿐, 다른 인기척은 전혀 없었다. 이 사내는 이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듯이 멍하게 바닥에 떨어져있는 물건 하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물건은 반쯤 훼손된 편액(扁額)이었는데, 편액 위에는 ‘능소(凌霄)’라는 거대한 금빛 글자가 위엄을 발산하고 있었다.

이때, 쿵 하는 소리가 크게 울리더니 거대한 전당이 미미하게 흔들렸고, 이내 여러 모퉁이에서 은빛 영문(*靈紋 : 영적인 무늬)들이 빼곡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뻗어 나가던 영문들은 층을 이루며 점점 더 많아지더니, 순식간에 거대한 그물과 같은 모양으로 전당 전체를 뒤덮었다.

또한 밖에서는 천둥과 같은 거대한 울림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전당 안에는 은빛 영문이 끊임없이 번득이고 있었는데, 순간 지면이 갈라지면서 전당의 지붕도 서글픈 빠직 소리를 내었다.

“결국 그 시간이 오고야 말았구나!”

마침내 고개를 든 금포 입은 사내는 혼잣말을 하더니, 전당의 지붕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 하얀 빛이 어슴푸레하게 비쳐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보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이때, 전당의 자금색 지붕이 ‘펑’하는 소리와 함께 갈라져 무너졌다. 무수한 파편이 날리는 가운데, 산악과 같이 커다란 마수(魔手)가 금포 입은 사내를 잡으려고 내려오고 있었다.

* * *

끝이 보이지 않는 초록빛 마(魔)의 화염이, 만 장의 높이에 달하는 금빛 찬란한 산을 에워쌌다.

산 정상의 절에서 간간이 범어(*梵語 : 불교의 기원인 고대 인도어)로 불경을 외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이내 무수히 많은 금빛 범문(*梵文 : 고대 인도의 문자)이 날아 내려와 마의 화염이 다가오는 것을 필사적으로 방어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산에서 나오던 범문은 점점 적어졌고, 불경을 외던 범어의 소리도 점점 작아져갔다.

곧이어 마의 화염에 파묻힌 산에선 다시는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 * *

어둑어둑한 저승.

검고 흉악한 저승성의 대문에서 흉측한 모습의 귀신들이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대거 뛰쳐나오고 있었다.

어떤 귀신은 괴이한 바람을 타고 날아서 나왔고, 어떤 귀신은 지하를 뚫고 나왔는데, 마치 터진 제방으로 쏟아져 나오는 물과 같았다.

이렇게 나온 이들은 바깥세상의 잿빛 황야로 몰려가 자취를 감추었다.

* * *

인간계의 정오.

칠흑 같은 어둠이 내린 하늘은 조금의 햇빛도 들지 않는 것이 마치 먹물을 뿌린 것 같았다. 도시와 황야를 막론하고 모두 심야를 방불케 했고, 오직 몇 개의 등불만이 아른거릴 뿐이었다.

일부 도시, 향진(鄕鎭)지역의 등불 아래, 무수히 많은 군중들이 고개를 들어 어두운 하늘을 쳐다보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어떤 이들은 놀라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었고, 어떤 이들은 두려워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그런데 이때 어두운 하늘에서 갑자기 어떤 낮은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점점 더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이 소리는 마치 사람들이 모여 나지막이 흐느끼는 소리처럼 느껴졌는데, 이를 들은 사람들은 극도의 슬픔을 느꼈는지 눈물을 흘렸다.

소리의 울림이 시작할 때쯤, 하늘에서 수많은 붉은 빛이 번득이기 시작하더니 붉은 운석들이 어둠을 뚫고 떨어지기 시작했다. 큰 것은 큰 산악만 한 크기였고, 작은 것은 집 한 채만 한 크기였다.

인간계로 우르르 떨어져 내려온 운석들은 그렇게 세상을 뒤덮었다.

* * *

대당(大唐)시기, 마(魔)의 기운이 하늘을 집어삼키자, 하늘은 흐느끼며 울었다. 천화(*天火 : 하늘의 불)가 인간계에 떨어져, 백성들의 사상(死傷)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었다.

- <마겁록(魔劫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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