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 대륙의 주인 (2)
처음부터 이렇게 독하게 손을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혼돈의 조각을 보고 눈이 뒤집힌 용사를 보면서 김선혁은 만에 하나를 대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저 용사와의 의리만으로 덮고 넘어가기에는 그가 짊어진 것들의 무게가 너무도 무거웠다.
"끄아아악!"
온몸이 녹아내리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 용사가 또 한 번 죽음을 맞이했다. 고통과 공포로 일그러진 얼굴이 눈에 박힐 듯 새겨졌다.
나를 욕하고 원망해라. 만약 그게 네 온전한 감정이라면, 기꺼이 받아주마.
김선혁은 굳은 얼굴로 수도 없이 죽음과 부활을 반복하는 용사를 지켜 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겁에 질려있던 용사의 눈동자에 증오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대체 내가 뭘 그리 잘못했길래!"
비명과 애원 대신 원한 가득 서린 절규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절규가 채 끝이 나기도 전에 용의 숨결이 또 한 번 용사를 집어삼켰다.
“김선혁! 절대로 네놈을 가만두지 않겠다!”
다시 살아난 용사가 저주를 이어갔다.
“네놈과 관계된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이번에도 에다는 용사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지 않았다.
“어느 하나 이 세상에 남겨두지 않겠다!”
용사가 성검을 움켜쥐고 김선혁에게 달려들다 그대로 녹아내렸다.
“네놈이 그토록이나 애지중지하던 제국은 모조리 불에 타 흔적도 남지 않을 것이고!"
수많은 죽음 속에서도 찬란함을 잃지 않던 두 쌍의 날개 중 하나가 잘려져 나간 용사가 끔찍한 저주를 퍼부어댔다.
“네놈이 사랑하는 여제는 천 갈래 만 갈래 찢어 들짐승의 먹이로 줄 것이다! 또한 네놈의 아이 또한 제 어미와 같은 꼴을 당하게 만들….”
원독에 차 악을 써대던 용사가 불현듯 입을 다물었다.
“차라리.”
마침내 깨어진 죽음의 고리, 용사가 미처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김선혁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용서받지 못해 죽을 때까지 속죄를 이어가게 되더라도.”
그런 그의 얼굴에는 더 이상 고뇌도 죄책감도 없었다.
“차라리 그리 되기를 바랐다.”
있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북풍한설과도 같은 한기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받아야 할 것은 내 동생 준민이의 원망이지, 뭔지도 모를 네놈의 같잖은 저주가 아니다.”
“대체 언제까지 그 되지도 않을 망상으로 네 스스로의 행동을 합리화할….”
용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버럭 소리쳤다.
“내가 아는 준민이라면!”
김선혁이 용사를 향해 다가갔다.
“차라리 쌍욕을 퍼부어댈지언정, 방금 전에 네놈이 했던 것처럼 무고한 이들을 죽여 나에게 복수하겠다고 엄포를 놓진 않았을 거다.”
“지금 네놈이 나한테 한 짓은 생각도 않고, 고작 그깟 저주를 트집잡는 거냐!"
“준민이라면!”
전룡의 입가에 새빨간 불꽃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감히 내 아내와 아이를 입에 올렸을 때.”
“자, 잠깐….”
이 자리에서 맞이한 죽음만 해도 수도 없었건만, 용사는 생전 처음으로 죽음을 목전에 둔 것처럼 몸을 덜덜 떨어댔다.
“내가 어찌 나올 거란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을 거다.”
스스로도 인식하기도 전에 자꾸만 뒷걸음질을 치는 제 다리를 보며 용사가 당혹스러운 얼굴을 해 보였다.
“어째서….”
용사는 연신 뒤로 물러나면서도 저 스스로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네놈은 몰라도 몸은 기억할 테니까.”
한때 교육을 빙자하여 몸속 깊이 각인시켜두었던 절대적인 힘의 고하가 지금 이 순간 용사로 하여금 감히 제 의형에게 대항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결정적으로 네놈이 정말로 준민이었다면.”
그런 용사를 보며 김선혁이 차갑게 말했다.
“아직 두 쌍의 날개가 온전하게 붙어있을 때 벌써 도망쳤겠지.”
그가 아는 박준민은 치열하게 부딪치고 싸우는 것보다는 도망치는 게 익숙한, 자존심보다는 실리를 중요시하는 자였다.
하물며 눈이 뒤집혀서 자신을 죽이려고 드는 자가 제 의형이라면 용사는 그 거북함을 참지 못하고 도망쳤어도 진즉에 도망쳤을 것이다.
“준민이는 그렇게 자존심도 뭣도 없는 놈이지만. 적어도 자신을 핍박하고 모질게 고문했던 교국의 인물들조차 기꺼이 용서할 정도로 품이 넓은 놈이다. 그런 준민이가 아이와 여자를 인질 삼아 협박을 늘어놓을 리가 없다.”
근거라고 하기에는 빈약하기만한 믿음이었지만, 그는 확신했다.
눈앞의 용사는 박준민의 껍데기를 쓴 전혀 다른 존재였다.
“내 동생의 육신을 차지한 너는 누구인가.”
용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역시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은 아니었다.
어차피 박준민의 육신을 차지한 존재는 뻔했다. 신탁을 내린 장본인이자, 저 경계 너머에서 이 세상으로 넘어오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초월자, 신성의 주인이 분명했다.
“에다.”
[안타깝지만, 이미 화신 그 자체가 되어버린 용사를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은 없노라. 만약 정상으로 돌아온다고 해도 언제든 그자가 원하면 다시 육신을 취할 수 있으리라.]
속내를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한 에다의 말에 김선혁이 마침내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자, 잠깐!”
뒤늦게 용사가 뭐라 입을 열려고 했지만, 그는 이야기를 들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미안하다. 준민아.”
짧은 사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누렇고 붉은 용의 숨결이 용사를 집어삼켰다.
***
용사는 다시 죽음과 부활을 반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남아있던 한 쌍의 날개마저 잃고, 찬란하던 빛의 갑주마저 잃고 말았다. 그리고 그 뒤로도 수십 번이나 죽음을 반복한 끝에 용사는 마침내 더 이상 레벨이 떨어질 수조차 없게 되었다.
“정말로 후회하지 않을 자신있….”
이번에도 김선혁은 필사적으로 입을 놀려대는 용사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자, 잠깐만 내 말을!”
미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룡의 화염이 용사를 불태웠다. 그리고 용사는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
“후회라….”
당장에라도 다시 소생할 것만 같은 용사의 빈자리를 보며 김선혁이 한숨을 내뱉었다.
“어떤 식이든 간에 후회는 남았겠지.”
지금 이 순간에도 숨이 막힐 정도의 후회가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왜 일찍 박준민에게 일어난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을까. 과연 이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어쩌면 화신이 되어버린 박준민을 되돌릴 수 있지는 않았을까.
끝도 없이 이어지는 가능성과 가정, 하지만 이제는 모두 부질없었다.
용사는 자신의 손에 죽었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대는 틀리지 않았다. 연결 고리를 남겨두었다간 그 간교한 자가 또다시 무슨 짓을 벌였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을 테니까.]
드물게 위로의 말을 건네오는 에다의 말에 김선혁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직 하나 남았어.”
그 저주스러운 신성의 주인과 이 세상을 연결하는 연결 고리는 아직 완전히 소멸되지 않았다.
성검 발뭉, 신성의 주인이 남긴 유일한 신물이자, 두 개의 조각을 품은 봉인구가 아직 남아 있었다.
저벅 저벅.
주인을 잃고 덩그러니 남겨진 발뭉을 본 그가 성큼성큼 다가가 손잡이를 움켜잡았다.
화르르륵.
모든 것을 불태우는 전룡의 화염이 성검을 집어삼켰다.
손잡이의 자루가 가장 먼저 불타오르고, 날 옆으로 돌출된 화려한 장식이 녹아내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검의 날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악! 뜨거워! 뜨겁다고!]
성검이 한 줌 쇳물로 변하기 직전, 갑작스레 낯익은 음성이 김선혁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어?”
[형님! 그만해요! 이러다 나 타죽겠어!]
이제 다시는 들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박준민의 목소리였다.
“준민아?”
[일단 불 좀 어떻게!]
고통에 찬 비명에 김선혁이 황급히 불길을 거두어들였다.
[으아아! 뜨거워 죽겠네! 죽겠다고요!]
혹시라도 신성의 주인이 또다시 농간을 부리는 것인가 싶었지만, 이 경망스럽고 방정맞은 목소리는 박준민이 틀림이 없었다.
“발뭉은 어디 가고. 네가 왜….”
[그 빌어먹을 자식 이야기는 하지도 말아요. 성검은 개뿔이 성검이야. 어휴 마검도 그런 마검이 없어.]
속성을 이용해 달궈졌던 날을 식혀놓으니, 박준민이 시끄럽게 떠들어 댔다.
[아무래도 육신을 빼앗길 때, 용사의 영혼이 성검으로 옮겨간 모양이구나.]
금세 상황을 알아차린 에다의 말에 김선혁이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얼굴을 해 보였다.
“어, 어….”
이렇게라도 용사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게 되어 기삐해야 할 지, 그도 아니면 검에 갇힌 가엾은 영혼을 동정해야 할지 쉽게 판단이 되지 않는 얼굴이었다.
[뭐가 그리 복잡해요. 어쨌건 이렇게라도 살았으면 됐지.]
마지 남의 이야기라도 하듯 천연덕스러운 박준민의 말에 뭐라 대답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어차피 육신이 멀쩡했어도 전 서서히 미쳐갔을 거예요.]
박준민은 소생의 대가가 단지 레벨다운 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챘을 즈음에는 이미 영혼이 깨져 오래 버틸 수 없는 지경이었노라말했다.
[실로 공교롭도다, 짐승을 가두기 위해 만든 단단한 우리가 이제는 깨어져 버린 영혼의 그릇을 대신할 튼튼한 그릇이 되었구나.]
에다는 오히려 서서히 흐릿해져가다 끝내 소멸했어야 할 영혼이 멀쩡하게 남았으니, 이 또한 전화위복이라 말했다.
[제가 운은 없는데 재수는 좋거든요.]
박준민 역시 에다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검이 되어버린 인간의 존재에 혼란스러움을 느낀 것은 오로지 김선혁뿐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용사의 신세를 두고 고민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일단 나중에 이야기하자.”
[싫어요! 이 안에서 얼마나 답답했다고요! 그 빌어먹을 마검은 제 이야기도 안 들어주고. 진짜 미치는 줄 알았….]
도무지 멈출 줄 모르는 수다에 김선혁이 검을 허리춤에 빗겨 찼다.
우우우응. 우우응.
검이 세차게 몸을 떨어대는 것을 애써 무시한 그가 사방을 둘러보았다.
“일단 마수랑 마물들부터 정리하자.”
어둠은 사라졌지만, 어둠이 뿌리고 간 악의는 여전히 온 사방에 남아있었다.
“가자.”
그의 말에 에다가 힘차게 날아올랐다.
김선혁과 에다는 주변을 돌며 마수와 마물들을 사냥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근방의 마물들을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었다.
마물들이 자취를 감추자 생존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혼돈이 만들어낸 지옥 속에서도 끝끝내 살아남은 이들이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비록 그들은 마수들과의 싸움에 지쳐 있었을지언정 삶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은 모습이었고, 마기에 의해 사소한 광증을 보일지언정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사제들과 올곧은 기사들이 끝끝내 신도들을 지켜낸 것이다.
[신성의 주인이 간교하다고 하여 그를 추종하는 이들의 순결함까지 가치 없다 말할 수는 없구나.]
그들이 보인 끈질긴 생명력과 정신력에 강대한 에다조차 탄성을 내뱉었다.
생존자들을 구출해 인도하던 김선혁은 빈궁한 행색의 무리 속에서 낯익은 인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람!]
박준민의 반려 요정 하람이었다.
“어째서?”
영혼을 공유하기로 맹세한 반려이기에 하람 역시 검으로 변해버린 박준민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준민?”
복면 사이로 드러난 눈동자가 동그랗게 뜨이는 것을 본 김선혁이 한숨을 내쉬며 성검을 내밀었다. 하람은 잠시 망설이다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 순간 검에서 흘러나온 미세한 빛줄기가 하람을 감싸 안았다.
“어?”
하람이 얼빠진 소리를 내뱉었다.
“왜 내가….”
그런데 그렇게 멍하니 선 하람의 어조가 생소했다.
“형님. 저 갑자기 몸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시 빛이 번뜩이더니 하람이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다소 멍한 눈빛이었지만, 건조한 표정과 분위기는 틀림없는 원래대로의 하람이었다.
[형님. 저 방금 하람 몸으로 옮겨졌던 거 같은데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인지 김선혁이 눈살을 찌푸리니, 에다가 말을 걸어왔다.
[용의 맹약과는 비할 수 없다고 하나, 어쨌건 저들이 맺은 반려의 서약 역시 영혼을 공유하는 것. 검이 새로운 주인을 찾았구나.]
에다의 말에 그가 저도 모르게 하람과 검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
어둠이 완전히 사라지고도 장벽을 지키던 연합군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혹시 모를 웨이브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눈에 불을 켜고 한때 장벽이 있었던 곳 저 너머를 바라보던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사나운 마수와 마물들이 아닌 지칠 대로 지친 생존자들이었다.
“전승 대공께서 용과 함께 마수들을 사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교국 안쪽의 상황이 방어선에 전달되었다.
“어둠은 끝내 종말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교국을 집어삼켰던 혼돈이 마침내 소멸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연합군은 환호했다.
“전승 대공께서 또!”
그들은 또 하나의 영웅적인 업적을 쌓은 전설적인 기사를 칭송하고 찬양했다.
“신의 사도께서는….”
장막이 무너질 때 교국을 빠져나온 신전 기사들과 사제들이 용사를 찾았다. 하지만 그들이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악을 앞에 두고 물러나지 않았던 용사의 최후에 대한 이야기 뿐이었다.
“어찌하여 신께서는 그분을 이리도 일찍 데려가셨다는 말인가 그리도 일찍 곁에 두고 싶으셨던 것인가.”
신전 기사들과 사제들이 무릎을 꿇고 용사의 죽음을 애도했다.
하지만 그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병사들과 초인들은 한 명의 죽음에 슬퍼하는 것보다는 끔찍한 전쟁이 마침내 끝이 났다는 사실에 환호했다.
“이겼다! 드디어 끝났다!"
“전승 대공 만세!”
“아덴버그 제국 만세!”
끝까지 방어선을 포기하지 않았던 병사들과 초인들이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그리고 그렇게 열광적으로 환호하는 연합군의 머리 위로 백금의 비늘이 찬란한 용이 스쳐갔다.
***
‘교국의 어둠 완전히 소멸!’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승전보가 마침내 제국의 황성에 울려 퍼졌다.
‘용사 전사!’
‘원정대의 인원 절반 이상 전사!’
‘교국의 백성들 중 팔 할 이상이 재앙에 휘말려 실종되거나 사망.’
하지만 기뻐하기도 전에 재앙이 남기고 간 끔찍한 피해가 날아들었다.
“대공은! 대공은 어찌 되었다더냐!”
끝도 없이 이어지는 전사자 보고에 비통한 얼굴을 하고 있던 여제가 마법사에게 물었다.
“전승 대공께서는 무사하십니다!”
“아아! 다행이로다! 참으로 다행이로다!”
평소의 근엄함은 온데간데없는 얼굴로 몇 번이나 다행이라 되뇐 여제가 뒤늦게 전승 대공의 행방을 물었다.
“그래서 대공은 지금 어디 있다던가!”
기쁜 낯으로 전승 대공의 무사함을 알렸던 마법사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설마….”
여제의 표정이 냉랭하게 변하는 것을 본 마법사가 황급히 보고했다.
“저, 전승 대공께서는 서부에 나타난 어둠을 마저 처리하고 돌아오시겠다며….”
마법사의 말이 채 다 끝나기도 전에 여제가 한탄했다.
“다시는 떠날 생각 말고 일을 모두 끝마치고 돌아오라 했더니! 세상의 모든 분란이란 분란은 전부 해결하고 올 기세로구나!”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서부에 다시금 피어났던 어둠이 채 퍼지기도 전에 소멸되었다는 소식이 황도에 전달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제국이 그리도 기다리던 전설적인 기사가 마침내 귀환했다.
“오필리아.”
황도 앞 광장 공터에 사뿐히 내려앉은 용 위에서 뛰어내린 김선혀이 자신의 아내를 덥석 끌어안았다.
“약속 지켰어요.”
나직한 음성에 성취감이 가득했다.
“이제 어느 누구도 제국을 넘볼 수 없을 거예요.”
언제고 자신의 아이가 만들어갈 제국의 영광에 대한 기대감으로 그는 웃고 있었다.
“그게 인간이든 인간이 아닌 무엇이든 간에.”
그의 말은 단순한 바람이 아닌 강렬한 의지가 담긴 용언이자, 세상을 향한 선언이었다.
“앞으로 황도 밖으로 나갈 생각일랑 하지 마시오.”
하지만 그의 아내가 듣고 싶은 말은 아니었다.
“넵."
뒤늦게 가슴팍에 안긴 그녀의 얼굴에 감도는 냉기를 발견한 그가 찔끔한 얼굴로 냉큼 대답했다. 처음에 보였던 의기양양한 모습은 조금도 남아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가만히 둘을 내려다보고 있던 백금빛의 용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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