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 맹약 (2)
교국을 둘러싼 장벽은 날이 갈수록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단지 교국을 둘러싸는게 고작이었던 장벽은 어느새 교국의 국경을 넘어 인근 왕국을 침범할 정도가 되었고,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연합군의 병력은 장벽에 휘말려 들지 않기 위해 연신 부대를 물려야 했다.
뒤로 물러나는 와중에도 시시때때로 시작되는 웨이브를 막아야 했으니, 연합군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연합군은 온통 불리한 전황 속에서도 놀라울 정도의 저력을 보였다.
마수들과 마물들을 상대하는 데 이골이 난 서부 원정대 출신 병사들이 병력의 주축이 되어 새롭게 보충된 병사들이 처음으로 마주한 마수와 마물들의 악의에 잡아먹히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노력했고, 강력한 힘을 지닌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나서 병사들이 상대하기 힘든 마수와 마물들을 처리하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신의 사도라 칭송받는 용사 박준민이 존재했다.
용사는 마치 몸이 여러 개로 나뉜 것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넓게 펼쳐진 방어선 이곳저곳을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오로지 성검의 주인만이 마기에 오염당한 병사들을 치유할 수 있었고, 오직 용사만이 초인들조차 처리하지 못한 강대한 혼돈의 마수들을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용사조차도 전지전능한 것은 아니었다. 성검의 막강한 신성력도 날이 갈수록 영역을 넓혀가는 장벽 그 자체를 막아낼 수는 없었다.
애초에 교국과 함께 장막에 집어삼켜진 사제단과 신전 기사들을 대신해 홀로 넓은 전선 전체를 커버한다고 뛰어다니는 것만으로도 용사는 제 능력 이상의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그 이상의 무언가를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으으. 형님은 이런 부담 속에서 항상 싸워 온 건가.”
박준민은 자신을 향한 병사들의 시선에 숨이 막혀왔다. 한계 이상의 능력을 원하는 병사들의 기대에 당장에라도 질식할 것만 같았다.
그럴수록 용사는 스스로를 혹사시켰다.
[오롯한 그분의 은혜는 무한하나, 그걸 사용하는 건 결국 인간의 육신이다. 지금의 그 상태로는 얼마가지 않아 육신이 붕괴될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성검 발뭉이 자신의 주인을 만류할 정도였다.
“사제들이 없는 지금, 마기의 침식을 막을 수 있는 건 나뿐이야.
내가 게으름을 피우면 병사들이 더욱 고통스러워져.”
하지만 박준민은 막무가내였다.
마치 전선에서 마기에 의해 죽어가는 병사들 전체가 자신의 책임인양 굴어 댔다.
[더 이상의 무리한 사역은 내가 동의하지 않는다.]
급기야 성검이 신성력의 차단이라는 초강수를 동원하여 용사를 강제로 휴식하도록 만들었다.
“아, 안 돼. 이럴 시간에 한 명의 병사라도 더 구해야 한다고.”
강박적인 반응을 보이는 용사, 그제야 발뭉을 비롯한 용사의 주변인들은 깨달았다.
용사는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내부에서부터 망가져 가고 있었다.
하기야 용사니 신의 사도니 뭐니 떠받들어봐야 결국 용사의 본질은 이제 막 이십 대 후반의 젊은이에 불과했다. 저쪽 세상이었다면 이제 겨우 취업하여 일을 배우기 시작할 나이에 너무도 큰 무게를 짊어지게 됐으니, 견디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빨리 전승 대공께서 귀환하셔야 사도의 부담이 조금은 덜해질 텐데….”
그나마 용사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것은 곧 돌아올 것을 약속하고 떠나간 의형제 덕분이었다.
“전승 대공은 저 나이에 이미 자국의 전선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었지. 비록 실질적으로 지휘관으로 전투에 나선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해도, 언제나 그의 어깨에 전쟁의 성패가 달려 있었던 건 사실이었다.”
박준민이 당장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사람들 중에는 전승 대공과 용사를 비교하는 자마저 생겨날 지경이었다.
당연히 비교가 될 리가 없었다.
근래 들어 용사가 수많은 공을 세우고 전선을 지탱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으나, 아무래도 전승 대공이라는 거인과 비교하면 손색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당장 자국의 국경에서 세운 전공은 둘째 치더라도 아무런 연고도 없는 중부와 서부에서 전승 대공이 보인 활약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아무도 몰랐던 서부의 몰락을 가장 먼저 탐지하여 세상에 알렸고, 그 스스로는 홀로 마왕의 땅에 침투해 생존자들의 흔적을 탐문한 바 있다. 심지어 전승 대공은 이천 명의 퀘이샤들과 피난민들을 이끌고 기적적인 피난길을 성공으로 이끌기까지 했다.
그 모든 것이 어느 누구의 지원도 받지 않고 이룩해낸 혼자만의 공이었다.
거기에 더해 마와 결탁하여 용사를 구금한 교국의 음모를 낱낱이 파헤쳐 세상에 알렸으며, 용사를 구한 것도 전승 대공이었다. 결과적으로 마왕을 제거하여 서부를 해낸 것도 전승 대공이었으니, 그가 이룩한 눈부신 업적을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용사가 아니라 어느 누구를 데려와도 감히 전승 대공과 비견될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그 영웅적인 행보의 이면에는 무수히 많은 고뇌와 번민이 있었다. 그게 바로 용사와 전승 대공의 차이점이었다.
전승 대공은 아데스덴 왕실의 전폭적인 신뢰와 지원 속에서 스스로가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을 넘치도록 누렸다. 하지만 용사는 아니었다.
세상의 전면에 나선 이후로 용사는 지나칠 정도로 빠르게 부상했고, 정신적으로 여물기도 전에 너무도 큰 중압감에 노출되고 말았다.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 따위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용사가 전승 대공에 미치지 못하는 인물이라는 것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어느 누구도 문제점을 인지하지 못하는 가운데, 용사는 더욱더 병들어가고 있었다.
[그만! 그만! 내가 졌다! 힘을 빌려줄 테니! 더 이상의 미친 짓은 그만 둬라!]
성검의 조력 유무와는 별개로 목숨을 걸고 전선에 뛰어드는 용사의 행태에 성검이 두 손 두 발을 다들었다.
그때쯤 가서 용사는 완전히 말을 잃었고, 그저 기계적으로 전장에 나서는 삭막한 인물이 되어 있었다.
“형님이 올 때까지만 버티면 돼. 형님만 돌아오면 어떻게든 해줄 거야."
이따금씩 혼잣말처럼 내뱉는 말도 오로지 제 의형제의 귀환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완전 못 쓰게 망가졌는데.”
“저러다가 저거 사고치는 거 아냐?”
그 변화를 적나라하게 곁에서 지켜본 이방인들만이 그 부담감을 알고 있었기에 우려를 표했다.
“성검이 있으니 사고야 안 치겠지만, 저러다가 갑자기 장벽 안쪽으로 뛰어들까봐 무섭다.”
김우영이 위태로운 용사를 보며 걱정을 늘어놓자, 바로 곁에 있던 이수혁이 타박을 했다.
“말이 씨가 된다고. 지금 같은 때는 말조심해. 마법사들이 하는 이야기 못 들었어? 장벽 근처에서 말을 함부로 하면 그게 진짜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하잖아.”
전선에 파견된 마법사들은 장벽이 단순한 마기 덩어리가 아닌 보다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어둠 그 자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사특하고 삿된 마음이 실체를 갖고 세상에 현신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 온 전선에 전파된 상황이었다.
전선에서는 욕설조차도 자중하고 있다고 하니, 이수혁의 염려가 마냥 과한 것만은 아니었다.
“하. 진짜. 언제 오시려고. 대장만 있으면 저깟 장벽이고 뭐고 단번에 해결이 될 텐데.”
맹목적이기까지 한 믿음이었지만, 이제껏 한 번도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은 자신들의 대장이라면 반드시 저 끔찍한 장벽을 해결해줄 거라고 다들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믿음이 실현되는 것보다 용사의 폭주가 더욱 빨랐다.
“이렇게 막기만 해서는 절대로 답이 나오지 않는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 장벽은 넓어질 테고, 언젠가는 대륙 전체로 퍼져나갈 테니까.”
용사는 연합군의 지휘관들을 모아두고 장벽 자체를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딴에는 일리가 있는 말이었고, 제법 합리적인 의견이었다. 하지만 정작 의견을 낸 용사의 얼굴에 떠오른 것이 필승의 의지가 아닌 초조함과 광기였으니 덮어놓고 찬성을 할 수도 없었다.
“마법사들이 밤잠을 잊고 저 장벽을 해결할 방도를 찾고 있소. 그러니 지금 무리해서 장벽 너머로 진격하는 것은 그다지 좋은 방법같지 않군.”
전선에서 가장 많은 영역을 부담하고 있는 아덴버그 제국의 사령관이 용사의 말에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하다못해 전승 대공께서 돌아오실 때까지만이라도 기다려보는 것이 훨씬 나은 판단이라고 생각하오. 이제껏 수도 없이 많은 난관을 헤쳐 온 그분이라면 반드시 방도를 찾아낼 거요.”
아덴버그 제국군의 지휘관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들의 사령관의 말에 공감을 표했다.
하지만 이미 초조함이 극에 달한 용사의 태도는 강경하기만 했다.
“형님께서 돌아오겠다고 하고 떠난 게 벌써 세 달, 대륙이 아무리 넓다 해도 와이번을 타고 이렇게까지 오가는데 시간이 걸릴 곳은 없습니다. 만약 형님께서 돌아올 거라면 진즉에 돌아왔겠지요.”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제 의형만 돌아오면 모든 위기가 거짓말처럼 걷힐 거라고 주절거리던 용사의 달라진 태도에 아덴버그 제국의 인사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지금 그 말은 그분께서 일부러 전선에 복귀하지 않고 있다는 말인가! 공적으로는 대륙을 위해 수없이 많은 공을 세운 영웅이며, 사적으로는 그대의 의형이다! 그대의 발언은 오해의 소지가 크다.”
“내가 언제 일부러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습니까? 단지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지.”
용사는 막무가내였다. 마치 저 장벽 너머로 뛰어들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죽을 사람처럼 굴었다.
“만약 그대가 계속해서 무리한 진격을 주장한다면, 우리 제국은 연합군과 따로 움직이도록 하겠소. 제국의 귀한 병사들을 이 머나먼 타국까지 이끌고 온 건 결코 자살하기 위해서가 아니니까.”
강경한 것은 아덴버그 제국의 사령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자. 진정들 하시지요. 설마하니 용사께서 병사들을 헛되게 죽게 만들고자 저런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뭔가 이유가 있겠지요.”
지금에 와서는 용사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어버린 테네시아 왕국의 과열된 분위기를 중재하고 나섰다.
“부디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기를 바라겠소.”
제국 사령관의 말에 박준민이 대뜸 대답했다.
“신탁이 내려왔습니다.”
난데없는 신탁이라는 말도 말이었지만, 그보다 용사의 태도가 이상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초조함을 넘어 광기마저 보이던 용사의 얼굴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너무도 평온했다.
“신탁이라….”
이제까지 단 한 번도 회의에 말을 보태지 않았던 제국의 검성 마렉 슈나일 로아힘이 나선 것도 그때였다.
“하필 이럴 때, 신탁이라니. 그보다 신탁의 내용이 뭔지 궁금하군.”
조율자로서 이백 년이 넘는 시간을 살아온 노검사의 눈빛이 어느때보다 날카롭게 용사를 향했다. 마치 그 평온한 표정 너머에 어떤 저의가 있는지 낱낱이 파헤치기라도 할 듯한 표정이었다.
"신께서는 저 사악한 장벽이 이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고, 저로 하여금 저 어둠을 몰아낼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사도께서 저 장벽을 해결할 능력이 있다고는 믿을 수 없군.”
외교적인 수사 따위는 쏙 빼놓은 단도직입적인 말에 대번에 회의장의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근래 들어 감히 어느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세력을 일군 제국이라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마렉의 말은 지나치게 무례한 감이 있었다.
“물론 아국이 사도의 공을 낮잡아 보는 것은 아니오. 사도께서 전선을 두루 살피시지 않았다면 전선의 장병들이 결코 지금처럼 마기로부터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소.”
뒤늦게 제국의 사령관이 나서서 수습을 했지만, 한 번 차갑게 가라앉은 회의장의 공기는 다시 달아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용사는 마렉의 무례함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지, 그 표정이 너무도 태연하기만 했다.
“다음 웨이브 때 보여드리지요. 만약 그때도 내 힘이 부족하다 여겨진다면, 오늘과 같은 이야기는 다시 꺼내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용사는 여유롭게 웃어 보이며, 다음 웨이브에서 스스로가 장벽을 해결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겠노라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은 오래 지나지 않아 찾아왔다.
용사가 나선 건 1차 웨이브를 연합군의 초인들이 성공적으로 막아내고 난 뒤였다.
털썩.
마수들의 검은 체액으로 더럽혀진 전장의 한 가운데에 성검을 박아넣은 용사가 한쪽 무릎을 꿇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기적이 펼쳐졌다.
고오오오오.
하늘에서 내려온 눈부신 섬광이 2차 웨이브의 시작과 동시에 장벽 밖으로 뛰쳐나온 수많은 마수들을 단번에 녹여버린 것이다.
비명은커녕 흔적도 남지 않았다.
마수들은 마치 처음부터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양 그대로 증발해버렸고, 심지어 전장에 널려 있던 마수들의 시체들마저 빛에 휘말려 사라진 채였다.
“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신이시여.”
“신은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
그 놀라운 이적을 목도한 병사들이 바닥에 엎드려 신을 부르짖었다.
교국의 만행으로 바닥에 처박혔던 신앙의 불씨가 다시금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결국 제 신성의 추락을 보다 못해 직접 나선 것이로군.”
마렉은 굳은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어떻습니까. 이제 저에게 저 장벽을 없앨 능력이 있다고 믿어지십니까?”
용사가 다가와 마치 사이비 교주와도 같은 용사의 싸구려 멘트를 던졌다.
“하나만 더 물어보도록 하지.”
“무엇이든 물어보시지요.”
전과는 너무도 다른 용사의 능글맞은 태도에 마렉이 인상을 쓰며 물었다.
“혹시 화신(化神-Avatar)의 능력도 받았는가.”
“만약 그분을 영접하는 영광된 능력을 물으시는 것이라면….”
용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 말에 마렉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그럼 그 이야기는 이제 일단락이 된 걸로 알아도 되겠습니까?”
마렉은 대답도 없이 진짜 신이라도 영접한 듯 오열하는 병사들 사이로 사라졌다.
그날 회의에서 장벽 너머까지 이어질 진군에 대한 작전이 입안되었다.
“인류를 위하여!”
벌써부터 승리라도 한 듯 흥분해서 외쳐대는 지휘관들의 함성이 막사 너머까지 흘러나왔다.
“결국 세상을 구분 짓던 경계가 무너지고 말았으니, 앞으로 이 세상은 인간이 아닌 초월자들의 장기판이 되겠구나.”
막사 밖에서 서성이던 마렉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부디 신놀음에 심취한 그자가 너무 과한 것을 바라지 않기를 바랄 뿐.”
당장 용사만 해도 신탁을 받은 직후 완전히 사람이 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건 초월자의 의지가 대리자를 좌지우지하기 시작했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었다.
“과연 대리자들 중에 본성을 잊지 않는 자가 있기는 할까 ”
애초부터 나약한 인간은 초월자 들의 강력한 의지와 힘을 이겨낸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아니. 하나가 있긴 있군 ”
마렉이 뒤늦게 굳은 얼굴을 풀며 북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곧 돌아오겠다는 말과 함께 떠나간 용의 반려가 사라진 방향이었다.
“믿을 건 자네뿐이군.”
과거 자신들과 같은 조율자보다 앞서 세상의 균형을 조율해온 용이 부디 이번에도 중용의 사명을 잊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그리고 그 무렵 김선혁은 세상의 경계를 통과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었다.
“이번에는 진짜 고의가 아니었다고!"
시공의 틈에서 흘려보낸 시간이 세상의 그것과 같지 않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다.
"서둘러! 더 빨리!”
뜻하지 않게 외유의 기간이 늘어난 유부남의 절규에 에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살게 될 그대에게 시공의 틈에서 홀려보낸 시간은 그야말로 바닷물을 한 움큼 퍼낸 것과 같노라.]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니까.”
에다의 태평스러운 말에 김선혁이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최대한 빨리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고.”
[납득할 수는 없지만, 알았다.]
계속된 성화에 에다가 더욱 속도를 올렸다.
빼애애액.
그리고 게하임니스를 태운 레드번이 혀를 빼물고 허겁지겁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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