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83 =========================================================================
283. 폭풍처럼 (2)
드라흔과 그 아룡이 모습을 드러낸 이후 전선의 공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당장에라도 이베리아의 방어선을 뚫고 그라나도를 향해 진군할 것 같았던 중부 왕국군은 이미 그 예기를 잃은 지 오래였고, 바삐 오가는 마법 전문은 온통 패전에 관한 소식을 담고 있었다.
“단 한 사람이 참전한 것만으로 이렇게 전세가 뒤바뀔 수 있다는 말인가.”
중부 왕국군의 지휘관들은 이 모든 것이 단 한 명의 기사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부정해도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드라흔의 참전으로 인해 중부 왕국군은 세빌리야 요새에 고립된 동부 왕국 연맹의 잔존병력을 인질 삼아 동부 왕국들을 압박하겠다던 당초의 계획을 이룰 수 없었고, 아덴버그 제국군의 지원군이 이베리아에 당도하기 전에 그라나도를 점령하겠다던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이제 중부 왕국군은 이베리아 점령은커녕 현재의 전선을 유지하는 것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신전은 전선의 상황을 제대로 알고 있기는 한 건가.”
테네시아 왕국의 노사령관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대신전에 전황의 불리함을 강변해보았지만, 대신전에서 돌아온 대답은 역시나 ‘불퇴. 진군.’이라는 짤막한 한마디뿐이었다.
처음부터 선택권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미 왕국의 요직들을 친교국 인사들이 꿰찬 지금에 와서는 본국에 하소연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다.
“도대체 우리가 서부에서 전쟁을 치르는 동안, 왕실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 수 없구나.”
유일하게 그들을 억제할 수 있는 왕실마저도 앵무새처럼 교국의 입장만을 떠들어댈 뿐이니, 노사령관은 도대체 자신이 왕국의 귀족인지 교국의 귀족인지조차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다른 왕국의 귀족들 역시 노사령관과 똑같은 처지였다.
결국 그들에게 남은 것은 전선에서 마지막 병사 하나가 쓰러질 때까지 싸우는 것뿐이었다.
“최소한 드라흔, 그자만큼은 그대로 두고 보지 않으리.”
자국의 군주에 대한 실망감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갑갑함이 분노가 되어 엉뚱한 곳으로 향했다.
“연합의 지휘관들에게 공문을 돌려 협조를 구하라. 괴수를 상대할 병기와 병력을 지원해주면, 우리 테네시아가 드라흔의 명줄을 끊어놓겠다고.”
테네시아 왕국의 격문이 전선의 모든 부대에 전달되었고, 그렇지 않아도 드라흔에 대한 대책이 절실하던 중부 왕국의 사령관들이 발리스타와 투석기를 모아 테네시아 왕국의 둔영으로 보냈다.
각 왕국의 지원은 괴수에게 사용할 공성병기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대로 가다간 차례로 드라흔과 그 아룡에게 잡아먹힐 것을 알고 있었고, 과감하게 자국의 초인들을 테네시아군에게 보내기까지 하였다.
그렇게 모인 기사들의 수가 이백이요, 마법사들의 수가 일백이었다.
테네시아의 기사단과 마법 병단을 포함하면 근 삼백오십에 달하는 초인이 테네시아의 둔영에 집결했다. 이베리아 전선에 참전한 중부 왕국들의 초인 전력 중 절반에 해당하는 막강한 전력이 한곳에 모여든 것이다.
이는 그만큼 중부 왕국군이 갖고 있는 드라흔에 대한 적대감과 두려움이 노사령관의 예상보다 훨씬 더 컸다는 의미였다.
“이 정도의 기사들과 마법사들이라면….”
산화를 각오했던 노사령관의 가슴속에 승리를 향한 열망이 피어났다.
“당장 드라흔의 행적을 파악하라!”
드라흔의 행적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가장 처참한 패전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드라흔이 있었으니까.
게다가 숨길래야 숨길 수 없는 거대한 괴수의 존재는 드라흔이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너무도 노골적으로 알려주었다.
“제 죽을 자리인지도 모르고 부나방처럼 달려드는구나.”
공교롭게도 드라흔의 이동경로는 테네시아 왕국군과 중부 왕국의 초인들이 집결한 이름 모를 평원이었다.
테네시아의 노사령관은 당장 드라흔을 맞을 준비를 했다.
멀찍이 발리스타와 투석기를 전개해두고 언제라도 발사할 수 있도록 준비해두었다. 각국에서 지원 나온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그 앞에 늘어서서 드라흔을 기다렸다.
결전을 각오할 당시 품었던 비장한 각오는 어느새 승리에 대한 열망과 자신감이 되어 있었다.
“생존자들의 보고대로라면 드라흔의 아룡은 필시 물과 관계된 놈일 터, 테네시아의 마법병단과 각국의 마법사 분들께서는 화염 마법을 준비해주시오.”
드라흔이 전장을 휘젓는 동안 드라흔의 아룡에 대한 정보 역시 파악이 끝나 있었다. 그렇기에 각국의 사령관들은 테네시아의 지원요청에 화염 마법에 능한 마법사들을 추려 보내었고, 개중에는 최상급 불의 정령을 다루는 정령사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드라흔만을 상대하기 위해 최적의 인재들이 모인 것이다.
“서쪽 방향, 먼지구름! 드라흔이 확실합니다!”
기이할 정도로 주변의 탐지에 능한 드라흔이 이곳에 모인 병력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흔은 마치 이곳에 모인 초인들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일직선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 자신감도 오늘까지다.”
노사령관이 차갑게 웃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발리스타! 방향 그대로 고정! 장전!”
“투석기! 거리 관측하여 발사 준비!”
끼리릭. 끼리릭.
서쪽을 향해 고정된 수많은 공성병기들이 일제히 저 너머에 있을 드라흔과 괴수를 겨냥했다.
“선봉은 우리 테네시아 기사단이 맡겠소.”
노사령관의 말에 붉게 물들인 갑주를 입은 테네시아의 왕실 기사단이 대열의 전면에 나섰다. 다른 기사들이 그 뒤에 늘어서며 검을 뽑아 들었다.
마법사들 역시 각자가 가장 자신 있는 화염 마법의 주문을 외우며 언제든 마법을 시전할 준비를 끝마쳤다.
콰아아아아아.
그들이 모든 준비를 마쳤을 때, 먼지구름 저 너머에서부터 산사태라도 난 듯 굉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전 병력! 전투 준비!”
조금씩 가까워지는 먼지구름, 그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새파란 괴수의 그림자.
연합군의 초인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아직 멀찍이 떨어져 있건만 괴수의 존재감에 온 피부가 찌릿찌릿하게 저릴 지경이었다. 괴수의 기세는 소문으로 들었던 것보다 몇 배는 더 대단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검을 꽉 움켜잡았다.
이곳에 모인 기사와 마법사들만 해도 능히 일국과 자웅을 가려도 부족하지 않을 전력이다. 고작 일인일수(一人一獸)에게 겁을 먹어서야 기사의 자긍심이 울고, 마법사의 자존심이 땅에 떨어지고 만다.
크아아아아!
그들은 세상을 찍어누르는 괴수의 포효에 잠시 움찔했을지언정 움켜잡은 검과 지팡이를 놓지 않았다.
하지만 공성병기를 담당하는 병사들에게까지 초인들과 같은 굳건함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초인들과는 다르게 평범한 정신을 지닌 이들이었고, 괴수의 압도적인 존재감을 이겨내기에는 지나치게 나약했다.
병사들은 자신의 임무도 잊고 바닥에 엎드려 온몸을 바들바들 떨어댔다. 개중에 눈을 까뒤집고 벌러덩 드러누운 심약한 이들마저 있을 지경이었다.
“병사들이 정신을 못 차리니, 후열의 기사분들께서 나서주셔야겠소!”
눈도 깜빡이지 않고 오로지 괴수만을 눈에 담아왔던 노사령관이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는 후열의 기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썩둑.
전광석화처럼 내달린 각국의 기사들이 투석기를 고정하고 있던 밧줄을 끊었다.
통! 통!
한계까지 당겨져 있던 밧줄이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돌덩이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투석기보다 사거리가 짧은 발리스타가 한발 늦게 통나무만큼이나 두꺼운 특유의 살을 날렸다.
높게 날아오른 돌과 살이 먼지구름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마법사들이 준비해두었던 마법이 일제히 터져 나왔다.
하늘에서 불의 비가 내렸다. 땅에서는 불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거대한 해일처럼 일어난 화염이 먼지구름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정령사가 불러낸 불의 거인이 화염으로 이루어진 창을 꼬나 잡고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마치 온 세상이 불지옥이 된 듯한 광경이었다. 그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한 번의 공격만으로 괴수가 절명했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만약 그렇게 쉽게 처리될 놈이었다면 이곳에 이리도 많은 초인들이 모이지는 않았을 테니까.
“마법력에 여유가 있는 분들은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어주시오!”
탈진한 마법사들을 뒤로하고 상위 마법사들이 재차 삼차 주문을 외워 불의 비를 소환해냈다.
그렇게 얼마나 마법포화가 이어졌을까.
거대한 괴수의 몸통이 끌리는 소리가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온 평원을 불태운 화염이 토해내는 숨소리와 불길 속에서 난동을 피워대는 소음뿐이었다.
“설마 이대로 끝난 건가.”
노사령관이 기대에 찬 시선으로 불지옥을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마법사들의 일제공격은 분명 성 하나를 무너트리기에 충분한 위력을 갖고 있었지만, 드라흔이 이제까지 쌓아온 공적과 신화들을 생각해보면 안심할 수는 없었다.
“테네시아 기사단 돌격 준비!”
그런 생각은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노사령관의 명령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이 검을 잡고 막 화염 너머로 돌격 태세를 갖췄을 때, 세상을 전부 집어삼키고 나서야 꺼질 것처럼 사납게 타오르던 화염이 사그라들었다.
치이이이이.
그리고 꺼져가는 불씨 위로 피어난 새하얀 수증기가 사방을 향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하울링 윈드!”
강력한 마법을 잇따라 펼치고도 여력이 남은 마법사 몇이 바람을 불러내 안개를 밀어내보려 했지만 잠시 시간을 벌었을 뿐이다.
희뿌연 안개는 야금야금 몸을 불리다 기어이 온 평원을 집어삼키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렇게 안개가 완전히 세상을 덮었을 때, 쉼 없이 이어지던 불의 거인의 포효소리도 더 이상 들려오지 않게 되었다.
“이프리얼이! 정령이 당했습니다!”
안개 속으로 피를 토하듯 고통에 찬 정령사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
“전 병력 안개를 벗어나 전열을 정비한다!”
노사령관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테네시아 기사단!”
몇 번이나 용맹한 기사단의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여전히 세상은 기이할 정도로 조용하기만 했다.
“기사단! 마법사단!”
갑작스레 피어오른 한 줄기 두려움이 이내 노사령관을 집어삼켰다.
화악!
검날에 피어오른 상급 기사 특유의 찬란한 검광도 노사령관의 공포를 달래줄 수는 없었다.
“누구 없는가! 누구든 좋으니 대답하라!”
안개를 더듬어 쉬지 않고 움직였다. 그대로 가만히 있다간 그대로 침묵에 먹혀버릴 것 같았다.
턱.
“억!”
꼴사나운 비명을 지르며 벌러덩 넘어진 노사령관이 뒤늦게 자신의 발목에 걸린 물체를 살펴보았다.
“아….”
언제 어떻게 당한 것인지 자랑스러운 테네시아 기사단의 기사가 반쯤 얼어붙은 채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벙긋, 벙긋.
낯익은 얼굴이 입을 벌려 뭐라 말했다. 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한때 귀족들 사이에 유행했다던 광대의 무언극이라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화악.
그 모습을 본 순간 머리칼이 곤두섰다. 온몸에 닭살이 돋고 심장이 차갑게 식어버렸다.
“소리가 들리지 않아?”
뒤늦게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하지만 너무 늦어버렸다.
콱.
끔찍한 고통과 함께 가슴께에 기다란 무언가가 돋아났다. 피로 물든 창의 머리였다.
“아….”
고개를 돌린 노사령관의 눈에 검은 머리를 한 이방인의 모습이 보였다.
“대체 무슨 짓을….”
의문을 채 다 내뱉기도 전에 노사령관의 눈이 하얗게 뒤집혔다.
“끄르륵.”
이내 그마저도 감기고 노사령관은 더 이상 눈을 뜨지 않았다.
**
“조용해서 편하긴 한데, 이거 영 갑갑하네.”
등을 꿰뚫은 창을 쑥 뽑아낸 김선혁이 인상을 찌푸렸다. 노기사가 마지막 내뱉은 말이 무엇인지 당최 알 수가 없었던 탓이다.
하지만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다. 아티야를 불러내 주변의 소리를 차단한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아무래도 너무 오래 걸리겠는데.”
멀리 집결해 있는 병력의 기척을 느끼고는 곧장 달려왔다. 그런데 막상 접근하고 보니 몰려있는 이들의 전력이 만만치 않았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는 사이에 마법이 쏟아졌다.
블루곤의 약점을 미리 파악해둔 듯 화염 마법 일색이었다.
물론 블루곤은 그 정도로 죽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멀쩡하지도 않았다. 근원을 떠나 뭍에 나온 지 시간이 너무 오래 흘렀던 탓이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애초에 블루곤의 가장 큰 힘은 재생의 능력, 마법으로 입은 상처 따위 물에 들어가면 금방 치유될 터였다.
문제는 눈앞에 퍼진 병력을 어찌 하느냐였을 뿐이다.
답은 나와 있었다. 이 정도로 강력한 전력이 모여 이베리아군을 공격하면, 용병대가 주축을 이룬 탓에 타국에 비해 초인전력이 열세인 이베리아군은 절대로 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김선혁은 블루곤과 함께 몸을 빼내는 대신 다소 어렵더라도 이들을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블루곤을 대신할 동료는 안개와 침묵이면 충분했다.
그는 한 치 앞도 살피기 힘든 안개 속에서 소리 없이 적을 처리해나갔다. 쉽지는 않았다.
몇몇 이들은 겁에 질려 있다가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목숨을 내주었지만, 대부분의 기사들은 작은 기척이라도 느껴질라치면 검을 찌르며 저항해왔다. 그런 이들을 은밀하게 처리하는 것은 꽤나 고단한 작업이었다.
“컥.”
운 나쁜 마법병단의 마법사 여섯을 한꺼번에 처리한 김선혁은 강력한 에너지의 파동을 느꼈다.
“이런….”
적의 시야로부터 자신을 가려주었던 안개가 확, 하고 밀려 저 너머로 사라졌다.
“드라흔이다!”
아티야가 펼친 침묵의 권능 역시 사라지고 난 후였다.
“생각보다 너무 빠른데.”
안개가 걷히고 사방의 광경이 드러났다. 백오십에 가까운 기사와 수십의 마법사들이 자신을 포위하고 있었다.
블루곤의 안개가 완벽하게 몸을 숨겨줄 거라 믿었건만, 놀랍게도 적들은 이미 자신의 위치를 파악한 상태였다.
“블루곤, 이 허당 같은 놈, 뭐가 완벽한 은신이야.”
부상을 치유하기 위해 멀찍이 달아난 블루곤이 있을 방향을 노려본 김선혁이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드라흔이 아룡을 잃었다!”
“놈은 이제 독 안에 든 쥐다!”
사방을 에워싼 기사들이 기세등등하게 검을 꼬나잡고 외쳐댔다. 달싹이는 마법사들의 입술이 더욱 빨라진 것을 보니, 다 잡은 사냥감을 다른 이에게 양보하고 싶지 않은 조바심이 느껴졌다.
“아룡이 없는 드라흔은 아무것도 아니다! 놈을 잡는 자에게….”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김선혁이 소리친 기사에게 시선을 돌렸다. 눈이 마주친 기사가 움찔 놀라 물러섰다.
수백의 초인들에게 둘러싸였으면서도 이상할 정도로 태연한 그의 모습에 질린 기색이었다.
“누가 그래?”
그런 기사를 보며 그가 낮게 물었다.
“내가 아룡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누가 그래?”
말이 끝나는 순간 김선혁의 육신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드러난 맨살 위로 누렇고 푸른 비늘이 돋아나더니 순식간에 인간의 태가 어그러지고, 그 자리에 청금(靑金)의 비늘을 한 용인이 형상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렇게 우뚝 선 용인이 손끝에서 얼음으로 만든 창을 뽑아냈다.
탈피를 마친 블루곤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얻은 혹한(酷寒)의 권능을 세상에 처음으로 내보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