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래곤 푸어-244화 (244/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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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 별이 지다 (1)

오필리아 라우렐 로 아데스덴 이전의 통치자였던 테오도르는 왕국의 내치에 전념하며 오로지 왕국의 안녕과 왕권의 강화를 위해 평생을 바쳤다.

그런 노력이 빛을 발해 테오도르의 대에 와서 아덴버그는 역사상 다시없을 정도로 강력한 왕권을 손에 쥐었다.

하지만 문제는 왕국 안이 아닌 밖에 있었다.

테오도르가 치세에 몰두해 있는 동안 오랜 숙적 녹테인이 수시로 서부 국경을 침범했고, 서부군은 이렇다 할 대책도 없이 오로지 방어에만 전념해야 했다.

그나마 비텐펠트 로이엔 맹스크라는 걸출한 사령관이 있었기에 서부가 혼란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는 게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하지만 세상에 변치 않는 것은 없었다.

한때 철통같이 왕국의 변방을 지키며 왕국의 수호신이라 불리던 방패도 어느덧 녹이 슬고 그 빛이 바래고 말았다.

그리고 녹테인은 귀신 같이 그 틈을 노려 더욱더 기승을 부려댔고, 어느덧 서부의 백성들은 피난길이 익숙한 처지가 되었다.

결국 이를 보다 못한 테오도르가 칼을 뽑아들었다.

그간 모진 약탈에 벼르고 있던 서부군이 왕명을 따라 녹테인의 국경을 넘은 것이다.

아덴버그 서부군의 침묵 아래 국경을 제집 담 넘어 다니듯 수시로 오가던 녹테인의 국경선은 국경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그 방비가 허술했다.

함성과 함께 국경을 넘은 맹스크군에 의해 녹테인의 동부지대는 순식간에 초토화되었다.

개전 직후 2개 연대 규모의 보병대가 와해되었으며, 녹테인 동부를 아우르는 칼스테인 요새가 아덴버그의 손에 떨어졌다. 그 과정에서 동부군 총사령관 칼스테인 백작의 목이 잘렸다.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맹스크 연대와 함께 국경을 넘은 5개 중대 규모의 기병대가 녹테인의 동부를 유린하기 시작했다.

해이해질 대로 해이해진 녹테인의 국경 수비대는 드레이크 나이트라는 걸출한 기사를 앞세운 아덴버그의 기병대들을 막을 수 없었다.

불과 반년이 채 되지 않는 전쟁, 그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녹테인은 동부군을 완전히 재편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타격을 입고 말았다.

하지만 복수를 할 수도 없었다.

동부를 유린한 악마들은 얄밉게도 녹테인의 지원군이 동부에 채 당도하기도 전에 전장을 빠져나간 것이다.

두 왕국의 역사에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방적인 패배였다.

칼스테인 요새와 수많은 포로들을 인질로 내세운 아덴버그는 종전과 동시에 발 빠르게 강화를 제안하였다. 그리고 굴욕적인 강화 조약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서쪽의 강국 그리핀도르의 대군이 서부 국경을 넘었다.

아덴버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협상 테이블을 엎었고, 녹테인은 바로 직전의 전쟁으로 입은 피해를 채 복구하기도 전에 서부와 동부 양쪽에서 밀려드는 적들을 맞이해야 했다.

왕국의 존망이 걸린 전쟁, 결국 녹테인 왕실은 그동안 아껴두었던 왕국의 초인들을 대거 전장에 투입하였다.

왕국의 총화라고 할 수 있는 기사와 마법사들이 전장에 몰려들었고, 전쟁은 순식간에 총력전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녹테인은 극심한 피해를 입으며 또다시 패배했다.

그리핀도르를 국경 너머로 내쫓는 데는 성공했지만, 붉은 악마 드라흔을 내세운 아덴버그를 몰아내는 데는 실패한 것이다.

패전의 대가는 나라의 근간이 흔들릴 정도로 막심했다.

동부 국경의 주요 거점들이 모조리 아덴버그의 손에 들어갔고, 동부 지역의 절반 가까이를 빼앗겼다. 패전국으로서 짊어져야 했던 막대한 배상금은 덤이었다.

녹테인은 언제고 설욕할 날이 올 것을 믿으며 그날을 위해 복수의 칼을 갈았다.

하지만 녹테인의 기대와는 달리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악화되었을 뿐, 조금도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숙적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막대한 배상금과 영토를 챙긴 아덴버그는 명실상부한 대륙 동부의 최강국이 되었고, 이를 토대로 동부 왕국 연맹의 맹주 자리에 추대되기까지 하였다.

사실상 이 무렵 녹테인으로서는 다시는 아덴버그를 넘보지 못할 정도로 국력이 벌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아덴버그의 진짜 비상(飛上)은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서부 전체를 몰락시킨 강대한 마왕과의 대전쟁,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생존자들이 구출되었다. 아덴버그는 그중에서도 알짜배기라고 할 수 있는 이방인들은 모조리 흡수하였다.

서부에 일어난 재앙 속에서도 살아남은 강인한 이방인 수백이 순식간에 아덴버그의 전력에 추가된 것이다.

이는 가뜩이나 기울어 있던 동부 대륙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지는 큰 사건이었다.

이 정도만 해도 감히 아덴버그의 비위를 거스를 수 있는 나라는 없었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고 나니 사소한 사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래된 전승으로만 남아있던 전설의 요정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요정들이 자리를 잡은 게 또 아덴버그였다.

그 구성원 하나하나가 상급 기사에 준하는 힘을 지녔다는 요정들의 합류는 이방인들의 합류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나큰 사건이었다.

퀘이샤 일족의 합류로 인해 아덴버그는 초인 전력에 한해서라면 동부 대륙에 위치한 왕국들 절반과 동시에 전쟁을 벌여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전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제국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무지막지한 전력이었다.

그래서 녹테인의 특사는 숙적 아덴버그의 신임 여왕이 칭제를 하였음에도 감히 이의를 제기할 수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몸을 낮춰야 했다.

아덴버그가 작정하고 초인 전력을 전쟁에 투입할 경우 녹테인의 멸망은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였다.

초인들의 엄중한 보호를 받는 왕족들이야 어찌어찌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른다지만, 귀족들은 수많은 암살자들로부터 몸을 지켜낼 방법이 전무한 상황이었다.

만일 퀘이샤들이 일반적인 기사였으면 조금은 희망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퀘이샤들은 전원이 궁수였다. 그리고 녹테인의 초인들은 자신들과 대등한 힘을 지닌 요정궁사로부터 왕국의 요인들을 어찌 방어해야 할지 전혀 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전쟁 발발 즉시 귀족들은 몰살을 당하고, 지휘부를 잃은 군은 순식간에 지리멸렬하게 와해되어 아덴버그 군의 밥이 될 것이다.

그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녹테인의 특사는 항의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지금 이 순간 신임 여제가 해 묵은 원한을 꺼내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비단 녹테인의 특사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각 왕국에서 나온 특사들은 굳은 얼굴로 오필리아 라우렐 로 아데스덴이 기존의 왕관을 벗고 새로운 왕관을 쓰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베리아 연합의 특사는 앞으로 나오라!”

특사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갑작스러운 칭제에 이어 아덴버그의 여제가 도대체 왜 이베리아 연합의 특사를 호명하는지 영문을 알 길이 없었던 탓이다.

“이베리아의 카발례로 가문의 장자, 페드로 후안이 감히 아덴버그의 여제께 가장 먼저 나서 경배를 표하나이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여제 앞에 나선 이베리아의 페드로는 일국을 대표하는 특사라는 자리가 무색하게 납작 엎드려 극공의 예를 취해보였다.

“내 묻노니, 그대가 이베리아 연합의 맹주 디에고 벨라스케스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은 어디까지인가.”

낭랑한 음성에 페드로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라나도의 집정관이자 연합의 맹주인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모든 권리를 적법하게 위임받았으니, 대답하지 못할 것이 없고 대신하지 못할 것이 없나이다.”

상황을 지켜보던 특사들이 놀란 얼굴이 되었다. 대관식을 축하하기 위해 온 단순 사절이라고 하기에는 페드로가 위임받은 권한이 지나치게 컸던 것이다.

“그대의 말이 사실이라면, 오늘 이 자리에서 그대는 디에고 벨라스케스를 대신하기에 부족함이 없도다.”

“바로 그러하나이다.”

여제와 이베리아 특사의 문답이 마치 미리 짜두었던 것처럼 지나치게 매끄러웠고, 특사들은 그제야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눈치챌 수 있었다.

“카발례로 가문의 장자 페드로 후안이 디에고 벨라스케스를 대신하기에 부족함이 없음을 증명하였으니, 그대가 그를 대신하여 이 자리에 서는 것을 허락하노라.”

잠시 말을 멈춘 여제가 손을 뻗으니,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자가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나 오필리아 라우렐 로 아데스덴은 제국의 하나뿐인 군주로서 이베리아 연합의 맹주이자 그라나도의 집정관, 디에고 벨라스케스에게 이베리아 대공의 작위를 수여하노니, 이 반지의 붉은 빛이 변하지 않는 한 제국은 이베리아 대공의 권위를 보장해주리라.”

“아니! 이게 지금 무슨!”

“이베리아 대공이라니!”

아덴버그의 여왕이 칭제를 선언했을 때도 침묵했던 특사들이었지만, 그런 그들도 이번만큼은 기함을 토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카발례로 가문의 장자 페드로 후안이 디에고 벨라스케스 이베리아 대공을 대신하여 폐하의 성은에 더없는 감사를 표하며, 이베리아 대공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감히 이 보석의 붉은 빛이 영원히 변치 않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을 거라 단언하나이다.”

이베리아 연합의 특사는 주변의 반응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이 차분하게 충성의 맹세를 하였다.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중부의 맹주 교국이 그리 압박을 해도 자치를 포기하지 않았던 이베리아 연합이 신생 아덴버그 제국의 속국임을 만천하에 천명한 것이다.

이로서 아덴버그 제국은 본토와 다소 떨어진 거리에나마 이베리아라는 공국을 아래 둔 당당한 제국의 면모를 지니게 되었으니, 각국의 특사들은 완전히 얼이 빠진 얼굴로 신임 여제가 계속해서 작위를 수여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선혁 라인펄 김 드라흔 전승공작은 앞으로 나서라.”

이베리아 대공에 이어 여제의 호명을 받은 것은 아덴버그의 제일가는 기사이자 아덴버그가 근래 이룬 모든 승리를 견인했다 일컬어지는 전승공이었다.

“그간 무수히 많은 무훈을 세운 전승공작의 공적을 인정하는 바, 나 오필리아 라우렐 로 아데스덴은 당대에 한하여 세습되지 않는 작위로 대공의 위를 하사하노니, 맹스크 백작령 이서의 구(舊) 칼스테인령이 봉토를 수여하여 그 격을 걸맞게 하리라.”

“크나큰 은혜에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김선혁 스스로가 여제의 반려였던지라 작위의 세습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앞으로 그와 반려 사이에 태어날 자손들은 아데스덴의 피를 이을 왕족, 어찌 보면 대공의 위는 명예뿐인 자리라고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공의 작위가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었다.

맹스크 백작령 이서의 광활한 영토를 수여받은 김선혁은 앞으로 공국을 다스리는 당당한 대공으로 일국의 군주로 대접받게 되었으니, 그 뒤를 받쳐주는 아덴버그 제국의 성세가 쇠락하지 않는 한 그 직위가 일국의 왕 못지않게 된 것이다.

“전승의 대공이여. 대공의 내일이 어제와 같은 광영으로 가득하기를 바라겠소.”

당장 오필리아의 말투가 변했다.

하기야 당대에 한해서라지만 광활한 영토를 지배하는 군주에게 하대할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그것이 설령 대공의 작위를 수여한 여제 본인이라도 마찬가지였다.

“오늘을 제국 아덴버그이 건국일로 선포하노니, 뜻깊은 날, 모두 먹고 마시고 즐기라! 아데스덴의 창고가 마르는 한이 있더라도 그대들의 흥이 끊이지 않게 하리라!”

여제 오필리아가 7일 간의 축제를 선포하는 것을 끝으로 대관식의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었다.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제국의 건국절 축제도 금세 끝이 나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황도가 되어버린 아데스덴에 비보가 날아들었다.

지금은 전승공의 위명에 가려져버렸지만, 바로 전까지만 해도 왕국의 수호신이라 불리던 비텐펠트 로이엔 맹스크 백작의 부고가 황도에 전해진 것이다.

그 뒤를 이은 이는 백작의 하나밖에 없는 혈육, 줄리앙 뱅퀴시 로이엔 맹스크였다.

김선혁은 자신의 친애하는 종자가 종자의 신분을 벗고 제 조부의 작위를 이어받을 수 있도록 대공의 이름으로 기꺼이 후견인을 자처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늦게나마 장례에 참가하기 위해 채비를 서둘렀다.

하지만 그는 황도를 떠날 수가 없었다.

“선황제께서!”

창백하게 질린 시종장이 다가와 또 다른 부고를 알려온 탓이었다.

========== 작품 후기 ==========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체력이 아직 덜 회복되어, 마저 회복되는 대로 또 달려보겠습미다. 응원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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