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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푸어-228화 (228/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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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레벨이 깡패다. (3)

7일. 용사가 김선혁의 훈련 방식에 익숙해지는 데 필요했던 시간이다. 그 일주일 동안 용사는 몰라볼 정도로 변모했다.

마구잡이로 뽑아내느라 그다지 효율이 좋지 않았던 신성력의 수발이 보다 자유로워졌고, 단순히 스킬을 보조하는 정도에 그쳤던 검술은 나중에 가서는 어지간한 마수 정도는 신성력에 의지하지 않고도 처리할 정도가 되었다.

그 어디에도 처음의 어설픈 모습은 남아있지 않았다.

“아직이다.”

하지만 김선혁의 눈에 비친 용사는 이제 막 풋내기 티를 벗었을 뿐, 아직 갈 길이 멀기만 했다.

“더. 더 맹렬하게 싸워라. 마물들이 네 눈빛만 보고도 뒷걸음질을 칠 정도로 만들란 말이다.”

그는 더욱더 용사를 몰아붙였다.

“그 정도는 거검병들 중 아무한테나 발뭉을 쥐어주면 할 수 있다. 용사라면 그 이상의 뭔가가 있어야지.”

“용사라는 이름이 아깝다.”

“이제껏 네가 처리한 마물들의 수를 다 합쳐봤자, 마왕이 부리는 마물들 중 일부에 불과하다. 이 정도도 다 이겨내지 못한다면 마왕과 싸우기도 전에 나가떨어질 거다.”

김선혁은 결코 칭찬하는 법이 없었다. 혀끝에 칼날을 매단 듯 신랄한 평을 쏟아내었고, 그때마다 용사의 눈에 서린 독기가 한층 더 강해졌다.

“지독하구만.”

곁에서 지켜보던 다륜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그의 방식은 가혹했다.

하지만 효과는 탁월했다.

짧은 시간 만에 하락했던 용사의 레벨이 원래의 레벨까지 복구되어 용사는 이제 30 레벨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이 근방의 마물들은 완전히 씨가 말랐다. 더 이상 끌어올 마물이 없다.”

북방의 기병들이 마물들을 유인해 오는 것도 한계에 봉착하고 말았다. 이 일대를 어슬렁거리던 마물들이 어느새 모조리 용사의 손에 죽어나간 것이다.

“더 유인해오려면 유인해올 수도 있지만, 지금처럼은 힘들다.”

다륜은 기병의 이동 거리가 길어지면 필연적으로 희생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먼 거리에서 마물들을 끌어오는 것에 난색을 표했다.

“상관없어. 마물이 썩어나게 많은 곳이라면 내가 알고 있거든.”

**

근방에서 마물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자 김선혁은 박준민을 아예 마왕의 땅에 던져 넣었다.

기병들이 마물들을 끌어모은답시고 부산을 떨 필요도 없었다. 마왕의 권역 안에는 마물들이 넘쳐났고, 그들은 굳이 유인하지 않아도 제 발로 용사 앞에 나타나 목을 들이밀었다.

문제가 있었다면 성숙하지 못한 대적자의 존재를 느낀 마왕이 미리 손을 쓰기 위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게 문제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김선혁은 그에 대한 해결책 또한 갖고 있었다.

“너와 내가 같이 있는 이상, 마왕은 절대로 여기까지 찾아오지 않아.”

제 몸에 생채기가 나기 싫어 용의 반려를 제거할 기회조차 걷어찬 마왕이다. 그런 마왕이 용기사와 용사가 함께 있는 곳까지 찾아올 리가 없었다.

“만약 나타난다면요?”

“도망치면 되지. 뭐가 문제야.”

용사의 고민이 무색해질 정도로 그의 대답은 명쾌했다.

애초에 그에게 있어 전투란 수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임전무퇴의 정신이니, 명예니 허울 좋은 소리에 불과했다.

간혹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전투도 있었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었다.

김선혁의 예상대로 마왕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처음에는 불안해하던 용사도 나중에 가서는 오직 마물들을 처리하는 데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아아….”

한창 전투를 이어가던 용사가 섬광에 휩싸였다. 용사가 마침내 30레벨에 도달해 또 하나의 벽을 넘은 것이다.

“전직!”

하늘 끝까지 치솟은 요란스러운 빛무리를 보며 김선혁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

“지금이라면….”

전직에 성공한 용사는 다시 자신감을 되찾은 모습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악에 받쳐 독기밖에 남지 않았던 눈동자에 여유가 돌아왔다.

“까불지 마. 고작 그 정도로는 택도 없다.”

하지만 김선혁은 용사가 자만하도록 두지 않았다.

“일단 얼마나 강해졌는지 시험해보자.”

그는 용사에게 다시 대련을 제안했고, 용사는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전처럼 쉽지는 않을 걸요.”

그렇게 된통 당해놓고도 이런 소리를 하는 걸 보면, 건방진 건 용사의 천성이었던 모양이다.

“이번에는 죽지 마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선혁은 다시 전룡의 형상을 꺼내들었다.

**

단순히 전직을 한 번 더 했을 뿐인데 용사는 놀라울 정도로 강해졌다.

“이건 사기야!”

하지만 딱 그뿐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지만 용사는 여전히 전룡을 이길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형님이랑 저랑 전직 횟수도 같은데, 이건 너무하잖아요!”

용사는 납득하지 못하겠다며 길길이 날뛰어댔지만 그는 콧방귀를 뀌었을 뿐이다.

“레벨이 깡패라니까.”

아직 그와 용사 사이에는 레벨 9의 격차가 남아 있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안 죽었네. 다행이야. 기껏 고생했는데 또 레벨이 떨어지면 억울하잖아.”

마치 놀리는 듯한 그의 말에 용사가 분한 얼굴을 해 보였다.

확실히 변했군.

전이라면 역시 형님이라며 조금도 기분 나빠하지 않았을 순박한 사내가 지금은 패배감에 몸부림을 치며 다시 투기를 일으키고 있었다.

이 또한 성장이라면 성장이었다.

“다시 시작이다.”

용사가 패배감을 채 떨쳐낼 틈도 없이 김선혁은 훈련을 재개시켰다.

이번에는 무작정 마물들과 드잡이질을 하는 무식한 노가다가 아니었다.

경지 높은 성기사와 신심 깊은 사제를 수소문해 그들로 하여금 용사에게 신성력을 이용하는 법을 가르치도록 하였다.

“스킬이 있는데, 뭘 또 배워요?”

용사는 새로운 훈련 방식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아한 기색이었다.

“스킬은 스킬이고. 배울 건 배워야지.”

하지만 김선혁은 단호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역시 자신의 병과에 ‘기병’이라는 단어가 들어간다는 이유만으로 전혀 엉뚱한 기병대에 배속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수도 없이 많은 실패 끝에 마침내 기병이 되기 위해 필요한 스킬을 터득해냈고, 그때 얻은 스킬들이 혹독한 전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구명줄이 되어 주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뒤로도 그는 배움을 멈추지 않았다. 아샤 트레일에게 창술과 검술의 전반을 배웠고, 이를 기반으로 갈고 닦아 자신만의 기형 창술로 발전시켰다.

5미터가 넘는 기병창을 이용한 창술은 이제 그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능력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스킬 없이 노력만으로 이룬 성과였으니, 박준민이라고 못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 용사의 경우에는 오히려 당시의 김선혁보다 상황이 훨씬 나은 편이었다.

“신성력도 넘치는데, 아껴서 뭐할래. 배워두면 다 쓸 데가 생기는 법이야.”

아무런 기반 능력도 없이 맨땅에 헤딩하다시피 굴러야 했던 그와는 달리, 용사는 사제와 성기사가 사역하는 데 가장 중요한 신성력을 무진장 갖고 있었으니까.

“배우다 보면 스킬이 되고, 그게 다 네 힘이 될 거다.”

그의 말에 박준민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이유야 어쨌건 간에 그의 말을 따라보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용사는 성기사에게 신성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고, 사제들에게는 넘치는 신성력을 회복의 힘으로 변환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오오.”

용사는 그렇게 배운 힘으로 부상자들을 치유해주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목숨으로 갚겠습니다.”

사제들마저 포기했던 중증의 부상이 치료되자 병사들이 눈물을 흘리며 감사를 표했다.

“아. 이거 기분이 묘한데요.”

용사는 그들의 감사에 민망해하면서도 뿌듯해했다.

성검 발뭉은 목이 잘린 주인을 다시 되살릴 정도로 막강한 권능을 갖고 있었지만, 그 힘을 다른 이에게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용사는 자신의 힘이 단지 싸울 때만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몹시도 감동한 눈치였다.

“형님 말 듣기를 잘했네요.”

흡족한 얼굴로 미소 짓던 용사의 얼굴이 금세 어두워졌다.

“진짜 저 멍청인가 봐요. 진즉에 이런 걸 생각해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었을 텐데.”

“그만. 네가 남들보다 신성력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해서, 뭐든 할 수 있는 건 아니야. 네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떠안았다간 미쳐버릴 거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말이었다. 김선혁 역시 한때 자신의 힘이 부족해 지키지 못했던 이들의 희생을 자신의 잘못처럼 여기고 괴로워했던 시절이 있었다.

“형님. 잠깐만 훈련 쉬면 안 돼요? 이 사람들 전부 치료해주고 싶어요.”

그랬기에 용사가 훈련을 미루자고 했을 때, 선선히 고개를 끄덕여줄 수밖에 없었다.

“멍청아. 그것도 다 훈련이다. 마물들이랑 박터지게 싸우든 환자들이랑 씨름을 하든 간에 힘을 사용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는 성장할 거다.”

물론 그는 마물들과 싸우는 것과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 중에 어느 쪽이 더 효율이 좋은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상황에서까지 효율을 따지는 것은 지나치게 비인간적인 처사였다.

“대신 할 거면 제대로 해라. 네가 눈 부릅뜨고 있는 한, 이곳에서 어느 누구도 죽지 않게 해. 그게 내가 네게 주는 새로운 과제다.”

“꼭 그렇게 할게요.”

다부진 얼굴로 대답하는 박준민의 얼굴이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용사가 새롭게 터득한 스킬을 통해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동안, 새로운 별명이 생겨났다.

‘아스토리아의 성자.’

박준민은 성자라는 말에 몹시도 부끄러워했지만, 한편으로는 용사니 신의 사도니 하는 거창한 호칭보다 성자라는 호칭을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용사는 싸우는 것보다 누군가를 치료하는 게 더 체질에 맞는 것처럼 보였다. 마지못해 싸우는 기색이 역력했던 전장에서의 모습과는 달리 부상자들을 치유할 때의 용사는 훨씬 더 생기가 넘쳤다.

**

김선혁이 박준민을 성장시키는 데만 주력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용사를 혹독하게 몰아붙이는 한편, 아덴버그와 주기적으로 연락을 취하며 이후의 일을 준비했다.

먼저 판테이아 기지에 상주 중인 퀘이샤들이 아덴버그로 향할 수 있도록 이베리아 연합의 선단을 수소문해두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벽에 막힌 듯 더 이상 오르지 않는 자신의 레벨을 올릴 궁리에 골몰했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 보아도 벽을 넘을 해답은 보이지 않았다.

“설마 시험을 통과해야만 하는 건가.”

용이 말했던 시험과 지금 그가 처한 문제가 무관하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39레벨에 오르고도 한참이나 지난 지금까지 레벨업 소식이 없을 수가 없었다.

“후우. 서두르지 말자. 난 준민이랑 입장이 다르니까.”

김선혁은 조바심을 억누르며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다.

일단은 퀘이샤들을 아덴버그로 보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퀘이샤들을 이주시키는 건 조금 더 생각을 해봐야 하지 않겠소?”

교국이 퀘이샤들의 이주에 딴지를 걸고 나선 것이다.

“퀘이샤들 또한 이 가혹한 시기에 희생당한 피해자들이라오. 그런 그들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요.”

대주교의 말에 김선혁이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기회 말입니까?”

“그들이 자신들의 터전을 앗아간 마왕에게 응당한 대가를 치르도록 할 수 있는 기회, 또는 그들이 직접 자신이 이주할 곳을 고를 기회. 뭐 그런 거 말이요.”

“퀘이샤들은 복수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안정입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생각해볼 문제요. 그들이 안정을 위해 아덴버그까지 또 먼 길을 가는 건 지극히 비인도적인 처사요.”

대체 무엇이 비인도적이고 무엇이 인도적인 것인지 어이가 없었지만, 그는 일단 가만히 대주교가 지껄여대는 대로 두었다.

“우리 교국에는 그들이 퍽 마음에 들어 할 아름다운 숲이 있다오.”

말로는 퀘이샤들을 위하네 뭐네 떠들어대고 있었지만, 그 의도가 뭔지 모를 김선혁이 아니었다.

퀘이샤들은 그 수가 적었지만 전원이 상급 기사에 준하는 힘을 지닌 초인들이었다. 교국은 원하는 건 퀘이샤들의 안정과 평화가 아닌 그들이 지닌 힘이었다.

일천이 넘는 초인들의 힘은 당장 대륙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우리 교국은 그들의 불운을 마음 깊이 이해하는 바, 그들 일족을 위해 기꺼이 땅을 제공할 용의가 있소.”

그가 말없이 자신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자 대주교는 더욱더 신이 나서 입을 놀려댔다.

“또한 교국은 그들이 자신들의 옛 땅을 수복하기를 원한다면 기꺼이 그 맹우가 되려 하오. 사악한 마왕을 몰아내는 건 우리의 사명이기도 하다오.”

마치 대단한 자선사업이라도 하듯 지껄여대는 대주교의 모습을 보는 김선혁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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