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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푸어-225화 (225/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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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전룡의 형상 (3)

더 없이 강렬한 파괴의 불꽃과 거룩한 신의 방패가 지근거리에서 충돌한 여파는 무지막지했다.

콰아아아아.

디바인 실드가 걸러내지 못한 화염이 근방을 휩쓸었고, 엄청난 고온에 노출된 초원은 처음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버렸다.

들풀은 모두 타버려 재조차 남지 않았고 끔찍한 고열에 암석조차 녹아내렸다. 그렇게 초원을 완전히 태워버리고도 불길은 가라앉지 않았다.

화르르르륵.

충돌의 여파로 생겨난 수백 미터의 구덩이, 화염은 그 속에서 여전히 무섭게 타오르고 있었다.

마치 이 세상에 불지옥이 도래한 듯한 광경이었다.

그 중심에는 화염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용사가 있었다.

털썩.

용사가 무릎을 꿇었다.

온몸을 감싸고 있던 거룩한 신의 갑주는 온데간데없이 녹아버렸고, 빨갛게 달아오른 피부는 당장에라도 녹아내릴 것처럼 상태가 좋지 않았다. 머리칼은 한 올도 남지 않아 그 꼴이 흉물스러울 지경이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죽어도 골백번은 죽었을 끔찍한 부상, 하지만 용사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끄어….”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끔찍한 몰골이었지만, 어쨌건 용사는 살아있었다.

하지만 그대로 방치한다면 바퀴벌레 같은 생명력을 지닌 용사라고 해도 필시 죽을 수밖에 없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용사는 혼자가 아니었다.

[신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죽어도 죽지 아니하리라!]

용사가 지닌 성스러운 힘의 원천이자, 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거룩한 인도자, 성검 발뭉이 곁에 있었다.

[디바인 워드 - 리제네레이션(Divine Word - Regeneration)!]

성검이 외친 회생의 주문이 신의 의지가 되어 붕괴 직전에 있던 용사의 육신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빨갛게 익어 흐물흐물하게 변해버렸던 피부 위로 금세 뽀얀 새살이 돋아났고, 다 타버려 한 올도 남지 않았던 머리카락이 새까맣게 자라났다.

눈 깜짝할 사이에 완전히 망가져버렸던 육신이 순식간에 재생되었다.

그렇게 용사는 죽음 직전에 완벽하게 부활하였다.

하지만 용사의 위기는 끝이 아니었으니, 막대한 에너지의 충돌로 주춤주춤 물러났던 용인이 다시 다가오고 있었다.

[디바인 실드! 디바인 실드! 디바인 실드!]

성검이 다급하게 방어의 주문을 연달아 펼쳤다. 무려 세 개나 되는 막이 생겨나 용사와 용인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정신 차려라!]

급한 대로 방어의 주문을 펼쳤지만 완전하지는 않았다. 방금 전에 사용했던 회생의 주문 탓에 기력의 소모가 너무나 컸다. 그 탓에 디바인 실드는 금방이라도 깨어질 것처럼 위태롭기만 했다.

[깨어나라! 용사여!]

발뭉이 다시 한 번 용사를 불렀다.

“아….”

용사의 감겨 있던 눈이 번쩍 뜨였다.

“어? 내가 왜 여기에….”

[용사여! 시간이 없다! 어서 나에게 힘….]

콰직.

첫 번째 막이 부서졌다.

“할아버지는 어디 있어? 분명 방금 전까지 날 부르고 계셨….”

[헛소리할 때가 아니다! 정신 차리고 힘을 모아라!]

하지만 용사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지 눈만 껌뻑여 댔을 뿐이었다.

쾅.

용인의 주먹질에 두 번째 막이 깨어졌다.

“히익! 이게 뭐야!”

[용사여! 나에게 육신의 주도권을 맡겨라! 내가 너를 구원하겠다!]

눈앞에서 달려오는 용인의 광폭한 기세에 기겁을 한 용사가 뒷걸음질을 쳤다.

“아니! 저건 형님이잖아! 형님이 왜 날….”

[한 마디 대답이면 충분하다. 그러니 어서… 이런… 이미 늦었다.]

콰지직.

용인이 마침내 세 번째 막을 찢어발기고 손을 뻗어왔다.

[신께서 하신 천년의 안배가 다 무색해졌도다.]

성검의 음성에는 허탈함이 가득했다.

이제 용인의 거대한 손은 벌거벗은 용사의 육신을 당장에라도 찢어발길 듯 성큼 다가와 있었고, 용사는 여전히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얼빠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상대방의 목을 물어뜯기 전까지는 절대로 멈추는 법이 없는 광폭한 전룡이 바로 코앞에서 멈춰 선 것이다.

사아아아.

용인의 기세가 눈에 띌 정도로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이 되자 한 점 기운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형님?”

금빛 비늘로 둘러싸였던 용인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괜찮아?”

그저 아우의 안위를 염려하는 김선혁이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었다.

**

광폭한 전룡의 태를 끌어내면서도 사실 김선혁은 박준민이 이 정도까지 무력하게 당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누가 뭐라고 해도 박준민은 성검을 온전히 각성시킨 완전한 용사였으니까.

하지만 막상 전투를 시작하고 나니, 용사는 그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허약했다.

만약 필사적으로 전룡의 투쟁심을 가라앉히지 않았다면 하마터면 친애하는 동생을 제 손으로 살해할 뻔했다.

“괜찮아요. 몸에 힘이 좀 없기는 한데. 어디 상한 곳은 없는 것 같아요.”

말뿐이 아닌지 털썩 주저앉은 박준민은 기력이라고는 요만큼도 없어 보였다. 완전히 탈진하여 손 하나 까딱하기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 시끄러. 좀. 아, 형님한테 한 말 아닙니다. 발뭉이가. 아 좀!”

발뭉이 뭐라고 할지는 듣지 않아도 뻔했다. 하나뿐인 주인을 죽일 뻔한 상대에게 거세게 항의하고 있으리라.

“미안하다고 전해줘. 이번 일은 전적으로 내 실수다.”

나름대로 변명거리는 있었다.

자신이 서쪽에 가 있는 동안에도 꾸준히 성장해왔을 용사의 힘이 고작 이 정도일 줄은 그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변명할 수 없었다.

“그리고 너한테도 정말 미안하다.”

“아니요. 형님. 어쨌건 안 죽었잖아요. 일부러 죽이려고 한 것도 아닌데.”

용사는 앙금이라고는 요만큼도 없어 보였다. 아니, 앙금이 문제가 아니었다.

“근데 저 사실 어떻게 된 건지 기억이 잘 안 나요.”

용사는 방금 전에 있었던 일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나사가 풀린 듯한 모습이 섬뜩할 지경이었다.

“뭐?”

“아. 형님 발뭉이가 할 말이 좀 있다고. 너 형님한테 욕하지 마.”

김선혁은 석연치 않은 기분에 선선히 용사의 인도를 따라 발뭉의 검날에 손을 댔다.

[용의 반려여. 그대로 인해 용사는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했다. 마왕의 힘이 날로 강성해지는 이 시기에 이는 되돌릴 수 없는 뼈 아픈 손실이다.]

“미안해. 이건 내 실수다.”

[용사는 방금 전 회생의 주문에 대한 대가로 레벨이 다운되었다.]

성검의 말에 용사가 기겁을 했다.

“뭐? 잠깐만. 그게 무슨….”

잠시 스테이터스를 확인해보는지 허공을 훑어보던 용사가 비명을 질렀다.

“또야! 또 3레벨이나 떨어졌어! 이게 어떻게 올린 레벨인데!”

김선혁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레벨이 떨어졌다는 것도 황당했지만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또?”

박준민은 마치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닌 것처럼 떠들어댔다.

“아오! 전에도 몇 번 이런 일이 있었거든요. 그때도 레벨이 떨어졌었는….”

김선혁의 얼굴이 싸늘하게 바뀌었다.

필시 수도 없이 많은 전투를 치렀을 용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힘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나약했다.

그리고 지금 용사는 레벨이 떨어졌으며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고 말했다.

“자세히 이야기해봐. 그게 무슨 말인지.”

“사실 자세하게 이야기할 것도 없어요. 몇 번인가 좀 힘든 싸움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도리어 레벨이 떨어져 있더라고요. 발뭉이는 그게 너무 큰 힘을 끌어다 쓴 대가라는데, 사실 저는 기억이 전혀 없거든요. 그냥 그 정도로 힘든 싸움이었구나 하고 말았죠.”

박준민의 말에 김선혁의 표정이 한 층 더 차가워졌다.

“그게 몇 번이지?”

“한 네 번?”

태연하다 못해 느긋한 대답에 그가 이를 갈았다.

“이런 개 같은….”

갑작스러운 욕설에 용사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형님. 갑자기 왜 욕을….”

김선혁은 용사를 무시하고 발뭉의 날을 꽉 하고 움켜잡았다. 손에서 피가 튀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듯 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성검을 노려보았을 뿐이었다.

“너 이 새끼. 준민이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

성검은 대답하지 않았다.

“말해봐! 뭐가 신의 사도고, 거룩한 인도자야!”

“형님. 갑자기 왜 그러….”

영문을 몰라 얼빠진 얼굴로 자신을 말리는 박준민을 보며 그가 버럭 소리쳤다.

“이 멍청아! 넌 네 번 죽었다고!”

만약 이 자리에서 직접 보지 않았다면 절대로 몰랐을 것이다. 오늘 직접 박준민을 빈사의 상태로 만든 것이 자신이 아니었다면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아?”

“이 음흉한 성검은 네가 네 번이나 죽었는데, 모른 척하고 있는 거라고!”

용사는 쉽사리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내가 죽어요? 네 번이나?”

갑작스레 용사가 머리를 부여잡으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죽어? 내가? 맞아… 나, 난….”

마치 무언가 무서운 기억이라도 떠오른 것처럼 몸서리를 치는 용사의 모습이 끔찍하기만 했다.

“머리가 잘리고 팔다리가 뜯어 먹혔….”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던 박준민이 입을 쩍 벌리고는 눈이 하얗게 까뒤집었다.

팟.

그 순간 성검이 새하얀 백광을 피워 올리고, 용사가 스르륵 무너졌다.

“준민아!”

[잠시 잠들었을 뿐이다.]

용사의 가슴이 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김선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너 이 새끼….”

하지만 그도 잠시였을 뿐, 그는 이내 불같이 분노한 얼굴로 성검을 부숴버릴 듯 움켜잡았다.

[인간의 정신은 너무도 나약하다. 용사는 스스로의 죽음을 견뎌낼 정도로 강하지 않다.]

뻔뻔하다 못해 파렴치했다.

[나는 용사를 보호하려고 했을 뿐이다.]

제 주인이 네 번이나 죽었었다는 사실을 은폐한 성검은 끝까지 변명뿐이었다.

“하….”

분노가 극에 달하니 도리어 차갑게 식어버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개소리하지 마.”

제대로 된 인도자라면 용사가 죽지 않도록 이끌어야 했다. 하지만 성검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용사의 머릿속에서 죽음을 지워버리고 무모한 싸움을 계속하도록 부추겼다. 그 결과 용사는 몇 번이나 죽음을 맞이했고, 그 레벨마저 하락하고 말았다.

이해할 수 없는 처사였다. 설령 아무리 성검이 죽음에서 다시 용사를 일으켜 세우는 권능이 있다고 해도 굳이 레벨을 깎아가면서까지 무리를 할 이유가 없었다.

[용의 반려여. 그대와 용사는 짊어진 것의 무게가 다르다. 그대의 정의로움은 인정하나 용사가 앞으로 행해야 할 징악의 길은 그보다 몇 배는 험난하고 힘든 길이다.]

“그래서 그렇게 했나? 죽으면 다시 살리면 되니까? 아무 것도 모르는 준민이는 또 죽더라도 싸울 테니까?”

[마왕이 혼돈의 파편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이 세상을 향해 그 검은 손을 뻗고 있었다. 그에 비해 용사는 나를 완전히 각성시키기는커녕 마왕의 하수인들조차 버거워 했다.]

성검은 말했다.

[인간들의 소망. 믿음. 희망. 그대의 그늘이 지나치게 컸기에 그것은 온전히 용사의 것이 될 수 없었다. 나는 그걸 원래대로 돌려놓아야 했다. 그래야만 용사가 완전해질 수 있었기에.]

마왕과의 전쟁을 시작한 모든 이들이 용사의 존재를 깨닫고, 또 믿고 의지해야만 완전한 각성이 일어날 수 있었다고 하였다.

그걸 위해 성검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가장 위험스럽고 절망적인 전장에 용사를 밀어 넣고 그 죽음조차도 승리로 맞바꾸어 사람들의 칭송을 얻어낸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성검은 완전히 깨어났지만, 용사는 약해졌다.

“멍청하기는! 겨우 저따위 힘으로 마왕을 이기려고 하다니!”

[대적자와 대적자의 싸움은 단지 힘의 우위로만 결정 나는 것이 아니노니, 용사는 지금 최소한의 필요조건을 충족하였다.]

성검의 말에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너 설마, 마왕만 처리할 수 있다면 준민이 따위는 어떻게 돼도….”

[…….]

성검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선혁은 그게 더욱 섬뜩하게 느껴졌다.

“너 이 새끼….”

[신께서 그에게 준 사명은 오직 하나뿐이니 그는….]

“닥쳐! 닥쳐! 닥쳐! 사명이고 운명이고 개소리하지 마! 네가 혼돈의 파편이랑 다른 게 뭐야!”

혼돈의 파편이 마왕을 부추겨 일을 벌였듯이 성검 역시 그러했다. 그가 생각했던 선하고 거룩한 신의 인도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경고한다.”

잠들었던 용의 기세가 다시 한 번 폭발했다.

“만약 준민이를 희생시킬 생각이라면 지금 이 자리에서 네 몸통을 반 동강 내주마.”

[신의 큰 뜻은 인간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그대가 설령 그리 하더라도 나는 다시 제 모습을 찾게 될 것이다.]

다시금 용인의 태를 이끌어낸 김선혁이 성검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그럼 이건 어떨까?”

금빛 서기에 휩싸인 용인의 손아귀가 우악스럽게 날을 짓눌렀다.

“몸통을 수십 조각으로 잘게 쪼개 대륙의 이곳저곳에 흩뿌린다면. 준민이가 찾지 못하는 곳에 모조리 가져다 버린다면.”

[감히 신의 행사를 거역하….]

“내가 못할 것 같아?”

끝까지 거만을 떨던 성검이 뒤늦게 다급한 음성으로 외쳤다.

[머, 멈춰라!]

주인이 탈진하여 정신을 잃은 지금 성검은 더 없이 외부의 위협에 취약한 상태였고, 용인은 충분히 성검을 조각낼 힘이 있었다.

성검이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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