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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푸어-219화 (219/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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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화려한 귀환(1)

서부의 마왕군과 중부 왕국 연맹들의 전쟁은 한층 더 심화되었다.

연일 몰려드는 마물들과의 전투로 전선은 단 하루도 잠잠할 날이 없었고, 왕국의 정예들은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전투로 인해 계속해서 소모되어 갔다.

전날까지만 해도 등을 맞대고 싸웠던 동료가 다음 날 시체가 되어 아군을 향해 썩은 발톱과 이를 들이대고 달려들었다. 그런 그들의 가슴에 칼을 쑤셔 박는 병사들의 마음속에는 피눈물이 흘렀다.

죽음조차 모독받는 전장은 그야말로 지옥이나 다름이 없었다.

시간이 흘렀고, 전쟁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병사들은 언데드로 변한 옛 전우의 머리통을 잘라내는 행위에도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무디어졌다.

“내가 마물에게 당하면 언데드로 변하기 전에 죽여줘.”

“난 언데드가 되기 싫어. 그러니 내 시체를 그대로 두지 마.”

병사들은 더 이상 가만히 죽음을 기다리지 않았다. 가망 없는 부상을 입은 병사는 가장 친한 동료의 검에 목이 잘렸고, 마물에게 당한 시체들은 한데 모여 불에 태워졌다.

시체를 태우는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라 전장의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었다.

이대로는 끝이 나지 않는다.

중부 왕국을 구성하는 연맹의 수뇌부들은 직감적으로 이대로 가다간 중부가 무너진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병사들의 피해가 문제가 아니었다.

벌써 전쟁이 시작된 지도 몇 달이 넘었다. 왕국의 총화라고 할 수 있는 초인 전력까지 투입한 총력전은 중부에서 가장 부유한 이베리아 도시 연합조차도 부담이 될 정도로 인적 물적 자원의 소모가 극심했다.

식량이란 식량은 전선으로 투입되었고, 철과 쇠붙이들은 모조리 징발되어 전선의 병사들에게 쥐어졌다.

그 여파를 고스란히 떠안은 건 왕국의 영주들이었다.

끔찍한 전쟁은 영주들의 근간을 송두리째 흔들었고, 영세한 영지 중 몇몇은 벌써부터 파산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의 파멸을 막고 있는 것은 대영주들과 왕실이었다. 유구한 세월동안 지배자로 군림해온 그들의 재정은 소귀족들의 궁색한 재정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탄탄했다.

대영주들이 곳간을 열고 파탄지경에 처한 영지들을 지원해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비단 재정난뿐이 아니었다.

혼란스러운 틈을 타 온갖 불순한 무리들이 기승을 부렸다. 범죄자들이 떼를 지었고, 야심가들이 해괴한 논리를 들이대며 왕국을 지탄하며 거병했다.

“신께서 분노하여 심판을 내렸다. 이는 모두 왕실과 귀족들의 부도덕함 때문이다.”

“모든 부도덕함과 부조리함을 징치하여 신의 분노를 가라앉혀야 한다.”

그들은 황당하게도 마왕의 침공을 왕실과 귀족들의 탓으로 몰았고, 이에 동조하는 무리가 생겨났다.

정예 병사들을 전선으로 보낸 소영주들은 들불처럼 일어난 무리를 진압할 수 없었다.

그때 또 한 번 힘을 발휘한 것이 대영주들이었다.

“무리를 지은 역도를 토벌하고, 사람들 사이에 섞여든 불순한 무리를 솎아내라.”

누구보다 많은 병사들을 전선으로 보내고 그 어떤 귀족들보다 많은 부담을 짊어진 대영주들이었지만 그들의 저력은 대단했다.

혼란을 양분 삼아 일어났던 불순한 반도들이 대영주들의 군대에게 진압되었다.

“이것은 인간과 악마의 전쟁이다. 이겨내지 못하면 모두가 필멸하리라.”

“지금이야말로 인간이 힘을 합쳐야 할 때다.”

대영주들은 강력한 리더십과 카리스마로 혼란을 억누르고 붕괴의 조짐을 틀어막았다.

“이대로는 오래 버틸 수 없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한계는 있었다. 대영주의 곳간은 풍족했지만 왕국의 모든 백성들과 귀족들을 먹여 살릴 정도는 아니었고, 왕국에 드리운 암운을 완전히 걷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왕실 역시 그러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만약 동부의 왕국들이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지 않았다면 중부의 경제는 무너져도 진즉에 무너졌으리라.

시간이 지날수록 전쟁의 여파가 더욱 강하게 중부를 뒤흔들었다.

여인 중에 과부가 아닌 자가 드물었고, 아이들 중에는 아비를 잃지 않는 자가 드물었다. 그리고 당장 사회를 떠받들어야 할 장정들이 전장으로 향해 있는 동안 왕국의 생산력은 극도로 저하되었다.

사회는 병들고 민심은 흉흉해졌다. 왕실과 대영주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눈에 띌 정도로 치안이 악화되어 이제 중부의 백성들은 집 밖으로 나서는 것조차 두려워하게 되었다.

영지 밖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전선을 넘어 후방까지 스며든 마물들이 공백을 잠식해가기 시작했다. 군대를 보내 전부 쓸어버리기에는 전선 안쪽으로 들어온 마물들의 수가 적지 않았고, 지나치게 넓은 영역에 퍼져 있었다.

어려운 시기에도 영지를 오가던 상단의 발길이 뚝 하고 끊어지고, 대영주들이 소영주들에게 지원하기 위해 보낸 수레들이 습격에 노출되어 망실되는 경우가 생겨났다.

대영주들은 이제 가장 안전한 후방에서조차 마음 놓지 못하고 식량과 물자를 보낼 때마다 습격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이 되었다.

대영주들과 왕실을 중심으로 겨우 유지되던 사회의 시스템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 시작했다.

전쟁은 중부의 왕국들을 그렇게 좀먹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부의 왕국들은 전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번 전쟁은 왕국과 왕국 간의 힘겨루기가 아니었다. 적당히 체면을 세우고 조약을 맺어 승자와 패자를 가릴 수 있는 그런 일반적인 전쟁이 아니었다.

멈추는 순간 멸망한다. 싸우지 않는다면 모두 마물의 밥이 된다.

전쟁의 승패가 가려지는 것은 마왕과 중부 둘 중 하나가 완전히 무너졌을 때뿐이었다.

먼저 멈출 수도 없고, 빠져나갈 수도 없는 전쟁의 수렁 속에서 절망이 깊어져갔다.

하지만 희망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기사, 마법사, 정령사, 성기사, 사제, 마검사.

평화로운 동안에는 왕국의 심처에 웅크린 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그 이름조차 알 수 없었던 온갖 초인들이 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왜 자신들이 왕국 전력의 총화라 불리는 존재인지를 여실히 증명했고, 수많은 승리를 일구어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초인들은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지만, 왕국의 보호 속에서 너무도 오랜 시간을 보내왔다. 실전 경험이 전무한 그들에게 증오와 악의로 무장한 마물들의 독니는 치명적이었다.

하나하나가 왕국의 보물이라 불리기에 충분한 이들이 아깝게 죽어 나갔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거센 격류 속에서 초인들은 깎이고 깨어지고 닳았다. 그리고 그 모든 시련과 역경을 이겨낸 초인들은 진정한 의미의 초인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난세 속에서 수많은 영웅이 탄생했다.

단 오천의 보병들을 이끌고 수만에 달하는 마물들을 몰살시킨 만승장군 로메인 드 아메리안.

일개 연대를 전멸시킨 강력한 마수를 일검에 도륙낸 검성 아슬루스 데인 쟈스카야.

일만의 마물들을 산채로 태워 죽인 꺼지지 않는 불꽃의 대마도사 샤를르 드 마네인

수만의 마물들을 돌파하여 고립된 요새를 지켜내고야 만 금사자 기사단과 그 마스터 레온베르거 폰 도일.

각지에서 그들이 이룩한 기적과도 같은 승리는 암울한 시기에 비춰진 한줄기 빛이었고, 희망이었다.

그런 초인들의 존재가 있었기에 병사들은 항거할 수 없는 강력한 마수가 전장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도 도망치지 않을 수 있었다.

영웅이라 불리는 존재들이 저 강대한 괴물을 반드시 처리해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초인들은 그 기대에 훌륭하게 보답해주었다.

작은 성채만 한 거대 마수가 마법사단의 마법 포화에 갈기갈기 찢겨나갔고, 전장을 들쑤시고 다니던 날랜 마수가 기사들의 검광에 목이 잘렸다.

전쟁이 지속될수록 빛과 그림자의 구분이 명확해졌다.

사람들은 부디 빛이 저 모든 어둠을 밀어내기를 신에게 기도했고, 하루라도 빨리 이 끝나지 않는 밤이 끝나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그들의 간절한 기도는 거대한 소망이 되어 한 곳에 모여들었다.

한낱 쇠붙이 속에 거룩한 신의 기운을 품은 성검 발뭉이 그 모든 소망과 기도를 먹어치웠다.

용사 박준민.

마왕의 대적자였으나 힘이 달려 전면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던 성검의 주인이 마침내 거악에 대항할 힘을 얻은 것이다.

용사가 나서는 전선마다 압도적인 승리가 있었다. 패배할 수밖에 없는 가장 열악한 전장에서조차도 용사는 기적처럼 승리를 일구어냈고, 용사는 이제 승리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었다.

용사 박준민은 마왕과 마수, 마기를 지닌 모든 존재들의 천적이었다.

이만에 달하는 마물과 언데드들의 군대를 홀로 박살낸 박준민이 잠시 숨을 몰아쉬다 대지에 성검을 꽂아 넣었다.

찬란한 광휘가 사방에 퍼져나가며 마물들의 피로 오염되었던 대지가 다시 본래의 색을 되찾았다.

“음. 꽤 쏠쏠하네.”

수만의 마물이 지닌 마기를 남김없이 먹어치운 용사가 흡족하게 웃어 보였다.

“어때? 이 정도면 이제 충분한 것 같지 않아?”

[아직은 부족하지만 지금이라면 마왕을 상대로 처참하게 패배하는 일은 없겠지.]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왕과 절대로 마주쳐서는 안 된다고 했던 성검 발뭉이 처음으로 주인의 힘을 인정해주었다.

“그럼 이제 안 말리는 거지?”

성검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박준민은 그게 곧 긍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 이제 가야지. 아덴버그 사람들을 구하러.”

아덴버그의 결사대와 교국의 군대가 용기병을 찾기 위해 서부로 향한지도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근데 진짜 형님 대단하지 않아?”

일만오천에 달하는 피난민들이 갑작스레 교국의 국경에 나타났을 때는 박준민도 정말이지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김선혁에 의해 구원받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그 많은 사람들을 피난시킬 생각을 했을까. 나라면 포기했을 거야.”

[그가 보인 의기와 정의로움이 대단하기는 하나 지금의 너라면 그와는 달리 끝까지 저들을 인도할 수 있었을 거다.]

용의 반려에게 경쟁의식이라도 느끼는 것인지 성검 발뭉이 또다시 초를 쳤다. 주인을 추켜 세워주는 말이었지만 도리어 박준민은 인상을 찌푸리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 없었고, 그 자리에 있었던 건 형님이지.”

피난민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마왕과 수만의 마물들을 상대로 홀로 남은 김선혁의 결단은 정말로 희생과 헌신의 표본과도 같은 것이었다.

“형님은 진짜 영웅이야.”

용사의 마음속에 어느새 김선혁은 닮고 싶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런 형님을 구하러 간 사람들이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어. 이제 나도 용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좀 놀아보자고.”

[마왕을 가볍게 여기지 마라. 서부 전체가 마왕에게 마기를 전달하고 있으니, 앞으로 너는 온 세상이 너를 거부하고 배척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될 거다. 당연히 쉽지 않….]

“잔소리는 그만하고 이제 정리하고 가자.”

또다시 시작된 발뭉의 잔소리에 박준민이 진저리를 쳤다.

“어? 왜 이렇게 어수선해. 어디 또 뚫렸나?”

근래 들어 전선에서 가장 방비가 단단한 곳으로 일컬어지던 교국의 방어선도 번번이 뚫리는 일이 발생하고 있었다. 무식하게 부딪쳐 오던 마물들이 근래 들어 방법을 바꿔 교묘하게 빈틈을 노리고 경계를 넘기 시작했던 탓이었다.

“아닌가? 어디 뚫린 것치고는 사람들 표정이 그다지 나쁘지 않잖아.”

[군기가 들끓고 있다. 병사들이 이상할 정도로 들떠 있다.]

발뭉의 말대로였다. 병사들의 얼굴은 비보를 접했다기보다는 마치 승전보라도 들은 것처럼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게 더 이상했다.

밀고 밀리는 전투, 이제는 어지간한 승리조차도 무뎌진 병사들이 이처럼 흥분하는 광경은 근래 들어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사도시여.”

기지에 돌아온 그를 알아본 병사들이 존경과 경의를 담아 경례를 했다. 용사는 그런 것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얼굴로 기지의 분위기가 왜 이런 것인지를 물었다.

“드라흔! 전승공께서 살아 돌아오셨습니다!”

병사의 말에 박준민이 저도 모르게 환호했다.

“그럴 줄 알았어!”

주먹을 불끈 쥔 그가 병사에게 자세한 사정을 물었다.

“아덴버그 사람들도 같이 돌아온 건가?”

“아닙니다! 전승공께서 나타나신 건 북쪽입니다!”

기뻐하던 것도 잠시, 용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서쪽과 북쪽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덴버그의 인물들이 김선혁을 찾겠다고 서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정작 그 당사자가 나타난 건 엉뚱한 북쪽이었다.

도대체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 사람들이 이렇게 흥분한 거구만.”

“그것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병사는 마치 뭔가를 자랑하지 못해 안달이라도 난 사람처럼 잔뜩 흥분해 있었다.

“전승공께서는 혼자 돌아오신 게 아닙니다!”

“아덴버그 사람들은 함께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나.”

“맞습니다. 전승공과 함께 온 건 아덴버그의 병사들이 아니라.”

병사가 한 번 마른침을 삼키더니 버럭 소리쳤다.

“북방의 기병들입니다!”

“뭐?”

흥분한 병사는 이제 고래고래 악이라도 쓰듯 떠들어대고 있었다.

“지금 전승공께서 북부 초원의 기병 수만과 함께 마왕군을 연전연파하며 위기에 빠진 전선을 구원하며 남하하고 계시다는 소식입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지 박준민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있자 병사가 부연 설명을 해주었다.

“이제껏 나서지 않았던 북부 초원의 유목 민족들이 연합하여 참전을 선포했습니다! 도대체 전승공께서 무슨 수를 쓰셨는지 자기들밖에 모르는 고집불통 목동들이 사천도 아니고 사만이나 정예 기병들을 보내왔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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