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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푸어-183화 (183/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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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 거룡(巨龍) (1)

녹테인을 지나, 그리핀도르마저 관통한 기병들은 마침내 적국을 가로지르는 부담감을 떨쳐낼 수 있었다.

이후의 여정은 한결 수월했다. 중부의 왕국들은 아덴버그와 그 어떤 유감도 없었고, 오히려 중부의 상황에 적극적으로 병력의 파견을 결정한 아데스덴 왕실에 우호적이기까지 했다.

그들에게 있어 이 소수의 기병들은 우호의 상징과도 같았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적극적으로 일행을 지원해주었다.

그들은 괴수를 쫓느라 지친 클라크 일행이 쉴 수 있도록 기꺼이 자국의 기병을 파견하여 괴수를 추적하도록 하였고, 휴식을 마친 이들이 목표를 잃지 않도록 안내까지 자처했다.

지친 전마를 대신할 말을 제공한 것은 덤이었다.

골드레이크와 클라크 일행은 한 달을 내리 달린 끝에 마침내 신성 교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쉬지 않고 내달리던 골드레이크가 처음으로 휴식을 취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드르렁.

코까지 골며 바닥에 드러누운 괴수를 보며 클라크와 기병들도 말에서 내려 주저앉았다.

“아오. 죽겠네.”

중간에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대륙 동부에서 중부까지 한 달 만에 주파한 피로가 사라질 리가 없었다. 허리와 엉덩이를 부여잡은 사내들의 입에서 곡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음?”

그런 그들을 일으켜 세운 것은 새하얀 법복을 입은 신성 교국의 사제들이었다.

“동부의 형제들이여. 아스토리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난 교국의 사제들은 지친 기병들의 몸에 신성력을 퍼부어댔다.

파앗.

따스한 섬광이 닿자 고장난 듯 삐걱거리던 일행의 피로가 순식간에 날아갔다.

“아덴버그의 결단에 우리 중부는 진정으로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줄리앙은 척 보기에도 범상하지 않은 사제단의 대표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아무리 동부 왕국 최초의 지원군이라는 타이틀이 있다고 해도, 견습 기사 하나와 일반 기병들로 구성된 선발대를 반기는 태도치고는 교국의 환대는 지나쳤다.

혹시 외교적인 선전을 위한 포석일까.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자신들은 이제 막 교국에 도착했을 뿐이었으니까.

환대의 이유를 알기까지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던 줄리앙의 예상은 틀리고 말았다. 뜻밖에도 사제단의 대표가 직접 그 이유를 넌지시 언급한 것이다.

“전승공의 가솔들이라면, 우리 동부의 형제나 다름이 없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영주의 이름을 들은 기병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영주님께서는 무사하십니까?”

“영주님은 어디 계십니까!”

단지 이름을 언급했을 것만으로도 난리가 났다.

하기야 행방불명된 영주가 걱정되어 한 달을 쉬지 않고 달려 이곳에 온 이들이다. 겨우 영주의 소식에 대한 실마리를 얻었으니, 흥분할 만도 했다.

잠시 당황한 얼굴을 해 보였던 노사제도 그 사실을 헤아렸는지, 금세 온화하게 웃어 보였다.

“전승공은 무사하십니다. 단지 지금 어디 계신지는 저희도 알 수 없습니다.”

줄리앙은 노사제의 표정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그리고 확신하게 되었다.

사제단의 환대는 단지 자신들이 동부와 중부를 잇는 상징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저들이 이리 호의를 보이는 건 전승공 개인에 대한 호의 때문이었고, 자신들이 그의 가솔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전승공의 이름을 언급할 때마다 저리 노사제의 얼굴이 부드럽게 풀릴 리가 없었다.

대체 여기서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영지 밖으로 나갔다 하면 꼭 한 번씩 사고(?)를 치는 영주를 떠올린 줄리앙이 한숨을 내쉬었다.

**

골드레이크는 이제까지 쌓인 피로를 모두 풀 참인지 한참이나 깨어나지 않았다.

“저 충직한 드레이크는 저희에게 맡기시고 신전으로 가 여독을 푸시도록 하지요.”

신성력으로 샤워를 하다시피 한 덕에 육신의 피로는 풀렸지만, 한 달 동안 쌓여온 정신적인 피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노사제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괴수를 힐끗 살핀 클라크가 일행을 이끌고 노사제의 안내를 따랐다.

“아….”

사제단을 따라 도착한 신전은 일행의 생각과는 완전히 딴 판이었다.

신을 섬기는 사제들과 신실한 성도들이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경건한 분위기 따위는 없었다.

“끄아아아아!”

“꽉 잡아! 줄 고정하고!”

“사제님! 이쪽에도!”

고통에 몸부림치는 이들이 내뱉은 비명과, 그들을 붙잡고 악다구니를 쓰는 사제들의 모습이 마치 전쟁터와도 같았다.

“저들은….”

“서부 왕국들의 생존자들입니다. 마기에 중독되어 저리 광인처럼 변해버렸지요.”

마기에 중독된 이들이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한 소문은 오면서 들은 바가 있었다. 하지만 소문으로 듣는 것과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은 엄청난 차이였다.

마기에 중독된 환자들의 모습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단순히 광증이 도진 것이 아니었다.

몸은 검붉은 핏줄이 울긋불긋 돋아나 흉측하기만 했고, 까뒤집힌 눈은 흰자위와 검은자위가 뒤바뀌어 마치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그들이 내뱉은 신음과 비명은 마치 망자의 그것처럼 끔찍했고, 불길했다.

“빌어먹을 사제들! 씹어 먹을 놈들!”

“저주해! 너희들을 저주해!”

중독자들은 사제들을 향해 욕설을 내뱉고 적개심을 보이고 있었다. 자신들을 치료하기 위해 생채기를 마다치 않는 사제들에 대한 고마움은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아….”

교국이 위치한 중부에 비해 신앙심이 옅은 동부였지만, 그런 곳에서도 저리 사제들을 저주하고 욕하는 이들은 본 적이 없었다.

중독자들은 사제들이 불구대천의 원수라도 되는 것처럼 적대했다.

꾸벅.

갑작스레 신전을 찾은 일단의 무리에 대해 궁금할 만도 하련만, 사제들은 그저 간단하게 목례만 건네고는 제 할 일에 몰두했다.

노사제도 특별히 그들을 잡아 일행을 소개시켜주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변명처럼 한 마디를 했을 뿐이었다.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환자들이 줄을 끊고 도망치기 일쑤라, 손님에 대한 예를 제대로 차리지 못함을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사방에 가득한 병사들이 어쩐지 밖이 아닌 안을 경계하고 있다 싶었더니, 중독자들의 탈출을 염두에 둔 탓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렇게 경계를 서는 병사들이 대부분 서쪽에 몰려 있었다.

그게 이상하게 여겨졌던 줄리앙이 연유를 묻자 노사제가 안타까운 얼굴로 사정을 설명해주었다.

“마기가 골수에 미치면 마기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마인이 되지요. 마기가 충만한 곳에서 살아갈 때는 크게 표가 나지 않다가, 마기를 벗어난 순간 금단증세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스스로 마기를 찾아 움직이게 된답니다.”

무겁게 한숨을 내쉰 노사제의 시선이 서쪽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중독 증세야말로 서부에서 일어난 끔찍한 참사가 그토록이나 오랫동안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이유입니다.”

애초에 거주지의 선택과 여행이 자유롭지 않은 세상, 가뜩이나 척박한 대륙 서부를 찾는 이들의 수마저 적었으니 현지의 백성들이 직접 상황을 알리지 않는 이상 외부의 인물들이 서부에서 일어난 일을 알아내는 것은 지난한 일이었다.

“그래도 오가는 이들이 있을 텐데….”

“간혹 가다 중부와 서부를 오가는 상인들이 있긴 하지만, 그들이라고 중독에서 자유롭겠습니까. 뭔가 이상하다 느꼈을 땐 이미 늦은 게지요.”

노사제의 말에 줄리앙이 다시 중독자들을 바라보다 물었다.

“그럼 저들은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된 겁니까.”

척 보기에도 골수까지 중독이 미친 이들이다. 그런 그들이 자발적으로 서부를 벗어나 이곳까지 왔을 리는 없었다.

“전승공과 그리핀 라이더들께서 저들을 모두 구해오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줄리앙과 사내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아스토리아에서만큼은 전승의 이름보다 구원자의 이름이 더욱 유명하답니다.”

이 양반이….

클라크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 먼 곳까지 와서 오지랖을 떠는 영주의 행동이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실소하는 그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자부심과 존경심이 묻어났다. 다른 일행들의 얼굴 역시 그와 다르지 않았다.

“커흠.”

저들끼리 바라보며 실실 웃어대던 일행이 뒤늦게 헛기침을 하며 표정을 가다듬었다. 중독자와 사제들이 악다구니를 쓰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위화감을 조성할 필요는 없다 여긴 탓이었다.

“자랑스러워하셔도 됩니다. 전승공께서는 충분히 그럴만한 분이니까요.”

노사제의 말에 다시금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클라크가 물었다.

“그런데 여기까지 오면서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본국의 섭정 폐하께서도 전승공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실 걸로 알고 있는데….”

“전승공께서 저들을 이끌고 나타나신 건 얼마 되지 않았답니다. 지금쯤이면 중앙 신전에서 귀국에 전문을 보내 상황을 알렸을 겁니다.”

노사제는 이야기가 길어질 거라며 일행을 신전 안으로 안내했다.

**

골드레이크가 깨어난 것은 줄리앙 일행이 신전에 도착하고도 사흘이 더 지난 후였다.

크르르르.

번쩍 고개를 든 골드레이크가 서쪽 하늘을 노려보다 이동을 시작했다. 전과는 다른 느긋한 걸음, 하지만 그 기세가 마치 전투를 앞둔 전사처럼 비장하기만 했다.

쾅. 쾅.

마치 스스로의 존재감을 과시하듯 서쪽을 향해 나아가는 괴수의 뒤로 줄리앙 일행이 따라붙었다. 새하얀 성갑과 철퇴로 무장한 신전 기사 일백과 정갈하게 법복을 차려 입은 사제 서른이 그들과 함께 했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투철한 신앙심을 인정받은 베테랑 전사들만을 엄선하여 조직한 아스토리아의 자랑, 성전사단 3천이 그들을 호위하듯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은 마기가 넘실대는 서쪽으로 계속해서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마기의 경계에 도달했을 때,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서쪽 하늘에서 거룩한 빛의 기둥이 솟아올랐다.

“전승공께서 말한 신호가 틀림이 없습니다!”

사제단의 대표로 함께 참석한 노사제, 이스마엘이 외쳤고, 경계를 앞두고 잠시 멈춰 섰던 골드레이크가 사납게 포효했다.

크아아아아아아.

길게 울부짖은 금빛 괴수가 마기에 오염된 땅을 향해 쿵쾅거리며 전진하기 시작했다.

“갑시다!”

이스마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신전 기사단과 사제단, 그리고 성전사단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신의 은총은 치우침 없이 온 세상에 가득하더라!”

꿀렁거리며 그들을 향해 아가리를 벌린 마기가 사제들의 맑고 높은 성가에 밀려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마치 검은 파도가 갈라지는 듯한 광경이었다.

“신 앞에 삿된 것들은 모두 하찮기만 하여라!”

그들은 계속해서 나아갔다.

“빛이 사라집니다!”

온 사방에 가득한 마기 속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사제들의 성가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신전 기사들과 성전사들의 걸음이 빨라졌다.

하지만 빛은 그들이 당도하기 전에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렇게 사라진 빛의 기둥을 대신해 거대한 물체가 하늘 높이 목을 치켜들었다.

크아아아아.

멀리서 보기에도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괴생명체가 울부짖고, 그에 화답이라도 하듯 골드레이크가 포효했다. 그런데 그 사납고 위맹한 포효가 놀라우리만치 서로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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