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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푸어-161화 (16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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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불청객 (2)

철퍽.

처음 문밖으로 튀어나온 것은 한 덩어리 점액질이었다. 반쯤 녹다 만 양의 몸통이 들어가 있는 점액질 덩어리는 씹다 뱉은 오물처럼 더럽고 흉물스러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문 너머에서 나타난 정체불명의 환수는 역겨울지언정 조금도 위협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이다.

쩍 하니 열린 환계의 문을 통해 점액질 덩어리가 끊임없이 튀어나왔다. 마치 문이 토악질이라도 해대듯 흉하고 역겨운 광경이었다.

토사물과도 같은 점액질 덩어리들이 꿀렁거리다 한데 뭉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집채만 하게 불어나버렸다.

뽀그르르.

기포가 일며 출렁이는 환수의 반투명한 몸통 안쪽으로 반쯤 소화되다 만 양과 소의 잔해들이 이리저리 밀려다니는 모습은 정말이지, 최악이었다.

“뭐, 저런 말도 안 되는 놈이 다 있어!”

언제든 달려들 수 있게 준비하고 있던 김선혁도 그 끔찍한 모습을 보고는 기겁을 하고 말았다. 이 세상에 떨어진 뒤로 정령이니, 몬스터니 온갖 해괴한 것들을 직접 눈으로 봐온 그에게도 환수의 모습은 비현실적이고 충격적이었다.

“내 실수야. 하루 종일 문을 열고 냄새를 풍겨댔으니, 저 식욕 덩어리가 냄새를 맡지 못했을 리가 없지.”

절망적으로 중얼거린 판이 최민영의 팔목을 잡았다.

“도망치자.”

“뭐?”

그녀가 황당한 얼굴로 되묻자, 판이 뻔뻔스럽게 지껄여댔다.

“어차피 내버려두면 제 배만 채우고 돌아갈 놈이야. 괜히 상대해서 득 될 것도 없다고.”

“그, 그럼 요새는? 여기 사람들도 많은데?”

최민영의 말에 판이 답답한 듯 가슴을 치며 말했다.

“지금 요새가 문제야? 토르고스가 나타났으니 어차피 이 주변은 끝장난 거나 다름없다고!”

“잠깐. 그 말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군.”

가만히 판의 말을 듣고 있던 김선혁도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던 것인지, 나서서 물었다.

“저 놈이 대체 뭐길래, 그렇게 호들갑이지?”

출렁거리는 거체가 흉물스럽기는 하지만, 환수는 그렇게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판은 마치 세상의 종말이라도 마주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어댔다.

“탐식의 환수 토르고스. 감정도 지능도 없는, 오직 식욕으로만 움직이는… 잠깐.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고! 놈이 아직 정신이 없을 때, 도망쳐야 한다고!”

판이 다시 최민영을 잡아끌었다.

무책임한 환수는 이 요새가 어떻게 되고, 요새에 머무는 수많은 사람들이 어떤 꼴을 당하든지 간에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백작님….”

최민영이 역겨운 점액질 덩어리를 쳐다보다 김선혁을 불렀다.

“물러나라. 척 보기에도 날붙이가 먹힐 만한 놈이 아닌 거 같으니까.”

그는 꿀렁거리며 갈라졌다가 다시 뭉치기를 반복하는 토르고스를 마주 보고 섰을 뿐, 미동도 하지 않았다.

투구의 얼굴 가리개를 내린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까지는 보이지 않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당장 물러설 생각이 없다는 것 정도는 그녀도 느낄 수 있었다.

“판. 떠나기 전에 한 가지 묻지.”

“이럴 시간이 없다고!”

판은 그 질문에 성질을 냈다.

“닥치고 묻는 말에나 대답해. 더 이상 건방은 받아줄 생각이 없으니까.”

스멀스멀 피어나는 드래곤 피어의 기세, 판이 목을 움치며 찔끔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제 배가 차면 알아서 돌아갈 놈이라고 했지? 그럼 저놈은 얼마나 먹어야 배가 차지?”

“가축으로 치면, 1천 마리쯤은 먹어 치워야 배가 찰 놈이야.”

기가 죽은 판이 그의 말에 잠시 생각해보더니, 토르고스의 끔찍한 식탐에 대해 알려주었다.

“만약 근처에 먹을 게 없으면?”

“찾아서라도 꾸역꾸역 먹어치우겠지. 근데 진짜 이럴 시간이 없다니까!”

잠시나마 잠잠해졌던 판이 다시 난리를 피워댔다.

그런 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김선혁이 최민영을 돌아보았다.

“가서 깁슨 교관과 클라크를 찾아. 아니 누구에게든 좋으니까 당장 대피하라 전해.”

제 자리에서 꿀렁거리던 토르고스의 몸이 슬금슬금 주변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이 흘렀을 때 토르고스의 몸은 이미 한적한 공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퍼져나가 있었다.

“잘 생각했어! 저 놈은 환계에서도 다들 피하는 놈이야! 제풀에 지칠 때까지 내버려두는 게 상책이거든! 자, 가자!”

판이 더욱더 최민영을 다그쳤다. 하지만 그녀는 주춤거리며 몇 발자국 움직이다 여전히 그 자리에 버티고 선 김선혁을 보며 걸음을 멈췄다.

“배, 백작님?”

염려가 가득한 그녀의 음성에 그가 투구 너머에서 작게 중얼거렸다.

“누군가는 시간을 벌어야겠지.”

움켜잡은 그의 기형 거창에 바람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

“각 교관들은 1조에서 6조까지 인원 확인하고! 다 모이는 순으로 최대한 빨리 요새에서 빠져나간다!”

그간의 강도 높은 훈련은 이방인들로 하여금 몸이 먼저 반응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그 덕분에 대피는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뭐지? 대체 무슨 일인데….”

“이것도 훈련인가?”

물론 의문은 있었다. 단지 훈련 상황이라고 하기에는 교관들의 표정이 지나치게 굳어있었던 것이다.

영문도 모르고 대피를 서두르던 이방인들이 이유를 알게 된 것은 요새를 벗어난 직후였다.

“저건 뭐지?”

이방인들 중 눈이 좋은 저격병들이 눈을 가늘게 뜨고 요새를 바라보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싹 메말라 있던 낡은 요새의 외벽 일부가 마치 비라도 맞은 것처럼 얼룩이 생겨났다.

“비?”

하지만 하늘은 맑았고, 바람은 습기 하나 없이 건조하기만 했다.

“어?”

단지 얼룩이라고 생각했던 무언가가 출렁거렸다. 그리고 그 작은 출렁임은 이내 커다란 해일처럼 변해버렸고 요새의 한쪽 성벽과 첨탑을 완전히 집어 삼켜버렸다.

“저게 뭐야!”

저격병의 시선을 따라 요새를 바라보고 있던 다른 이방인들이 이변을 알아차린 것도 그 무렵이었다.

콰아아아!

번들거리는 무언가에 집어 삼켜졌던 요새의 일부가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대장님의 와이번이다!”

붕괴된 요새의 한켠에서 붉은 그림자가 날아올랐다.

“대장님도 있어!”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길고 커다란 창을 움켜잡은 기사의 모습에 이방인들은 상황도 모르고 환호했다.

“저게 바로 창공의 드라흔!”

그 위풍당당한 모습에 감명을 받은 이방인들은 고개를 빼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고오오오오오!

그 순간 요새의 하늘에 광풍이 불어 닥치더니, 이내 태풍과도 같은 기세로 대지를 향해 내리꽂혔다. 간신히 버티고 있던 첨탑 몇 개가 그 기세에 휘말려 무너져 내렸다.

“우와! 저게 대체 뭐야!”

이방인들은 엄청난 광경에 환호했다.

“와. 완전 괴물이잖아!”

“설마 상급 병과는 전부 다 저런가?”

그 인간 같지 않은 힘에 이방인들이 연신 감탄을 토해냈다.

“근데 대체 뭐와 싸우고 있는 거지?”

놀라움이 큰 만큼 의문도 깊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의문을 풀어줄 교관들도 사정을 정확하게 모르기는 매한가지였다.

교관들 역시 갑작스레 찾아온 최민영을 통해 전해진 김선혁의 지시에 따랐을 뿐이었다.

“환계의 짐승이라니….”

환계는 뭐고, 또 환수는 뭔지 알 길이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 듣도 보도 못한 환수라는 놈이 저 강력한 용기병과 맞상대를 할 정도로 강대한 존재라는 것이었다.

콰아아아아아!

요새의 하늘에서는 끊임없이 광풍이 몰아쳤고, 붉은 와이번에 올라탄 김선혁은 쉴 새 없이 강습과 상승을 반복했다.

하지만 요새에 묻어난 얼룩은 점점 커져만 갈 뿐,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 번들거리는 얼룩이 요새 전체를 집어삼켰을 때, 맹렬하게 강습을 반복하던 와이번이 그들 사이에 내려앉았다.

“인원보고!”

레드번이 바닥에 내려앉기가 무섭게 김선혁이 외쳤다.

“1조에서 7조까지 열외 없이 전부 요새를 빠져나왔습니다! 교관들 역시 전원 무사합니다!”

“다행이군.”

그제야 투구의 얼굴 가리개를 올린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최민영은?”

“여, 여기 있어요….”

기어들어가는 음성에 고개를 돌린 그는 잔뜩 어깨를 움츠린 최민영을 발견할 수 있었다.

“판은 어디 있지?”

“나는 왜?”

펑, 하고 모습을 드러낸 판의 기괴한 모습에 이방인들이 웅성거렸다. 하지만 김선혁은 그런 그들의 반응은 안중에도 없는 듯, 판에게 물었다.

“왜는 왜야. 저 토르고스라는 놈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해봐.”

아까까지만 해도 도망치자고 난리를 피우던 판은 요새를 잠식한 토르고스와의 거리를 가늠하다 비교적 침착하게 대답했다.

“직접 겪어봤을 테니 어지간한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건 알 테고. 그 외에는 별거 없어. 그냥 끔찍할 정도로 먹성이 좋은 놈이고, 환계의 고위 환수들도 어지간해서는 맞상대를 하는 법이 없다는 것 정도.”

판의 말 대로였다. 김선혁은 그 어떤 공격으로도 토르고스에게 피해를 입힐 수가 없었다. 마치 수면에 대고 창질을 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퇴치방법은?”

“통째로 집어삼키고 소화시키든가, 그도 아니면 제 스스로 먹을 걸 찾지 못해 쪼그라들다 사라지든가. 그런데 네가 탄 그놈은 토르고스를 통째로 집어삼킬 정도로 크지 않네. 이 주변에 놈이 먹을 것도 풍부해 보이기도 하고.”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태도에 화가 치밀어 오를 지경이었지만, 김선혁은 애써 화를 참았다.

지금 여기서 판을 다그치는 것은 소환자인 최민영을 나무라는 것과도 같았다. 지금도 자신의 욕심이 벌인 끔찍한 참사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그녀의 기를 더 죽이는 건 지나치게 가혹한 처사였다.

게다가 지금의 상황이 마냥 그녀의 잘못 만이라고도 할 수만은 없었다.

어쨌건 간에 그녀를 부추겨 환수를 불러내게 만드는 데는 그 역시 일조했던 탓이었다.

“깁슨 교관. 이 근방에 마을이나 사람이 사는 곳이 있나?”

“이곳에서 제법 떨어지긴 했지만, 사람 사는 곳이 없는 건 아닙니다.”

“거리는?”

“말을 타고 이틀에서 3일이면….”

깁슨의 말에 판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3일로는 부족해. 최소한 열흘은 굶어야 토르고스도 돌아갈 마음이 들 거야.”

그 말에 김선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 잠시만요!”

그렇게 궁리에 빠져든 그에게 최민영이 말을 걸었다.

“제가 벌인 일이에요. 그러니 제가 수습해볼게요.”

“미쳤어? 저게 그냥 환수인지 알아? 저놈은 환계의 비틀림과도 같은 놈, 너 같은 햇병아리가 상대할 수 있는 놈이 아니라고!”

판이 기겁을 하며 펄쩍 뛰었다.

“무리하지 마라. 다행스럽게 기병들이 여럿 있으니, 토르고스가 당도하기 전에 주민들을 대피시키면 되니까.”

김선혁 역시 그녀를 만류했다. 하지만 그녀는 완강했다.

“계획이 있어?”

그는 그녀의 고집에 일단 들어나 보자는 투로 물었다.

“저는 환수사.”

최민영이 그런 그를 보며 비장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토르고스 역시 환수라면, 제가 길들여 보겠어요.”

**

최민영의 각오와는 별개로 기병들이 인근 마을에 소개령(疏開令)을 전하기 위해 출발했다.

“깁슨 교관. 그럼 이들을 부탁하도록 하지.”

김선혁은 깁슨 교관에게 이방인들의 지휘를 맡겼고, 아울러 가급적이면 인근 영주들의 눈에 이들이 띄지 않도록 조심하라 당부했다.

“맡겨두십시오!”

이런 일이라면 이골이 났다며 깁슨이 가슴을 두들겨댔다.

“그럼 출발해.”

김선혁은 깁슨의 지휘를 따라 사라지는 이방인들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그때쯤 토르고스의 덩치는 그들이 훈련소로 쓰던 거대한 요새에 버금갈 정도로 거대해져 있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덩치를 확장해가고 있었다.

그는 가급적이면 빨리 저 괴물을 진정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소란이 더 이상 커졌다가는 귀족들이 이방인들의 집결을 알아채고 반발할 가능성이 높았다.

지금이라면 단순한 소동으로 마무리할 여지가 있었다.

“꽉, 잡아.”

최민영을 레드번 위에 태운 김선혁이 날아올랐다.

“꺄악!”

그녀는 급격한 상승에 비명을 질렀지만, 이 세상의 사람들처럼 병적인 비행 공포증을 보이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항공시설이 익숙한 저쪽 세상에서 살아온 그녀의 출신이 도움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어지간히 말도 안 되는 놈들이구나. 환수라는 놈들도.”

하늘에 올라 바라본 토르고스의 모습은 지독스러울 정도로 비현실적이었다. 토르고스가 잠식해버린 대지가 어지간한 경작지 이상으로 거대했던 것이다.

“이제 좀 괜찮아요.”

한참 만에 정신을 차린 최민영이 준비가 끝이 났음을 알려왔다.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

김선혁은 서서히 레드번의 고도를 낮췄고, 그의 존재를 눈치챈 토르고스의 육신이 마구 출렁이기 시작했다.

“테이밍!”

토르고스의 역겨운 몸뚱이가 눈에 선하게 보일 정도로 접근한 순간, 최민영이 스킬을 발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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