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래곤 푸어-156화 (156/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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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특이 병과의 이방인 (2)

때마침 일과 중 일어난 2차 전직, 각기 담당 교관들의 지시에 다른 자세, 다른 형태로 땅을 구르던 모든 이방인들이 이수혁이라 불린 사내의 입에 집중했다.

“거검병(Zweihander)이라는데요?”

이방인들의 얼굴에 실망감이 스쳐갔다. 뭔가 대단한 변화라도 기대했던 모양이다.

기사라든지 광전사라든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중급의 병과에 준하는 힘을 기대했건만, 고작 이름 앞에 거(巨) 하나가 추가되었을 뿐이니 실망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김선혁은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일반 기병과 용기병의 차이는 이름 앞에 붙은 ‘용’이라는 한 글자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과 본연의 능력 차는 차마 비교하지 못할 정도였다. 검병 앞에 붙은 ‘거’라는 한 글자 역시 그만큼의 위력을 갖고 있으리라.

“클라크. 방패를.”

김선혁은 몸소 그 위력을 측정해보기로 작정했다.

“스킬 새로 생긴 거 있지?”

클라크가 건네준 대형 방패로 몸을 가리며 자세를 낮췄다.

“나한테 다 써봐.”

**

기사의 검력처럼 오색찬란한 섬광도 없었다. 이수혁이 내지른 일격은 말 그대로 종으로 내려찍는 단순하고 투박한 내려치기였을 뿐이다.

쾅!

하지만 그 위력이 범상치 않았다. 혹시 몰라 지 속성을 이용해 몸을 무겁게 하고 방패를 단단히 보호하지 않았다면, 철판을 덧댄 대형 방패마저도 박살이 날 만큼 강력한 공격이었다.

“아….”

기껏 스킬까지 써가며 젖 먹던 힘을 다해 공격했는데 정작 방패를 든 김선혁은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은 채, 굳건하기만 했다. 이수혁의 얼굴에 언뜻 실망이 스쳐갔다. 다른 이방인들 역시 모두 이수혁과 표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선혁이 지닌 진짜 힘을 몰랐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수많은 초인들이 존재하는 아덴버그에서도 지금의 그를 물러서게 할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방패를 내려놓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트레일 경. 경이 보기에는 어떻습니까.”

아샤 트레일은 대답 대신 그가 내려놓은 방패를 주워들었다. 아무래도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판단할 수 없다 여긴 모양이다.

쾅!

김선혁이 받아내었던 것과 완전히 똑같은 공격이 아샤 트레일이 움켜잡은 방패 위로 떨어져 내렸다.

물론 이번에도 방패는 멀쩡했고, 아샤 트레일은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았다.

“아아….”

뚫어져라 여기사의 방패와 발치를 바라보던 이수혁은 더욱더 실망한 얼굴이 되었다. 덩치도 크지 않은 여기사조차 어찌할 수 없는 자신의 힘에 어지간히 실망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아샤 트레일이야말로 아덴버그의 수많은 기사들 중에서도 정점에 오른 초인이었으며, 단 일백 에게만 수여되는 그라두스의 소유자였다.

게다가 왕가 수호대로 오랜 시간을 종사해온 그녀에게 방패술은 검술 이상으로 신경 써야 했던 필수 과목이었으니, 어쩌면 방패를 쓰는 경지에서만큼은 김선혁 이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수혁이 그녀를 물러나게 했다면 그게 도리어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만약 그게 가능했다면, 2차 전직을 마친 검병은 상급 기사 이상의 힘을 지닌 괴물이라는 소리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런 내막을 모르는 이수혁은 이제 완전히 좌절하여 눈마저 질끈 감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김선혁의 질문에 아샤 트레일이 방패의 바깥 면을 살펴보다 짧게 대답했다.

“단순히 위력만 보자면 평기사 이상, 선임 기사 미만입니다.”

“트레일 경의 생각과 제 생각이 같군요.”

그와 아샤 트레일의 대화에 이수혁이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깁슨 교관. 검병 이수혁의 병과 등급을 다시 한 번 측정해주기를 요청한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바로 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수혁은 여전히 눈앞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를 따라가지 못해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미리 축하하도록 하지.”

그런 그에게 김선혁이 다시 한 번 손을 내밀며 웃어 보였다.

“추, 축하 말입니까? 저는 실패한 거 아니었습니까?”

그의 말에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깁슨 교관이 헛웃음을 쳤다.

“만약 두 분 중 한 분이라도 물러날 수 있게 만들었다면, 자네는 중급이 아니라 가장 높은 등급을 받았을 걸세. 누가 뭐라고 해도 이 두 분은 어지간한 상급 기사들도 눈 아래로 보는 분들이니까.”

“아….”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이수혁이 털썩 주저앉았다. 금세 뿌옇게 차오른 눈물이 흙투성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럼 저는 이제….”

그간 받았던 서러움이 한꺼번에 몰려온 듯 이수혁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일어나게. 아직 끝이 난 게 아니야. 등급 재측정 안 할 건가?”

“하, 합니다! 합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이수혁이 눈물을 훔치며, 씩씩하게 대답했다.

“축하한다!”

“내가 제일 먼저 하려고 했는데! 어쨌건 축하해!”

“곧 나도 뒤따라가마!”

숨죽인 채 이 모든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이방인들이 함성을 지르며 축하의 말을 건넸다. 먼저 2차 전직에 성공한 동료의 모습에서 자신들의 미래를 봤는지, 어느 누구 하나 질투하고 시기하는 자가 없었다.

그들은 진심으로 2차 전직을 축하해주었고, 그들의 축하 속에서 이수혁은 훌륭하게 깁슨의 테스트를 통과했다.

“거검병 이수혁! 중급!”

새롭게 등급을 조정받은 이수혁은 곧장 아샤 트레일에게 인도되었다.

“지구력에서는 여러모로 부족합니다. 하지만 순간적인 폭발력에서만큼은 어지간한 평기사들 이상입니다. 단기전이라면 능히 기사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아샤 트레일은 거검병의 스킬과 능력이 양손검을 사용하는 데 적합해 보이니 자신이 직접 지도할 수 있도록 해달라 요청했다.

“그럼 앞으로 거검병이 또 나온다면 전부 트레일 경에게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김선혁은 흔쾌히 그녀의 요청을 들어주었다.

**

이수혁이 2차 전직에 성공한 뒤로 이방인들은 더욱더 열성적으로 훈련에 매달렸다.

“중급! 중급! 중급! 너도 중급!”

그 결과 수많은 이방인들이 2차 전직에 성공했고, 그들은 깁슨의 테스트를 통과해 무사히 중급으로 등급이 재조정되었다.

“우, 우리도 다시 참가하게 해달라고 할까?”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훈련에 불만을 품고 자청하여 열외 되었던 자들이 안달을 내기 시작한 것도.

“좋겠다. 그늘에서 쉬고 있어서.”

“그러게. 부러워 죽겠다. 그래도 2차 전직 하려면 굴러야지. 안 그래?”

이제는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그간 땡볕에서 무의미한 노동에 매달리는 동기들을 비웃었던 열외자들은 도리어 비웃음을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스스로 원해서 훈련을 거부했던 그들이 달리 반박할 말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들은 그동안 흘린 땀에 대한 보답을 받아가는 동기들을 보며 전전긍긍해야만 했다.

다시 훈련에 참가시켜달라고 하자니 그간 해온 짓이 있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하나둘 2차 전직에 성공하는 동기들의 모습이 너무도 부러웠다. 결국 그들은 얼굴에 철판을 깔고 김선혁을 찾았다.

“뭐? 다시 훈련에 참가하고 싶다고?”

“네….”

용기를 내어 훈련에 재참가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왜? 편하고 좋다며. 내 거짓말에 놀아나는 다른 사람들이 멍청한 거라며.”

“그, 그건 본심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입 다물어.”

되지도 않을 변명을 해보았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다.

분명 김선혁은 어지간하면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온화한 성격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한 번 돌아서면 다시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 냉정함도 갖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이들은 돌아볼 가치가 조금도 없는 자들이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꼭 네놈들 같은 정신머리를 지닌 놈들이 나중에 동료를 배신하더군.”

중급에 오른다고 해도 결국 이방인들이 제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설 곳은 전장이었다. 그리고 눈앞의 자들은 그렇게 전장에 투입될 다른 이방인들의 등을 절대로 맡길 수 없는 부류였다.

“뭐라도 시켜주십시오. 뭐든 하겠습니다!”

“꼭 시킬 때 안 하고 나중에 딴 소리를 하는 놈들이 있어. 그게 딱 네놈들이다.”

때늦은 후회에 그가 차갑게 대꾸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필사적이었고, 속속 중급 병과에 오르는 동기들에게 뒤처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허드렛일을 전부 맡기지. 훈련에 참가하는 것은 시킨 일을 전부 끝낸 후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하다고 연신 고개를 숙여 보이는 열외자들을 보며 그는 싸늘하게 말했다.

“끝까지 고마워하는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

김선혁은 그날부로 복귀한 사내들에게 그간 병사들이 해왔던 온갖 잡일을 전부 떠안겼다. 병사 수십 명이 해오던 일들을 고작 열 명도 되지 않는 이들이 하려니 일이 쉬이 끝날 턱이 없었다.

“빌어먹을 빨래! 이 새끼들아 옷 좀 깨끗하게 입어!”

불평하는 그들에게 다른 이방인들이 도리어 쏘아붙였다.

“뭐래. 그게 가능할 거 같아?”

“그러게 처음부터 잘하지. 왜 사서 고생이야.”

저 미꾸라지 같은 놈들이 물을 흐리는 바람에 자신들이 얼마나 유혹에 시달려야 했던가. 그들은 더욱더 열성적으로 바닥을 뒹굴며 저들의 불평에 화답했다. 당연하게도 열심히 바닥을 뒹굴수록 열외자들이 해야 할 일들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열외자들은 훈련에 재참가하기는커녕 다른 이들이 훈련을 마칠 때까지 하루 종일 허드렛일에만 매달리는 게 일상이 되었다.

“안 해! 더러워서 2차 전직 안 해!”

“어차피 돌아가면 나도 조장이라고! 그 정도만 해도 먹고 사는 데 지장 없어!”

한 번 포기했던 이들이 두 번이라고 하지 못할까. 열외자들은 금세 욕설을 퍼부어대며, 김선혁이 주었던 마지막 기회마저 걷어차 버렸다.

“빌어먹을 놈들아! 니들이 그만 두면 우리는 어떻게 하라고!”

열 명의 열외자들 중 다섯이 포기했다. 남은 다섯은 더욱더 과중한 노동에 시달려야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중 둘이 다시 빨랫감을 던지고 요새의 그늘로 기어들어갔다.

남은 것 이제 셋, 하지만 더 이상 포기하는 자들은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자는 것마저 포기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허드렛일에 매달렸다. 그리고 그렇게 3주일이 지났을 때, 김선혁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세 명의 이방인들을 훈련에 다시 참가시켜주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두 번은 없다.”

그들은 이 세상이 두 번 기회를 줄 정도로 따뜻하지 않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래서 더욱더 열심히 훈련에 매달렸다. 심지어 일과가 끝난 이후 남아서 제 스스로를 단련하기까지 했다.

“이제까지 2차 전직을 마치고 등급이 재조정된 자의 수가 스물일곱입니다. 이 정도 전력이면 중앙 기사단의 예비대 정도는 되는 전력입니다.”

어느새 예순에 달하던 하급 병과의 이방인들 중 여전히 하급에 남아있는 자들의 수가 절반도 채 남지 않게 되었다.

“왕실에서 좋아하겠군.”

깁슨의 보고에 김선혁은 흡족하게 웃었다. 이 정도라면 늦었지만 지난 약혼의 예물로는 차고도 넘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폐하께서 몹시 기뻐하시며 중급에 오른 이방인들 전원에게 친히 기사의 작위를 내리실 거라 직접 마법전문을 보내오셨습니다.”

김선혁은 당장 이 소식을 중급에 오른 이방인들에게 알려주었다. 그들은 몹시 기뻐했고, 언제고 왕성에 찾아갈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 그런데 말입니다.”

“뭔가 할 말이라도 있나?”

이수혁이 조심스레 입을 열더니,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해왔다.

“그럼 저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제 뿔뿔이 흩어지는 겁니까?”

그간 동고동락하며 느낀 정이 적지 않았는지, 유대감 가득한 그들의 얼굴에 동기들과 헤어지기 싫다는 감정이 역력했다.

“그리고 대, 대장님과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뭐? 대장?”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싶어 뒤를 돌아보니 클라크가 나서서 설명해주었다.

“한센 같은 놈들이 종종 사석에서 백작님을 대장님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더니, 그 뒤로 자신들도 그렇게 부르고 싶어 하는 눈치를 보였더랍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까 이미 자기들만 있을 때는 그렇게 부른 모양입니다.”

“아….”

한센 같은 드레이크 기병대의 원년 멤버들이 간혹가다 장난스럽게 과거의 호칭으로 그를 부를 때가 있었다. 아무래도 이방인들이 그 소리를 듣고는 따라 부르기 시작한 듯했다.

“끄응. 대장은 무슨 골목대장도 아니고.”

김선혁은 민망함에 핀잔을 주었지만, 싫은 기분은 아니었다. 훈련을 주도하며 정이 든 것은 비단 저들뿐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쨌건 이후의 임지나 배속에 관해서는 내가 생각해둔 것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도록.”

그가 보기에도 이들을 떨어트려 놓는 것은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당장 이들이 느끼는 유대감과 동료의식은 둘째 치고서라도 병과 하나하나의 기형적인 힘을 보완하려면 이들은 함께 있어야 더욱 큰 힘을 발휘했다.

일격 일격의 위력이 뛰어나 밀집한 상대의 진형을 무너뜨리고 공격의 물꼬를 트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거검병(Zweihander)은 공격능력이 전무한 대신 방어 능력만큼은 뛰어난 수호병(Guardian, 전-방패병)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일반 초인에 비해 발이 느린 이들은 저격병(Sniper, 전-궁병)의 지원을 받아야만 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런 이들을 일반 기사들 틈에 섞어두어 봐야 반편이 취급이나 받을 뿐이었다. 김선혁은 하나 남은 소원 찬스를 써서라도 이들을 한데 모아둘 작정이었다.

“호, 혹시 대장님이 저희를 이끌어주실 수는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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